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기 위해 전문교육이 필요한가
함유선 / 한남대 강사
해마다 새해가 되면 한차례 회오리 바람처럼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발표가 있고, 그것은 우리 문단의 화제가 되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7대 중앙 일간지에서는 재능있는 신인 작가들을 발굴, 탄생시켰다.
당선된 신인작가들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겨울을 알리는 다른 어떤 징후보다 먼저 11월이 되면 각 일간지에 게재되는 신춘문예 공모를 보고 겨울을 미리 예감했을 터이다. 신춘문예 응모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작가들의 등용문이다.
물론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거치는 것 외에도 잡지를 통한 추천 형식이나 작품집 발간 등으로 작가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하는 것이 작가가 되는 가장 각광받는, 화려한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신문을 통한 신춘문예 등단은 이미 활동하고 있는 선배 작가들에게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확실하게 작가로서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신춘문예를 문인 데뷔의 꽃이라고도 한다. 신문에서는 신인 작가들의 간단한 당선 소감과 함께 약력을 소개하기 마련이다. 신인이건 아니건 간에 많은 작가들의 약력을 살펴보자면,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거나 재학 중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전공도 국문학(또는 문예창작)이나 아니면 그 주변 학문을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이외의 학문을 공부한 사람도 적지 않다. 그리고 또한 아예 기존의 교육제도나 학력에 매이지 않으면서 독학으로 훌륭한 작품을 쓰고 문단에 나와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뛰어난 작가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회에서 행세(?)하는데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학력이라는 것이 도대체 창작을 하는데도 꼭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을 꼭 나와야 하는가.
전문교육 사족, 글쓰기는 노동력과 시간, 테크닉이 필수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이른바 신춘문예라는 작가 데뷔의 제도적 장치가 특별히 마련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따금 작가에게 전문교육이 필요한가라는 문제가 대두되어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심심치 않은 화제가 되곤 한다. 프랑스의 한 잡지에서는 작가들에게서 학력이 중요한가. 작가에게 학력보다도 상상력이 중요하지 않은가, 아니면 도대체 종이장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졸업장이라는 것이 글을 쓰는데 어째서 중요한가 등 전문교육의 필요성 유무를 따지는 흥미있는 기사를 다루고 있다.
우선 우리가 보기에 재능이란 사실 학문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단단한 문화적 학식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전문교육이란 것은 하나의 받침대 구실을 하는 것인가, 좋은 기반인가, 아니면 오히려 반대로 상상력에 장애가 되는 것일 뿐인가?
전문교육이 필요한가, 아닌가? 이와 같이 노골적으로 질문을 했을 때 대답은 거의 일치된다. 곧, 모두 단연코 아니라고 말한다. 우선 거의 학력이 없다고 할지라도 문학상을 수상한 뛰어난 작가들이 많이 있는 것은 그 예이다. 그 다음에는, 글을 쓴다는 것은 욕구이면서 동시에 재능이라는 사실이고 또한 그것은 어떤 특별한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펜대 하나로 살아가는, 소위 전업작가들은 학력보다는 소설을 쓰려면, 다음과 같은 필수적인 세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치하고 있다. 이를테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력과 시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조금씩 조금씩 획득되는 테크닉, 이 세 가지라는 것이다.
그래도 많은 작가들은 이같은 질문을 받으면 우선 곰곰이 따져본다. 그리고 그들은 각양각색의 의견들을 내놓는다.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건 아니면 불필요성을 주장하건 그들은 줄다리기를 하는 선수들처럼 서로 밀고 당기면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어쨌든간에 그들은 모두 자신의 소설에 손을 얹고 엄숙하게 선서를 하는 것이다.
