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예 / 터어키권

생명과 맞바꾼 '마흔의 샘물'

-에디르네의 야을르 규레쉬 축제




이희수 / 한양대 교수

1360년 여름, 발칸반도에는 유난히 덥고 심한 가뭄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교도인 오스만 터키 군이 발칸을 공격하자 신의 노여움이 내렸다고 웅성거렸다. 그해 새로운 기운으로 팽창하던 이슬람교의 오스만제국이 그리스정교의 비잔틴 제국을 공략하기 위해 발칸의 관문인 아드리아노플을 점령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오스만의 술탄은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고 백성들의 여흥을 위해 장정 40명으로 레슬링 시합을 개최하였다. 아드리아노플 교외의 메말라버린 잔디밭에서 참가자들은 온몸에 올리브 기름을 바르고, 무작위의 대결을 시작하였다. 무릎까지 오는 까만 가죽바지를 입은 선수들이 입장할 때, 누군가가 어린 양 두 마리의 목을 잘라 피를 땅에 적시고 있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일이 신께 바쳐졌을 때, 신이 이스마일 대신 양을 희생케 한 코란의 고사에서 유래된 이 의식은 그후 재앙을 쫓고 행운을 기약하는 민간의식을 정착되었다. 모두들 그 희생양을 넘으면서 무언가 주문을 외우고 경건한 마음으로 벌판으로 나왔다.

생전 처음 보는 씨름 같은 레슬링에 구경꾼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은 벌판을 가득 메운 채 이슬람교와 동양의 이질적인 복식과 관습을 호기심으로 목격하였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 아프게 섞이고, 이질적인 문화와 관습이 조우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두 시간 후에는 선수들의 반이, 네 시간 후에는 12명이, 그리고 또 몇 시간이 흐른 후에는 6명으로 줄어들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최종의 승자를 가리기 위한 두 사람의 시합은 좀처럼 끝날 줄을 몰랐다. 사람들은 지루한 시합을 참다못해 하나씩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잔뜩 찌푸린 날씨 속에 다시 벌판으로 나왔다. 그때까지도 두 사람은 서로 껴안고 벌판 한가운데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자세로 그대로 굳어버린 두 시신을 서로 떼어놓았을 때, 황량하고 가물었던 벌판에서 40개의 물줄기가 솟아오르며 대지를 적셨다. 사람들은 환호를 지르고 새로운 신에게 감사를 드리며 축제를 시작했다.

그리고 634년이 지난 1994년 여름의 마지막 날, 그들은 다시 모였다. 그 옛날 아드리아노플은 에디르네로 이름이 바꾸어져 서양 속의 동양의 땅이 되었고, 40개의 물줄기가 솟아올랐던 황량한 벌판은 비옥한 마을이 되어 '크르크 프나르' 즉, '마흔의 샘물'이란 뜻을 가진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오늘 그들은 생명으로 명승부를 펼치어 신을 감복케 한 이름 모를 두 영웅을 기리기 위해 레슬링 축제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크르크 프나르에 운집한 사람들의 숫자는 줄잡아 1만 명. 그들 대부분은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그리고 독일 등에서 레슬링 축제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귀향 객들이고, 600년 전통의 이 축제를 보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의 숫자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본 시합이 있기 전부터 마을 전체는 셀리미예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중심으로 흥청거리는 열기에 젖어들었다. 인근 마을의 특산물이 몰려든 거대한 시장에서는 전통적인 물물교환 거래가 잃어버린 옛 정취를 일깨워주었다. 내노라 하는 전국의 꾼 들이 각종 볼거리를 갖고 모여들고, 특이한 마술로 유명한 트라키아 지방의 집시들이 군데군데 자리잡아 때묻지 않은 음악과 춤으로 축제 분위기를 한껏 북돋운다.

