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예

비디오 대여점. 「으뜸과 버금」




조은희 / 시인

폭넓은 영상예술 이해 위한 영상문화 정착 시급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영화광들이 부쩍 늘어났다. 영화에 대한 느낌을 주고받거나 정보를 주고받는 것을 목적으로 한 영화 동호인들의 만남이 활발한 것도 같은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도시, 특히 서울이나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교통 체증에 시달리면서 자연을 보기 위해 도시를 탈출하는 시간에 도시 속에서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 분위기가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영화를 보는 식으로, 잠시라도 도시를 떠나서 자연 속에 섞이며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누리기에는 우리의 도시적 삶은 너무도 숨가쁘다. 주말이면 더욱 심한 도로 곳곳의 병목 현상과 정체 등은 어디론가 불쑥 떠날 수 있는 단순한 용기마저 주저하게 한다.

영화의 사회적 의미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영화의 수용 범위는 넓고 광범위하다.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서 자신이 가보거나 체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간접 체험을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을 자신의 삶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영상 예술이 보다 깊은 의미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들 스스로가 좋은 영화를 선택해 볼 수 있는 영상문화의 정착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자신의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올바른 가치관으로 영화를 흡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이를테면 청소년들의 경우, 우리가 비디오를 볼 때마다 지긋지긋하도록 보고 듣는 대로 '한 편의 영화가 청소년의 미래를 망칠 수'있는 곳으로의 귀결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영상이 아니라 영상의 혼이라는 말이 있듯이, 영화를 선택해서 보는 행위 역시 단순한 것이 아니다. 영화적 현실은 상상적 현실(현실을 재구성하거나 실재 있었던 사건을 영화화하는 경우도 포함해서)에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모든 사건이나 공간 또한 엄격한 의미에서는 미래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기술적인 발전을 제외한 다른 면에서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는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양하게 변모된 영상 매체로 인해서 누구나 자기 집 안방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게끔 편리한 세상은 되었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의 의식 및 영화에 대한 철학, 사상 등은 과거에 비해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심지어는 영화는 상업적이고 오락적인 부분만 발전함으로써 과거에 비해 훨씬 피폐해졌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때문에 '으뜸과 버금'처럼 비디오 숍 경영자들이 스스로 문화운동의 측면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저질 비디오를 가려내고 좋은 비디오를 고객들에게 보급하기 위한 노력들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비디오 대여점이 구비해 놓은 물품의 한도 내에서 수용자는 선택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가 문화 매개자임을 의식하고 영화에 대한 전문 역량을 갖추는 등의 일련의 노력들은 영화에 대한 깊은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좋은 비디오 문화를 정립하기 위한 비디오 숍 경영자의 모임

'으뜸과 버금'(회장 박상호)은 YMCA산하 '건전 비디오 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건비연)'의 회원 단체로서 좋은 비디오 문화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비디오 숍 경영자들의 모임이다. 현재 42개 비디오 숍을 회원으로 확보하고 있는 '으뜸과 버금'의 활동은 건비연의 활동과 같은 궤도에 있다.

그러나 굳이 건비연과 '으뜸과 버금'의 변별 점을 찾는다면, 건비연이 모니터 활동을 통해서 얻은 비디오 문화의 문제점을 언론사 등에 발표하는 등 실질적인 활동이 없는 데 비해 '으뜸과 버금'의 활동은 그들이 일선에서 비디오를 찾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만큼 보다 구체적이라 할 수 있겠다. 달리 말하면 건비연의 성과 중 크게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이 '으뜸과 버금'의 활동이라 할만하다.

이웃나라 일본에 비디오 대여점이 7천여 개인 데 비하여 우리나라에는 무려 그 다섯 배인 3만 5천여 개의 비디오 대여점이 있다. 앞으로 편의점 형태의 직배 비디오 숍의 출현과 더불어 군소 비디오 대여점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이후 누구 나가 하고 있다. 막대한 외국 자본의 위력을 견뎌내면서 우리나라 비디오 대여점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이 여러 각도에서 검토되어야 할 시점이다. 때문에 '경영박사'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해서 회원들을 관리, 누진제 등을 적용(비디오 테이프를 빨리 반납하는 회원에게는 상점을, 늦게 반납하는 회원에게는 벌점을 적용해서 보너스를 주는 등의 제도)하면서 보다 체계적으로 비디오 숍을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에게 시선이 쏠린다.

'으뜸과 버금' 회원 비디오 숍의 고정 고객 중 이삼십 퍼센트는 지역 주민이 아니다. 그들은 멀리서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서 오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컴퓨터로 자동 집계되는 비디오 대여 순위를 보면, 새로 나온 영화가 아닌 것이 상위에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새로 나온 영화를 구해 보기가 힘든 동네 비디오 대리점의 일반적인 분위기와는 상당히 다른 기현상이다, '으뜸과 버금' 에서는 국내에서 절판된 명작 비디오나 희귀본인 비디오를 여러 경로를 통해 구입, 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 대여점은 단순한 장사 이상인 문화사업이기도 하다는 자부심이 좋은 영화를 보기 원하는 비디오 팬들의 호응을 받고 있는 좋은 사례이다.

