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예 / 농업박물관

우리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농경문화




조은희 / 시인

언제나 바쁜 발걸음으로 지나다니면서도 '언젠가 한 번 저곳에 들러야지'하고 벼르게 되는 도심 속 몇몇 장소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농업박물관(서울 중구 충정로 1가 25번지)이다.

얼마 전 강원도 산간지방을 여행하다가 멍에를 진 소가 사람과 한몸이 되어서 쟁기질을 하는 것을 보았다. 경운기가 출현하기 전인 1960년대만 하더라도 조금만 도시를 벗어나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고, 최근까지도 비탈진 논이나 밭에서 간간히 볼 수 있었던 이러한 풍경이 불과 얼마 사이에 지켜보는 사람의 눈길을 잡고 놓지 않는 것이 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삶이, 또는 삶의 모습이 농업과는 거리가 멀어졌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동안 우리나라는 식량 문제를 비교적 빠른 기술 발달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하며 해결해 왔다. 그러나 서구의 농법을 뒤쫓은 현대적 농법은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했다. 자연 생태계의 질서를 고려하지 않은 농업기술의 발달은 농수산물 수입 자유화와 더불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이러한 우리 농업의 커다란 위기 상황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일찍부터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의 지속적 농업은 화학 비료와 농약의 투입량을 최대한 줄이면서 환경 오염을 고려하고, 자연과 생태계의 물질 순환 능력을 농업 생산에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일관된 주장을 해왔으며 또한 '농업 생산력의 지속력을 확보하여 해가 되지 않는 식품을 생산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과거의 농업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 지속적 농업이 아니다. 농산품의 생산 능력을 미래에도 영원히 지속시킬 수 있도록 자연의 생태계를 고려한 농업 질서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지속적 농업인 것이다. 우리나라 농업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보다 장기적인 농업 생산력을 확보, 발전시키는 것이며 또한 공익적인 농업의 기능 향상을 통한 지역간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농업의 구조적인 개혁을 위한 세심하고 적극적인 정책이 이루어지기를 학수고대하는 현 시점에서 시민과 가까운 곳에 농업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느끼기에 따라서 다분히 시사적이다.

살면서 문득문득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삶의 뿌리와 깊이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사람에게 이 박물관은 화두를 던져주며,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

순수한 우리나라 농업 분야 전문 박물관

농업박물관은 우리나라 농업과 관련된 유물을 발굴하여 보전하고 한국 농업사와 농업 발전상의 연구 및 자료를 보존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농협중앙회가 1982년부터 5년간의 준비 끝에 개관(1987년 11월 18일)한 농업박물관은 순수한 특정 분야의 박물관이다. 1931년 건축되어 금융조합과 농업은행,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본관으로 사용되어 오던 지상 3층, 지하 1층에서 문을 연 이 박물관은 외국인들에게도 우리나라 농업사와 농민문화, 그 문화를 형성하고 있던 유물을 소개하는 역할도 맡아서 하고 있다.

농업박물관은 의식주 생활과 민속 관련 부문을 제외한 농업 기술, 농사 도구, 곡물, 가축 등 순수 농업 부문의 유물과 표본만을 소장, 진열하여 기존의 민속박물관과는 구별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사분의 일의 규모인 1천42평의 전시 공간에 현재 1천여 점의 유물을 전시(2천2백여 점 소장중)하고 있는 농업박물관은 시대별로 전시실을 구성하여 우리나라 농업이 어떻게 변화, 발전되어 왔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농업사적인 의미에서 박물관의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는 농업박물관의 전시실은 모두 7개실로서 1층 3개실, 2층 3개실, 3층 1개실이 있다.

농업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은 한국 문화의 인류학적인 자료로서 대단히 중요한 족보가 있는 것들이다. 전국 2백만 농민들에 의해서 실제로 그들이 농사짓던 환경에서 사용하던 것들을 기증 받은 만큼 더욱 의미가 증폭된다. 1985년, 농업박물관 설립 안을 확정하고 농업 유물 수집운동을 전개한 결과 농민, 조합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임직원들의 뜨거운 열성으로 1천6백여 점의 농업 유물을 소장하게 됨으로써 순수한 농업박물관으로 면모를 갖추고 개관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농업국가로서 조상 전래의 값진 농경문화 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귀중한 문화 유산은 도시화와 산업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점차 사라져 거센 물결 속으로 점차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를 수집,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의 중요한 과제인 것입니다."

