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민예총 창립, 새로운 지역문화예술의 전기 보여
허영선 / 제민일보 문화부 차장
초감굿, 걸궁으로 창립의 성과 거두길 기원
제주지역 문화예술계의 판형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전국에서는 세 번째로 사단법인 한국민족예술인 총연합회 제주도지회가 창립됐다. 창립 전부터 회원확보, 사무실 임대 등 산적한 문제들을 타개하며 출범한 민예총의 탄생은 지역문화예술 활동에 활력이 되고 있다.
예술활동을 통해 주체적 제주지역의 건강한 문화예술을 창출하고 지역문화예술정책에 책임있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지역민의 삶과 도민 정서에 부합한 예술운동을 꽃피우는 데 주력한다는 의지를 안고 공식 출범한 제주민예총에 거는 기대는 크다.
지난 2월 26일 오후 2시 제주도 노인복지회관에서 열린 이날 창립대회는 다른 문화예술단체의 창립과는 달리 독특한 양식으로 열렸다. 민예총제주지회의 창립의 성과를 거두길 기원하는 뜻에서의 초감굿, 걸궁이 푸근하게 펼쳐졌던 것.
이날 창립대회에서는 지난해 12월말 발기하면서 제주 민예총,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굿연구가이며 시인인 문무병씨가 대표로, 부지회장에는 화가 강요배씨가 뽑혔고 감사에 현안식, 고길천씨, 기획정책실장에 김수열씨, 편집실장 김동수씨, 사무처장 김상철씨가 선임됐다.
창립선언문에서 제주민예총은 "제주는 예부터 외세와 중앙권력의 이중적 수탈로 인한 수난의 역사였으며 그러한 수난에 맞서 의연하게 섬공동체를 이끌어온 일어섬과 극복의 역사를 간직한 삶의 터전이라고 전제, 반외세 자주통일의 꿈을 이루려했던 4.3 민중항쟁의 정신을 예술창작과 실천속에서 보듬어안아 역사의 연표위에 자랑스럽게 기록되도록 할 것이며 제주 공동체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잘못된 대중문화와 무분별한 외래문화 중앙중심의 문화에서 벗어나 제주도민이 함께 누릴수 있는 건강한 민족문화 지방화시대의 올바른 지역문화 건설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전남민예총 지회장 원동석씨가 참석 "전남과 제주는 서로 비슷한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친근감이 있다" 고 말하고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민족적인 것이므로 민족예술이 진정으로 중앙으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민예총은 주체적 지역문화 예술의 창립, 소비향락적 문화를 지양하고 생산적 민족문화의 창달, 민주적인 조직 운영, 민족예술 창작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 등 이밖에 사회문화단체들과의 공동연대사업을 표방하고 있다.
이같은 의지는 이들이 기획하고 있는 사업계획에서 나타난다. 4. 3 예술제를 매년 개최하는 것과 민족예술 문예아카데미 개설, 제주문화예술연구소 설립, 현행 문예정책 제도에 대한 연구 등 다채로운 사안들과 행사들을 벌일 계획이다.
제주민예총은 문학, 미술, 연극, 음악, 사진, 굿 , 평론위원회등 모두 7개의 장르에 89명의 회원이 가입됐다.
대표 문무병씨는 이날 창립대회에서 진정한 예술은 삶의 방향을 건강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재정적 뒷받침이 마련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지만 아직까지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많은 힘이 되고 있다며 제주의 예총과 민예총은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변증법적인 발전을 이끌어내는 상호보완적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
제주도내 미술계에 새로운 유통구조문화가 형성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탐라미술인협의회(대표 강요배)가 창립 후 그 첫 번째 기획전으로 3월 9일부터 14일까지 세종갤러리에서 연「새봄-작은 그림과의 대화전」이 그것으로 이 그림전은 전시가 시작되자마자 관심을 끌었다.
지금까지 값비싸다는 그림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새롭게 전환시켜 줬다는 점에서 그렇고, 전국적으로 드문 가격분할제를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품들은 투자보다는 감상가치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제주의 소박한 자연풍경을 담은 것들과 삶의 체취를 강하게 풍기는 것들이 주를 이뤘고 주목을 끌었다.
