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르뽀

태국 아카족의 신년축제




황루시 / 관동대 교수

태국 북부지역 치앙라이 근처 밀집해 사는 소수민족

토요일 밤 열두시 반, 막 아버지 제사를 모셨는데 방콕에서 전화가 왔다. 태국의 소수민족인 아카족의 신년축제가 사흘 뒤에 시작하니 관심있으면 오라는 것이었다. 일요일은 여행사가 문을 닫아 비행기표도 살 수 없는데 이처럼 갑작스레 연락을 하면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민속답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벌어지는 현장에 직접 가서 참여, 관찰하는 일이다. 마침 연말인지라 친구들과 짜놓았던 모든 화려한 계획을 취소하고 어찌어찌 표를 구해 1993년 12월 21일 화요일 아침 비행기로 방콕에 갈 수가 있었다. 공항에서 곧장 버스터미널로 직행, 태국 북쪽 끝인 치앙라이행 버스를 타고 밤새 열한 시간을 달려 도착하니 새벽 4시 반. 아직 어둠이 깔린 터미널은 횡덩그레한데 우연히 눈인사를 한 프랑스인이 커피나 한잔 마시면서 계획을 세우자고 다가온다.

아메드라는 이 남자는 자신이 역사선생이자 회교도란다. 마흔살이라는데 이미 지구를 한바퀴 이상 돌아다닌 여행꾼이었다. 컵에 절반이 넘도록 연유를 들이부어 진저리치게 달디단 커피를 마시면서 만 하루도 못되어 이런 이국땅에 더군다나 낯선 서양남자와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신기해하며 어서 날이 밝아 동료가 이야기해준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가기만 기다린다.

태국 북부지역의 고산지대에는 아주 오래전 중국이나 티벳에서 남하한 소수 민족들이 살고 있다. ꉷ(메오), 카렌, 라후, 리수, 미엔(야오), 아카족이 그들인데 이중 라후는 그 옛날 고구려의 유민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아 우리나라에서도 여러번 취재한 적이 있었다. 말의 순서나 단어가 유사한 것이 있고 색동옷을 입으며 실뜨기를 하고 아이들의 놀이도 비슷하다 하여 흥미를 유발시켰으나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아카 역시 마을 입구 문에 세워놓는 남녀 신상이 장승과 비교된다며 화제가 되었었다. 하지만 문화는 인간의 마음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어서 어느 문화끼리도 서로 공통되는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게다가 며칠 동안의 답사로 그런 중요한 문제를 알아낼 야심을 갖는다는 것은 너무 엄청나 나는 단지 현장을 볼 수 있는 아카족의 신년의례만을 집중적으로 조사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민족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인 아카족은 이곳 치앙라이에서 가까운 지역에 밀집해 거주한다. 아카족은 다시 우로 아카, 로미 아카, 파미 아카 등 셋으로 나뉘는데 머리장식이며 옷이 조금씩 다르다. 아카족은 중국의 남쪽 운남성에서 상당히 오래 전에 남하한 소수민족으로 미얀마의 쉔주에 약 20만명이 살고 있다. 하지만 1990년 초 현재 태국에는 2만 8천명 정도가 산다. 이들은 모두 19세기 중반쯤 미얀마에서 집단적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친절한 아메드의 도움으로 마침내 약속한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갈 수 있었다. 코로이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이자 우리 일행의 가이드인 카신은 중국인으로 외모도 태국인과는 판이한데 중국말은 전혀 못한다. 함께 아침을 먹고는 사진작가 두 명의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우로 아카족의 마을 쎈뽩런 까오를 향했다. 시내를 벗어나는 데 한시간, 그후 다시 한시간 이상 울퉁불퉁한 붉은 흙길을 따라 줄곧 산을 올라간다. 큰 나무는 별로 없고 야산이지만 계속 올라가는 길은 미쓰비시 트럭에게도 힘겹다. 비 한번만 내리면 꼼짝없이 진흙탕이 될 길은 그러나 지금은 몹시 건조하여 엄청나게 먼지를 낸다. 갑자기 시야가 트이면서 저 아래 누런 초가지붕들이 보였다. 과묵한 카신이 바로 쎈뽩런 까오라고 말해준다. 마을은 산아래를 깎아 형성되어 있어 한눈에 들어오는데 고즈넉하니 예뻤다. 차에서 내리니 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이 먼저 쫓아나오고 이어 미리 와있던 일행이 뛰어나와 나를 반긴다. 시간은 정오, 서울을 떠난 지 꼭 26시간 만이었다.

