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극의 미래를 위한 이야기
-이윤택의 연출활동과 방법
서연호 / 고려대 교수
최근의 성과에 대하여
서연호: 바로 어제 끝난 「비닐하우스」를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이윤택씨의 작업이 근래에 정말 좋아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윤택: 「비닐하우스」는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8년간의 작업을 사실상 결산하는 작품입니다. 문학성과 연극성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 연극이 너무 문학적이거나, 아니면 너무 연극적이거나 한데 불만이 있었어요. 제가 했던 연극까지도, 예컨데 「시민 K」같은 경우는 문학성이 너무 무겁고, 「오구」같은 경우에는 연극성이 너무 무겁고, 이러한 불일치가 있었습니다.
오태석 선생님의 「비닐하우스」는 선생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 대단히 현실인식이 있는 작품입니다. 현실인식이 있기는 있는데, 일관된 어떤 흐름으로 안 가고, 주관적인 직관에 의해서 자유롭게 막 던져져 있는, 파편화되어 있는, 그런 상황인데, 거기에 제가 정서나 톤이나 주제의 일관성을 부여한다면 대단히 현실성이 강한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지요.
서연호: 오태석씨가 연출한 것도 보았는데, 특히 이번 이윤택씨 연출에서는 시민 계층이 사회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충돌하고, 그 충돌로 인해서 삶이 어떻게 결정되고 파괴되어 가는가 하는 과정이 대단히 냉엄하게, 그러면서도 구조적으로, 연극적인 표현으로는 대단히 재미있게 구현이 되어 있어요.
이윤택: 저는 우리 사회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군부문화와 운동권문화의 이분법적인 대결구조로 보는 점을 잘못된 것으로 판단합니다. 군부문화와 운동권문화에게 책임을 지우기 이전에 중간층들, 식자층들이 건강하고 세련된 시민의식이 약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군부문화와 운동권 문화가 폭력적으로 충돌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비닐하우스」에도 나옵니다마는, 그 채소장수, 결국은 일상성이거든요. 건강한 일상성을 유지하고 있는 채소장수를 매다는, 린치를 가하는 게 사실은 상황이 아니고 본인들 스스로가 매단 거거든요.
서연호: 상황의 어떤 모순성도, 등장하는 시민 스스로의 모순성도 이번 연극에서 아주 잘 드러났어요. 그리고 연기 스타일도 오태석씨 하고는 많이 다른 것 같은데......
이윤택: 이번 연출은 제가 하는 연희단 거리패 방식으로, 연극적 약속, 특히 관객과의 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전체 리듬 위에서 자유로울 때는 자유롭고, 포우즈, 정지할 때는 정지하고, 움직임도 아다지오로 움직이느냐, 안단테로 움직이느냐, 뭐 이런 속도와 에너지의 배분을 철저하게 인식시키고자 했습니다.
서연호: 무대장치도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은 공간을 아주 다층적으로 쓴다는 거지요.
이윤택: 「비닐하우스」의 주제 자체가 배우가 없더라도 그 무대만으로도 하나의 완성된 상징이 될 수 있어야 된다 그런 쪽으로 이야기하고,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온 젊은 이학순씨가 무대의 기능적인 측면과 상징적인 측면을 잘 받아들여 가지고 만들어낸 무대입니다.
서연호: 옛날 이야기로 한 번 돌아가 볼까요? 어떠세요, 1986년 여름에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연희단 거리패 창단 공연이 있었는데, 그전에는 전혀 연극을 안하셨습니까?
이윤택: 제가 1972년도에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전 전신)에 입학을 했습니다. 세칭 일류 고등학교인 경남고등학교를 나와서 서울대학 시험쳤다가 떨어졌는데, 2차대학을 갈 바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심정으로 연극학교를 찾았습니다. 그때는 아주 관념적으로 연극을 이해했어요. 연극이 나의 어떤 구원이었던 것처럼...... 그때 담임이 오태석 선생님이셨고...... 살아계시던 유치진 선생님이 지방 학생은 여름방학 때 고향에 가서 연극을 해보라고 해서, 부산에서 까뮈의 「오해」를 하다가 망해가지고 2학기 등록을 못했어요. 도강을 하면서 학교에 드나들었지요.
서연호: 졸업은 못했군요.
