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 제주

제주문화예술계 서서히 내실 다지며 활동선언




허영선 / 제민일보 교육부 차장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면서 제주의 문화예술계는 각 분야별로 조금씩 활동을 재개하는 움직임들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사진계의 분주한 행보가 눈에 띄었고, 뚜렷한 특징은 없으나 음악회 등 우리 것을 무대화한 무용공연 등 이채를 띤 공연들이 잇따랐다.

문학

고향 서귀포 보목리를 떠나지 않고 시작을 하고 있는 중진시인 한기팔씨가 네 번째 시집「풀잎소리 서러운 날」(시와 시학사)을 펴냈다.

간결한 언어와 서정의 세계로 이미지를 처리하고 있는 시인의 이번 시집은 독특한 시어의 미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시집 속에 꿰어진 시편들은 지금까지의 짧고 함축된 언어 감각을 조금은 풀어놓은 듯한 수사적 의미들이 걸리고 있어 달라진 시세계를 엿보게 한다.

이 시집은 1988년 후 발표되었던 작품들 중 70여 편을 골라 묶어놓은 것으로 섬세함과 단단한 서정의 뿌리 속에서 다져진 것들이다. 1부 연가, 2부 먼산 바라보기를 통한 시인 자신의 삶에 대한 조망, 3부에서 시대적 상황 변화에 따른 아픔과 막연한 그리움, 4부에는 이 하늘, 이 땅끝에서의 소외감과 방황의식, 제5부는 삶의 어떤 영토를 확보해 보고자 하는 의미성을 표출하고 있다.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며 제주4.3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던 김창후씨가 첫 소설로 굿과 풍수를 다룬 소설 「선유락」을 펴냈다. 나라의 잔치에서 춤추는 기녀들이 채선을 끌고 배 떠나는 모양을 흉내내며 추는 우리 고유의 군무를 일컫는다는 뜻인 선유락은 신라말 도선국사가 우리 땅을 배의 형국으로 보았다는 데 기인해 배는 우리 땅이고 선유락을 추는 무기가 바로 우리 자신임을 시사한다.

온천개발이란 이름으로 마을 공동체가 붕괴와 자연의 파괴로 진행되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제주 문예비평연구회도 5월로 본격비평연구회보「담론」제2호를 발간했다. 이번 호는 4. 3을 특집 기획으로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는 그간의 4. 3 미술성과들을 되돌아보며 형상화된 것과 작가정신을 살펴보는 김유정의 「제주 4. 3 민중항쟁과 미술」을 비롯 김정숙의 「역사와 영화」, 임정희의 「4. 3과 현기영의 문학」, 장혜련의 「제주 MBC 4. 3 특별기획에 나타난 역사인식의 한계」를 담고 있다.

미술

4월 23일부터 29일까지 제주도 문화진흥원이 기획한 제1회 제주 청년작가전은 제주출신 30대 젊은 작가들을 선정,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회로 관심을 끌었다.

이 전시회는 도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주출신 30대 작가 29명이 참여, 한국화, 서양화, 조각, 응용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보여 주었다.

출품작가는 강부언, 고경희, 고기호, 고길천, 김성찬, 김연숙, 김용환, 김재경, 김재봉, 김천희, 김평식, 김현숙, 문행섭, 박경훈, 박기호, 양승우, 양용방, 오윤선, 유은자, 이승현, 임수병, 임춘배, 조기완, 조윤득, 현익찬, 홍성식, 홍진숙 등.

4월 25일부터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 이수임씨의 첫 한국전이며 두 번째 개인전인 이수임 판화전이 제주의 고즈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렸다.

서울 출신으로 홍익대와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1984년 뉴욕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한 이씨는 1984년 미국 워싱턴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이 전시회는 국제 와이즈맨 백록클럽이 청소년 배움 돕기 일환으로 연 것.

사진

신록의 5월, 제주에서는 5월 1일부터 5일까지 사진주간으로 설정한 사진인들의 사진한마당 축제가 벌어지는 등 사진계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5월 1일 오전 제주시내 세종갤러리에서는 한국사진작가협회 제주도지부(지부장 서재철)가 사진 사랑을 모토로 보도사진전을 개최 눈길을 끌었다.

5월 7일까지 열린 이 사진전에는 한국사진기자회 소속 사진기자들이 1993년 한해동안 사건 사고의 현장과 스포츠를 기록한 사진들 1백30점이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 행사와 맞춰 제주도문예회관에서는 5일까지 사진단체에서 1백50여 명이 한 점씩의 작품을 출품했다.

이 전시회에서는 개막행사로 도내 사진인 50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사진기자회 고명진 회장이 「예술사건과 보도사진-보도사진가의 입장에서 본 예술사진과 보도사진」, 양종훈 교수(상명여대)의 「시각적인 대중매체로서의 포토저널리즘」, 사진작가 최민식씨의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가」란 주제의 세미나도 있었다.