특히 산업사회로 치달으면서 점점 고갈되는 인간성의 회복을 주장하기라도 하듯이, 20세기라는 시대상황은 기꺼이 일반교양의 예찬을 노래하고 있다. 교육의 평준화로 모든 사람들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게 되었다. 졸업장은 바로 사회에서 이름을 내기 위해서는 꼭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장식임을 보증해 주는 것이다. 최고의 학문은 정신을 열어주고 사물에 대한인식을 넓혀주고 견해나 성찰을 더욱 심오하게 하는 장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세계이해, 비판적인 안목 갈고 닦게 해주는 전문교육 필요
예를 들면 필립 쟝 같은 작가는 그 자신이 문학에 관한 특별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그러므로 오히려 그는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교육이란 세계를 이해하는 좋은 수단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우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더구나 만일 지도적 사상가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면 더욱 빨리 앞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배움을 바탕으로 그는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곧, 그 배움을 바탕으로 작가는 비로소 부정적으로, 대조적으로, 도전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다. 비록 그가 그의 독서를 통해 얻은 어떤 유형에 의해 질식할 것처럼 느끼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는 그것들을 떨쳐버리고, 저항하고, 그의 비판적인 눈을 갈고 닦게 된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오로지 팬과 종이뭉치만을 지니고 있는 작가가 세기의 걸작을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쟌느 부렝은 첫 소설을 쓰기 위해 쏘르본느의 청강생으로 등록을 했는데, 학사자격을 얻기 위해 공부한 2년이 자신이 가진 학력의 전부라는 사실 때문에 매우 곤란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인들의 방]이라는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역사적인 고증 자료를 모으는 데만 7년이 걸렸다고 한다.
전문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또 다른 타당성 있는 의견이 있다. 전문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자기 나라 말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음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문법규칙이나 철자의 엄격한 규칙에 맞지 않고서는 무엇으로 자신의 고유한 문체를 만들어내겠는가 라고 뤼시엥 보다르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문학지망생들에게 이공계대학이나 문학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물론 단어들의 쓰임을 충분히 가리기 위해서 그 학문을 이용한다는 조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소위 문학가들이 우글거리는, 작가들의 양어장과 같은 곳에서 성장한 프레데릭 에브라르(아버지 앙드레 샴손은 아카데미 회원이었는데, 그녀의 집에는 작가 마르셸 프레보, 앙드레 말로, 프랑소아 모리악, 루이 기유 등 당대의 유명한 작가들이 자주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러 드나들었다고 한다)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녀는 너무나 어려서부터 전혀 모르는 언어들 속에 갇혀 지내서, 곧 언어의 미답지에 실제로 놓임으로써 끔찍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 [하렘]에서 그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두 여주인공은 어떤 성의 도서관에 유배되어, 매일 저녁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잠자리에서 사탕 하나를 빨고 있는 것처럼 새로운 낱말 하나를 억지로 익혀야 하는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파트릭 그랭빌이라면, 아마도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나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에게 이러한 벌을 내린다 해도 그다지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학생들의 언어가 제대로 발달되지 못하는 것에 유감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문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은 니꼴 아브릴은 자신이 고전문학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고 자신의 무지를 몹시 통탄하고 있다. "교육이란 나에게 일종의 방식이고 훈련이다. 그러나 나는 라틴어나 그리스어는 전혀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그 점을 벌충하기 위해서 나는 사전광이 되었다. 나는 각각의 단어는 신비스런 그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단어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 창문을 여는 것은 결국 나의 몫이라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 전부는 아니라는 데 일치는 하지만 학문은 그대로 필요하다는 로베르 사바띠에의 말을 들어보자. 그 자신이 학업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프랑스 문학계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문학상의 심사위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히기도 하는 그는 1923년에 태어났다. 그는 12세 때에 고아가 되었고, 어쨌든 일찌감치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학자의 전형을 꼽히는 그는 진작에 제도권 밖에서 환상과 호기심이라는 원시적 교육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었다. 이 교육이 그에게 작가가 되는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보낸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글을 쓸 수 있었다. 특히 프랑스 대학출판사 P.U.F에서 그는 15년 동안 일을 했는데 이 기간이 곧 그에게는 대학의 15년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학에 뜻을 품게 만들었고 글을 쓸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일찌감치 삶의 학교에 뛰어들었던 것을 불평하거나 또한 대학교육을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는 1976년부터 전집 9권짜리의 프랑스 시사를 집필하는 기념비적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그는 지식이 부족함을 진정 아쉬워했다고 말하면서 고문서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오늘날 좋은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라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있다.
