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에 막오른 두 편의 오페라
-「세빌랴 이발사」, 「가면무도회」
김영숙 / 음악칼럼니스트
작년 봄, 예술의 전당의 오페라 하우스-서울 오페라극장-가 개관되면서 국내 오페라단의 활동은 전형극장과 함께 보다 수준 높고 다양한 레퍼토리의 오페라 공연을 보여 주고 있다. 서울오페라극장이 아직 시즌 내내 오페라 공연을 상설로 올리지는 못하는 여건이나 차츰 이 공연장을 통하여 질 좋은 오페라 공연도 기대하여 본다. 지난 5월 18일 서울시립오페라단의 12회 정기공연으로 국내 초연작 베르디의 「에르나니」에 이어 6월 2일부터 10일까지 김자경 오페라단과 글로리아 오페라단의 희극과 비극 오페라 두 편이 무대에 올랐다. 20년 가까이 우리나라 초창기 오페라단인 김자경 오페라단과 창단된 지 겨우 3년을 맞은 신생 오페라단의 연이은 공연은 오페라 팬들에게 두 단체의 기량을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 셈이다. 이 두 작품은 김자경 오페라단이 제46회 정기공연으로 6월 2일부터 4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 올리는 로시니의 「세빌랴 이발사」와 글로리아 오페라단이 2회 정기공연으로 6월 7일부터 10일까지 같은 무대에 올린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이다.
먼저 김자경 오페라단(단장 강화자)이 올린 오페라 「세빌랴 이발사」는 작가 자신이 과거에 작곡했던 곡에서 좋은 것은 철저하게 이용하고 다시 새로운 명곡을 추가한 로시니 오페라 부파의 집대성적 명곡이다. 19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오페라 부파의 대표작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전편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보마르셰 원작, 스테르비니의 이탈리어 대본인 2막 오페라 「세빌랴 이발사」는 그가 23세때인 1816년 1월 보름만에 씌어졌다고 한다. 레치타티브가 많고 경쾌한 서곡이 특히 유명한 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잘 알려져 있다.
바르톨로라는 욕심 많은 노인이 고아 로지나를 키워놓고 결혼하려고 하나 알마비바라는 젊은 백작과 사랑하게 된 로지나가 영리하고 재치 넘치는 바르톨로의 이발사 피가로의 도움으로 알마비바 백작과 결혼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오페라 연출은 '청중을 웃기지 못하면「세빌랴의 이발사」는 실패'라고 소감을 말한 30대 오페라 연출가, 현재 독일 에센 알토극장의 연출자로 오페라에서의 극적인 재미와 연기력을 중시하는 쾨겔도르프스가 맡았고, 음악은 절제된 음량을 통해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언어가 지닌 톤칼러, 성악가와의 호흡 등에서 긴밀감을 보여준 임헌정이 지휘하는 부천시향이 맡았다. 등장인물들은 익살스런 이발사 피가로 역에 바리톤 김관동, 김범진, 바르톨로의 후견을 받고 있는 처 로지나 역에는 소프라노 신애경, 이연화, 로지나를 사랑하는 귀족 알마비바 백작 역에는 미성의 두 테너 박홍규와 김종호, 로지나의 후견인이며 부유한 의사 바르톨로 역에는 베이스 김정용과 이요훈이, 그 외에 신세대 성악가 김윤식, 김진성 등이 주축이 되었고 작품의 성격에 어울리는 캐스팅과 의욕이 생기 있게 살아난 점이 돋보인다. 또한 국내 제작진이 보여준 무대 장치나 무대 미술 면에서도 오페라의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가능성을 제공한 무대였다. 이 오페라 초연은 1816년 2월 20일 로마 아르헨티나 가극장에서 있었다.
이번 공연에 캐스팅된 소프라노 신애경과 테너 박홍규는 주목할만한 오페라 싱어다. 8년만의 고국 무대로 로지나 역을 맡은 프리마돈나 신애경은 리리코 레쩨로 소프라노. 이미 1993년 마리아 카닐리아 국제 콩쿠르 2위 입상, 바르셀로나 국제 콩쿠르에서 벨리니의 오페라 「몽유병의 여인」중「광란의 아리아」로 특별상에 입상, 유럽 무대에선 알려진 성악가이며, 1986년 아시안게임 문화축전에서는 오페라 「시집가는 날」의 갑분이 역으로 국내 무대에서도 낯익은 성악가다. 또 테너 박홍규는 1988년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카루소 콩쿠르 3위 입상자로 주목을 받아온 성악가. 화려한 스케일과 깨끗한 프레이즈 처리에 능숙한 미성의 테너 박홍규는 선율이 아름다운 알마비바 백작 역에 적격이다. 엔리코 카루소 시대의 리리코 레쩨로 테너의 황제 티토 스키파의 소리를 닮았다고 해서 '작은 스키파'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박홍규에게 오페라 성악가로서의 대성을 기대해 본다.
