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연극계
윤용호 / 고려대 교수
구심점 없다는 결함이 다양화의 긍정적 결과 낳아
유럽이 하나의 연맹체로 통합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연극에 있어 독일만큼 다양한 풍경화를 지니고 있고 지원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독일에는 각 주나 지방자치단체에 의해서 운영되는 극단이 90여 개가 있고 개인이 이끄는 극단 또한 비슷한 숫자만큼 있으며 자유극단만 해도 수백 개나 된다. 이 수많은 극단들에 의해 매년 2천여 편의 작품이 공연되고 있다. 그러나 통일 이후 독일은 경제성장 후퇴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지속될 전망이라고 해서 거의 모든 극장들이 예산 절감의 책략을 쓰고 있고 그러면서도 연극을 지탱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독일 연극계의 현주소라 할 것이다.
독일 연극계의 다양함은 무엇보다도 구심점이 없다는 결함에서 나온 긍정적인 결과이다. 이 점은 오랫동안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했던 독일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세계 제2차 대전의 종전 직전까지는 그래도 베를린이 그런 구심점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연극에서 경력을 쌓고자 하는 사람들은 베를린으로 몰려들었고 베를린에서의 성공이 참된 성공이었다.
그러나 베를린이 양분되자, 베를린은 더 이상 연극의 구심점이 될 수 없었고 그 결과로 서로 비슷한 여건에서 경쟁을 하는 여러 대도시가 생겨난 것이다.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뒤셀도르프, 쾰른, 슈투트가르트 등에 덧붙여 보쿰, 부퍼탈, 타름슈타트, 브레멘과 같은 소도시들까지도 이 경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연극, 아니 극장의 분산화가 낳은 이런 선의의 경쟁은 당연히 독일 연극을 다양하게 하고 동시에 그 질을 높이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특히 질을 논할 때에는 대개 각 극장 총예산의 거의 80%를 지원금으로 커버하고 있어 티켓 판매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제도가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지원금에 대한 반대급부는 무엇보다도 연극이 사회의 지진계 내지는 거울이 되어 사회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해주어야 한다는 기대와 소명의식이 되겠다.
즉 다시 말하면, 독일의 극장은 '시민의 학교' 노릇을 해줄 것이 기대된다는 말이다. 독일의 극장은 어떤 유산층이나 엘리트 계층만을 위한 특별한 기관이 아니라 문화적 기관이고 사회생활을 구성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정해진 기간 동안 교육을 받은 후의 일반 성인들뿐 아니라 현재 학교 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에게도 연극은 과거의 위대한 문학적, 문화적 자산을 가장 직접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극장이 공적인 세금으로 지원이 되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가능한 한 모든 국민이 극장에 갈 수 있게 하자는 민주주의 원칙이 문화정책의 기본 입장이 된다.
통일이후 어려움 겪고 있는 연극계 역부족 절감
독일은 극장을 참된 '시민의 학교'로 만들기 위해 레퍼토리 선정에 절대적인 권한을 지닌 드라마 투르그 제도가 다른 어느 나라들 보다 발달해 있으며 그 레퍼토리에는 서양연극 2,500년 역사 동안 축적된 작품들은 물론, 세계 및 독일어권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다양하게 들어있다. 특히 세계 어느 곳이 되었든 획기적인 작품이 있을 경우, 희곡작품을 발간하는 출판사들이 많이 있어 곧바로 번역, 출판되고 무대화되는 신속함 또한 독일 연극의 무서운 저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독일의 연극도 이미 언급했듯 통일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극인 자신들도 연극이 이미 사회의 정신적 지주역할에 역부족임을 절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물론 통독의 후유증과만 관련된 결과가 아니라, 영화의 등장과 테크닉의 등장, 숨가쁘게 변화하는 후기 산업시대에 발맞출 수 없어 그 성격상 수공업처럼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 연극의 역사적인 위기로 이미 인식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일례로 지난 해 문이 닫힌 베를린 쉴러 극장의 운명은 독일 연극계의 현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쉴러 극장 폐쇄의 뒷얘기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지원금제도의 안일함에 빠진 예술관리들의 방만한 운영으로 인해 계속 쌓이는 적자를 현재의 어려운 실정에서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 주된 원인이었던 것 같다.
이 극장의 폐쇄에 대해 많은 연극인들이 근원적으로는 반대하면서도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으며 이것을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렇게 짐작할 수 있다. 쉴러 극장의 폐쇄가 기정사실이 되어버린 이상 연극인들은 이 극장의 예산 절감이 여타 극장들의 정상적인 운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한바탕의 회오리가 지나갔지만 지난 해 독일 연극계 각 분야의 최정상들이 40인의 비평가들에 의해 선정되었다. 우선 최고의 극장에는 베를린 로자-룩셈부르크-플라츠에 있는 프랑크 카스토르프(Frank Castorf)가 이끄는 폭스뷔네(Volksbühne, 민중극장)가 20표를 얻어 선정되었다. 지금까지 어떤 극장도 이렇게 많은 표를 얻은 적이 없었기에 이는 상당히 획기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극장은 지명도가 높은 연극인 앙상블이 그 운영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최상의 극장으로서가 아니라, 가장 주목할 만한 극장으로서 비평가들의 호응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곳에선 단순히 연극뿐만 아니라 록음악의 밤, 토론회, 초청공연, 콘서트, 영화상영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주변구역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케이스이다. 이 극장이 이렇게 관객들의 주의를 끌며 성황을 이루기 시작한 때는 1992년 가을 시즌부터였고 다가올 시즌의 주테마는 현 독일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카스토르프는 밝히고 있다.
