인터뷰

한국연극의 미래를 위한 이야기

- 연출가 이승규의 작업을 중심으로




서연호 / 고려대 교수·연극평론가

서연호-저의 이번 뉴욕 방문 일정에는 이형이 연출한 <유랑극단> (1993년10월8일-10일)을 관극하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유난히도 상쾌하고 화창한 뉴욕의 가을날씨에 브로드웨이 95번가 심포니 스페이스 극장에서 본 공연과 실내 분위기는 새로운 감회를 느끼게 했습니다. 먼저 극단 '누리'의 창립공연 작품으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와 창단의 동기를 밝혀 주시는 데서부터 오늘의 대담을 시작해 볼까요?

<유랑극단>의 연출에 대하여

이승규-지금까지 뉴욕에서 활동해 온 교포극단으로는 장두이 중심의 극단 '알댄스'와 김혜련 중심의 극단 '실크로드'가 있었습니다. 두 단체는 대체로 구성자들 개인 위주의 전위성을 표방한 연극을 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리'는 애초부터 교포사회와 호흡을 함께하면서 보다 예술적 보편성이 짙은 공연을 토대로 이곳 뉴욕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포부로 결성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한인의 문화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할 극장공간의 마련과 우리 연극의 새로운 세대를 위한 창조적인 훈련과 표현의 중심체로서 성장해야 한다는 목표도 아울러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러했지만, 이번의 레퍼토리 선정은 특히 어려웠습니다. 우리 한인이 공감하는 요소, 재미를 느끼는 것, 시각적인 미 등을 제공할 수 있는 작품, 교포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그러면서도 서양인들에게도 보편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 이를테면 아일랜드의 저 <서쪽 나라의 장난꾸러기>같은 작품을 선뜻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가운데 이근삼 선생의 <유랑극단>은 어려운 시대 속의 한인의 삶을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형식으로 담은 작품이고, 또한 직접 연출한 적도 있고 해서 여러 가지 궁리 끝에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서연호-1972년 명동 예술극장에서 역시 이형이 연출한 <유랑극단>을 관극한 저로서는, 이번 공연이 낡은 기성품의 전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전보다 연기자들의 수준 차이가 심하고 기량이 다소 모자란다고 하더라고, 원작 자체를 해석하고 시청각화시키는 방법의 측면에서는 새로움이 돋보였습니다. 연출가 자신은 이번 공연에 어떻게 대비하셨는지요?

이승규-21년 전의 공연에 비하여 커다란 변화를 추구하기에는 한계를 느꼈고, 또한 목격하신 대로 여건상 애로가 많았습니다. 다만 연출자인 저로서는 고정된 세트가 없는 빈 무대공간에서, 극적 기교와 주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재미있는 연극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으로 밀고 나아갔습니다. 단원들이 직접 만든 손수레와 나무의자 몇 개를 다양하게 이용하여 장면과 상황을 바꾸어 가면서, 지난 시대 유랑극단 배우들의 변화 무쌍한 삶을 입체적으로 혹은 서정적으로, 심리적으로 혹은 활력 있게, 속도감 있게, 다각적으로 시각화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주제의 측면에서는 관객인 교포들의 이민생활상을 고려하여 고난으로부터의 재생의 노력, 절망 상태 속에서의 극복의지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원작을 다소 수정해 보았습니다만, 솔직히 의도대로 잘 드러내지는 못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서형의 냉엄한 평가를 오히려 듣고 싶습니다.

서연호-앞서 지적한 대로 이번 공연은 연출적으로 참신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연기자들의 기량과 밴드 반주의 수준이 연출의도에 충실히 뒤따르지 못한 것은 어쩔수 없는 실정이었다고 하겠습니다만........ 연기와 음악과 도구들을 통한 숱한 장면들의 구성에 시청각적 이미지를 증폭시키고 점증시킴으로써, 작품의 상징적인 의미를 견실하게 구축해 가고자 하는 과정은 여실히 드러나 보였습니다.