축제 첫날은 제사 사흘째의 그네타기는 여자들의 축제

주인여자 아오는 아들과 딸을 둔 28세의 살림꾼인데 나중에 보니 이 마을 최고의 미인이었다. 더러 서양사람들이 전통의상이나 민예품을 사러 오기도 하여 아오는 약간의 영어를 알아들었다. 아는 단어가 한 스무 개나 될까 싶었지만 급할 때는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이곳은 트랙킹 코스가 아니어서 교통이 편한 데 비해서는 관광객에 의한 오염이 적었다. 아오의 옆집에는 친정어머니(아비야, 54)가 살고 있었다. 은장식이 거창한 높은 모자에 짧은 치마인 아카족 의상은 노인에게 썩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지만 늘 이 옷을 입고 생활하는 아비야는 가장 순수한 아카 전통문화의 전승자여서 우리의 중요한 제보자가 되었다.

아카족은 일년에 두 번 신년의례를 치룬다. 첫째는 여자들의 신년의례로 흔히 그네의례라고 알려져있다. 양력으로 8월 말경인데 나흘 동안 계속된다. 이 축제기간 동안 주민들은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 한두 달 전부터 여자들은 도시에 나가 옷을 장식하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사온다. 축제 때 입을 옷이나 머리에 장식할 것을 직접 만들기 때문이다. 특별히 아카 여인들은 뛰어난 수솜씨를 자랑한다. 그들은 자신과 가족의 옷에 화려하면서 품위 있는 수를 놓아 아름다운 의상을 만든다. 그리고는 물들인 닭털과 은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축제를 맞이하는 것이다.

축제의 첫날은 제물을 장만하여 조상에게 제사지낸다. 이튿날에는 닭을 잡아 다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사흘되는 날 비로소 축제의 핵심인 그네를 탄다. 이때 각 가정에서는 또 한 마리의 닭을 바친다.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장 전망좋은 곳에 그네는 세워진다. 그네는 주민들이 다함께 참여하여 만드는데 먼저 작년에 세웠던 그네를 해체한다. 그네는 반드시 같은 자리에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어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오고 땅을 판다. 네 그루의 나무를 뿌리채 뽑아 둘씩 엇갈리게 박은 후 위에 가로로 그네를 맬 나무를 고정시키고 다시 그 나무에 디딤판을 단 밧줄을 매면 그네는 완성된다. 그네는 마을의 제사장이며 대표인 쥬마가 제일 먼저 뛴다. 그리고는 모든 여자들이 저녁 늦도록 그네를 뛰는 것이다. 나흘째 되는 날 다시 마지막으로 쥬마가 그네를 뛰면 여자들의 신년축제는 끝난다. 그네는 일년 내내 그 자리에 있지만 아무도 축제기간 이외에는 그네를 뛰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들이 중심이 되는 이 축제기간 동안 모든 여자들은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전통의상을 입고 즐기는 것이다.

남자들 신년의례는 찹쌀떡과 닭으로 차리는 제사로 시작

두 번째로 이제 내가 관찰한 남자들의 신년의례가 있다. 남자들의 신년의례는 아카말로 '가텅파으'라고 하는데 '모두 함께 새해를'이란 의미라고 한다. '가텅파으'는 추수가 끝난 후 있어 그 시기가 양력으로는 대개 12월 말경이 된다. 아카족은 조상의 도움으로 풍년이 든다고 믿기 때문에 조상에게 감사하는 것이 이 축제의 가장 큰 목적이다. 역시 나흘간 계속되는데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마을 밖을 나갈 수 없고 또한 일을 하지 않는다. 첫날은 찹쌀떡을 만들고 야채요리와 닭을 한 마리 잡아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둘째날은 팽이를 만들어 가지고 놀고 남자들이 요즈음은 좀체 입지 않는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추면서 즐긴다. 셋째날은 돼지를 잡아 신에게 바치고 사람들도 먹고 마신다. 마지막 날은 역시 일을 안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즐겁게 논다. 이 날이 지나면 닷새째 되는 날이 바로 신년의 시작이라고 한다.

