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외설의 끝없는 줄다리기
- 미국의 예술과 외설의 논쟁사례
오춘호 /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최근 미국 예술계에서는 스티븐 두빈씨(뉴욕 주립대 교수)가 쓴「역류되는 이미지들Arresting Images: 1992」이라는 책이 관심을 끌고 있다. '힘없는 예술의 무례한 행위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 동안 미국사회에서 일어난 예술계의 외설논쟁을 다룬 책으로 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무엇이 예술이고 정부지원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다.
작가에 따르면 예술가들은 종교, 섹스 등 변덕스러운 사회적인 이슈들을 나타내려 하는 일탈자들로 정부당국은 사회적인 안정성을 이유로 예술지원에 대한 규제를 실시해 예술가들과 행정가들 사이에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헌법 제1조로 내세우면서 문화예술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예술과 외설을 놓고 끊임없는 논쟁이 한창이다. 더욱이 미국국립예술진흥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NEA이 지원하고 있는 비도덕적이고 외설적인 작품을 둘러싸고 예술가들과 행정가들은 매년 싸워오고 있다.
60년대부터 일어왔던 예술논쟁, 즉 무엇이 외설이며 불경한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무엇이 검열을 받게 만들며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 사회가 급변하고 예술세계가 변하면서 계속 논의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법원은 지난 1973년 이 문제가 한창 논의되자 현대사회에 대한 기준을 정하면서 음란의 기준에 대해 두 가지 법적 기준을 두었다. 즉 예술적 작품이 정말로 예술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와 공격적인 방법으로 성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이들 기준에 위배되는 것은 결국 예술이 아니라 외설행위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다가 80년 후반 들어 개념예술, 행위예술이 대두되면서 이 논쟁이 새롭게 불붙기 시작했다.
지난 1988년에 일어난 사진작가 안드레스 세라노의「피스 크리스트 Piss Christ」와 로버트 마플소르프의「와전한 순간 The Perfect Moments」이라는 사진전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마플소르프는 NEA가 3만 불이나 들여 자금을 보조한 이 전시회에 어린이들의 누드와 호모들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묘사해 굉장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 사진전은 미국 8개 도시에서 개최되었는데 워싱턴 등지에서는 아예 전시회가 열리지도 못했다. 신시네티의 현대아트센터 관장은 이를 개관하였다고 지역 주민에게서 외설을 방조한 혐의로 고소까지 당했다. 물론 법원에서 심판관들은 사진이 불경스럽고 멋이 없지만 모든 예술작품이 모두 예뻐야 할 필요가 없다고 못박으면서 그를 무죄로 선고했다. 그러나 시카고와 필라델피아에서는 신선한 충격이라면서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까지 했었다. 물론 워싱턴 등지에서는 아예 전시회가 열리지도 못했다. 문제는 NEA가 이 전시회를 지원하는 데서 발단됐다.
의회가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의 회의와 의문이 비등했다. 당시 공화당이 집권하던 부시 행정부 아래에서 많은 관료들은 정부의 예술지원 체제에 대한 검열이 강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NEA 기금정책과 의사결정과정 기금 분배 등에 대해 계속된 주의환기를 정부가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의회는 NEA에게 법정 내에서 외설로 판단되는 모든 예술행위에 지원되는 모든 기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지난 3월 워커예술관에서 공연된 돈 애디의 연극 공연이 논란이 되었다. 에이즈 환자인 돈 애디는 이 공연에서 자신의 머리에서 바늘로 피를 뽑고 이상행위를 보여주었다. 이 공연의 보조에 워커 예술관이 개입하였으며, NEA측은 이 예술관의 공연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해 의회의원들이 발끈한 것. 민주당 소속 로버트 버드 의원을 비롯한 이들은 NEA 이사장에게 애디의 공연이 보조금제도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릴 수 있도록 경고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사건에 대한예술가들의 반응도 만만찮다. 예술은 획일적인 가치와 신념에 도전하고 있으며 사회의 유연성과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이들은 자유스런 표현을 보호할 제도적인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며 계속적으로 NEA와 투쟁하고 있다. 1989년 행위예술가인 카렌 핀리가 그녀의 발가벗은 신체 위에서 초콜릿을 빨고 있는 모습을 공연하는데 대해 NEA측이 자금지원을 하지 않자 또 한차례 예술계는 문제를 삼았다. 