시청각적 이미지의 적극적인 추구라는 연출방법면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하고자 합니다. 원작의 해석적 측면에서는, 박해녀 역으로 하여금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대에 합류하는 진보적인 성격이 되도록 수정제시한 점과, 마지막의 극중극으로 농민의 승리를 그린 탈춤마당을 첨가시켜 상징성을 높인 것이 특히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어색한 밴드반주가 오히려 과거 유랑극단 시대의 분위기를 그럴싸하게 느끼게 해주는 실내에서, 숱한 관객들이 연극에 동화되어 마냥 즐거워 하거나 눈물짓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저는 이번 공연의 성과를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유랑극단>에 관해서는 간략히 이만 줄이고 근년에 이루어진 연출작업, 특히 그 중에서도 이형 스스로가 의의를 느끼고 있는 작품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근년의 작업에 대하여

이승규-1965년부터 연출을 시작했습니다만, 해가 갈수록 사실적인 연극은 강한 인상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이근삼 선생의 <아벨만의 재판>(1977년 9월) 연출을 계기로 비사실적인 연극에로의 전환을 시도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연극의 시간개념과 공간 개념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지요.

서연호-제1회 대한민국연극제(현재의 서울연극제)에 출품된 작품이었지요?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을 암유했다고 해서 수군거리던 기억이 납니다.

이승규-이강백 작의 <개뿔>(1979년 9월)은 본격적으로 비언어적인 연극, 비사실적인 연극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1시간 30분의 공연시간을 가면과 마임을 통해 숨돌릴 사이 없이 이끌어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관객들에게 부담을 준 너무 과격한 실험이었고, 획일화된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효과적인 소리나 음악, 짧은 대사, 세트에 의한 장면 등이 첨가되었더라면 좋은 공연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개뿔>에 대하여는 언젠가 재공연의 의욕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연호-제3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출품된 <개뿔>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일상적인 언어 대신에 몸짓·침묵·가면·소리·빛 등을 극적인 언어로 대치시킨 행위로 주목을 끌게 하였지요. 바보스런 청년 개뿔은 잘 길들여진 획일화된 세계와 자유와 사랑의 세계관 사이에서 학대받고 방황하고 갈등하는 당대의 인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작품 이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는 바람에 이형의 연출작은 서울에서 한동안 볼 수 없었습니다. 1985년 9월, 제9회 대한민국연극제에 김상렬 작의 <제3 스튜디오> 연출을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고, 이듬해 국립극단의 전속연출가로 귀국하여 만든 것이 <약속>(1986년 5월 24일-25일)과 <비옹사옹>(1986년9월23일-27일)인데, 몹시 인상적인 작품들로 기억됩니다.

이승규-저로서는 연출에 대하여 본격적이고도 구체적인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만든 작품들로서 그때 사회적인 반응 역시 켰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시각화와 현대화의 문제로 요약되는데, 대부분 우리 희곡이 그러하듯이, 작가의 관념적인 주제가 지리한 대사와 설명으로 맴돌고 있는 비시각적인 희곡을 가지고, 연출자의 입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림, 폭발적인 힘을 지닌 장면, 상징성을 지닌 의미 있는 행동으로 시각화시키는 작업에 열중하였습니다. 단선으로 연결된 지루하고 무의미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동작으로 연결된 생동하는 장면으로 보여주는 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응당 연출에는 사전에 철저히 계산된, 정확한 출발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지요.

서연호-자살한 여배우를 대상으로 그녀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규명해 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제3 스튜디오>는 종래의 사실주의 방식으로 만들었다면 영낙없이 상투적인 멜로드라마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녀가 출연하는 극중극(텔레비전극)과 현실적 삶(스튜디오의 생활)을 수시로 넘나들며, 행동의 실태와 의식의 내면을 동시에 대조적·분석적으로 투시하는 연출방식을 통해, 그녀를 중심으로 한 오늘의 방황하는 인간상과 비인간화의 과정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었지요.

