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근본을 떠받치는 책문화
이영준 / 출판평론가
지난 일년간 각 매체들이 문민시대답지 않게(?) 한 목소리로 일제히 외친 게 있다면 책을 읽자고 한 말일 것이다.
그 '책의 해'가 이제 막이 내렸다. 1993년이야말로 출판관련 종사자들에게는 말의 뜻 그대로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이렇게 책 관련 행사가 많았던적이 없고 대중들이 그렇게 위압적으로 책읽기를 강요당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그리고 성과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꼭 자랑만 있는것은 아니다. 모든 요란한 행사의 뒤끝이 다 그렇듯이 일말의 쓸쓸함이 출판 종사자들의 가슴을 쓸고 지나간다.
거국적으로 교양 있는 문화시민이 되어 보자고 엄청난 자원을 투입했는데도 서점들은 의외로 불황이었다고 한다. 책의 해를 제정하고 운영해 온 사람들이나 출판 관련 종사자들에게는 허탈한 비보가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불황이야 출판 분야뿐 아니라 경제전반이 난조였으니 그로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으나 의외의 결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점은 우리가 허탈해질 일이 아니라 문화를 새로이 만들어 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해 준다는 점에서 심사숙고해 볼일이다.
책의 해가 남긴 교훈
책을 읽으라고만 윽박지를 일이 아니라 책을 읽을 조건을 만들어놓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은 우리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는 일견 한가한, 하나마나한 얘기로 비칠 소지도 있다. 문제는 기실 여기에 있다. 전후의, 민생고를 걱정하던 시절로부터 지금껏 우리는 문화를 돌볼 겨를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올림픽을 치르고 국민소득이 7천 달러가 되었다는 지금에 와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졸부들의 행태라고 흉봤던 60∼70년대의 일본관광객들을 우리 자신이 흉내내고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다. 그간 우리의 몸에 배인것은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친 생산이 아니라 오로지 속도와 양이 중요한 날림공사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책을 읽고 깊은 생각을 하는 풍토를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노자에 의하면 착한 것을 강조하는 것은 세상이 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고함을 지르는 것은 책을 안 읽는다는 징표다. 실적을 챙기는 일부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목록을 볼 것이다. 그리고 그 양적 성장에 놀랄 수도 있다. 사실 근간의 출판 물량은 놀라울 정도이며, 1만 부만 넘으면 베스트셀러로 화제를 모았던 시절을 그리 멀지 않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몇백만을 육박하는 슈퍼셀러들은 경악에 값한다. 이는 베스트셀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의 전체적인 출판물량 증가는 GNP 성장속도를 훨씬 상회한다. 우리의 내재적 에너지는 출판물량에 있어서 유감없이 발휘되고있는 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전도를 희망적으로 예측하게하는 유력한 증거일 수 있다. 그렇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을 두고 개탄하는 목소리도 의외로 높다. 우리의 날림공사와 마찬가지로 그 양이 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지적한다.
사실 문화라는 것은 우리가 지금껏 이룩해 온 경제개발 계획식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연말을 맞아 지난 1년간 책을 얼마나 읽는가에 대해 출협이 통계를 내어 보고 선진국에 비해 그리 적게 읽는 것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한편으로는 '책의 해'를 마무리하는 발표문 같아 보이는 그 통계는 발표자의 의도와는 반대로 우리를 허탈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그 발표문은 우리가 '책의 해' 일년을 보내고 나서 대뜸 선진국이 되었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연초만 하더라도 1인당 장서량으로 보면 우리가 책에 관한 한 얼마나 후진국인가를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었는데, 이 웬 선진국 감투일까. 공공도서관의 국민 1인당 도서 보유량도 형편없다는 사실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독서의 내용이 무엇인지 과연 우리가 자랑스러워 할 만한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대형서점들이 집계하여 연말을 맞아 각 매체들이 발표하는 지난 1년간의 베스트셀러 목록들은 그 독서의 내용에 대해 부분적으로 말해주는 바가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종합 상위 50권 중에 시집들이 10권씩이나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이나 구미의 경우 초판 1천 부를 넘지 못하는 시집출판이 우리 나라에선 이 정도로 호황이니 우리가 대단히 시를 사랑하는 문화국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시집들이란 것이 문학인들 사이에서는 '유사시집'이나 '사이비시집'이라 불리고 있으며 이를 일부 언론들은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서점들은 '시집' 분야 베스트셀러임을 고집하고 있고 다수의 언론매체 역시 이를 거르지않고 무반성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문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감시자들은 없는 셈이다. 그 시집들의 주된 독자층이 청소년층에 국한된다는 사실이 우리를 안도시키지는 못한다. 시가 아닌 것을 시로 읽은 사람들이 내일의 우리 문화의 주인공들이라는 사실은 개탄해야 할 일임에 분명하다.
물론 우리 청소년들의 독서문화에 낭보가 없지는 않다. 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되면서 교양서 독서에 의한 논리력·사색력 요구는 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고전을 읽으면서 사색력을 기르는 것이 바른 방법이겠으나 시간은 없고 그래서 이는 당장 '논리' 열풍을 몰고 왔다. 논리책 한 권과 한번 본다고 논리력이 당장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밑천은 없고 하니 말릴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는 아마도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풍토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과정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입시교육 제도가 지금껏 독서를 가로막아 왔다는 사실은 일반인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는데 수능시험제는 이를 혁파한 셈이다. 책의 해를통해 가장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동의보감」이래 수년간 독서계를 해일처럼 쉽쓴 국수주의적 역사소설들은 「영원한 제국」이라는 화제작을 남기면서 현저히 후퇴하였다. 그런 와중에 새로 떠오른 분야는 필자의 불모지였던 불교서적 분야다. 수년간 기승을 부리던 명상서적을 발전적으로 이어받은 셈이다. 아울러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성장해 온 과학관련서들과 비즈니스 기술분야서들이 금년에는 계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국가적 발전단계를 암시하는 지표로 읽히는 부분이다.
지난 1년간의 화제작들을 보면서 한 가지 특기 할 사실은 기획출판의 증가다. 이로 인해 도서의 분야 분류가 쉽지 않은 도서도 늘어가고 있다. 옛 틀을 깨는 이러한 시도들은 문화를 갱신시키는 힘이 아닐 수 없다. 출판사가 문화적 동향을 능동적으로 간파해 내고 독자들의 욕구를 기획력으로 충족시켜 주는 일은 분명 반가운 일이며 우리 출판의 질적 성장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바랄 것은 그 기획력이 광고를 통해 독자를 현혹시키는 데 낭비되지 말고 새로운 문화를 생산하는 데 쓰였으면 하는 것이다.
'책의 해'는 이제 많은 숙제를 남기고 막을 내렸다. 한편으로는 반가왔지만 얼굴이 두껍지 않은 출판인들에게는 얼굴이 뜨뜻해지는 한해였다. 우선 '춤의 해'나 '영화의 해' '연극의 해'를 제정한 발상의 연장선에서 '책의 해'를 제정한것부터 조금은 멋쩍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분위기를 고양시킨 것 자체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환영할 일이었다. 그리고 책문화는 기간을 정해 따로이 강조할 사안을 넘어서는, 문화의 근본을 떠받치는 기둥이며 이는 날림 공사처럼 쉽게 만들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수확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