지난해 1993년 제1회 정기공연으로 선보인 대작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 이어 내놓은 글로리아 오페라단(단장 양수화)의 두 번째 야심작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는 1991년 서울시립오페라단에 의해 국내 초연된 비극의 오페라이다. 「운명의 힘」,「돈 카를로」등과 함께 베르디 중기의 3대 오페라로 꼽히는 오페라 가면무도회는 「시칠리아 섬의 저녁 기도」이후 그랜드 오페라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베르디가 이 작품으로 형식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장대한 풍격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이 작품은 1792년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의 암살사건을 소재로 만든 3막의 오페라이다. 스크리브의 원작 비극 「구스타브 3세, 또는 가면무도회」라고 이름 붙여진 이 오페라는 1859년 로마 아폴로 극장에서 초연 되었다.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가 앙카스트롬 백작에게 권총으로 암살당한 사건에다 백작의 처와 국왕이 밀애하는 내용이 덧붙여져서 극적 재미를 더욱 강조한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보스턴 총독 리카르도는 자신의 친구이자 충실한 부관인 레나토의 부인 아멜리아를 몰래 사랑하게 되는데 여자 점쟁이 울리카는 그가 처음 악수하는 사람에게 살해당할 것이고 그때 마침 레나토가 나타나서 리카르도와 악수하지만 점쟁이의 말을 무시해 버린다. 자기 부인과 총독의 관계를 눈치챈 레나토가 가면무도회에서 총독과 아멜리아가 작별 인사를 나누는 순간, 총독을 죽이지만 총독은 레나토를 용서한다면서 순결한 아멜리아와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남기며 숨을 거둔다.
이번 공연의 배역도 실력 있는 성악가들이 캐스팅 되었다. 보스턴 총독 리카르도 역에 박세원, 류재광, 리카르도의 비서 레나토 역에 바리톤 이재환, 권홍준, 레나토의 아내 아멜리아 역에 소프라노 로마 오브진스카, 김영애, 리카르도의 사동 오스카르 역에 소프라노 이춘혜, 박은경, 점치는 여인 울리카 역에 소프라노 정영자, 장현주 등이 캐스팅 되었다. 이밖에 나운규, 이재준, 윤형원, 이형원 등 신진 성악가들의 기용도 주시할 만한 일이다. 음악은 뉴욕 시티 오페라 하우스의 지휘자 마크 깁슨을 초청, 서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최병철이 지휘한 부천시립합창단이 협연했다.
2년 전 서울시립오페라단에서 초연될 때 주역을 맡은 리카르도 역의 테너 박세원과 비운의 여주인공 아멜리아 역의 소프라노 김영애가 다시 이번 공연에서도 똑같은 역을 맡으면서 보다 성숙된 내면의 연기로 관객에게 다가섰고, 새로 캐스팅된 폴란드의 소프라노 로마 오브신스카는 작년 국내 첫 무대에서 글로리아 오페라단 단장 양수화의 눈에 띄어 초청 받게 되었는데 이번 서울 오페라 공연을 통해 어느 정도 국내 팬들을 확보한 무대이기도 했다.
로마 오브신스카는 작년 서울국제음악제 초청으로 서울시향과 폴란드 작곡가 헨릭고레츠키의 교향곡 제3번 「슬픈노래」를 협연해 우리나라에 데뷔한 소프라노다. 교향곡이라기보다는 관현악반주가 붙은 이 3편의 노래를 소프라노 로마 오브신스카는 풍부한 성량과 호소력있는 음성으로 표현, 청중을 사로잡았었다. 바르샤바 오페라단 주역 성악가로 유럽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로마 오브신스카는 지난 5월 대전 우송예술회관 충청오페라단의 도니제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루치아 역으로 한국 오페라계에도 성공적인 데뷔를 한 셈이다.
앞서 설명한 오페라 「세빌랴 이발사」가 순수 국내 제작진의 힘으로 무대 장치, 무대 미술을 보여준 것에 반해 오페라 「가면무도회」는 이탈리아에서 직접 공수해 온 무대 의상과 무대 미술 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었다. 연출을 맡은 다리오 미켈리 역시 이탈리아를 위시한 세계 각국에서 500회 이상 오페라, 연극, 영화를 연출했으며, 영화「마지막 황제」에서는 중국 현지의 배경미술, 세트, 의상을 담당했다. 무대의상과 장치, 조명의 조화력도 있고 지휘봉을 잡은 마크 깁슨의 명확하고 정제된 오페라 전막에 흐르는 베르디 음악의 지휘는 무대의 흐름을 매우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오페라 공연은 그 준비과정서부터 제작, 무대에 올리기까지 많은 시간과 경비,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 때문에 대작이든 아니든 국내에서의 오페라공연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금년 후반기 시즌을 두고 몇 편의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있지만 각 오페라단의 공연이 1회성으로 끝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에rps 오페라 전용극장도 생겼다. 서울 공연이 지방 공연으로 이어지고 지방공연이 서울공연으로 이어져 다양한 레퍼토리의 반복 공연, 한 번의 공연 기간이 보통 5일 이내로 막을 내리는데 한달, 두달, 일년 등 장기적으로 열리는 상설무대 운영 등은 단 한번의 공연기획에 소모된 많은 노력의 대가를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따른 문제점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