"글을 쓰고 싶다면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작가를 만드는 것은 문체이다. 문체없이 글을 쓸 수 없다. 문학인으로서 성공을 하려면 천천히 열심히 많이 읽어야 하고 위대한 작품을 연구하고 곱씹어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글을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업이다. 그러나 일단 졸업장을 받게 되면 말에 대한 사랑을 남겨둘 것. 결코 그 말을 더럽히지 말 것. 그리하여 모든 문학인들이 언어에 대한 미식을 간직할 것을 바란다."
적어도 이런 이유로 보자면 전문교육이 차라리 필요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특히 전문교육이 지적 기준이나 게다가 식별 신호로 쓰이는, 소위 문학이라는 직업에 종사할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문학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고자 한다면 전문교육을 받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일이다. 왜냐하면 프랑스에서는 바로 그런 점에서 진짜 스노비즘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피에레트 플레티오는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영원하다]라는 작품으로 그녀는 소설가로 인정을 받았고 또한 충분히 사회적으로도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구축했다. 그래서 전혀 아무런 불안감이 없어 보이는데도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문교육을 받았다는 그 증서가, 특히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작가라고 하는 신비로운 지위에 좀 더 빨리 다가가게 할 수 있는, 이른바 중간 발판의 역할을 한다고 추론해 볼 수도 있다.
그렇다. 특히 얀 크펠렉 같은 작가는 전문교육이 다만 중간 발판의 역할을 할 뿐이지, 그렇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문학과 교육은 서로 반대되는 곳에 있다고 다음과 같이 공언한 바 있다. "문학이 (존재의) 가장자리를 향해서 가려고 한다면, 교육은 존재를 사회에의 동화로 이끈다. 그러므로 문학과 교육은 서로 반대의 위치에 있다. 프랑스 15세기의 위대한 시인 프랑소와 비용이나 현대사의 선조로 불리우는 보들레르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윌리엄 포크너, 존 스타인백, 앙드레 말로, 20세기의 위대한 작가들을 생각해 보라. 이들은 말썽꾸러기 소년이었지만 어쨌든 자라서 가장 위대한 작가가 되었지 않은가.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작가들이 교육에 관해서는 실제로 콤플렉스를 겪고 있다."
상상력, 직관, 자유가 우선- 교육은 정신에 장벽을 만들 뿐
하지만 필립 라브로의 경우를 들어보자.
미국의 대학에서 2년동안 수학한 적이 있는 그는 30년이 지나서야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학교에서도 글이라고 하는 이 끔찍하고 진저리나는, 그러나 재미있는 노동에 뛰어드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없다. 나는 중등교육을 마치고 나서 생활로 뛰어들었을 때 그 고통스런 체와도 같은, 대학이라는 주형을 통과하지 않는 약간 엉뚱한 행운을 누리고 있다. 나는 노동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 세계에서 곧바로 나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교훈으로 삼을 한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작가는 무엇보다도 우선 상상력과 직관과 자유로 자신을 키워나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나치게 합리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대학교육에 돌을 던질 필요는 있다. 소재에서 가장 정통한 것이 가장 형편없는 것이기도 하다. 또는 가장 명철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수 체계에서 배출된 작가들은 스스로 대학의 졸업장을 작가라는 직업에는 핸티캡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빠트릭 그랭빌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교수라는 사람은 지나치고 세밀하게 따지는 경향이 있다. 그는 문학을 분석적으로 연구한다. 그리고 텍스트를 해부하고 메스를 가하면서, 언어를 분석하고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학은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젊은 문학인들의 자연스러움과 순진함과 열정을 뒤죽박죽이 되어 사라지게 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위베르 몽떼이에 같은 작가는 적극적으로 이에 찬성하면서 교육을 비난한다. 지식인에게 2등급과 3등급에 맞추어서 글을 쓰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머리 속에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손과 종이 사이에 장벽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 곧, 작가는 마치 그의 기억이 다 허물어진, 폐허의 전장과 같은 곳에서 독창적인 건물을 지어야 하는 임무를 맡은 건축가와도 같은 존재이다." 바로 빠스칼 레네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첫번째 돌을 쌓는데 몇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그가 철학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서술의 매력을 이루는 세부적인 것을 묘사하고 기억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심리적 압박을 극복하기 위해 쥴리앙 아카데미에서 2년 동안 미술 수업을 받았다. "그 학교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아직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관념들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서 문장들을 끈으로 잘 묶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오히려 프루스트 같은 위대한 작가는 문법에서 놀라울 정도로 많은 오류를 보여주었다."