"우리나라의 비디오 문화는 저속한 포르노 영화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아직도 비디오를 퇴폐문화 정도로 생각하는 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현시점에서는 특히 관에서 비디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비품이 활성화되도록 방관하고 있다가 업소에 영업 정지 등의 제재를 가하는 표피적인 행정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이후 외국의 자본이 국내의 진출을 서두르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는 저희 같은 단체나 개인들에게도 정부의 대대적인 관심과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으뜸과 버금' 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는 영화 비디오 전문지 으뜸과 버금의 편집장인 조종국 씨의 말이다.

준비중인 비디오 목록 1천선

42(회원 32개 점, 준회원 10개점)개의 '으뜸과 버금'에 입회한 비디오 숍 경영자들은 매주 첫째 주와 셋째 주 화요일에 정기적인 회의를 갖는다. 매월 첫째 화요일은 교육 위주의 강연과 토론을 중심으로 일정이 짜여진다. 특히 올해의 회의는 네 부분을 중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 회원들의 영화 안목 넓히기, 둘째 자신들이 추구하는 문화운동 측면에 입각한 교육, 셋째 경영의 합리화, 넷째 국제 개방화의 대처를 위한 교육 등에 초점을 맞추어서 회원들의 재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으뜸과 버금' 소속 비디오 숍 경영자들은 대부분 영화를 사랑해서 오늘에 이른 사람들인 만큼 이러한 교육들은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다.

셋째 화요일의 만남은 회원들간의 친교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짜여진다. '으뜸과 버금' 의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3개월간의 준회원으로서의 교육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 뒤 심의 과정을 통해서 정회원으로 입회할 수 있다. 또한 회원이 되려면 좋은 영화를 회에서 제시하는 숫자만큼 갖추어야 한다. 현재 '으뜸과 버금' 회원 비디오 숍의 팔구십 퍼센트는 8천 장 이상의 비디오 테이프를 구비하고 있으며, 1만 장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업소도 몇몇 있다.

"으뜸과 버금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분을 꼽으라면 일반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귀하고 좋은 영화를 비치하고 있어서 언제든지 대여가 가능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좋은 영화에 대한 우리의 사명감은 비디오의 부정적인 면을 어느 정도 불식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로덕션에서 출시는 했으나 장사가 안되어서 더 이상 출시하지 않아 구입할 수 없는 비디오를 제외하고는 목록에 있는 영화는 거의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한 회원의 말에서도 나타나듯 ‘으뜸과 버금’은 자체 비디오 목록을 가지고 있으며, 다시 1천 선을 준비중이다.

매월 발행하는 정보지 ‘으뜸과 버금’

좋은 비디오를 보급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는 ‘으뜸과 버금’에서는 월간 정보지 ‘으뜸과 버금' 을 발행하고 있다. 회원들이 운영하는 비디오 숍을 찾는 고객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는 '으뜸과 버금’은 타블로이드 판이다. 이 안내 물에서는 비디오 문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망라한다. 당장은 좋은 영화를 많이 보게끔 하는 것에 일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으며 비디오 칼럼, 영화평론가들이 추천한 비디오, 새로 나온 비디오의 소개 등 문화운동의 측면에서 비디오 숍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현재는 이 매체를 활용해서 평론가를 육성하는 문제 역시 검토되고 있다.

또한 게재되는 글들은 단순한 평론의 수준을 뛰어넘어 영상운동을 확대시키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으뜸과 버금’이 계획중인 사업 중 하나인 좋은 평론가를 육성하는 문제와 우리 영화보기 운동, 비디오 테이프를 복원하는 사업 등과도 연계된다. 비디오 숍이 현금동원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많은 계획은 그다지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이 계획하고 있는 사업들이 뜻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많은 회원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현재 회원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충청 이북지역에만 집중되어 있다. 먼 지방에서는 매월 필수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회의가 부담이 될 수도 있으며 테이프 보급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으뜸과 버금’은 이미 로고와 간판을 통일하는 이미지 통합 작업을 끝마쳤다. 또한 업소 내부의 영화 장르 판을 통합하는 등 공동 이미지 작업도 마쳤는데, 전체적으로는 밝은 이미지를 나타내도록 노력했다.

삶의 활력소가 될 만한 영화는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찾아 나서는 데에서 얻어진다. 또한 다양한 영상예술을 접하면서 안목이 높아지면 삶을 수용하는 시각도 다양해진다. 삶을 다양하게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산소가 충분한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신선하고 풍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