또 5월 7일부터는 제주카메라클럽(회장 현을생)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그 기념전을 제주도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열었다. 11일까지 열린 이 전시회는 '창립 30주년 사진집'을 동시에 발간 더욱 분위기를 돋웠다.

제주카메라클럽은 1964년 발기, 현재 26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데 지금은 고인이 돼버린 회원들의 작품들도 모아 제주사진역사의 자취를 한눈에 엿볼 수 있게 했다.

'가장 제주적인 사진이란 어떤 것인가'를 물음으로 생활사와 민속 제주인의 삶을 담아내 지금은 사라져버린 풍물들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로 엮어진 이 사진집은 작고작가 홍정표 선생의 「우물가에서」를 비롯 「미역 따는 날」, 「믑녀」등 제주 정감을 나타내는 32명의 작품 74점이 담겨 있다.

또 이 사진집의 뒷장에는 「순수함과 사진에의 정열이 30년 거목 만들어」라는 이름으로 원로들이 좌담을 통해 30년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평론가 권진희씨는 이 사진들에 대해 제주도의 해녀를 비롯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의 현장을 찾아 그들의 슬픔, 괴로움, 기쁨의 모습을 따뜻한 눈길로 여과해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

국립합창단 20주년 기념 제주초청연주회가 5월 13일 오후 7시 제주도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졌다. 제주도문화진흥원과 국립중앙극장 공동주최로 열린 이날 제주 연주회에서 국립합창단은 오세종 지휘와 백경화, 염혜경 반주에 맞춰 베르디의 「동정녀 마리아 찬가」등 종교곡, 외국민요 및 영가, 한국가요, 한국가곡, 한국민요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꽉 짜인 화음으로 선보였다.

전국 최초의 순수 아마추어 관악단인 한라윈드앙상블(단장 양세훈)이 제2회 정기연주회를 5월 19일 오후 7시30분 제주도문예회관대극장에서 열렸다.

제주도내 10개 고교 관악대 출신 40여 명이 주축이 되어 지난해 6월 창단한 한라윈드앙상블은 그 동안 93 제주관악제 초청연주, 93제주 신라 썸머 페스티벌 초청연주, 해변예술제, 대구·제주·일본관학단 친선 연주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한라윈드앙상블은 이날 상임지휘자 김승택 지휘로 한국 초연의 틸멘의 「첼시 모음곡」을 비롯 장익환의 「아리랑서곡」, 황문규의「아리랑 차차차」, 찬스의「한국민요변주곡」등 3개의 아리랑 모음곡을 들려주었다.

또 폴리에르의 「인디아 수족의 선율에 의한 변주곡」과 일본에서 주목받는 편곡자 이와이 나오히로의 「꿈속의 고향」, 「고향의 옛집」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주해 박수를 받았다.

국악의 해를 기념해 인간문화재 조상현 선생 등 명인 명창 초청공연을 6월 29일 도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우리가락 한마당 행사를 펼친다.

공연기획 베스트아이템이 국악의 올바른 이해와 국악의 대중화, 지역문화 발전 등을 표방하며 베푸는 이번 행사는 오후 4시 30분과 7시 30분 두 차례 올려진다.

무용

제주도립 민속예술단이 제8회 정기공연작으로「제주굿놀이」와「풍물모음 굿놀이」가 4월 30일 열려 제주 지역과 타지역의 무속절차를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1만8천 신들의 고향, 혹은 민속의 고향으로 불리우는 제주도인 만큼 이러한 독특한 굿놀이의 무대화는 이색적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지금까지의 무속무용작업을 거의 종합적으로 구성한 이번 무대는 2부로 나눠 치뤄졌다.

지휘구성 김택근, 안무 김희숙, 연출 음악 고영일, 무대디자인 한재준에 의해 올려졌다. 제주도립 민속예술단은 1990년 창단부터 주로 우리 무속의 뿌리를 캐내고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작업을 해왔다.

1부는 무속제의 절차를 놀이로 표현한 설화인 제주굿놀이, 신을 청해 좌정시키는 과정에서부터 본도의 무속제의식 절차상의 춤사위와 타지방의 무속의례의 기능적 춤동작을 접목시켜 종합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1장은 신을 청해 드리는 과정, 2장은 입춘맞이 본풀이, 3장 삼공 맞이 본풀이, 4장 퇴송군무로 구성됐다. 2부는 풍물모음굿놀이는 소리울림 터벌림 마당밟기의 3장으로 짜여졌다. 연물가락의 독특한 가락과 장단이 육지부의 악기와 어떻게 다른 소리를 내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제주도립민속예술단은 이 굿을 갖고 오는 6월 발리에서 열리는 세계민속예술잔치에 초청돼 공연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