운이 좋게도 내가 도착한 날이 바로 축제의 첫날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곧 아비야 집에서 찹쌀을 찌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진을 한 장 찍고 피곤하여 차를 마시고 있는데 아비야가 머리에 무언가를 이고 지나간다. 황급히 따라가보니 조금 떨어진 이웃집에서 떡방아 찧기가 한창이다. 집집마다 찐 찹쌀을 가져오면 그것을 찧어 인절미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신년의례의 시작이었다. 조상제사를 모시는데 찹살떡이 가장 중요한 제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찐 찹쌀을 가져와 나무방아에 넣고 찧는다. 떡이 다 찧어지면 채반에 담는데 대나무 줄기로 방아공이에 묻은 떡을 깨끗이 닦아 내는 모습이 재미있다. 떡에는 들깨를 묻혀 고소한 맛을 낸다.

떡을 찧어 집에 돌아온 아비야는 곧 닭을 한마리 잡기 시작했다. 약병아리나 될까 싶은 작은 닭을 잡아 두 발과 날개를 떼어낸 후 불 위에 그슬린다. 그리고는 털을 뽑고 물에 적셔서 깨끗이 씻은 후 끓는 물에 익힌다. 떡과 함께 닭 역시 중요한 제물이다. 이제 아비야는 제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제상은 '호제'라고 하는 일종의 조상신 기둥 앞에 차려졌다. 평소 이 기둥 아래에는 술과 누룩, 쌀, 물이 표주박과 함께 바쳐진다.

아비야는 가로 세로가 각각 한 40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채반에 잘게 다진 닭요리, 쌀밥 약간, 찹쌀떡, 술, 차를 놓고 그 앞에는 지름이 15세티미터쯤 될 장난감 같은 의자를 하나 놓는다. 이 의자에 조상님들이 앉아서 흠향을 하신다는 것이다. 상을 다 차린 아비야는 곤란해하며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우리를 쳐다본다. 카신을 불러 모두를 잠시 나가 있게 하더니 무언가 빈 눈치이다. 뻔히 알지만 그렇다고 무리하여 조사를 할 수는 없다. 우리가 다시 들어가니 이미 가족이 모두 둘러앉아 음복을 하고 있다. 아비야는 좀 미안해하며 우리에게도 떡을 한 조각씩 준다. 이렇게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아피로'라고 부른다. 음복이 끝난 후에 남은 제물은 통 안에 넣어 앞으로 닷새동안 보관한다. 그 동안은 언제든지 조상님이 드시게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신령에게서 마을 지키기 위해 문 양옆에 남녀신상 세워

이튿날은 한가했다. 우리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생활을 관찰하고 그 유명한 아카문과 남녀신상의 사진을 찍었다. 쎈뽩런 까오의 아카문은 옛날 차가 다니기 전의 마을 입구와 정글로 통하는 곳, 두 군데에 있었다. 먼저 마을 입구의 아카문을 갔는데 다섯 개의 문이 약간의 사이를 두고 세워져 있다. 해마다 문을 세우면서 전의 문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오래된 문은 기둥만 남아 있고 가장 최근의 문과 그 전해의 문은 완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로콩'이라고 불리우는 아카문은 높이와 넓이가 약 4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문 위에는 각종 동물과 새, 헬리콥터, 심지어 미군의 M-16총까지 만들어 세웠다. 이는 모두 잡귀를 몰아내는 신통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 아래에는 남녀 신상을 두 개씩 만들어 서로 마주보게 양쪽에 세워 놓았다. 이 신상은 '로콩아다', '로콩아마'라고 부르는데 '아다'는 남자이고 '아마'는 여자이다. 역시 해마다 만들기 때문에 다양한 모습의 신상들이 행여 나쁜 액이 마을에 들어올까 마을 밖을 응시하고 있다. 그 모습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 우리나라의 장승과 비슷하다. 신상 옆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바구니에 담아 놓아두었다는데 이미 썩었는지 우리는 볼 수가 없었다. 아카문과 남녀 신상, 문 위에 세워두는 신상들에는 모두 붉은 칠을 한다.