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창의성을 보존하기 위해 졸업장을 불 속에 던져버려야 하는가, 아니면 반대로 문체의 미덕을 지키기 위해 그 증서에 향이라도 뿌려야 하는가? 수잔 프루는 진지하게 전문교육의 불필요성을 주장한다. 곧, 그녀는 "나의 학위는 내게 전혀 아무것에도 도움을 되지 못했다. 오히려 글읽기를 좋아하고 글을 쓰고 이야기하는 것, 이러한 일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작가가 되도록 이끌어 주었다." 물론 사람들은 독서가 작가가 되는데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마들렌느 샵살 같은 작가는 미뉘잇 출판사 사장 제롬 렝동의 견해를 인용하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제롬 렝동의 말에 따르면,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글을 쓰겠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읽지 않는 젊은 작가들을 경멸한다. 새롭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취미와 필요와 기쁨으로 읽어야 한다. 특히 의무로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버릇없는 학생이었던 던 쟝 라스빠이유의 경우, 그는 공부하는 대신에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는 데 보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에게 밑바닥이나 우리의 무의식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전문교육을 받았다면 그만큼 더 한자리에만 머물러 있을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더욱 단호한 어조로 얀 크펠렉은 전문교육이란 것은 오히려 우리의 뇌를 고갈시킨다고 천명하고 있다. 에르베 바쟁은 장래 작가들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국가박사를 맹렬히 비난한다.
또 이렌느 프랭은 작가로서 늦게 입문했는데, 인도에서 여행을 했던 것이 다른 것보다 그녀의 창작에 많은 도움을 주었음을 고백한다. 그녀에 의하면 "자신을 짓눌렀던 대학이라는 이 무거운 덮개가 소리와 색깔의 우주에 의해서, 마치 전기충격처럼 느껴졌던 감각의 표류에 의해서 가루처럼 미세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대학이란 마치 검열과도 닮았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억압을 받기 때문이다. 제도의 기능 방식은 이러한 마비로 이끈다. 기준에 지나치게 방해를 받다보면 사람들은 좋은 비평가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삶은 곧 대학, 모험만이 펜을 살찌운다
이러한 솔직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작가지망생들은 틀림없이 전문교육을 받으려고 하기보다는 인생의 경험을 얻고자 할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서 재창조되는 인간의 존재야말로 실제로 재능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온상이다. 적어도 베르나르 끌라벨의 경우는 그렇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삶이 곧 나의 대학이다. 만일 내가 공부를 했다면 아마도 나는 소설을 쓰지 못했고, 어쨌든 그 비슷한 것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내가 충분히 전문교육을 받지 못해서 문법과 철자법 등에서 어긋나는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해도 나는 어쨌든 노력을 했다. 쥴르 르나르의 교훈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글을 계속 썼을 것이다. 곧, 종이 끝까지 가고 잉크를 다 써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에는 오로지 황소만이 있을 뿐이다. 가장 살찐 것이 가장 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작을 하는 작가 앙리 트로야는 이 교훈을 표본으로 삼고 있다. 그는 장애물 같은 것은 아예 더욱 멀리 밀어낸다. 그는 문학에 모든 것을 희생시킬 것을 당부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작가는 삶을 작가로서 살기 때문이다. 직업적인 습벽처럼 작가는 책을 살찌울 수 있는 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알퐁스 부다르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범죄생활에 빠져들어 그 뒤 감옥과 요양소에서 거의 그 일생을 보냈다. 프렌느감옥의 도서관이 그의 학교였다. 그는 전문교육이란 에세이스트를 만들어 낼 뿐이라고 주장한다. "나에게 학교라는 곳은 감옥이다. 프렌느에게 그곳을 거쳐간 수많은 죄수들이 남겨놓은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는 다른 일반 사람들에게는 입장이 불가능하겠지만 내가 배우지 못한 문법이란 것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유폐와 고독 속에서, 오히려 유폐와 고독 덕분에 비로소 나 자신을 기르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 여인들을 유혹하고 유고슬라비아든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모험만이 펜을 살찌우기 때문이다." 인생은 언제나 최후의 단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용하고 있다. 남편인 모리스 쿠데케에게 최후의 한숨을 내쉬면서 던진 그 말을, "보세요, 모리스, 보세요." 이렇듯 삶을 향한 사랑의 선언은 세상의 그 모든 졸업증서보다 가치있는 귀중한 것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 전문교육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비록 이렇다할만한 학위나 학력은 없지만 그래도 프랑스의 문학사에 빛나는 업적을 이룩한 몇몇 작가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익히 알려진 이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학문을 성취하지 못했지만 뛰어난 작품을 남겨서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문인의 반열에 드는 작가들이다.
