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작업 풍성한 전북 예술계
김은정 / 전북일보 문화부 기자
지난해 전북지역 문화계는 예년에 없이 새로운 성과를 가늠하게하는 작업들이 이어지면서 활기를 더해 주었다. 특히 공연예술 분야의 경우 단체와 개인 창작무대가 뒤를 이어 올려지면서 계절이 따로 없는 창작활동의 결실들로 지역 문화가 도약기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에 비해 별반 달라질 것 없는 문화 여건 속에서도 예술인들의 작업이 새롭고 활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것은 예술인구가 크게 늘었을 뿐 아니라, 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욕구가 날로 증대되면서 적극적인 참여폭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음악
우리 국악의 현대적 작업 가능성을 제시한 국악 한마당이 펼쳐졌다.
전북 도립 국악단이 지난해 10월 대전 엑스포 '전라북도의 날' 문화행사에서 공연,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창무극 <춘향전>을 지난해 12월 10일(오후 2시)과 11일(오후 2시, 7시) 전북학생회관에서 공연해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지역 관객들을 위해 한달여 동안의 작업으로 작품을 보완, 국악의 예술적 완성도를 새롭게 표출해 올린 이번 무대는 지난해 국악무대의 활동을 마무리 짓는 자리로서 그 성과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립국악단이 의욕적으로 제작한 창무극 <춘향전>은 그 동안 창극의 현대화를 시도하면서 올려 왔던 몇 편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이 작품은 우리 고전을 각색, 내용면에서는 이미 진부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새롭게 각색, 형식적으로 오늘에 맞는 감각과 예술적 역량을 접목시킴으로써 대전 엑스포공연에서 이미 우리 고전의 독창적 아름다움과 정서를 전혀 진부하지 않게 표출해낸 성공작으로 평가를 받은바 있다.
'한'의 정서, 맺힘과 풀림의 극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대표적 고전 <춘향전>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접목작업과 그 작업이 지니는 의미를 새롭게 제시한 이 무대는 우리의 정한을 농밀하게 투영해 낸 음악적 분위기, 소리와 연기가 잘 접합된 출연자들의 열연, 극적 분위기를 잘 살려낸 구성과 연출력이 잘 짜여진 무대로 '창무극' 형식을 통한 우리 국악의 현대적 발전 가능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는 것이 국악관계자들의 평가였다.
모처럼 전에 없는 제작비 지원(엑스포 공연을 위해 전북도가 1억5천여 만원을 지원했었다.)으로 볼거리 있는 무대를 제작할 수 있었던 도립국악단은 특히 창무극 공연사상 처음으로 국악관현악단의 현장 반주를 시도, 그 생생한 흥과 정한을 사실적인 감동으로 전해 주는 역 량을 발휘해 냈다. 연출자 박병도씨는 "전통의 현대적 재수용이라는 대전제 아래 바탕소리가 갖고 있는 가사의 운문성에 대한 논리적 해석과 이것이 감성적 신체언어로 어떻게 체화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의 음악은 박범훈씨(중앙대 교수)가, 관현악단 지휘는 박상진씨(상임지휘)가, 안무는 문정근씨(상임안무)가 맡았으며, 채보의 류장영씨(도립국악단 연구원), 작창의 정철호씨(국악인)가 작업에 참여했다.
성춘향 역의 박미선씨, 이몽룡역의 소추호씨, 월매 역의 김미숙씨, 변학도 역의 이종달씨, 향단역의 강영란씨, 방자 역의 고양근씨를 비롯한 창극부 단원들 외에도 이 지역 연극단체인 '연희단 백제후예'와 이리 극단 '토지', 우석대 국악과 학생들이 객원 출연, 호흡을 맞추어 냈다.
연주부와 무용부 단원들의 새로워진 역량도 이 무대의 극적 생동감과 감동을 더해 주었다.또 전북음악계의 한해를 결산하는 음악축제가 새롭게 마련되어 관심을 모았다. KBS 전주방송국이 주최, 지난해 12월 8일과 9일 저녁 7시 전북학생회관에서 열린 '93전북 음악제는 이 지역 음악인들과 음악단체들이 폭 넓게 참여해 한해 활동을 정리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 동안 송년음악회 형식의 음악회는 많이 열려 왔으나 이처럼 다양한 부문의 단체와 개인이 한자리에 모여 펼친 음악 축제는 모처럼 마련된 것이다. 특히 이 자리는 국악과 양악, 형식상으로도 합창과 독창, 독주와 교향악 등이 다채롭게 올려졌으며, 이 지역뿐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이 초청되었다. KBS 전주방송총국이 앞으로 연례사업으로 꾸려 갈 전북음악제 첫 자리인 이날 무대엔 음악 단체로는 전주시향과 KBS 국악관현악단, 전주시립합창단, 정주시립 합창단, 이리시립합창단, 그리고 전주 KBS 어린이합창단이, 그리고 성악가로 소프라노 임옥경·김금희씨, 테너 김용진·김종호씨, 바리톤 조장남 ·최덕식씨 등이 초청되었다.