이윤택: 졸업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썼습니다. 1972∼1973년 부산에서 소극장 운동을 좀 했습니다. 음악실에 수요무대를 만들어 윤대성 선생의 「출발」, 뭐 이런 작품들을 공연했고, 1973년도에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에서 몰리에르의 「억지로 의사가 되어」를 직접 제작, 연출, 출연도 하고, 나이 스물두살 세살 먹을 때 미친 듯이 했어요. 하다가 완전히 패가망신하고 군대로 들어갔죠. 제대하고 우체국 직원도 하고, 한일합섬에서 염색기사도 하고, 한전 직원도 하고, 그러면서 독학을 했지요. 언젠가는 다시 연극을 한다, 10년 후에는 연극을 제대로 하겠다, 이러면서 부산, 밀양, 충무, 마산 이쪽을 유랑하면서 절 생활을 많이 했어요.
1979년도에 부산일보 들어가서 6년 6개월 동안 기자 생활했습니다. 이전에 방송통신대학 초등교육과를 다녔죠. 기자생활을 하면서 시를 쓰고 문학비평을 하고 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문학이 공동체의식을 강조하지만, 개인성 차원인 문학으로서 사람과 사람이 같이 만난다는 것은 관념적이다 하는 의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래서 나의 문학의 단계에서 우리의 문학의 단계로 나가기 위해서 사실은 연극이 가장 실천적인 예술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었지요. 특히 80년대라는 상황은 배운 사람들의 양심을 대단히 자극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더 이상 신문기자로 있기가 참 부끄럽더라구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1986년 1월 4일 시무식하는 날, 제가 사표를 썼습니다. 제일 처음 했던 것이 김석출 선생의 「동해안별신굿」을 무대에 그대로 올린 일입니다.
1986년 4월이었습니다.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서연호: 거리굿에 대한 관심이 아주 대단하신데......
이윤택: 김석출 선생의 거리굿이 우리의 원형연극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 연극의 새로운 출발점이죠.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우리 연극을 하겠다는 것이죠.
상황극의 출발
서연호: 「죽음의 푸가」(1986. 8)라는 작품은 어떤 작품이었어요?
이윤택: 독일의 파울첼라라는 시인의 시 제목입니다. 그 시를 기본으로 놓고, 거기에 페터 바이스의 「마라 싸드」와 윤대성 선생이 썼던「미친 동물의 역사」라는 단막극을 참조해 가지고 제가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제 연극적 방법을 찾기 위한 작업이었지요. 여러 가지 음악이 계속 흐르면서, 배우들은 구르고 날고 뛰고, 대사를 부르짖고 치고 던지고, 이런 식으로 하는 이상한 연극을 시작했죠.
서연호: 왜 그런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이윤택: 제가 연극을 시작한 목적은 언어만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언어 이전에 느낌이 중요하다. 언어 이전에 인간의 총체적인 몸짓, 움직임이 중요해서 연극을 택했는데, 막상 연극판에 오니까 전부 언어에 묶여 있더군요. 문학성에 묶여 있더라 그 말입니다.
서연호: 그 다음 작품인 「히바쿠샤」(1986. 12)는?
이윤택: 홍가이씨가 쓴 아마추어같은 희곡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서사극을 훈련시키는 방법으로 저는 이 희곡을 재구성했어요. 이현석(이원균)씨가 지적한 대로, 서사극적 인식과 마당극적 신명의 조합에 대한 도전이랄까...... 그래서 대단히 서사적인 방법. 해설, 이런 걸 주면서도 연극을 이끌어가는 방법은 이성적인 것이 아니고, 격렬한 우리 몸짓, 문둥춤이라든지, 아니면 집단 연기라든지, 아주 강렬한 연극이었어요.
서연호: 그리고 「산씻김」으로 넘어가는데......
이윤택: 「산씻김」(1987. 6)에서 우리 것을 가지고 굿을 한 번 해보기로 하고, 격렬한 아르또, 제의극, 잔혹극으로 형상화시킨 거지요. 저는 근본적으로 모더니스트로 출발했거든요. 저는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제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다른 사람의 일이고... 저는 전통이 어떻게 현대의 양식으로 재구성되고 재창조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산씻김」에서 저는 굿을 전부 상황의 인자로서, 현실 상황의 상징으로서 양식화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서연호: 그때 대사가 많이 삭제가 됐었는데......