아침 10시, 본 시합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오스만 시대의 전통 국악대인 메흐테르 연주대가 중앙아시아 시절부터 사용하던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등장한다. 오스만 근위병인 예니체리 복장을 한 악대가 콘스탄티노플 공략을 회상시키는 격동적이고 긴박한 박자의 음률을 선사하면 관중은 열광적인 환호로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문다. 이어 각 지방과 해외동포를 대표한 1천여 명의 선수들이 메흐테르 악단을 따르면서 전통적인 가로행진(앞을 향해 옆으로 세 걸음, 뒤로 돌아 옆으로 세 걸음) 방식으로 들판을 서너 바퀴 돌면서 관중과 선수간의 조우를 계속한다.

선수들은 나이나 몸무게가 아닌 키의 크기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선수들은 상체를 드러낸 채, 무릎 아래까지 오는 가죽바지를 입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전신에 올리브 기름을 잔뜩 바른다. 또한 올리브 기름은 작렬하는 여름의 태양 아래 며칠이고 시합하는 선수들의 피부를 보호하는 기능도 있다.

올리브 기름을 바르는 전통으로 인해 이 경기는 흔히 야을르 규레쉬(기름 레슬링)라 불린다. 시합이 시작되면 전 선수가 한꺼번에 몰려 그룹에 따라 무작위로 두 사람씩 경기를 한다. 경기는 온갖 기술과 힘으로 상대의 어깨를 땅에 닿게 하거나, 상대가 지쳐 쓰러지면 승리하게 된다. 이때 시간은 무제한이다. 반씩 추려지는 방식으로 각 그룹에서 최종 두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시합은 계속된다. 경기시간은 대략 저녁 예배시각(여름에는 저녁 7시경)까지 진행되고 최종 페흘리반(챔피온)을 뽑을 때는 밤새 승부가 날 때까지 속개된다. 상대가 지쳐 쓰러지거나 어깨가 땅에 닿아 최종 페흘리반이 탄생되는 순간, 동시다발적으로 외치는 함성에 의해 에디르네 전체는 축제의 절정을 경험하게 된다.

야을르 규레쉬는 터키 문화의 요람인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하여 오스만 터키의 정복로를 따라 발칸반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이제 중앙아시아 투르크 공화국을 비롯한 터키어권 전체의 보편적인 축제의 양식으로 정착되었다. 어쩌면 애초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우리네 씨름과 같은 형태로 출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09년 일제에 해방되기 직전의 조선을 방문했던 압둘 라쉬드 이브라힘이라는 중앙아시아 출신 오스만 사절은「조선기행」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의 씨름이 중앙아시아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여 같은 뿌리에서 유래된 것이 틀림없다고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의 씨름과 야을르 규레쉬는 아시아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서 서로 다른 민속축제로 민중들의 삶을 적셔내고 있다.

약간은 엄숙한 본 경기의 뒤꼍에는 또 다른 세속의 축제들이 함께 어우러진다. 지켜지지 않는 규범과 질서를 강요받으며 기계적으로 살아야 하는 서민들은 이제 축제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신명이 이는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춤추며 판에 박힌 일상을 떨쳐 버리고 계층을 반전시키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트라키아의 광대들은 갖은 익살과 야유로 권력을 가진 자, 부자, 서민들의 등을 치는 파렴치한 관리들의 비리와 몰인정한 착취를 과장해서 고발하고 서민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준다. 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관중들은 함께 웃고 분개하면서 그 동안 쌓였던 울분을 광대의 해학적 몸짓을 빌어 모두 털어놓는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걸걸한 목소리와 앳된 음성의 두 변사가 공연하는「카라교즈」라는 인형극이 사람들의 발길을 묶어두고 있다. 이미 짝지어 놓은 사랑하는 딸과 애인을 오스만 왕실의 첩으로 보내야 하는 애환을 신파조로 읊어대는 변사들의 음성과 인형들의 간지러운 동작에 따라 관객들의 눈시울은 모두 젖어 있다. 애인을 찾아 떠난 청년이 왕실의 호화로움 뒤에 숨은 비 도덕성을 근엄하게 고발하고, 하렘에서 무사히 애인을 구해내었을 때, 그들은 함께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 포도주 통의 폭발을 막기 위해 가끔 뚜껑을 여러 김을 빼주어야 하는 것처럼, 에디르네의 야을르 규레쉬 축제는 짓눌린 일상으로부터의 공통의 분출과 일시적 도피처를 마련해 준다. 더 나아가 쌓였던 분노의 사회적 분출을 통해 건강한 삶의 회복과 신명나는 사회로의 재통합을 유도해 준다.