8일의 '국악과 합창의 밤'은 KBS 국악실내악단과 민속어린이합창단, 그리고 전주·정주·이리시립합창단의 연주와 화음으로 꾸며졌다. 특히 전통국악과 함께 오늘의 국악 현대화 작업을 보여주는 창작곡 <신고산타령 주제에 의한 대금 변주>(대금: 조재수, 신시사이저: 박덕귀)가 발표돼 관심을 모았으며, 둘째날인 '독창과 교향악의 밤'은 중견성악인들이 우리 가곡과 외국가곡을 발표, 음악축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또 전주시향은 새로운 감각으로 편곡된 크리스마스 캐럴과 베토벤, 드보르자크의 작품을 연주, 이 지역의 대표적인 연주단체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전주 KBS는 앞으로 해마다 전북음악제를 개최, 한해의 음악활동을 결산하고 그 성과를 가늠하는 자리로서 또 음악활동의 활성화에 자극을 불어넣는 자리로서 발전시켜 갈 계획이어서 전북음악 발전에 새로운 기대를 안겨 주고 있다.
미술
이 지역의 정서를 그림으로 담아오는 작업을 공동의 관심으로 껴안아 온 전북회화회의 여덟 번째 전시회가 지난해 11월 30일부터 12월 6일까지 전주 열화랑에서 열렸다. 이번 작품전의 주제는 '모악산을 찾아서'. 전주를 상징하는 모악산의 정취와 그 정서, 그리고 그 상징적 의미를 각자의 의식으로 해석하고 접근하면서 탐구해 낸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주로 전통적인 기법에 매달려 있기보다는 수묵과 혹은 채색의 새로운 기법과 현대적 감각으로 모악산의 정서를 담아 낸 이들 작품들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형상화와 그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담아 낸 추상적인 형상화로 주제전에 대한 이해의 폭물 넓히는 성과를 거두어 내고 있다.
전북회화회는 전북지역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현재 의욕적인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지난 1990년에 창립된 모임이다.
각 개인의 작가적 역량을 넓히고 회원 상호간의 교류 및 친목을 도모하여 지역의 작품 활동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들은, '중앙시장 사람들'을 주제로한 창립전을 가진 이후 1년에 한차례씩의 정기전과 주제전(전북의 산하, 교동의 표정 등)을 가져오면서 젊은 세대들이 바라보는 이 땅의 정서를 신선하게 담아 왔으며 미술의 역할을 새롭게 생각하며 자기세계를 향한 탐색작업을 성실하게 꾸려 온 이들 회원들의 또 하나의 발언인 셈이다.
그 동안 전북회화회는 주제 세미나와 스케치 모임을 가져오면서 미술 단체의 실질적인 활동의 면모를 보여왔으며, 지난해 10월에는 회지 「전북회화」를 창간, 연구하는 단체로서의 신선한 역량을 확인시키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고재명·김자경·문순·방정엽·안순금·유선영·이철량·전양기·정문배·정미현·조양현·조현동·지민수·최전숙씨 등이 참여했다.
전주대성화랑(관장: 박재승)이 개관 5주년을 기념,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서양화가 26인을 초대한 기획전을 열었다. 지난해 12월 8일부터 12일까지 전주대성화랑에서 열렸던 이 기획전에는 이 지역 서양화단을 지켜 온 원로작가들부터 중견·신인 작가에 이르기까지 스물여섯 명이 초대되었다. 오늘의 전북 서양화단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이번 기획전에는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각자의 개성을 독창적으로 구축해온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됨으로써 서양화의 다양한 흐름과 이 지역 작가들의 정서를 가늠할 수 있게 했다.
지난 1988년 12월 7일에 개관, 지역 화단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위해 민간화랑으로 출발한 대성화랑은 늘어나는 미술연구에도 불구하고 열악하기 만한 이 지역 문화상황 속에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며 5년 동안의 활동을 성실하게 꾸려 왔다.
특히 이 지역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기획·초대전을 늘려가면서 미술의 대중화와 작가들의 교류활동에 자극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 온 대성화랑은, 각 단체전 뿐아니라 미술애호가들의 창작 활동을 북돋아 내는 기획전에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미술인구의 저변확대를 실질적인 성과로 거두어내는 바탕이 되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주년 기념 초대전에는 김용봉·김홍·하반영·권영술·이복수·박남재·박민평·강남인·강정진·김세견·김부견·김옥희·김지현·김철수·김형동·소훈·양만호·이성재·이일청·이창규·유휴열·오우석· 조래장·조형남 · 홍승구 · 최분아씨가 초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