이윤택: 「산씻김」에서는 완전히 행위 연극으로 갈려는 의도가 있었고, 언어가 오히려 행위를 방해한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긴장이거든요. 한 시간 동안을 숨도 못 쉬게 만드는 긴장인데, 오히려 긴장감을 결여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서연호: 카프카의 「심판」(1988.1)은 원작 그대로 한 건가요?
이윤택: 아닙니다. 그게 바로 「시민 K」의 전신이지요. 장 루이의 희곡을 가지고 했습니다. 원작 그대로 했는데, 문학 쪽에서 제가 심취했던 카프카를 무대 쪽에서 한 번 해보겠다는 의도였습니다. 그걸 해보고 나서, 요제프라는 인물을 우리 스타일로 바꾸어 본 것이 「시민K」입니다.
서연호: 이윤택씨 공연 연보에 보면 「죽음의 푸가」부터 「시민 K」에 이르기까지 상황극이라는 개념이 붙어 있는데 그건 어떤 의미입니까?
이윤택: 「시민 K」(1989. 4)를 하면서 "내가 했던 상황극을 종결한다" 는 말을 했는데, 상황극이라는 것은 어떠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거기에 던져진 인간, 개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였거든요. 우리 연극계가 생각해 온 리얼리즘은 제대로 된 리얼리즘이 아니라, 오히려 감상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이라고 느껴집니다. 내가 생각하는 리얼리즘은 좀 비판적인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어떤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거리, 객관적인 제시, 그런 쪽에서 보고자 했다는 겁니다.
서연호: 「시민 K」를 할 때, 일각에서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가해자의 논리로 포장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이윤택: 한겨레신문 기사에 '실패한 지식인론의 성공적 조명' 이란 게 있습니다. 그때 상황이 민족극, 소위 운동권 쪽에서는, 제가 판단할 때, 연극이 자신들의 운동에 복무하는, 그래서 양식적 특성이 조금 약화되어 있는 그런 감이 있었고, 일반 연극계는 그런 정치적인 현실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 중간이라는 게 없었기 때문에 「시민 K」를 던진 겁니다. 내가 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러니까 군부와 지식인의 관계 쪽에 초점을 맞춘 겁니다.
서연호: 그리고 「청부」가 있는데......
이윤택: 「청부」(1989.4)는 하이네 뮐러라는 독일 작가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작품이지요. 그는 자신을 포스트 모더니스트도 아니고, 소시얼 리얼리스트도 아니고, 포스트 모던 리얼리스트라고 했어요.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제 스스로도 포스트 모던 리얼리스트다 하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고, 그런 하나의 지침을 준 사람이 하이네 뮐러입니다.
서연호: 그리고 이제 「오구」로 넘어가 볼까요.
한국적인 모색
이윤택: 「오구」(1990. 2) 이전에 했던 작품은 먼저 내가 몸담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한 읽기, 현실읽기로서의 방법적인 응전이었고, 그리고 나서 이제는 우리 것을 찾겠다, 그래가지고 처음으로 연희단 거리패의 거리극, 「오구-죽음의 형식」을 시작한 겁니다.
서연호: 「오구」는 최근까지도 공연되고 수정작업이 계속되고 있는데, 최근 공연이 지난 4월이었지요? 처음에 「오구」는 신선하고 참 좋았지요. 재공연이 될수록 이 연극이 죽음의 형식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으니까 그쪽 부분을 더 좀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윤택: 「오구」는 저한테는 행운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출발은, 일단 눈에 보이는 것, 남아 있는 것, 현재 일상화되어 있는 것부터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만들어가면서 두 가지 목표가 설정되었는데, 한 가지는 안 보이는 것, 추상의 세계, 상상력의 세계를 넓혀 나가자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이 작품이 보편적인 현대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지금은 조금씩 수정, 보완해 나가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올해 공연에서는 꿈속장면을, 저쪽 저승의 장면을 드디어 처음으로 보여 줬지요.
서연호: 연극양식이나 표현 문제도 물론 중요하지요. 또 하나 우리 한국사람들이 죽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데 대한 근본적인 탐구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인데...... 좀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큽니다.