<약속>과 <비옹사옹>은 좁은 공간을 넓게 활용하기 위하여 행동영역의 구획을 다양하게 하고, 무대장치를 작은 모형으로 제작, 전환이 신속하면서도 설화적인 분위기를 살렸으며, 배우의 움직임을 극대화시킴으로써 가시적인 전달력을 증대시킨 연출로써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전통적인 음악적인 요소, 무용적인 요소, 회화적인 요소 등을 총체화시킨 공연이었습니다. 앞서 전제한 시각화라는 측면에서 모두 기록될 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규-두 번째로 고전의 현대화 역시 연극적인 현대화이니까, 고전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과 시각화의 문제가 동시에 추구되어야 마땅하겠지요. 저의 생각으로는 고전의 현대화에는 세 단계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첫 단계는 판소리에서 사설내용과 음악적 요소를 취하고, 탈춤에서 연기방식과 시각적 요소를 취하여, 이러한 요소들을 토대로 고전을 새롭게 극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전에 마당극이라는 이름으로 몇 차례 시도된 적이 있었지요. 그렇지만 흔히 보았듯이, 판소리를 그대로 사실주의 연극으로 만드는 것은 전통의 현대화가 아니라 오히려 파괴에 해당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원칙적으로 고전의 색깔이나 분위기를 그대로 둔채, 현대적인 연기술·장치·무대기술 등을 이용하여 새롭게 극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춘향전>으로 <약속>을, <옹고집전>으로 <비옹사옹>을 만든 것이 이 단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지요. 여기까지는 아직 고전 그대로의 요소를 다분히 계승한 수구적인 작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세 번째 단계는 수구적인 작업이 아니라, 고전을 완전히 현대적인 연극방법론에 입각해서 새롭게 만드는 전위적인 창작으로서의 현재화입니다. 앞으로 시도해 보아야 할 연극사적 과제로 생각합니다.

서연호-1988년 올림픽에 이어 개최된 세계장애자올림픽 문화행사에 연출자로 초빙되어 만든 오영진선생의 민요풍의 뮤지컬 <시집가는 날>(1988년 10월 21일∼24일)은, 여종 역인 이쁜이를 중심에 놓고 새롭게 부각시킨 점에서 종래 수차공연된 <시집가는 날>과 다르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특히 언어장애자로 하여금 이쁜이 역을 맡도록 하고, 훌륭하게 연기지도까지 해주신 것은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이어 중앙대학 연극학과 개설 30주년 기념공연의 연출도 맡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김상렬작의 <언챙이 곡마단>(1998년 11월 22일∼24일)이었던가요?

이승규-<언챙이 곡마단>은 최근 년의 작업인데, 원작 자체가 애매하다고 할까 복잡하게 씌어진 희곡이어서, 제가 갑자기 연출을 맡기에 앞서 이미 수일 동안 연습에 돌입한 20여 명의 단원들조차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당황하고 고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언챙이 곡마단>에 대하여 가장 보편성이 짙다고 내린 결론은, 과거의 지도자들 역시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욕망의 환상에 사로잡힌 인간들이고, 불필요한 전쟁을 도발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제의 방향이 잡히자 시청각적 요소, 과거사의 현대적 표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정중동(靜中動) 장면 등의 배합을 통해 20여 일간의 단기간에 규모가 방대한 장막극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겁니다.

서연호-생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지도자들의 광란과 민중들의 수난의 역사를 그린 한편의 희비극을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근년의 연출 작업에 대하여는 대충 잘 들었습니다만, 다시 화제를 바꾸어 볼까요.

우리가 연극에 대해서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유이고 자율적인 행위이지만, 연극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예술적 제도이자 창조적 산물인 만큼, 가능한 대로 거시적이고 온당하고 바람직스런 인식과 개념을 갖는 것이 발전의 토대가 되리라고 봅니다. 그런 취지에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연극에 대한 오견이나 낙후된 인식에 관하여 몇 가지 지적해 주시지요. 이 대담의 목표인 미래의 연극을 모색하고 논의하기 위해서는 우선되어야 할 반성으로 여겨집니다만...........