아카문은 신령들이 사는 정글과 주민들이 사는 마을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옛날 아카 사람들은 신령들과 함께 살았다. 밤에는 신령들이 다니고 낮에는 사람들이 활동하여 사이가 좋았는데 신령들이 사람의 달걀을 훔치면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신령의 오이를 훔치게 되고 서로를 비난하여 평화를 깨지고 만다. 이로써 사람들은 정글에 사는 신령들을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문을 세우고 그 양옆에 남녀 신상을 세워 지키게 했다는 것이다.

아카문이나 신상은 아무도 만질 수 없는 신성한 것이다. 그래서 문에는 만지지 말라는 금기 표시가 붙어 있다. 만일 만지게 되면 반드시 쥬마는 돼지를 잡아 신의 노여움을 푸는 의식을 행한다. 아카문을 세우는 시기는 여자들의 신년의례 13일 전이라고 한다. 이때 쥬마는 조상에게 쌀죽, 술, 물, 생강즙, 계란, 쌀 등의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먼저 치룬다. 문을 세우는 일은 매우 경건한 것이어서 사람들은 함부로 옷을 벗거나 떠들 수 없다. 만약 마을에 질병이 돌거나 불이 나거나 혹은 흉작이 들면 쥬마의 결정 하에 아카문의 위치를 바꾸기도 한다.

아카문에서 정글 쪽으로는 화살처럼 깎은 나뭇가지들이 양쪽에 일렬로 땅 속에 꽂혀 있다. 그리고 아예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큰 화살을 올려놓은 것도 보인다. 이를 또마라고 하고 땅 속의 화살은 베오쪼라고 부른다. 이 화살들은 아카문을 세우기 전에 미리 꽂아놓는다. 의식을 또마 테라고 하는데 사람마다 또마를 하나씩 들고 집집마다 돌면서 잡귀를 몰아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베오쪼를 가지고 집집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나중에는 모든 어른들이 가세하여 큰 또마를 만들어 잡귀를 몰아낸 후 아카문을 지나 정글 쪽에 꽂아둔다는 것이다.

아카사람에게 정글은 삶의 터전이다. 그곳에 사냥감이 있고 화전을 일굴 땅이 있으며 여러 가지 생활에 필요한 열매가 있다. 하지만 정글은 또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언제 뱀에 물릴지 모르고 짐승의 해를 입을지 알 수 없으며 또한 독이 있는 풀에 해를 당할지 모른다. 따라서 그들은 정글로부터 필요한 것은 얻되 액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조심하는 것이다. 잠깐이라도 정글의 위험을 잊고 있으면 어떤 피해를 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식이 마을과 정글의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를 신성시하는 종교적 심성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지붕에 꽂혀 있는 낫 두 개 액을 위협하는 상징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것은 지붕이었다. 아카의 집은 제법 넓은데 대나무로 벽을 세우고 위에는 초가를 덮는다. 그 초가지붕의 가장 높은 곳에 낫 두 개가 엑스자 모양으로 거꾸로 꽂혀 있는 것이었다. 집으로 들어올지 모르는 액을 위협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생활의 도구가 종교적 상징이 되는 모습이 재미있다. 또 하나 특기할 것은 지지지아이다. 이것은 굵은 대나무를 세우고 그 위에 벼이삭과 달걀을 넣은 짚바구니를 올려놓은 것이다. 위는 짚으로 덮었다. 모든 집의 뜰에서 볼 수 있는데 쌀의 영(靈)을 모신 것이라고 한다.