[좁은 문] [전원교향악] 등으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 앙드레 지드(1869∼1951)는 몸도 허약하고 나쁜 습관으로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가정교사에게 수업을 받았다. 그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가 앙리 4세 고등학교에 입학하나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치루기 전에 그만두고 말았다. 이것이 그의 학력의 전부이다. 하지만 그는 20세기의 위대한 작가로서 기억되고 있다.
평생 자기가 살던 고장을 떠나지 않고 목가적인 전원의 삶을 글로 쓴 쟝 지오노(1895∼1970)는 부모의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으므로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11년 16세에 은행에 종업원으로 취직하여 1929년에 정식직원이 되었다. 그때 그는 비로소 글을 써서 먹고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20세기의 유명한 행동주의 작가 앙드레 말로(1901∼1976)는 17세 때까지만 정규교육을 받았다. 그 이후 그는 예술에 심취해서 박물관 부속 학교에 다니기도 하고 동양어학교에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는 등 기존의 사회나 그 질서에 대해 부정적이고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다. 주로 할인되는 책을 판매하는 일을 하다가 앙드레 지드, 막스 쟈꼽, 삐에르 르베르디 등 그 시대의 문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권유로 1920년부터 글을 쓰게 되었다.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부조리에 대한 절박한 의식을 표출하는 그의 글쓰기는 곧 행동에 의해 인식하는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산문작가 쟝 쥬네(1910∼1986). 아버지는 처음부터 알 수 없었고, 어머니에게서도 태어나자 곧 버림받은 쥬네는 열 살 때부터 이미 도둑이라는 사회의 선고를 듣게 된다. 여러 곳의 감옥을 거치고 방랑생활을 하면서 그는 스스로 도둑이 될 것을 선언한다. 첫 시집 [사형수]의 초판본이 비밀리에 유포되기 시작할 때 그는 감옥에 있었다. 도둑으로서 자기의 유죄성을 기술한 문장, '가장 특이한, 가장 아름다운 시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도둑일기]는 사회로부터 언어를 박탈당한 자의 기록이다. '마술적 힘을 가진 언어'를 구사하는 그의 시적 표현의 기발한 재능은 사르트르와 같은 당대의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자, 이러니 작가에게 전문교육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에 모두 일치하는 듯하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전문교육과는 별개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작가이건 아니건 간에) 무엇보다도 언어의 사용에 대한 경각심이 우선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플로베르의 다음과 같은 말은 다시 한 번 되새겨 들을 만하다. 그가 직접 작가수업을 시킨 모파상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그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표현할 올바른 단어는 하나뿐이며, 그것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동사도 하나이고 그것을 한정하는 형용사도 하나입니다. 그대는 그 단어, 그 동사, 그 형용사를 찾아야 합니다. 그 근사치에 만족한다거나 난점을 피하고자 요령을 부린다거나 혹은 현명한 자에게 의뢰하거나 돌려서 표현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이렇듯 언어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플로베르의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하자면, 그 사랑을 키워나갈 작가에게 결국 '재능은 끈질긴 인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