연극에 대한 오해와 낙후된 인식에 관하여

이승규-두서 없이 몇 가지 지적해 보고자 합니다. 연출은 연출대로 반성을 해야 하겠지만, 우리의 희곡에 대하여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 희곡은 대부분 작가의 개인적인 관념과 문학적 유희와 막연한 공간·시간·행동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작 무대 위에서 연극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부분과 요소는 극히 적거나 희박합니다. 대폭 수정을 하거나 개작을 거쳐야 비로소 공연이 될 정도입니다.

무대 위에서 실제로 시각화·청각화·행동화·표현화될 수 있도록 구성되고 기술된 이른바 '연극적인 희곡'이어야지, 행동을 설명해 가는 언어로 씌어진 종래의 '문학적 희곡'이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금까지 우리 연극은 그런 문학적인 희곡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무대상에서 발전을 가져오지 못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서연호-번역극이다 창작극이다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좋은 연극이 없는 것이 문제지요. 우리가 그 동안 좋은 연극을 만들지 못하다 보니 외국의 연극을 무한량 수용하게 되었고, 관객들에게 번역극은 좋은 연극이라는 선입관을 심어주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번역극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졸속적이고 저질적으로 왜곡된 번역극이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우리 번역극은 외국 희곡의 번역일 뿐이지, 앞서 가는 외국의 연기나 연출이나 무대미술이나 기술의 수용은 아니잖아요?

연극 자체로 보면 그저 외국의 흉내요 모방에 지나지 않고, 나쁘게 보면 관객에 대한 사기요 기만입니다. 제가 뉴욕에 온 이후 숱한 서양극을 보면서, 더욱 절실하게 우리의 소위 번역극과 번역극을 주로 하는 많은 연극인들에 대하여 다시 평가해 보고, 그 장래와 문화적 책임에 대하여 깊이 우려하게 되었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우리의 번역극은 원작의 방법과 수준과 가치와는 거리가 멀지요.

서연호-앞에서 고전의 현대화에 대하여 논의하였는데, 이 경우 전통의 계승에 관하여는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이승규-평소의 생각이기도 했지만, T.S.엘리엇의 「전통과 개인」을 읽고서 더욱 전통의 바탕에 서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각자와 각 민족은 나름대로 특별한 임무가 있고, 특히 예술가에게는 나름대로의 일이 있는데, 그 일은 견실한 자기 전통의 실력 위에서 예술적 보편성을 찾을 때 가능한 것이지요. 서양 연극은 굳이 전통의 바탕 위에 있지 않습니까? 오랜 세월 숱한 연극인들이 각개약진식으로 발견하고 연마한 것이 오늘날에는 저들의 공동의 문화유산이 되어서, 새로운 연극을 만들어 내게 하고, 그것이 다시 전통으로 축적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연호-그렇다면 전통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의 탈춤을 연극사적으로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승규-우리 탈춤에 대하여는 민속극이다 전통극이다 하는 용어가 혼용되고 있는데, 민속극으로 규정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공연되는 시기, 공연되는 공간, 공연방법, 공연에 관련되는 도구와 기술, 공연자, 공연의 관리, 공연과 관중, 지역성 등을 고려하면 민속극으로서의 전통을 이어온 것이 확인됩니다. 중국의 경극(베이징 오페라), 일본의 노오와 가부키, 인도의 카타칼리 등과 우리 민속극을 비교하면 양자의 위상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후자는 민속예능형태로 전승되고 있는 연극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연극양식에 일관된 구조가 있으며 동시에 연기자에게는 전문적인 정통성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연기자나 지역성이나 관중에 따라 공연에 가변성이 없으면서 높은 예술성을 계승해 오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연극인으로서는 우리 민속극을 포함한 공연예술을 바탕으로 해서 현재극의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지요.

