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 15년, 그 회고와 전망
이주헌 / 미술평론가
민중미술 작품전시 미술계 봄이 오는 소리인가?
1994년 2월 5일은 장차 우리미술사에 굵고 뚜렷한 획으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민중미술 작품들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을 '제도권-비제도권 미술간의 화해'작업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이 행사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분분하지만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정치적 이념에 의한 우리 미술계의 '분단현상'은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의 「민중미술 15년 1980∼1994」전(2월 5일∼3월 16일)은 이제까지의 모든 갈등을 눈 녹듯 녹이고 '해피엔딩'의 대단원으로 미술계의 대립을 매듭짓는 축복 받은 축제의 마당인가? 상당수의 미술인 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는 듯하다. 그러면 앞으로도 대립이 계속된다는 말인가?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것은 아니다. 정치적 이념에 의한 대립은 더 이상 큰 세력싸움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이 행사를 축제로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해를 했는데 왜 축제가 되지 못할까? 우선은 그 화해가 미술계의 그 누구도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타력에 이해 주어진 것이고, 또 이제는 과거와 같이 하나의 강한 힘에 의해 움직이는 미술 흐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미술동네 안의 각각 분자들이 빠른 속도로 개별화하고 분열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 행사에 대해 ‘민중미술의 장례식’, ‘조종을 울리는 자리’라는 평가가 오히려 민중미술계의 일부작가, 평론가들로부터 거침없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흐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같은 평가와 ‘민중미술의 성과 확인과 확대, 심화를 겨냥한 도약의 자리’라는 공식적인 평가 사이의 긴장이, 바로 이번의 민중미술전이 갖는 본질적인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이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소집단 운동과 민중미술의 형성’을 주제로 한 80년대 초엽 중심의 작품 그룹이 그 하나이고, ‘전국 미술인 조직 건설과 미술운동의 확산’, ‘창작의 결실과 진전’을 주제로 한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의 작품 그룹이 그 나머지 둘이다. 여기에 대형 걸개 그림만을 모은 방 하나가 따로 배정됐다. 일단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된 전시의 형태가 미술운동으로서 민중미술의 전모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전시는 나열적 설명으로 끝나 민중미술에 대한 평면적 이해를 조장하기 쉽다. 실제로 출품작가 수가 ‘유사민중미술작가’까지 망라한 3백여 명에 이르러 종국적으로는 ‘큐레이터 쉽’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했음을 전시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추어리즘 못 벗어난 나열식 전시에 그쳐
형편이 이렇다 보니 이 전시에서 제일 눈에 띄는 특징은 유감스럽게도 아마추어리즘이었다. 즉, 작품성이나 예술성의 걸러짐이 없이 하나의 의식 또는 경향성을 포괄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데 전시의 초점이 맞춰졌고 그만큼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많이 내 걸렸다는 얘기다. 이 점은 자칫 민중미술이 예술적으로 큰 성취가 없었던 것처럼 보이게 할 위험이 농후했다.
전시장소가 국립현대미술관임을 고려 할 때 시위현장이나 대안공간에 내 걸렸던 그림이 이곳에서는 어떤 인상을 줄 것인가에 대한 면밀한 고려가 기획 초기 단계부터 필요했다고 본다. 이는 출품작가를 그만큼 걸러야 했다는 얘기도 되지만 차라리 전시 구성을 정치 운동부분과 예술적 성취 부분으로 이분화해 보다 입체적인 이해를 꾀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충고도 동반하는 것이다. 천차만별인 작가 수준을 1인 1점 형태로 백화점식 나열을 하는 것은 바로 민중미술작가들이 줄곧 비난해마지 않던 일부 미술계 기득권자들의 행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럼에도 이 전시는 많은 의의와 의미를 띠고 있다. 또 그만큼 관람객들과 상호 소통하는 폭과 깊이도 넓고 깊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민중미술운동 15년이 쌓아 온 한 많은 투쟁사의 공덕과 도덕성 때문이다. 또 이에 대한 응분의 보답을 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제도의 빗장을 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향적 의지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시대의 민주화 투쟁사를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예술작품으로 개관할 수 있는 경우가 어느 시대, 어느 곳인들 손쉬우랴.
오윤의 「무호도」동작을 흉내내 보는 해맑은 얼굴의 어린이들,「민족해방운동사」걸개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는 젊은 중산층 가족, 김운성의 「오줌싸개」,조각을 보며 생활 속의 웃음을 찾아내는 연인 등 국립현대미술관을 찾는 발걸음들에는 시대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홀가분함과 속시원함이 있었다. 물론 그림 속 노동자, 농민들의 눈물과 한숨이 아직 채 거두어지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지만 이런 전시를 통해 계층간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예술을 통한 소통의 폭 또한 넓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민중미술 같은 미술운동이 소망하던 ‘미술의 민주화와 대중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이 아닐까. 어쨌든 예술의 힘은 ‘검이 아닌 붓’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런 보다 열린 소통의 성취를 통해 우리는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전시회 떠나 민중미술에 대한 전면적 재평가 요구돼
한편 이번 전시를 계기로 전시자체에 대한 평가 여부와 관계없이 민중 미술에 대한 전면적 평가의 요구가 대두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민중미술 권 내부에서조차 아직 총체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 같은 요구는 조만간 다양한 입장을 뿌리로 한 각양각색의 평가들을 낳을 것이다. 특히 예술성 문제와 대중성 문제, 내용주의 미학의 시대적 가치에 대한 평가 문제 등이 '뜨거운 감자'로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그 평가 내용이 어떻게 나오든 민중미술이 80년대의 가장 주도적인 흐름이었다는 것, 또 매스컴과 대중적 관심의 과녁에 자주 오르내린 미술운동이었다는 것에는 커다란 이견이 없을 게 분명하다.
그밖에 일부 선배 세대 작가들의 개인적 성취 및 상업적 성공에 비겨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젊은 작가들의 고민도 앞으로 민중미술의 진로와 관련해 주목되는 부분이다.
한창 시위현장과 노동현장에서 활동하고 조직운동에 힘써온 관계로 제대로 개인적 창작에 전념할 수 없었던 이들 젊은 작가들은, 기존의 작가적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창작과 조직운동을 병행해온 선배들이 선구자로서의 명망이라는 지남철로 자신들의 땀의 대가를 모두 흡수해버렸다는,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할 불만을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는 속설이 다시 한번 그 의미에 세속적 힘을 발휘하며 선배 세대 작가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