여류극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 최고의 극작가로 뽑혀
최고의 극작가로는 1946년 오스트리아 태생의 여류극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로 주목을 받은 작품은 「토텐아우베르크(Totenauberg)」(Manfred Karge의 연출로 빈 아카데미 극장에서 세계 초연 됨)이다. 이미 1966년부터 시인으로 출발한 그녀는 그 동안 꾸준히 희곡을 발표했고 여러 상을 수상했으며 이제 페터 한트케, 보토 슈트라우스 등 쟁쟁한 작가들을 누르고 9명의 비평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녀의 「토텐아우베르크」는 형식면에서 볼 때 도저히 정상적인 언어 극이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한 인물의 대사가 길며 그 주제는 자연과 인간의 문제라고 볼 수 있으며 발전된 20세기 산업시대 미토스의 이면에, 막다른 골목에 선 현대인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녀의 최신작「휴게소 혹은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Raststatte odersie machen's alle)」는 올 시즌에 빈 부르크 극장에서 클라우스 파이만(Claus Peymann)의 연출로 세계 초연 될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 태생의 유태인 뤼크 본디(Luc Bondy, 1948년 생)가 입센의 「죤 가브리엘 보르크만(John Gabriel Borkman)」(주인공 보르크만 역에 프랑스 배우 Michel Piccoli가 열연했으며 스위스의 로잔에서 공연되고 그 뒤로 브뤼셀, 파리, 빈, 뮌헨 및 프랑크푸르트에서도 공연되었음)의 연출로 최고의 연출가로 선정되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본디는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았고 연극의 경력도 그곳에서 시작했으나 1969년부터 함부르크의 탈리아 극장에서 조연출로 독일과 인연을 맺고 오늘에 이르렀다. 연출에 있어 그의 특징은 인물과 그 인물의 행동에 최대한 사실적 근거를 부여하는 데 있으며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극 속의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고 들리도록 애쓰는 데 있다.
그의 세심한 현실묘사는 너무 지나쳐 '마술적인 사실주의' 분위기를 창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연출가를 극작가의 작품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는 재창조의 예술가로 이해하고 있다. 이 재창조를 위해 그는 작품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을 가능한 한 많이 끄집어내고자 작품을 수없이 여러 번 읽고 공연이 시작되어도 수정작업을 그치지 않는 꼼꼼한 타입의 연출가이다.
1993년 최고의 여배우로는 키르스텐 데네(Kirsten Dene)로서 빈부르크 극장에서 클라우스 파이만의 연출로 세계 초연 된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투리니(Peter Turrini)의 「알프스의 불빛(Aipengluhen)」에서 야스민역으로 주목을 받은 것이다. 테네는 1976년 카뮈 작 「정의의 사람들」에서의 도라역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동안 주로 파이만과 작업을 해왔으며 소위 브레히트 형이라기보다는 스타니슬라프스키 형의 배우로서 무한한 변신의 가능성을 지닌 여배우이다.
최고의 남자배우로는 유르겐 홀츠(Jürgen Holtz. 1932년 생)가 선정되었다.
그가 선정된 것은 무엇보다도 라이날트 굇츠(Rainald Goetz)의 모놀로그「분류(Kata-rakt)」-옐리네크의 「토텐아우베르크」와 유사한 주제를 가진 이 작품으로 라이날트는 두 번째의 훌륭한 극작가로 선정되었다-에서 90분간 노인역의 일인극을 훌륭히 해냈기 때문이다.
홀츠는 통독 전에 동베를린에서 활약하던 배우로 70년대에는 베를린 앙상블의 작품과 80년대에는 하이너 뮐러가 연출한 작품에 주로 출연했다(우리나라에서도 공연된 바 있는 「청부」에서의 데뷔쏭역 등).
카알-에른스트 헤르만(Karl Ernst Herrmann, 1936년 생)은 일년 동안 빈부르크 극장에서 상연된 여러 작품의 무대를 꾸며 최고의 무대미술가로 뽑혔다. 헤르만은 베를린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1962년부터 주로 페터 슈타인(Peter Stein), 파이만 등 독일 최고의 연출가들과 협업을 했고 때로는 작품의 성공이 그의 무대 장치에서 나왔다는 평을 들을 만큼 훌륭한 무대미술가이다.
최고의 드라마투르그로는 상기한 카스토르프와 함께 베를린 폭스뷔네의 드라마투르기를 맡은 마티아스 릴리엔탈(Mathias Lilienthal)이 선정되었으나 본디의 「죤 가브리엘 보르크만」에서 드라마투루기를 맡았던 보토 슈트라우스(Botho StrauB)와 미셸 부텔(Michel Butel)이 특별히 명명되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독일어권 연극계라고 해야 함이 마땅하나 독일어권의 어느 나라보다도 독일이 통독 이후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여 편이상「독일의 연극계」라는 제하에 지난 해 독일 연극현황을 소개하고자 해마다 비평가들이 뽑는 각 분야의 인물들을 간단히 소개하였다.
우리에게 아직은 생소한 이름들이 있지만 이제 국제화, 세계화를 표방하는 마당에 이들 이름들이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에게도 친숙해지기를 바라며 쉴러 극장의 폐쇄에 즈음하여 독일의 연극인들이 가졌던 연극이 죽었다는 절망감과 그래도 연극은 산다는 희망을 함께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