서연호-오늘날 한층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판소리와 창극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승규-예술장르로는 매체론이자 형식론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판소리는 관객을 놓고 하는 공연예술(연희)이지만 연극으로 볼 수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극적인 것이지 극이 아닙니다. 서양의 오페라에 대비하며, 오페라는 공간적 요소가 다소 있는데 반하여, 판소리는 공간적 요소가 없는 극적인 노래일 뿐입니다. 판소리의 공간은 연극에서의 물리적·표현적 공간이 아니라 다만 사설 가운데의 상상적 공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의 여기'에서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공간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설 즉 내용만으로는 연극이 될 수 없습니다. 판소리의 시간은 과거진행이지 현재 관객의 눈앞에서 발전되고 변화되는 시간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판소리의 공간과 시간은 현재의 상황이나 직접행동으로 전위된 공간이나 시간이 아닙니다. 보거나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듣거나 들려주는 소리에 불과 합니다. 공중여행에 비유됩니다. 발림을 연극의 연기로 보는 것은 본질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서연호-저는 판소리를 서사적인 극가로 부르며, 또 그런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승규-좋습니다. 서사극가라는 용어……. 판소리는 그 자체로 독립된 판소리라는 공연예술로 보아야 합니다. 창극에 대하여는 앞서 말하였지만, 판소리를 서양의 리얼리즘 연극에 담는 방식은 낙후된 방식입니다. 판소리의 현대화 문제는 우리연극의 카다란 과제의 하나입니다.

서연호-잘 아시는 대로, 우리 근·현대 연극사는 일종의 연극운동사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우리 연극은 나름대로 어떤 방향이나 수준향상을 기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연극운동에 대하여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승규-연극인으로서 언제나 부끄러움과 함께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전제에서 말하고자 합니다. 상식적으로 씨를 심으면 열매가 맺어야 하는데, 우리는 결실이 없이 늘 씨만 심어온 격입니다. 왜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토양을 고려하지 않고 비전문적인 사람들이 그릇된 연극의식의 씨를 심었기 때문입니다. 즉 관객 중심의 연극, 전문가 중심의 연극, 한국적인 실험 중심의 연극운동이 되어야 하는데, 소수 지식인 관객취향 중심의 연극, 아마추어 중심의 연극, 서구수용 및 서양 모방 중심의 연극운동이었습니다. 연극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과 방법의 구체적인 수립 및 실질적인 개혁이 없이, 이론적 주장이나 구호로 전개되는 연극운동은 진정한 예술운동으로 볼 수 없습니다.

서연호-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실존적 주체의 현실이나 문제가 결여된 일방적인 서구 추수와 모방, 소수가 만들어서 소수끼리 즐기는 예술이라는 착각, 그릇된 선각자 의식이나 자기우월감, 연극인으로서의 전문성의 결여, 연극 외적인 것들의 간섭이나 방해 등은 우리 연극을 망쳐 온 주 요인으로 생각 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금 바람직한 연극이란 어떠한 것이고, 그 가능한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를 모색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다년간의 경험을 쌓은 연출가로서, 아울러 수편의 문제작을 만들어 낸 대표적인 전문가의 한 분으로서, 이러한 발전적인 과제에 대하여 솔직한 의견을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는 연극에 대하여 사양예술이다 구원예술이다 하는 극단적인 견해 차이도 보이는 실정인데...........

미래의 연극을 위하여

이승규-연극의 역사는 2천 5백년이나 길고, 놀이문화로서의 우위성을 지켜왔습니다. 각종 게임·도박·스포츠·레저도 놀이기는 하지만 예술이, 특히 그 중 연극예술이 놀이문화로서 유익하고 차원 높은 가치를 발휘해 왔습니다. 시대와 사회가 바뀌고 놀이문화와 예술이 보다 다양화·다층화됨으로써 연극이 다른 분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사양화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고도한 예술성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연극이야말로 인류에게 값진 구원의 정신적 양식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창조성은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어렵고 힘들어도 희망과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작업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지요.