이윤택: 죽음에 대한 반동적인 에너지로서의 삶의 생기, 바로 그점 때문에 독일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일본에 데리야마 수지라고, 죽음을 계속 다루는 연출가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주로 죽은 장면을 위주로 사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오구」는 주로 산 사람을 위주로 보여 주지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종합될 수 있는가는 앞으로 연구해 보겠습니다.
서연호: 그 다음에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를 하셨네요?
이윤택: 오영진 선생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1991. 12)의 장점은 각 인물의 성격들이 참 좋아요. 약점으로 친다 면은 현실에서의 인식이 너무 단순하고 상투적이다 그런 걸 보완해 나가면서 공연했지요. 분장은, 우리 가면의 특성들을 살려 가지고 양식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워킹도 인물에 따라 다 다르게 했어요. 등퇴장을 하면서도 박을 치고 들어가고, 말도 리듬을 타고, 그래서 전통양식을 복원시키는 방법으로 갔기 때문에 대단히 흥미있는 공연이었습니다.
서연호: 「맥베드」는 어떻게 하셨어요?
이윤택: 「맥베드」(1992. 3)는, 우리의 궁정동사건을 바탕에 놓았습니다. 맥다프의 출현을 정의의 출현이라고 보지 않고, 그놈이 그놈이다,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맥다프도 또 다른 맥베드의 등장으로 표현했고, '정치판 놀이극'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판놀이극으로, 판굿으로 갔어요.
서연호: 서울에서 한 번 공연하지 그러세요?
이윤택: 안 그래도 내년쯤 일단 「햄릿」을 먼저 하고, 언젠가 「맥베드」를 제대로 한 번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서연호: 「바보각시」라는 건 뭡니까?
이윤택: 「바보각시」(1993.8)는 원래 우리 설화에 기초한 겁니다. 육보시(肉保施) 설화에서 따왔습니다. 어느 마을에 흘러들어 온 여자가 동네 머슴이라든지, 노총각이라든지, 홀애비 같은 남성들과 은근히 혼음을 하게 되지요. 근데 그것이 뒤에 가서 알고 보니까 관세음보살이더라 하는 구조이지요. 자기를 베푸는 그런 바보각시 같은 희망, 그것이 이 세기말적 상황을 치유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랑의 형식이라는 부제를 단거거든요. 그 여자가 애기를 배니까 누구도 자기 애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애를 결국 암매장을 해요. 그리고 여자가 절망해가지고 목을 매다는데, 암매장한 데서 미륵님의 울음소리가 들려와요. 서구의 이분법적인 대결구조가 아니고, 하나이면서, 사랑과 화해의 상징, 우리 설화를 현대도시의 삶으로 몰아가 본 작품입니다.
서연호: 다시 공연할 계획이 있습니까?
이윤택: 이 작품을 제가 꼭두극, 사람과 인형이 같이 나오는 꼭두극으로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 있습니다.
서연호: 「길떠나는 가족」은 이미지를 통해서 관객이 무엇인가를, 화가의 생애를 느끼게 만드는 그런 추구가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윤택: 문학성 위주의 작품에 연극성을 부여하는 것이 「길떠나는 가족」(1991. 10)에서의 과제였고, 그래서 말씀하신 이미지의 연극을 추구한 것이죠. 연극성의 회복이죠.
서연호: 「세월이 좋다」(1992. 9)는 뭡니까?
이윤택: 문예진흥원 해외연수에 뽑혀 가지고, 일본에 6개월 체류하면서 만든 건데 일본 작가의 작품입니다. 기시타리오라는, 일본에서 언어를 가장 잘 다루는 작가입니다. 일본 배우들을 중심으로 만든 연극이죠. 엄밀하게 말해서 저는 단지 연출자로 참여했고, 하용부하고 정동순이라고 하는 우리 거리패 단원을 합세시켜서 배우 연기술을 가르치면서 그렇게 만든 작품인데, 이게 의외로 일본 내에서 반응이 좋았어요. 미국의 뉴욕, 샌프란시스코, 서울에서도 공연했습니다.
서연호: 「홍동지는 살아있다」(1993. 3)는 어떤 작품이었습니까?
이윤택: 제가 귀국해서 한 첫 작품인데, 김광림씨가 희곡을 썼습니다. 꼭두각시 놀음 같은 것이 어떻게 현대연극으로 공연될 수 있는가, 거기에 대한 어떤 실험이었습니다.
