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문화계 10대 이슈
김원자 / 전남일보 문화부장
광주 ·전남 문화계는 지난해가 매우 뜻 깊은 한해로 기록될 것 같다.
전라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서편제>가 전국적으로 선풍을 일으킨 가운데, 광주 문예회관이 소극장 개관을 마지막으로 전관을 개관하는 등 문화예술계가 질적·물적 성장을 보인 것이다.
지난해 광주·전남 문화계 10가지 이슈를 빼보았다.
① 서편제 돌풍 ② 문예회관 전관 개관 ③ 대규모 문화유적발굴 시작 ④ 광주 시립미술관 하정웅씨 작품 기증 ⑤ 광주국악대전 개최 ⑥ 광주 전남 지역 답사 1번지로 각광 ⑦ '빛의 축제' 성공, 축제문화 정착 ⑧ 대형서점가 변두리지역 확산 ⑨ 소극장 시대 개막 ⑩ 목포 정영례 무용단, 전국 무용제 제패
<서편제> 돌풍
영화 <서편제> 돌풍이 광주·전남 지역에 국한된 문화현상만은 아닌 전국적 사건임에 분명하나, 원작자 및 주연 여배우와 감독이 이 고장 출신이었던 점에서 <서편제>는 더욱 관심과 인기를 모았다.
영화 <서편제>가 만들어지던 무렵만 해도 이 영화가 사회·문화적 현상으로까지 자리매김되리라고 예견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10여 년 전 발표된 원작 소설이 새삼 베스트셀러가 되었는가 하면 판소리와 국악을 비롯 우리 전통문화를 다룬 책들의 출간이 두드러졌다. 국악연주회나 국악학원을 찾는 사람들의 급증은 '판소리 대중화현상'의 직접적인 증거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또한 진도·보성·구례·해남·영광 등 <서편제>의 배경이 된 남도의 소박하고 고즈넉하며 유장한 자연은 우리 땅의 아름다움에 새삼 눈뜨게 했고 우리 것 다시 보기의 사회적 분위기 성숙에 따라 국악열기는 올해 국악의 해 제정에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문예회관 전관개관
어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광주연주회를 마치고 나서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극장이 광주에 있다는 것은 광주시민들의 자랑이다"라고 부러워했다고 한다.
광주 시민들의 예술적인 자긍심을 갖게 해주기에 충분한 광주 문예회관이 지난해 7월 소극장 개관과 함께 '전관개관'이라는 대사업의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빛나는 위용을 드러냈다. 이것은 예향 광주의 빅 이벤트요 하나의 시작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광주 문예회관은 지난 1985년도에 공사를 착수, 6년여 동안의 공사기간을 거친 가운데 1991년 10월 21일 첫 번째 대극장을 개관했으며, 1992년 8월 시립 미술관이 오픈된 데 이어 1993년초 국악당이 문을 열었고 아울러 1993년 7월 소극장이 개관됨에 따라 '광주 문예회관 전관 개관'이라는 역사적인 사업을 이뤄낸 것이다.
전체 공사기간이 8년이 소요됐으며 총공사비만도 4백81억원이라는 거액이 투입되었고, 무엇보다 지역민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러한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대사업을 이뤄낸 문예회관은 비로소 예향 광주시민의 자존심을 되찾게 해주었고, 그곳에서 일고 있는 예향의 불꽃은 갈수록 열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이곳 광주문예회관에서는 2년 동안 총 2백22개 단체에 3백50여차례의 공연을 펼쳤으며 관람객은 약 25만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또 시립미술관의 경우 약 2만5천여 명이 전시장을 찾았고 30여 차례의 전시회가 열린 것으로 집계된다.
대규모 유적발굴
광주·전남 지역은 많은 매장문화재가 발굴되면서 최근 고고학 연구지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특히 영산강과 섬진강 유역의 석기 및 철기시대 문화유역은 선사시대의 생활상과 문화를 밝혀 내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들이라는 학계의 평가다.