서연호-오늘날 연극인들 스스로가 혼돈을 자아내고 있는 메커니즘과 상업주의와 연극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승규-메커니즘 예술은 연극의 적입니다. 연극이 필요에 따라 메커니즘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수공예적이고 신체적인 표현이며 관객과 직접 대면하는 예술로서의 특징과 장점을 고수하고 신장시켜 나가야 합니다. 상품은 소비자를 기준으로 하고 일반화된 기술을 토대로 하여 대량으로 제품화됩니다.

예술은 예술가의 세계를 기준으로 하고 기술을 창조적으로 응용하여 오직 하나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예술의 필요조건은 예술가 자신이고 충분조건은 작품 수준과 기술의 전문성입니다. 따라서 자기 기준이 없이 오직 관객의 취향에 영합하는 상업주의 연극은 매우 경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고도한 예술성을 갗추었을 때 연극의 사회적인 상품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서연호-지금까지 말하신 것을 종합하면 연극은 언어를 위주로 하는 문학과 다르고, 메커니즘을 위주로 하는 영상예술과 다르며, 동작 즉 형체와 공간으로 이루어지는 무용과도 다른 예술로서, 행위와 공간을 주로 하여 총체적으로 만들어지는 예술이라는 개념이 성립됩니다. 공간과 행위의 요소를 매우 강조하고 있는데...........

이승규-연극의 공간은 여러 매체를 담는 의미의 그릇으로서 연극이 공간 속에서 계발·창조·종합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아울러 배우의 대사만이 아니라 대사를 포함하는 행위와 온갖 시청각적인 요소들을 시간적으로 결합시켜 표현해 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연극은 대사의 비중이 5∼7퍼센트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말에 의존해 왔고, 그러다보니 연극 본연의 영역이나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는 공간 속에서 암시되고 집약되고 상징되는 대담한 실험을 해야 하고, 근원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세계성을 획득해야 하는 동시에, 무대가 아니고는 창조할 수 없는 연극양식을 총체적으로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이런 처지에서 보면 우리에게는 아직 전문적인 일꾼이 없고 일손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연호-대담 첫머리부터 시각화의 문제를 강조하다가 드디어 양식화의 문제에까지 이르렀군요. 좀더 부연해 주시지요.

이승규-시각화는 어떤 스펙터클 한 것, 장식적이고 여흥적인 것, 구경거리, 관객을 속이기 위한 위장술 등과는 거리가 멉니다. 공간 가운데 놓인 인간 및 인간관계는 어떤 상관행위나 분위기나 조건 혹은 움직이는 그림이 아니고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연극본질적이 측면에서의 적극적인 시각화를 말합니다. 리얼리즘보다는 표현주의에 가까운 연극, 비언어적인 상징적인 연극, 여러 매체를 종합시켜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연극, 그리하여 작품마다 독특한 표현방식이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 경우에야 양식성을 말할 수 있습니다.

서연호-연출가의 한 사람으로서, 연출가의 역할에 대하여 말해 주십시오.

이승규-연극 연출가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비유한 학자가 있지만, 지휘자보다는 창작성이 넓다고 봅니다. 연출가에는 단순한 희곡해석자, 무대 정리자도 있고, 직접 작품을 써서 연출하는 사람도 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연출가는 '공연의 작가' 혹은 '공연의 창조자'로서, 공연의 중심세력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공연은 연출가의 고유영역이라는 자유가 허용되고, 그런 절대적인 역할에 동의해 주어야 비로소 독창적인 작품이 가능해집니다. 공연을 위해서 모든 요소 즉 희곡, 극작가의 생애, 극작가의 의식과 사상, 시대와 현실 등은 모두 재료, 바탕재료가 될 뿐입니다. 재료를 공연으로 실체화시키는 역할은 전적으로 연출가에게 달렸습니다. 희곡작가와 공연작가는 각기 독자성을 갖는 것이지요.