호당 가격을 매김하던 기존 미술품들과는 달리 크기에 제한 없이 작가가 정하는대로 작품 가격이 형성됐다. 회원 20여 명이 창작한 10호 미만의 작품들 60여 점이 선보였는데 15만원의 판화에서 70만원의 회화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작품가도 제시, 눈길을 끌었다.
탐미협은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건강한 대중미술문화에 뿌리박는다는 의미에서 일년 두 차례의 이러한 소품전을 기획할 계획이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작가들은 강요배, 강태봉, 고길천, 고영만, 고민석, 고혁진, 김성환, 김수범, 김중희, 박경훈, 부양식, 송명석, 송순주, 오석훈, 오윤선, 양미경, 양용방, 양철민, 이경재, 이용찬, 정용성, 정윤광, 허순보.
이 작품들은 6일 동안 30점이 판매되는 전례없는 성과를 거뒀다. 미술품 향유층의 확대, 그림에 대한 잠재 수요가 많다는 점이 이 전시회를 치렀던 탐미협의 소감이었다.
제주의 젊은 판화가들이 마련한 판화전이「내일을 위한 제안전」이란 이름으로 3월 3일부터 8일까지 6일간 제주시내 세종갤러리에서 열렸다. 이 전시회에는 오랫동안 이지역 미술계에서 판화미술을 부흥시켜온 고길천씨의 십장생을 비롯 12명의 작품 20여 점이 선보였다. 실크스크린, 동판, 지판 등 다양하게 출품된 이 전시회에는 고동원, 유은자, 현덕자, 현경화, 송순주, 정윤광, 이은혜, 홍진숙, 허순보, 김은숙, 강태봉이 출품했다.
음악
새봄을 맞는 지역음악계도 활기에 넘쳐났다.
제주시립교향악단(지휘 이선문) 제13회 정기연주회가 3월 15일 오후 7시 30분 제주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이날 공연은 지난 2월 26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94교향악 축제 참가 기념을 겸해 열린 것이다.
제주시향은 이날 공연에서 교향악축제 참가곡 무소르그스키의 교향시「민둥산의 하룻밤」과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 5번「종교개혁」을 연주, 객석을 호응을 얻었다.
또 피아니스트 강효정씨와 신요선씨 협연으로 모차르트의「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도 들려줬다.
체코의 대표적 실내악단 '수크 챔버 오케스트라'가 지난 3월 1일 제주도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제주 청중들과 만났다.
이날 공연에서 이들은 리히터의「신포니아 G장조」를 비롯해 스타이크의「교향악적 4중주」, 모차르트의「피아노협주곡 제12번 A장조 쾰른 414」, 드보르작의「세레나데 E장조」를 들려주었다.
이날 공연에는 제주시향, 부산시향, 광주시향과 협연한 바 있고 현재 제주대 강사로 출강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오현숙씨(30)가 협연했다.
수크 챔버 오케스트라는 이날 청중들의 앙코르 요청에 그리그의 「홀베르크 시간 모음곡」을 선사, 박수를 받기도 했다.
국악의 해를 맞아 제주에서는 지난 3월 13일 국악 애호가들의 모임 소리패 '여'와 사물놀이 '개성패'에 의해 94 열림소리굿 한마당이 펼쳐졌다.
소년소녀 배움돕기 일환으로 열린 이날 공연은 현직교사 4명으로 구성된 소리패 '여'와 직장이 서로 다른 동창 5명으로 짜여진 사물놀이 '개성패'가 우리 가락과 우리것을 찾아 알려야 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되 것.
사물놀이 '개성패'의 「비나리」를 시작으로 열린 이날 마당에선 '여'가 「설장고」와「아랫다리 가락」을 '개성패'가 「웃다리 풍물」을 선사했는가 하면 소리패 '여'의 이행운씨가「청성곡」을 단소연주로 들려주었다.
또 남정녀의 구성진 목소리로 제주민요「용천검」과 「신목사가」를 선사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가수 정태춘씨가 우정 출연, 권주가와 다시가의 노래를 불로 굿판을 흥겹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