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 강원

잃어버렸던 혈맥찾기 작업 활발




이홍섭 / 강원일보 문화부 기자

올해 들어 도내 문화계는 현대사의 상처 속에 잃어버렸던 ‘혈맥(血脈)’을 찾는 작업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문화의 전통 찾기, 문화의 상징인물 찾기라 할 수 있는 이 혈맥 찾기 작업은 문학과 미술부문에서 먼저 점화됐다. 문학부문에서 먼저 점화됐다. 문학부문에서는 오는 3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을 비롯, 동시대 한국문학사를 대표하는 이태준, 이효석이 적극 부활되고 있다.

또 미술분야에서는 50년대 한국화단의 주역으로 근대미술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던 변희천, 김종하, 이철이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지방자치시대 지역문화의 활성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이 혈맥찾기, 혈맥잇기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문학

이태준, 이효석, 김유정 문학세계 재조명 활발

1930년대는 우리 문학사에서 황금기로 손꼽힌다. 일제의 압제에도 불구하고 문인들은 그 어느 시기보다 풍성한 작품들을 쏟아냈다. 또 이 시기는 다양한 창작방법론이 등장. 후세 연구자들을 즐겁게(?)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양한 창작방법론과 이에 따른 풍성한 작품생산은 자연히 걸출한 작가들을 문학사 위에 쏘아 올렸다. 도출신의 대표적 소설가로 손꼽히는 이태준(1904∼?), 이효석(1907∼42), 김유정(1908∼37)은 이때 떠오른 별무리였다.

철원이 고향인 상허 이태준은 그 동안 강원문학사에서 거의 제외 돼 왔었다. '시에는 지용, 소설에는 상허', '순수문학의 기수', '김동인·현진건의 뒤를 이은 한국단편소설의 완성자' 등의 극찬은 월북 작가라는 철창 속에 갇혀 있었다.

해금 이후 학계의 노력으로 조금씩 되살아나던 그의 생애와 문학세계가 최근 본격 재조명되면서 김유정·이효석과 함께 강원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우뚝 서게 됐다.

소장연구자들이 모인 상허 연구회가 그 동안의 연구두께를 보여주는 「이태준 문학연구」(깊은 샘)를 출간, 학술적 재조명 작업에 불을 붙인 이후, 모교인 휘문 고등학교(당시 휘문고보)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 잊혀진 명예와 생애도 재조명의 불을 밝혔다.

명예졸업장 수여식 이후, 이태준을 대신해 졸업장을 받은 그의 유일한 혈육 이동진씨(7촌 조카. 재중철원군민회장)는 상허 문학회와 함께 고향 철원에 문학 비를 건립하기로 결정, '어릴 때부터 존경하던 아저씨' 이태준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한을 풀기로 했다.

현재의 추모열이 계속된다면 오는 11월 4일 이태준 탄생 90주년 기념일은 그의 문학사적 위상이 제대로 자리 매김 되는 소중한 날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평창 출신의 이효석은 이태준, 김유정에 비해 비교적 따뜻한 조명을 받아왔다. 문학세계에 대한 조명도 활발히 이루어졌고 추모사업 역시 정부주도로 진행돼 '효석 공원'이 고향 평창에 조성됐다.

그 동안의 학문적 성과는 지난 1992년 서울대 이상옥 교수가「이효석-문학과 생애」(민음사)를 펴냄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작품론이 먼저 나오고 평전이 뒤에 나오는 독특한 구성방식을 취한 이 연구서는 기존의 성과들을 대부분 수렴하면서도 이효석 고유의 개성, 생리적 욕구 등을 면밀히 추적, 이효석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또 지난해 연차 사업으로 완성된 '효석 공원'도 '평창하면 이효석'을 떠올릴 수 있도록 성의 있게 꾸며졌다는 호평을 받음으로써 누구보다도 행복한 행운을 누리게 됐다.

춘천 출신의 김유정은 '3월 문화의 인물' 선정을 계기로 문학세계 조명 및 추모사업이 새 궤도에 진입하게 됐다.

이태준, 이효석과 달리 도내 연구자들에 의해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됐다는 점에서, 그리고 김유정 기념사업회라는 민간주도의 추모사업회에 의해 20여 년이 넘게 꾸준히 추모사업이 지속돼 왔다는 점에서 두 작가와 대비되는 행운을 누린 작가였다.

현재 김유정 기념사업회(이사장·김형배 강원일보 사장)가 추진하고 있는 '문학의 달' 추모사업은 총 7가지.