서연호-그렇다면 배우의 연기방법은 어떠해야 한다고 봅니까?

이승규-지금까지의 연기는 화술과 흉내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 달변과 감쪽같이 흉내내기를 연습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마치 거짓말탐지기같이 흉내와 실제행동의 차이를 알아내고 있지 않습니까? 궁극적으로 연기술이란 조화술(造化術), 곧 어떤 상태로 변화되는 기술인데, 자연인 자신을 비우고 무의식 중에 연극 속의 다른 인물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행동 할 때, 다시 말하면 내면의 진실로부터 에너지가 나올 때 실제행동으로서의 연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에너지는 흉내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마치 무당이 굿 가운데서 신격으로 변화하여 공수(신의 말씀)를 내리는 기술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군자의 마음은 호수와 같고, 대숲과도 같다"는 말이 있는데, 이 경우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스스로 호수에 비친 구름을 보고, 대숲에 부는 바람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연기자는 자신을 비우고 투명하게 속을 들여다보면서, 지신의 몸을 소리를 내는 악기처럼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연호-스타니슬라브스키 방법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볼 수 있군요. 우리에게 가장 낙후한 분야이기도 한 연기자 양성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승규-연기는 실제 삶의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지신을 악기로 삼아 자유스럽게 드러내 보이는 재질이랄까, 천부적인 소질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소질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서 특별하게 연기훈련을 받은 사람이 연기자로서 전문성을 갖게 되지요. 한국식으로 어느 극단의 소속이 되어서 덮어놓고 선배의 연기를 모방하거나 일방적으로 훈련시키는 방법은 탈피해야 합니다. 연기자에게는 기술적인 문제와 함께 정신적인 문제도 중요한 만큼, 전문적인 교육기관이 시급합니다.

서연호-실제로 가교라는 극단을 수년간 운영하신 경험도 갖고 있는데, 극단의 존재나 역할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승규-하고자 하는 연극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극단 운영방식이 달라져야 하겠지요. 잘 아시는 대로 대중적인 상업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은 제작자 중심의 극단으로서 매공연마다 단원을 선발하는 방식이어서, 오히려 비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리더십 중심의 극단은 고정단원으로 구성되며, 이념이나 방법에 따라서 여러 유형이 보입니다. 한국의 경우가 대체로 후자에 속하는데, 방법에 있어서 기술적 특성이 없으면서 단체들이 난립되고 있는 것이 문제로 지적됩니다. 특히 국립극단이나 시립극단들은 하루 빨리 극단으로서의 존재성을 정립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서연호-이 기회를 빌려 앞으로 소망하는 작품활동이 있으며 밝혀주십시오.

이승규-가능하다면 마음에 충격을 주는 우리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서 소재를 선택하여 보편성이 있는 인간적인 드라마로 발전시켜 보고 싶습니다. 이 경우 주제를 먼저 설정하고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주제를 찾고 발견해 가는 방식이 좋을 것으로 봅니다. 가령 이순신의 사형선고는 어떻게 하여 이루어졌는가, 이순신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까닭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연극적으로 찾아보는 방식입니다.

누구에게나 흥미와 관심이 있는 문제를 무대에 올려놓고, 앞에서 지적한 방법들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면서, 그 해답이 관객들에게 저절로 풀어지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역사적인 자아에 대한 객관화 작업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지고 나면, 차차 오늘의 현실 및 가까운 주변을 소재로 한 근원성 놓은 드라마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결국 고대적 신화로부터 역사적인 인물, 현대사회의 인간, 그리고 나 자신에 이르는 보편적 근원성의 문제를 바탕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재미있는 연극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서연호-장시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점을 배우고 또한 공감하였습니다. 말씀하신 여러가지 사항이나 문제들이 우리 연극의 발전을 위해서는 물론, 앞으로 이형 자신의 연극활동에 크게 이바지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연극의 미래를 향한 구체적인 대안과 실천적 노력이 절실하며, 아울러 연극인들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