또 백제 마한의 유적발굴과 연구는 가야사와 더불어 고대 한·중·일의 관계를 밝히는 중요 유적이 될 것이라는 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광주·전남이 새로운 문화유적의 보고로 등장한 가운데 지난해는 대규모 유적발굴이 시작되었다. 1993년에 실시된 대표적 유적발굴지역으로는 광주 평동공단, 광주 첨단과학 단지, 일곡동 택지 조성사업, 호남고속도로 광주-순천간 확장 예정지역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이 광주 첨단과학 단지 문화유적 발굴이었다.
국립 광주박물관, 전남대, 조선대, 목포대 박물관 팀이 참여한 광주 첨단과학 단지 발굴에서는 월계동, 포산마을 구릉지에 구석기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류와 함께 장고분 2기가 발견되어 한·일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더해주었다.
이 밖에 완도군 장동에서는 통일신라시대 해상 왕국을 이루었던 청해진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발굴도 시작되었다.
하정웅씨 작품 기증
광주 시립미술관이 지난 1992년 8월 개관되자 이 지역 미술인들은 물론 많은 시민들은 매우 반가워했다.
예향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미술관을 마침내 갖게 된 자체만으로도 자긍심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초창기의 어려움과 이해부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시는 미술관 예산에 1992년도에는 6천만원, 1993년도에는 7천만원을 편성하여 국내 작가 1백여 명의 작품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겨우 체면을 유지, 한편으론 실망감을 주기도 했다.
누가 보아도 지독하게 외화내빈한 시립미술관에 금년 7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한 소식이 전해졌다.
재일교포 미술품 수집가 하정웅씨가 일본에서 수집 소장한 미술작품 2백12점을 기증한 것이다. 30여 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수집한 미술품을 오로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쾌척한 그에게 광주시에서는 명예시민증으로 고마움을 표했으며, 미술관은 별도의 하정웅관을 만들어 기증작품을 차례차례 선별, 선을 보이고 있다.
미술품이 투기 대상이 되어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는 요즘 세상에 1백억원 상당의 재산가치를 지닌 예술품을 선뜻 공유하기로 결정한 그의 뜻은 예향 광주에서 오래도록 빛이 날 것이다.
국악 광주 대전 개최
이지역 국악의 명성을 회복하고 침체된 국악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마련된 제1회 국악 광주대전이 지난해 12월 8일과 9일 양일간에 펼쳐져 자칫 무산될 뻔했던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뤄 냈으며 굵직한 남성 판소리꾼 하나를 배출했다.
판소리 명창 부문에 강형주씨(45세·대통령상), 또 무용부문에 김일환씨(27세·국무총리상), 기악부문에 최우수상 선영숙씨 등이 배출된 국악 광주 대전은 미뤄질 뻔했던 것을 무사히 끝냈다는 점에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1회 대회였던 만큼 '시작'의 의미가 컸던 이 대회는 그러나 40여 명의 낮은 참여율에 비해 고른 수준과 함께 남자 소리꾼들의 참여가 두드러져, "고갈 위기에 놓인 남성창악 분야에 밝은 전망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이슈로 본 1993년 광주·전남문화' 의 나머지는 ⑥ 광주전남지역 답사 1번지로 각광 ⑦ 빛의 축제 성공, 축제문화 정착 ③ 대형서점가 변두리지역 확산 ⑨ 소극장시대 개막 ⑩ 목포 정영례 무용단 전국 무용제 제패 등이다.
물론 위의 열 가지는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모아 임의로 뽑은 것이다.
유홍준 교수의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가 책머리에 남도땅 순례로부터 시작, 그 동안 눈여겨보지 않았던 남도 땅의 유서 깊고도 그윽한 문화유산들이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다는 것도 지난해의 큰 소득이 라 할 것이다. 한편 위의 열 가지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개인적으로는 서양화가 강연근씨가 30년 동안 그려 온 이 고장 자연과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 같은 맥락에서 민족적 리얼리즘으로 서울과 광주전에서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문화계에서는 이것은 <서편제>열풍과 더불어 1993년 3대 사건 '세 가지 이벤트'라 부르기도 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했을 이 같은 숨겨지고 보이지 않던 작은 것들, 소외받은 것들, 애잔한 우리 것들에 대한 대대적인 반향, 그것이 이 고장 남도 땅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가슴 뿌듯하게 확인한 지난해 문화계였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