그네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터에 있었다. 그리고 그 공터는 국민학교 운동장이기도 했다. 우리가 갔을 때 약 20년 되었다는 학교는 텅 비어 있었다. 정식으로 말하면 방학도 공휴일도 아니다. 단지 아카족의 축제기간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오질 않아서 수업을 하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학생은 182명인데 이웃의 두 마을을 포함하여 세 마을에서 학생들이 온다. 4명의 교사 중 셋이 태국인이고 한 사람은 리수인이다. 교사들이 이들 소수민족에게 태국말을 가르치고 중앙문화를 심어줌으로써 일종의 동화정책을 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상당수의 성년 아카인들은 아직 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들은 평소에 아카말을 쓰고 있고 장에 가서 물건을 사고 팔 때 외에는 태국말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이드인 카신이 아카말을 모르기 때문에 통역 문제로 골치를 썩으며 답사를 하고 있는데 우연히 이들로부터 민예품을 사서 관광객에게 파는 것을 생업으로 하면서 한편 이곳 문화를 연구하는 미국인 짐(Jim Goodman)을 만났다. 그로부터 쎈뽩런 까오의 역사를 들은 것은 행운이었다. 이 마을은 약 30년 전에 도이퉁이란 곳에서 이주했다는 것이었다. 워낙 이들은 화전을 일구기 때문에 10년 정도마다 마을을 옮겨다닌다. 그러던 것이 의료기술이 발달하여 인구가 급증하고 마을이 과포화상태가 되자 생활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아편으로 인해 범죄가 늘어나자 당시 마을의 추장이었던 쥬마는 주민들을 데리고 이 마을로 옮겨왔다. 그는 마을의 자리를 고르면서 아편이 재배되지 않는 약간 낮은 지형을 택했다. 그리하여 이 마을은 범죄가 없는 모범적인 곳이 되었고 태국정부는 그의 공로를 치하하여 쎈뽩런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이는 발전하는 사람(Sir Progress)이라는 의미인데 그가 죽자 주민들이 마을의 이름을 삼아 기념하고 있다. 그후 마을이 커지면서 옆에 또 한 마을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원래 있던 마을은 옛 쎈뽩런이란 뜻으로 뒤에 까오가 붙고 새 마을은 쎈뽩런 마이가 되었다. 현재 쎈뽩런 까오에는 108가구, 613명이 산다.

한낮에 아이들이 팽이치는 것을 구경했다. 아침에 어른들이 팽이를 깎더니 아이들은 셋만 모이면 팽이를 돌린다. 우리와 팽이의 모양이며 놀이방식이 똑같다. 그러나 가장 똑같은 것은 아이들의 열중해 있는 얼굴 표정이었다. 저녁이 되자 상을 물린 아오가 옷을 입기 시작했다. 오늘 밤 그네 옆 공터에서 춤판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촛불 아래 아오가 공들여 옷입는 모습을 지켜본다. 손수 만들고 손수 수놓고 손수 물들였다는 옷을 입는 아오의 얼굴이 진지하여 더욱 곱다. 공터에 나가니 장작불을 피워놓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한옆에서 권투시합이 한창이다. 국민학교에서 주관하는 아카식 복싱이라는데 처음에 장난처럼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본격적인 싸움으로 변한다. 한번 주먹이 오갈 때마다 링 주위에 앉아 있는 꼬마들의 고함이 정작 시합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흥분되어 있다.