서연호: 최근에 공연한 「허재비놀이」에서는 굉장히 강한 상황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이윤택: [허재비놀이](1994. 5)의 텍스트는 칸토르의 「죽음의 교실」입니다. 허재비는 연극적 부호죠. 새로운 창작이 아니고, 누구나 아는 현실, 그 현실을 그대로 텍스트로 정해 가지고, 대단히 강렬한 어떤 연극양식, 극단적인 양식성을 부여해 보았던 작품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이 현실과 연극의 관계를 한 번 탐색해 보는, 그래서 제 결론은 현실도 이런 강렬한 방법이 선행되어야 강해진다, 방법이 약한 현실적 주제는 허공에 뜬다 하는 것을 한번 시험해 보는 그런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서연호: 아주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윤택: 그 충격이 현실적인 내용 때문에 오는 충격이 아니고, 연극적인 양식 때문에 오는 충격이다. 그걸 노린 겁니다.
미래의 연극을 위하여
서연호: 젊은 파워가 아니면 하기 힘든 연극이죠. 화제를 좀 바꾸어서, 작가로서의 이윤택과 연출가로서의 이윤택을 겸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느끼시는지......
이윤택: 저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가 우리한테 남아 있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직접 현장에서 경험해서, 경험과 사유가 변증법적으로 만나면서 만들어진 작품을 썼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연극은 서구방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원형연극에서 출발한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연극대본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쓰여지는 것, 그리고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민족의 집단무의식이 밑천이 되고, 또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희곡은 엄밀한 의미에서 익명성이 있다 하는 것이고요. 그러면 희곡작가는 무엇이냐. 전통관습과 익명성을 집대성하는 하나의 기록자, 상상력의 집합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제 입장은 네 가진데, 연기훈련자로서의 역할, 극작가의 입장하고 연출가의 입장, 거기다가 더한다면 문화지식인의 입장입니다.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이 다 어우러지는 연극작가가 되기를 원하지, 극작가냐 연출가냐 이런 분업화에 대해서는 저는 좀 반대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입장입니다.
서연호: 냉엄하게 보았을 때, 이윤택씨의 희곡집에 나타난 희곡의 언어 내지는 기호성보다는 이윤택씨가 실지로 하고 있는 연출작업이 더 좋다는 거예요. 제 느낌은 그래요. 미래의 바람직한 연출, 새로운 연극의 모색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세요.
이윤택: 저는 연출가의 덕목을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합니다. 한 가지는 세계를 읽는 눈, 해석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에 대한 자기나름의 신념체계가 없으면 이건 연출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단순한 어떤 공연진행자, 연습진행자일 뿐이죠. 신념체계가 바로 연극방식을 결정한다는 겁니다. 그 나름대로의 신념체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하다 보니까 새로운 연극형식이 나오는 거거든요. 두 번째는 악마이면서도 인간을 사랑하는, 신에게 저주받은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에게 저항하다가 추락한 시지프스와 같이 한 세계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기존의 세계와는 맞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상이라고 하는,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일차적인 일상으로부터 저항해야 된다 이겁니다. 일면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아주 반사회적인 인간인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자기보다도 더 생각하게 한다, 즉 이타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자기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자신보다도 배우나 스탭이나 집단을 더 사랑하는, 아주 그 이중적인 모순을 지니고 있는 그런 인간입니다.
서연호: 연출가는 어떻게 보면 예술에 관한 고도의 기술잔데,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기술잔데, 그런 기술들은 어떻게 습득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윤택: 저같은 경우에는 경험과 사유의 어떤 확대 재생산구조, 변증법적인 생산자가 연출가의 세 번째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연극 형식을 전제로 실험해 봅니다. 해 보면, 거기에 종속되지는 않고, 그것이 또 다른 사유를 낳거든요. 그러면 또 다른 사유를 또 실험해 보고, 이렇게 진척되어 나아갑니다. 저한테 있어서의 기존연극이나 기존연극미학은 최소한의 교육입니다. 그 교육, 그 사유를 최소한의 질서로 삼아, 작품은 내 마음대로 만듭니다.
서연호: 그런 의미에서 이윤택씨를 실험주의자라고 해도 괜찮겠습니까.
