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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농의 샘




김유준 / 월간 로드쇼 기자

프랑스 영화 「마농의 샘」은 운명의 강에 휩쓸려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사랑과 비극을 그린 대서사시이다. 감독 끌로드 베리와 원작자 마르셀 빠뇰을 비롯해 초일류의 스탭, 캐스트들이 완성한 걸작이다. 1920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지방. 빠삐라고 불리는 세자르(이브 몽땅)는 마을의 유지로, 군대에서 갓 제대한 조카 위골랭(다니엘 오떼이)과 함께 살고 있다. 빠삐와 위골랭은 평소 탐을 내던 집에 곱추 장(제라르 드빠르디유)이 이사오자 하나뿐인 샘을 막아 집을 포기하고 떠나게 하려 한다. 이들의 의도는 농사를 지어 성공하려는 장의 소박한 꿈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린다. 물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던 장이 폭약으로 우물을 파던 도중 치명상을 입고 죽어버린 것이었다. 가장을 잃은 장의 아내와 어린 딸 마농은 결국 집을 빠삐에게 팔고 이사간다. 집을 가로챈 빠삐와 위골랭은 꽃밭을 일구어 큰 돈을 번다. 세월은 흘렀다. 사냥을 하던 위골랭은 양을 치는 마농의 성숙한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위골랭은 처절하게 사랑을 구걸하지만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간 장본인이 빠삐와 위골랭임을 아는 마농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가슴이 무너져내린 위골랭은 목을 매달아 자살하고 그의 죽음과 더불어 빠삐는 장과 자신에게 얽힌 기막힌 비밀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접는다.

「마농의 샘」이 스크린에 흐르는 세 시간 여 동안 '운명'과 '인과응보'라는 두 낱말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전쟁통에 편지가 엇갈려 자신의 아기를 임신한 여인과 헤어진 빠삐. 그는 장이 그 아기인 줄도 모르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런가 하면 마농은 복수심에 사무쳐 삼촌 위골랭을 자살하게 만들고, 모든 사실을 전해들은 빠삐는 자살한다. 참으로 기구해 삼국유사에서나 읽을 법한 '업보'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빠삐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마농의 샘」은 분명 비극이지만, 교활한 빠삐가 40여 년 동안 헤어진 여인을 남몰래 그리워 했다는 사실은 비극을 비극이지 않게 한다. 그러므로 「마농의 샘」은 기필코 비극을 동반하고야 마는 진정한 사랑을 그린 애증의 서사시라고 말할 수 있다. 「마농의 샘」의 화면은 템포가 느리다. 카메라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대사 또한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것은 이브 몽땅을 비롯한 명배우들의 찬란한 연기와 화면에 숨을 불어넣은 끌로드 베리 감독의 연출 덕분이다. 끌로드 베리 감독은 음악과 패러디 등의 상징을 적절히 사용해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살아 꿈틀거리게 한다. 베르디가 작곡한 장중한 음률의 음악-「운명의 힘」중의 「신이여 나를 도우소서」는 영화의 시작과 함께 울려 펴져 영화의 내용을 암시해 주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네 사람 베르나르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파티 장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해 관객으로 하여금 곧 다가올 비극을 예감하게 한다. 또한 마농의 리본을 구한 위골랭이 그것을 자신의 젖꼭지에 꿰매는 장면은 그의 사랑을 극단적으로 느끼게 하는 참으로 놀라운 사랑의 표현이다. 「마농의 샘」은 영화의 매력을 오묘히 갖고 있는 명작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