농업박물관이 소장, 전시하고 있는 유물 가운데 1백30여 점을 골라 도록(1988년 10월)을 만들며 당시 농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이 발간사에서 했던 말이다.

'신토불이',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등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농촌을 살리는 길을 모색하고 있는 농업중앙회의 농업박물관. 1층에는 역사실(선사시대실, 삼국시대실, 고려·조선시대실), 2층 특별실에는 농가월령실, 농기구분포실, 협동유적실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현대 농업실이 있던 3층 전시실은 앞으로 특별전시실로 활용할 계획중이다.

1층 선사시대실에는 농업사 연표와 신석기시대의 농업 유물 및 청동기시대의 농업유물, 철기시대의 농업 유물, 화전경작도 등 5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신석기시대에 나타난 반달형 돌칼 등도 볼 수 있다. 또한 화전경작도, 빗살무늬토기, 원시민무늬토기, 탄화미, 탄화조, 농경문 청동기, 쇠호미, 쇠괭이 등을 통해 우리나라 선사시대 농경 생활을 고찰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농업사 연표를 통해서는 각 시대의 농업 정책은 물론, 농업과 관련된 역사를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삼국시대실 역시 50여 점의 유물이 전시중. 고구려시대의 유물과 백제시대, 신라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휴한직파도, 우차도, 각종 쇠연장과독, 고분벽화 등을 통해 삼국시대의 농경생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고려·조선시대실은 우리의 재래 농업 유물 전시실이다. 이곳에서는 소가 밭을 가는 우경 모습과 협동적으로 농사일을 하는 모습, 베 짜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다.

이앙 두레도, 각종 따비와 쟁기, 번지, 써레, 고무래, 곰방매, 남태, 굴레, 갈마, 그네, 옹구 등의 옛부터 사용되어 온 농기구와 고농서 1백여 점 등을 통해 이 시대의 우리나라 농경기술이 상당히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2층은 특별실이다. 농가월령실은 조선 헌종 때 정학유(인조 때 고상안 작이라는 설도 있다)가 지은 농가월령가를 바탕으로 했다. 농가월령가란 농가에서 행할 농사일과 풍속 및 범절을 월별로 읊은 장편 가사이다. 그 내용 중 농사일에 관한 것을 주로 뽑아서 1986년 원로 화가 혜촌 김학수 화백에 의해서 농가월령도가 그려짐으로써 당시의 농경 생활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농가월령도 12점과 농기구, 작물, 가축 등 2백50여 점이 계절별로 구분되어 전시되었다. 용두레, 맞두레, 갈옷, 자새, 무자위, 도롱이, 태와 각종 낫, 망태기, 걸채, 풍구, 밀따리쌀 등은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절구, 디딜방아, 가래, 넉가래, 맷돌, 살포 등 여섯 특선 코너가 마련되어 있는 곳은 농기구 분포실이다. 이 전시 공간에는 농기구 별로 그것을 사용하는 도화와 사진이 함께 진열되어 있어서 농기구 사용법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등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디딜방아와 디딜방아 촉, 매통과 각종 절구, 넉가래의 여러 형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호미와 낫, 긁정이 등을 우리나라의 대형 지도 위에 진열함으로써 쉽게 지역별 농기구의 특징을 알게 했다.

민족 발자취를 통한 바람직한 현대 농촌문화 모색

두레유물실은 우리 민족의 협동된 발자취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실이다. 이 전시실에는 계(契) 유물과 두레 유물 아홉 점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 조상들은 농번기에 서로 협력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하여 두레를 조직하였다. 서로 협력하여 농사일을 끝내고 나면 씨레 씻기, 파접, 꼼백이, 장놀이, 두레먹기 등의 놀이를 했다. 이들이 서로 협력하기 위하여 부락이나 이(里) 단위로 두레를 조직했을 때 쓰이던 농악기인 징과 꽹과리, 북 등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이밖에도 독특한 우리나라의 협동적인 자치 조직인 계의 유물 중 오랜 역사를 지닌 전남 영암의 구림계약(鳩林契約)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옛부터 공동으로 모내기 작업을 할 때 불러온 농요를 작업장면과 함께 시현하여 비디오로 제작, 상영하고 있다.

