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문화적 편견 뛰어넘은 열띤 토론
김말복 /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
미국의 여러 무용축제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할 수 있는 미국무용축제Americn Dance Festival 가 60주년을 맞이하여 듀크 대학의 단거운 캠퍼스에서 6주간 (6월 10일~7월 22일)에 걸쳐 워크숍, 공연, 세미나 등의 다채로운 행사를 가졌다.
해가 거듭될수록 점차 국제적인 규모로 다양해져 가는 듯한 미국무용축제는 처음 베닝톤 무용학교The Benninton School of Dance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샤 그라함, 하냐홈, 도리스 험프리와 챨스 와이드만에 의하여 미국 버몬트 주의 조그만 도시 베닝톤에서 1934년 7월 처음 열린 베닝톤 무용학교는 그 후 미국 무용계의 모습을 바꿔놓은 예술적 혁명을 가져왔고 이들의 움직임이 바로 현대무용을 20세기 예술계에서 중요한 문화로서 자리잡게 한 추진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연례적으로 열린 이 행사는 잠시 커네티컷(1947년~1977년)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열렸다가 1978년부터 지금의 듀크 대학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는 전세계에서 참가한 350여 명의 학생과 50여 명의 교수진들이 하루종일 전 캠퍼스에서 이루어지는 테크닉, 창작, 레퍼토리 등의 크리스를 구성하였고, 교수진 중에서는 리몽무용단원이었던 베티 존스Betty Jones, 그라함의 파트너였던 스튜어트 호드Stuart Hodes, 레스터 호튼 무용단원이었던 벨라 루위츠키Bella Lewitzky와 같은 역사적 인물이 끼어 있었다. 39회에 이른 풍성한 공연은 11개국에서 참가한 20개 무용단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필로볼러스Pilobolus, 니꼴라이-무레이, 루이스Nikolais' & Murray, Louis, 에릭 호킨스Erilk Hawkins 무용단 등이 참여하고 있었다. ADF가 주최한 여러 프로그램 중 필자가 참여한 것은 국제무용비평가회의라는 모임이었다. 미국 현대무용의 근황을 살펴보고 공연과 비평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로 마련된 것으로 보이는 이 모임이 국제적인 규모로 확대된 것은 올해가 두 번째라고 한다.
나는 지난해 발족한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회장 박용구)의 주선으로 이번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참여한 비평가들에 의한 무용에 대한 논의는 때로는 참여자들의 예술적, 문화적 편견을 뛰어넘어 흔쾌히 공통된 인식에 다다르는가 하면 때로는 그들의 예술문화권에 따른 시각의 차이가 뚜렷하게 대립되어 열띤 토론으로 치달아 견해의 차이를 좁힐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 매우 흥미롭고도 유익한 토의들이었다.
그 결과 토론에서 나타난 다양한 문화적 가치 및 관점에 반영하는 무용에 대한 글을 모아 책을 출판하자고 하는 제안과 함께 요청을 받고 왔다.
그리고 여러 시상행사가 있었는데 1991년에 제정된 것으로 무용계에서 가장 우수한 무용교사에게 주는 상 Belasarawati/Joy Ann Dewwy Benedke Chain for distinguished teaching은 올해 벨라 루위츠키가 받았다. 벨라 루위츠키는 레스터 호튼 무용단의 주무용수로 활약하다가 1966년 자신의 무용단Lewitzky Dance Company을 만들어 로스앤젤레스를 근거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과 무용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해박한 지식을 지닌 아름다운 예술가로 80이 가까운 나이가 가늠되지 않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잘 움직이지 못한 레스터 호튼을 위한 테크닉 실험도구'로서 그녀의 신체를 통해 호튼 테크닉이 형성되어졌다고 하며 1990년 미국예술진흥기금 7만 2천불을 수혜자가 지켜야 할 규칙, 즉 성적 노출이나 외설적인 표현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거절하고서 미국예술진흥원을 고소한 일화로 유명하다.