예술가들은 예술의 신성함과 저속함의 양면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면서 사회의 거꾸로 된 질서를 소개하고 있는 그녀가 당연히 NEA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예술계 이외의 예술적인 신성함을 강조하는 반대세력들의 대응 또한 만만찮다. 이들은 예술적인 '우아함'이 없이는 예술이 아니다라고 못박으면서 예술적인 규준과 신성함을 강조하고 있다. 1988년 5월 시카고 시의원들은 전시장 헤롤드 워싱턴이 여자들의 속옷을 입고 있는 데이비드 넬슨의 풍자적인 그림을 압수했다. 미국 국립예술박물관에서는 관장이 여자 누드에 자극을 받아 유명한 설러버트의 사진전 설치 제거를 명했다. 메릴랜드대에서는 학부모들과 교수들이 그들을 당혹시켰다는 이유로 컴퓨터 그래픽아트 학생들에 의한 AIDS 포스터가 제거되기도 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얘기하고 있는 방송국에 종사하고 있는 만담가들은 그들의 아이들이 악마나 마녀의 이야기들을 들려 줄까봐 두려워하는 학부모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당하고 있다. 이들은 비평가들도 사회적 가치와 예술가 적인 경계를 파괴하는 아티스트들에게 동정적이라고 비난한다.
이처럼 미국이 예술작품을 놓고 예술가들과 예술행정가들과의 논쟁이 끊이질 않자 예술공동체가 그 자신을 방어하는 데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 들어 일부에서 대두되고 있다. 5년 후 미국인의 삶을 위한 시민 모임에서 예술검열에 대한 프로젝트인 아트세이브를 담당하고 있는 질 본드 씨는 대표적인 인물로 그는 중간자적인 입장에서의 토론마당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뉴욕에서 열린 AIDS 관련 전시회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 공연이었는데도 불구, 예술적인 자유만을 요구한 예술가들과 일반적으로 아주 신중한 예술행정가들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만 하다가 지원 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사건을 예로 들면서 예술가들과 관료들 간의 회색 지역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실제는 예술행정가들과 정책입안자들이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싸우고 있다. 그들의 일은 전체 사회를 위해 맞는 해결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NEA를 둘러싼 많은 사례들은 결국 이 기관이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어떤 종류의 예술에 기금제한을 두는 규준인 '예절'이 고양될 수 있으며 왜 예술에 대한 정부기금은 그러한 격렬한 비평을 야기할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NEA가 지원문제를 둘러싸고 적절하게 대처를 잘한 사례도 있다. 1991년 돈 위드먼씨가 호모섹스에 대한 문제를 다룬 포이즌이란 영화를 공격하는 편지를 의회에 제출했다. 위드먼은 그 영화에 대한 지지자였던 NEA도 같이 비난했다. 이때 당시 NEA 의장이었던 존 프론메에어씨는 재빨리 기자회견을 갖고 NEA 기금과 이 영화에 대한 배경설명을 하면서 이 영화를 직접 보여주었다. 이러한 재빠른 동작은 이 논쟁을 흐지부지하게 만들었다. 이 사례는 NEA가 취한 다른 사례들과 극히 대비되는 것으로 NEA가 지원에 대한 확실한 이론적인 근거를 갖추어야 한다는 명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질 본드 씨는 이론적인 근거를 위해 우선 예술과 문화에 대해 미국인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면서 미국 방식을 위해 사람들이 요구하는 방식이 어떤지를 조사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90%가 예술이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자유스럽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있으며 또한 이들간의 건설적인 대화가 부족하다는 것을 꼬집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결국 헌법 제1조를 믿는 사람들의 지지를 어떻게 예술가들이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 논쟁은 해결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는 진정한 예술의 본질과 이러한 작품의 가치에 대해 교육하는 데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대화의 장으로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면 어느 날 우리들이 더 이상 예술을 보호하기 위해 싸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예술과 외설논쟁은 예술이 예술차원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종교 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만큼 다른 분야의 문제가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이를 둘러싼 표현양식과 이에 대해 기존 사회가 갖는 반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 하원은 지난 6월 1995년 회계연도 예산심의에서 NEA 기금을 3백 40만 달러 삭감키로 의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