축제 5일째 저녁, 바깥의 무질서와 광란의 분위기와는 달리, 셀리미예 사원에서는 세마Sema 춤이 공연되고 있었다. 세마는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이 몰아의 명상과 신에 대한 연속적인 염원을 통해 인간 자신을 신과 완전히 합일시키는 고도의 영적 신비 춤이다. 5백여 명의 관객이 사원 마루를 가득 채운 채 세마 의식에 하나하나 소리 죽여 동참해 갔다. 의식에 참가한 수도자들은 허리가 조이고 통이 넓은 치마 같은 하얀 세마 복을 입고 쉐이크라 불리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마루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쉐이크의 간단한 코란 낭송과 신에 대한 염원의식(지크르)이 있은 다음, 전통악기를 사용한 신비주의 음악이 모두의 심신을 정화해 준다.

모두 25명으로 구성된 공연 수도자들 모두는 원형으로 둘러서서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게 하고 왼손을 내려 땅을 향하게 한 다음 시선을 오른손 끝에 집중시키며 회전을 시작한다. 느리고 명상적인 신비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돌고 돌고 끝없이 돌아간다. 수도자 스스로가 돌고, 전체도 원형을 이루어 오른쪽으로 계속 돌아간다. 스스로의 자전과 전체의 공전이 어우러지는 우주의 조화이다. 세마 춤은 자신과 신의 완전한 합일을 추구하기 위한 영적 고행과 오랜 명상의 과정이기 때문에, 보통 세 시간 이상을 끊임없이 회전하는 고되고 지루한 동작의 연속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신비 음악에 맞춰 함께 명상에 참여하기 때문에 실내는 지극히 평온하고 조용한 상태가 지속된다. 세속을 떠나 신을 만나려는 진지한 인간의 염원이 또 다른 축제의 얼굴로 표현되는 것이다.

축제는 피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저녁 8시, 저녁예배 시각을 알리는 아잔(예배를 위한 코란 낭송)이 울려 퍼지자 마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셀리미예 사원으로 모여들었다. 그곳에서 앙카라에서 오늘 도착한 수상과 규레쉬의 우승자인 페흘리반이 마을 사람들과 나란히 서서 신분의 차이와 빈부를 가리지 않고 함께 신께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의 예배를 드린다. 축제기간 중 특별 가석방된 그들의 아들과 아버지들도 모두 예배행렬에 서 있다. 내일 해가 밝으면 그들은 다시 일상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고향을 찾은 도회의 자식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삼삼오오 기차에 몸을 싣고, 다시 돌아온 탕아들은 공동체 전체의 따스한 배려와 모두의 관심으로 크르크 프나르 논밭에서 땀을 흘리게 될 것이다. 오늘 저녁은 지난번 잡은 양고기를 통째로 진흙 구이한 쿠유케밥과 신선한 요구르트로 모처럼 전 가족이 이별을 겸한 아쉽고 즐거운 식사를 가졌다. 텔레비전에서는 오늘 낮에 있었던 페흘리반 시상식을 주요 뉴스로 전해 주고 있었다. 금년의 페흘리반이 된 도안 아크다으는 앞으로 1년간 크리크 프나르의 우상으로 터키의 영웅으로 터키 사람들의 가슴속에 신화와 축제의 전형으로 살아있게 될 것이다. 마을 전체는 집집마다 거리마다 밝혀진 초등의 불빛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