앞으로 전국에 묻혀 있는 농업 관련 유물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명실상부한 농업사 박물관으로 육성할 계획중인 농업박물관. 과거의 농업 유물과 함께 현대 농업을 연계시킴으로써 미래의 농업 발전에 대한 투시도를 제시하는 역할까지 떠맡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농기구의 현대화는 1960년대에 들면서 시작되었다. 정부는 이 시기에 재해 대책을 위한 양수기와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한 동력 분무기를 도입하여 농촌에 공급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한 가장 중요한 것은 농업은 자연과 가장 가까운 산업이라는 점이다. 자연의 질서를 생각한 농업 정책이야말로 환경 보호는 말할 것도 없고, 진정한 농업의 활성화를 가져다 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대체로 우리 농가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연료를 태우고 남은 재나 가축의 배설물을 썩힌 것, 외양간에서 나온 두엄, 볏짚과 낙엽 등을 태운 퇴비가 비료로 농사에 이용되었다. 가축에 해가 되는 곤충들을 유인하는 불을 밝혀 그것들을 잡기도 했으며 논의 잡초는 호미로 제거했다. 또한 소를 이용하여 밭을 갈았다. 그때에 비해 농약과 비료의 많은 소비를 필수적으로 하는 생산법으로 바뀐 오늘의 농촌은 어떠한가. 우리의 농촌은 자연의 질서가 가지고 있는 물질 순환 능력을 농업 생산에 최대한 활용하여 농업 생산력의 지속성을 확보하고, 안전한 식품을 우리의 식탁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우리의 정신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농경의 유물들

"정부의 산업화 위주 정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기본적인 농경문화가 사라짐으로써 우리들의 의식구조조차 변했습니다. 오늘날 농촌의 총체적인 문제점과 우리의 정신문화를 변화시킨 것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데서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농경문화를 축으로 한 정서, 즉 풍농을 기원하며 함께 즐거움을 나누면서 공동체를 느꼈던 아름다운 정서를 후손들에게 심어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자꾸 갖게 됩니다"

농업박물관의 설립 당시부터 농기구를 수거하는 등의 일에까지 줄곧 관여해 온 한 관계자의 말대로 우리 조상들이 세시풍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던 정서를 과연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정말로 우리에게 값진 문화 유산은 신라시대의 아름다운 금관만이 아니라 불평 없이 똥장군을 지며 묵묵히 살아온 사람들이 이루어 온 바로 오늘의 이 순간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지금까지 약 30여만 명의 관람객이 농업박물관을 다녀갔다. 학교나 단체, 외국인들(특히 일본과 동남아의 같은 문화권에 있는 외국인들이 정착 농업으로서의 한국농경에 관심이 많다)이 관람객의 주류를 이룬다.

현재 농업박물관은 소장중인 고농 서류를 전시하지 못한 채 소장고에 쌓아두고 있는 실정이다. 수집하는 순간 경제적인 가치가 인정되는 민속박물관의 소장품에 비해 농업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비경제성을 말해 주는 한 예가 될 만하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까이 있는 농업박물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뿌리가 자양분을 흡수하고 있는 문화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잊지 않을 때 우리의 먹거리가 하루가 다르게 내몰리는 우리들 식탁문화도 바뀔 것이고, 진정 농촌도 살고 나라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거름을 중요시해왔다. 거름은 자연의 생태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많은 수확을 얻게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농사에 이용하였다. 한 예로, 우리나라 산천에 흩어진 휘고 옹이진 나무 형태를 인위적으로 깎거나 펴지 않고 그대로 농사를 짓는 데 활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휜 나뭇가지는 그대로 소의 멍에가 되어 소등의 곡선에 자연스럽게 얹혀져 조화되었고, 한 가지에서 다시 서너 가지로 뻗은 나뭇가지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거름대나 다른 농기구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조상들의 삶의 모습들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는 우리들이 한번쯤 되새겨 볼 만하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것을 진리로 알고 살았던 그들은 오늘의 우리들에게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현재 농업박물관은 그 동안의 통계를 통해 비교적 관람객들이 적은 일요일에 휴관하고 있다. 편의시설 등 여유 공간이 없어서인지 가족 단위로 찾아오는 관람객들을 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관계자의 말도 부기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