전통의상 입어야만 참가하는 둘째날 저녁의 춤판

춤은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다. 처음으로 남자들의 의상을 볼 수 있었는데 가슴에 은장신구을 달고 머리에 크고 둥근 모자를 쓴 모습이 아주 멋있다. 하지만 남자들의 신년의례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아이들이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머리장식을 하고 짧은 치마를 입은 채 춤판으로 모여들었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이 예쁘다는 사실을 인식하여 쑥스럽지만 자랑스러워하는 내색이 역력했다. 더군다나 딸을 예쁘게 치장시킨 어머니는 허리를 돌리며 제법 요염하게 춤추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이를 업고 모여들었다. 춤은 엄격한 격식을 갖추어 추어졌다. 먼저 어른들이 춤추고 나면 똑같은 춤을 아이들이 추고 이어서 대나무 춤이 추어졌다. 1미터가 넘는 굵은 대나무를 여럿이 함께 통나무 위로 내리치면서 춤추는 것을 '베청뚜어'라고 하는데 이 대나무춤은 제의가 있을 때만 춘다고 한다. 악기는 젤레, 텅, 뵐레 등이다. 젤레는 우리의 제금과 비슷하고 텅은 장고처럼 긴 북이며 뵐레는 작은 징이다. 동그랗게 모여 손잡고 돌아가 다리를 굽히고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고 발을 앞으로 내밀고 다시 돌고 발을 엇갈려 내는 등 다양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춤이 이어진다. 선창자가 노래를 하면 모두 따라 하면서 춤을 추는데 서로 쳐다보고 웃고 둘러선 구경꾼들도 덩달아 웃으며 훈훈한 즐거움이 밤하늘에 가득하다.

노래가사는 옛날 아카말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어 지금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내용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상당수 춤의 가사는 여자들 의상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신화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옛날 어느 아카 남자가 정글로 사냥을 나갔다. 정글에서 그는 아름다운 여신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아무 것도 입지 않아서 남자는 어깨에 메었던 가방을 잘라 치마를 해 입히고 데려왔다. 그것이 지금까지 아카 여자들의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오게 짧은 이유이다. 그는 가족의 허락을 얻어 여신과 결혼했다. 하지만 수많은 다른 여신들과 구분하기 위해 머리에 바가지를 씌우고 머리에는 닭털을 꽂았다.

지금도 우로아카족의 여자 머리장식을 보면 마치 호롱바가지를 쓴 것 같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여신을 데려가자 정글의 신들은 화가 났다. 기회만 있으면 마을로 와서 여신을 데려가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일밤 젊은 남녀가 어울려 춤을 추어 신들이 여신을 데려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춤을 추는 것은 한계가 있어 아카문을 만들어 신들이 들어오는 것을 통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춤은 밤이 늦어 끝났다. 숙소에 들어와 누웠는데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는다. 작지만 그러나 분명한 리듬으로 어디선가 들려오는 저 대나무 치는 소리는 지금도 축제가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싸늘한 밤공기를 뚫고 소리를 쫓아 가본다. 제법 산 아래에 있는 집에서 희미한 불빛이 비치고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채 열명이 안되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마당에서 대나무를 들고 밤새도록 춤을 추다니 정말 젊음은 말릴 수가 없구나 생각하며 나는 돌아왔다.

그 춤의 의미를 안 것은 다음날이었다. 바로 돼지를 잡는 날이다. 아이들이 밤새워 춤을 춘 곳이 바로 마을의 신년축제를 위해 돼지를 잡는 집이었던 것이다. 즉 춤은 젊은이들의 유흥이 아니라 종교적이고 공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밤잠을 설친 나는 정작 그 집에서 돼지잡는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돼지는 마을에서 여러 마리를 잡는데 신에게 바치기 위한 것과 마을 주민들이 먹기 위한 것이 있다. 우리는 먹기 위한 돼지 잡는 것을 보게 되었다. 상당히 큰 돼지 한 마리를 스무 집 정도가 나누는 것 같았다. 일은 모두 함께 하고 고기의 부위만이 아니라 피와 내장까지 각자 신청하여 돈을 낸 몫에 따라 정확히 분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돼지고기 볶음으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다시 악기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제법 넓은 집 마당에서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술에 취한 채 춤을 추고 있다. 주인은 위스키 병을 들고 아무에게나 술을 먹인다. 이어 춤패들은 집안에 들어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데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시끌벅적하여 잡귀를 모는 일종의 지신밟기 같은 인상을 주었다. 싫도록 춤을 춘 일행은 그 집을 나와 다음 집으로 갔다. 맨 앞에는 약간의 음식과 술을 든 젊은 부부가 간다. 이들은 아침에 돼지를 잡아 신년의례로 바친, 어제 밤새도록 춤을 추었던 그 집 주인이다. 그리고 지금 돌고 있는 집들은 바로 악기를 빌려준 집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세집에서 악기를 빌어 밤새도록 그집 마당에서 대나무 춤을 추었는데 지금 그 답례를 하기 위해 주인집은 음식을 준비하고 춤패들은 춤을 추며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 마을의 지주인 쥬마 집에서 마을 규칙 정해