그리고 안무 분야에서 생애공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립스 ADF상 Samuel H. Scripps American Dance Festival Award for Lifetime Achievement in Choreogrphy은 1981년에 제정된 이래 그라함, 커닝햄, 테일러, 니꼴라이, 에일리 등을 거쳐 올해는 2만 5천불의 상금이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에게 돌아갔다.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미술가 로버트 로센버그 Robert Rausachenberg의 감정에 겨운 축사와 함께 치루어진 시상식에 이어 지난 5월 뉴욕에서 예술계의 지대한 주목 아래 초연되었던 작품「만약 당신이 날 볼 수 없다면 If you couldn't see me」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 작품은 트리샤 브라운이 15년만에 만든 흔치 않은 자신을 위한 솔로 작품이다. 이 제목이 진정 뜻하는 바는 '만약 나의 얼굴을 볼 수 없다면'이고 이어 트리샤 브라운은 '날 알아볼 수 있을까요?' 라고 묻고 있는 듯하다.
트리샤 브라운은 무용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로 인해 모든 것을 무용으로부터 제거해 버린 후기 현대파 중에서 그 앙상한 뼈대에 살을 붙이고 새로이 스타일을 확립한 몇 안되는 무용가 중에 하나이다. 그녀는 새로운 움직임의 방식을 만들어내었고 독특한 스타일의 '무용'으로 보이게끔 한다. 따라서 그런 면에서 그녀를 더 이상 후기현대파 무용가로 보지 않고 현대무용가로 보는 이도 있다.
큰 도약이 없고 결코 위를 지향하는 법이 없이 비스듬히 먼 앞쪽을 향한 듯 경사진 몸통으로부터 삶은 국수가 미끄러지듯 흐르는 움직임의 유연성과 아울러 간간이 아래로 향하는 체중의 경향성은 그녀 움직임 스타일이 견고함을 함께 갖도록 한다. 그녀의 복잡한 신체 경계(지형)를 타고 흐르는 감각적이고 힘찬 움직임의 흐름은 그녀의 얼굴을 보이지 않는 작업을 신비롭게 느껴지게 하였다. 그녀의 서두르지 않는 움직임과 계산되어진 듯 보이지 않는 잘 배치되어진 움직임의 디자인과 호흡은 그녀가 후기 현대파로부터 출발하여 하나의 훌륭한 예술가로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미국무용축제 60주년을 맞아 니꼴라이의 40년에 걸친 제자이자 절친한 동료였던 무레이 루이스Murray Louis가 선정한 니꼴라이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도가니Crucible, 1985」,「기계부품Mechanical organ, 1980」,「텐트Tent, 1968」그리고 「신장력있는 관계Tensile Involvement, 1956)」였다. 연대기순에 거슬러 가장 최근에 제작된 작품부터 시작된 이날의 공연은 작년에 82세의 나이로 죽은 복합매체무용Multimedia dance의 천재에게 바치는 감동적인 무용을 보고 있노라면, 특히 초기 작품의 경우, 우리가 오늘날 당연시하게 여기고 있는 무대기술들이 모두 니꼴라이의 발명이었고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 갔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특별한 재능은 복잡하고도 매혹적인 복합매체표현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가 고안해 낸 움직임들은 때로는 매우 상상력이 넘치고 재치있는 것이지만 그가 그것을 조명과 의상, 그리고 무대장치와 결합시키는 능력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니꼴라이 커닝햄과 함께 무용에서 텍스는 포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자신의 작품에서 많은 것을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색과 형태와 디자인을 보여주려 한다. 그의 이러한 의도를 위해 그의 무용수의 움직임은 실용적이고 매우 시각적으로 사용 되어진다. 따라서 니꼴라이의 무용수 거의 70%정도는 니꼴라이가 의도한 디자인의 도구로서 쓰여진다. 그의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은 그를 르네상스의 만능인(unibersal man)의 한 모델로 느껴지게 한다. 신디사이저(Synthesixer)로 음악을 작곡한 최초의 사람인 니꼴라이는 이 모든 작품들을 위해 자신이 작곡하였다. 음악들은 무용과 분리되어 독자적으로는 그리 완전하다고 느껴지지 않겠지만 작품을 위해서는 니꼴라이 스타일의 통일감을 부여해 주는 훌륭한 것이었다. 물론 그는 이 모든 작품들을 위한 안무, 조명, 무대장치, 의상 디자인도 자신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