매년 열려오던 추모제가 올해는 전국 규모로 확대돼 기일인 3월 29일 고향인 춘천군 신동면 증리 기적비 앞에서 열리며 밤에는 역시 매년 열려오던 '추모문학의 밤'이 예년보다 다채롭게 펼쳐진다.

또 김유정의 작품「봄·봄」이 무대에 오르며(3월 20일) 중·고.·대학생 및 일반을 대상으로 한 문예작품 공모가 대대적으로 실시된다.

이미 공고가 나간 문예작품 공모는 3월 15일 마감하며, 시상식은 3월 29일 문학의 밤 행사시 갖는다.

또 김유정 연구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고향마을에 각종 표지석, 안내판을 설치하는 유적지 정비사업이 대대적으로 실시되며,「김유정전집 증보판」이 발간돼 추모제 때 봉정된다.

김유정을 추모하는 등산 겸 유적지 순례도 계획돼 있다.

3월 27일 김유정 문학의 터 조성위원회 주관으로 열리는 유적지 순례는 김유정의 작품 배경인 금병산 일대가 코스.

이외에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가 '김유정문학의 재조명'이란 주제로 대규모 학술연구발표회를, 한국문인협회가 김유정문학을 주제로 봄철 세미나(3월 29일)를 갖는다.

3월 25일 한림대에서 열리는 연구발표회는 김윤식(서울대), 전상국(강원대), 홍정선(인하대), 전신재(한림대) 교수 등이 발표를, 서준섭(강원대),정덕준(한림대), 유인순(강원대), 김철(교원대) 교수가 토론을 각각 맡게 된다. 발표원고 및 토론 내용은 김유정연구사, 기존의 우수연구논문 등과 함께 묶여져 오는 10월께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30년대 한국문학사의 문을 활짝 연 이들 세 작가는 90년대 들어 고향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

미술

강원 미술문화의 뿌리와 자부심 확인하고 되찾는 「3인전」

「40년만의 재회전」, 2월 16일부터 3월 15일까지 서울서남미술관에서 열리는 변희천, 김종하, 이철이 화백의 3인 전에 붙여진 이부제는 강원미술사를 환하게 비춘 등불이 됐다.

양화도입기의 선구자이자 50년대 화단의 주역으로 근대미술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던 이들은 강원 미술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나 그 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왔었다.

인제가 고향인 변희천씨(86·춘천 거주)와 횡성이 고향인 고(故)이철이씨는 춘천고보 동창으로 김종하씨는 일제말기 춘천고보에서 교편을 잡은 인연으로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사이, 이들은 1954년 6월 화신 백화점 화신 화랑에서 3인 전을 열고 당시만 해도 생소하기만 했던 추상미술을 국내에 본격 소개. 새로운 조형어법을 제시했다. 당시 변희천, 김종하씨는 춘천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고 이철이씨는 서울에서 활동 중이었다.

춘천을 연고로 만났던 이들은 그후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국전외면, 상업화 거부라는 외곬작가로서의 공통점을 보였다.

현재 강원화단의 산증인으로 춘천에서 투병중인 변희천씨는 '백우회'라는 단체를 조직, 항일미술 운동을 주도했으며, 해방 후에는 한국의 '바우하우스 운동'이라 일컫는 '신 조형파'를 조직, 종합적 조형이념을 표방하는 운동을 펼쳤다.

변씨는 전시를 기념해 가진 인터뷰에서 춘천고보 동문인 한상인, 이철이, 이창근이 활동적으로 춘천미술계를 이끌어 갔다고 회고 한 뒤 "이철이는 천부의 재질에다 엄청난 노력을 했다. 조금 더 살았더라면 대가가 됐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했다. 또 당시 나이가 조금 어렸던 고 박수근 화백이 이 그룹에 들려고 애썼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추모전이 열려 주목을 끌었던 고 이철이 화백은 50년대 이후 우수가 짙은 서정적 추상미술작품을 남겼던 작가로 최근 양구 출신의 박수근과 함께 강원이 낳은 대표적 화가로 추모되고 있다.

세 사람 막내격인 김종하씨는 1957년 도불 후 국제적 예술감각의 새로운 화면 탐구에 몰두, 시정 어린 초현실주의 화풍을 선보여왔다.

이번 기획에 참여했던 강원대 유병훈 교수는 "선구적인 세분의 업적을 통해 강원도 미술문화의 뿌리와 자부심을 확인하고 되살려야 한다"며 혈맥찾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학·미술 부문에서 점화된 혈맥찾기 작업은 타 분야에도 확산될 조짐이어서 강원 문화계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