오후가 되었다. 쥬마 집에 주민들이 모인다고 하여 갔다. 종교적이 면에서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정신적 지주이며 리더인 쥬마는 뜻밖에 37세의 젊은이였다. 이름은 아뽀인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12년 전에 쥬마가 되었다고 한다. 쥬마는 대여섯 명의 쥬야를 조수로 두고 마을이 전통적인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마련된 종교적, 관습적 일을 맡아보는데 쥬야 역시 세습되는 경향이 있다. 신년의례에서 쥬마가 하는 일은 사흘째 되는 날 각 집의 어른들을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하고 마을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이른 아침 쥬마는 신년의례를 위해 돼지를 잡은 집에 가서 고기를 함께 음복하고 행운을 빌어준 후 돌아왔다. 그리고는 오후에 올 손님들을 위해 음식 장만을 하는 중이다. 쥬마의 집에서 함께 식사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일인당 약 10바트(320원정도)를 낸다. 일종의 식사값인 셈이다. 우리는 일행이 넷이서 1백바트를 냈다.

이렇게 돈을 낸 명세서는 해마다 대나무 한 마디를 잘라 기록하고 그것을 쥬마가 보관해왔다. 이때 대나무로 만든 통에 쌀과 동전도 함께 보관했는데 요즈음은 플라스틱 통을 쓰고 돈을 낸 명세서도 종이에 적어 넣어둔다고 한다. 이를 '마사으보로'라고 한다. 식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앞으로 일년간 통용될 중요 곡물의 값을 정한다. 쌀이나 옥수수 등의 값을 결정하여 도시에 팔 때 누구든 더 받거나 덜 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2년 전부터는 자율에 맡긴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이기 때문이란다.

마을에는 쥬마 외에 행정적인 일을 맡아보는 이장이 있다. 이장은 정부에서 봉급을 받으면서 일한다. 올해 34세인 아피는 이장이 된지 2년 되었다. 치앙마이의 불교학교에서 2년간 공부한 것이 그가 정부의 인정을 받게 한 이유인 것 같았다.

아피에 의하면 이 마을의 가구당 소득이 일년에 약 5천바트라고한다. 돼지 한 마리가 4백바트이니 가난의 정도를 짐작할 만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 옥수수, 생강, 토마토, 땅콩 등이다. 아카족은 상당히 고된 일을 하며 생활을 꾸려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년에 두 번 나흘씩을 제외하고는 내내 들에 나가 일을 해야 한다. 특히 여자들의 노동은 화전을 일구는 농사일을 거의 전담하고 있어 강도가 높다. 합해서 여드레에 지나지 않는 짧은 축제 때에만 그들은 피곤한 몸과 마음을 쉴 수가 있다.

쥬마 집에서 우리는 돼지고기를 중심으로 요리한 여러 가지 음식을 먹고 돌아왔다. 축제의 마지막날은 별 행사 없이 그냥 남은 음식을 먹고 쉰다고 하여 답사를 마치고 다음날 일찍 돌아왔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집단적인 행사가 별로 없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의 설날도 마찬가지다. 설날이란 조상에게 감사하고 모든 것을 삼가면서 공동체 삶의 기준을 정하는 신성한 시간인 것이다. 축제가 끝나면 그들은 다시 일상의 노동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축제의 신명은 그들 삶의 활력소가 되어 뜨거운 태양 아래 종일 엎드려 있을 힘을 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아카 사람들이 춤판을 열 때 부르는 노래를 하나 소개한다.

'아들르쳐에 아들르쳐에 마쳐데마 마쳐마 싸써데마 후델레 응 쵸을레 아들르쳐에 아들르쳐에'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모두 모여 함께 춤추자 모두 모여 함께 춤추자 행복한 춤을 추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자 달과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이 밤에 모두 모여 함께 춤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