이윤택: 그렇습니다. 실험주의자라고 의식하면서 작업하지는 않지만, 실험과 함께 저는 관객주의자입니다.
서연호: 관객주의라는 건 무슨 얘깁니까?
이윤택: 제가 이름을 하나 지었습니다. 왜 실험을 하는가 하는 문제인데, 항상 사람과 새롭게 만나기 위해서 실험을 하는 거거든요. 실험을 위한 실험을 저는 대단히 싫어합니다. 실험이라는 것은, 세계와 만나고 싶은, 끊임없는 욕망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욕심이 나를 어떤 고정된 틀 속에 묶지를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실험 자체가 하나의 발견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출가는 혼자, 어떤 유아독존적인 존재가 아니라 세상과 만나기 위해 관객의 입장에서 본다는, 그런 의미에서의 관객주의자란 말입니다.
서연호: 연기 훈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윤택: 우리 배우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호흡, 신체를 전형적으로 움직이는 호흡이 거의 안되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연극은 언어 이전에 느낌이다, 연극은 언어 이전에 존재했다 라고 믿습니다. 인간의 사유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적인 관습, 질서 내지는 언어, 제도 이전의 인간, 거의 짐승과 같은 인간으로, 배우들은 희생되고 복원되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문명생활의 절제로부터 어떻게 우리가 각질을 벗고 나오느냐 하는 것이 연기의 일차 목표입니다. 그 상태를 던져놓고, 절제는 배우가 아닌 연출자의 몫입니다. 이게 제 스타일입니다. 연출은 세계를 읽어 나간다, 그런 쪽에서 저는 배우들의 어떤 다이나미즘을 먼저 회복하는 쪽으로 연기훈련을 집중시켜서 하고 있습니다. 몸 전체가 하나의 악기가 되어야 합니다.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강력한 신체적인 힘을 회복하는 것이 배우들의 일차적인 과제라고 봅니다.
서연호: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이윤택: 하나는 우리 어머님 이야기, 비교적 덜 제도화된, 그리고 우리 전통이 남아 있는, 어머니의 잔소리 같은 것, 그러니까 어머니의 잔소리를 우리의 회상화법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없을까 생각중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데올로기와 예술의 관계를 작품화하고 싶습니다. 옛날에 낙랑극단의 「눈내리는 밤」공연을 토벌대와 빨치산들이 함께 보고 공감한 기록이 있어요. 그런 소재를 가지고 우리 식의 서사극, 예를 들자면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같이, 정치와 문화, 이데올로기와 예술,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충돌시킬 수 있는 대작을 쓰고 싶습니다. 현재 자료를 구하고 있습니다.
서연호: 우리 연극이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이윤택: 지금 90년대에 와서 더욱 더 혼돈스러운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연극인들이 문화지식인, 인텔리임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80년대까지는 인문주의자들이 연극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인문주의자들이 점점 적어지고, 대신 전문가, 뮤지컬 전문가라든지, 음악 전문가라든지, 이런 식으로, 증가하면서 연극의 상업화, 대형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프로듀서시스템 뭐 이렇게 해가지고 동인제가 안되고, 다 개인 개인이 모여서 일회용으로 만들고 헤어지는 이런 개인주의가 판칩니다. 연극계에 만연된 개인주의 때문에 완성도 높은 새로운 실험극을 하기가 좀 힘든 상황이지요. 저같은 입장은 연극하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그래서 자구책으로 우리극연구소 같은 것도 만들고, 약한 힘도 좀 모아 가지고 지키자, 이런 식으로 하는데, 어차피 앞으로 세상은 대형 상업극이 70%이상 관객을 휩쓸 것 같고, 요즈음 매스컴까지도 다 그쪽으로 동원되고 있습니다. 대단히 비관적인데, 자구책은 아카데미즘과 만나자는 것이지요. 연극을 배우는 학생들, 연극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연극학도들 내지는 연극학자가 늘어나고 있거든요.
상업주의에서 한 발 물러서서 아카데미즘과 만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런 체제와 협동하면서 연극을 계속 지탱해 나가는 게 유일한 자구책이 아닌가 합니다. 제 연극팬은 거의 대학생입니다.
서연호: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윤택씨의 작업에 계속 훌륭한 성과있기를 기원하고, 아울러 극단 거리패의 장래에도 지속적인 발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열심히 지켜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