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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극에 대한 두 여성작가의 접근

-물고기의 축제, 첼로




김성희 / 연극평론가, 한양여전 교수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의 연극계에서, 참신한 공연으로 주목을 모은 작품은 우연히도 둘 다 여성작가가 쓴 가정 극이었다. 한 작품은 재일 교포 작가인 유미리의「물고기의 축제」이고, 다른 작품은 정복근의「첼로」이다. 이 두 작품은 가정의 붕괴를 문제삼고 있다. 얼마 전에 공연했던 윤대성의「이혼의 조건」도 우리 사회가 직면한 부부의 갈등 및 이혼문제를 희극적 스타일로 다루었던 작품이다. 이제 이혼이나 부부간의 갈등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가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상황이 된 우리 사회에서, 연극이 우리 사회의 변화하는 가정모럴과 결혼관, 전통적 규범과 변화한 자아의식 사이의 갈등, 그리고 가정의 붕괴로 인한 아픔과 상처를 진지하게 문제삼을 때인 것 같다.

「물고기의 축제」와「첼로」는 또한 가정의 붕괴란 동일한 문제의 추구에 있어 일본적 감수성과 우리 한국적 감수성의 차이를 선명히 대비적으로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연의 측면에서「물고기의 축제」의 경우 일본적 연극미학과 감수성이 바탕이 된 독특한 분위기가 선명하게 형상화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또「첼로」는 근래의 우리 연극에서 드물게 보는 세련된 연극적 이미지와 감성을 보여주었지만, 대신 희곡이 문제삼은 '간통', 중년 기혼남녀의 금지된 사랑이란 소재가 심리 극적 측면으로든 사회문제 극적 접근으로든 더욱 철저하게 파헤쳐지지 못한 아쉬움을 주었다.

극단 민중의「물고기의 축제」(윤광진 연출)는 부모의 이혼과 형제의 별거로 뼈아픈 가정의 붕괴를 체험하고 실어증에 걸렸다가 글을 쓰면서 극복하고 또 자살을 7번이나 시도한 바 있는 재일 교포작가 유미리의 자전적인 작품이다. 동시에 이 작품은 2년 전 일본 최고 권위의 희곡상인 기시다 희곡상 최연소 수상(24세)이란 영예를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 극은 그녀의 일관된 테마인 가정의 붕괴와 죽음의 문제를 매우 서정적이고 그로테스크한 극사실주의 풍으로 다루고 있는데, 가장 내밀한 관계인 가족관계에서의 아픈 상처를 조명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근원을 응시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극은 이틀에 걸친 장례식과, 그 때문에 12년만에 한자리에 모인 단절된 가족의 모습과 애증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막내 후유오의 돌연한 죽음을 계기로, 헤어져 살던 가족들이 어머니의 집에서 재회한다. 그러나 이 극은 16년 전 여름 바닷가에서 가족사진을 찍던 단란한 모습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이 가족사진은 죽은 후유오의 일기장에서 찢어진 채로 발견된다. 그의 일기를 읽거나 서로 공통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도박에 빠진 아버지(우상전), 카바레 여급으로 일하다 두 자식을 데리고 가출한 어머니 마사코(김헤옥)에 대한 자식들, 혹은 부부간의 애증이 격렬히 교차한다. 결국 후유오의 죽음은 온 가족을 한자리에 불러모으기 위한 계획적인 자살이었음이 밝혀진다. 장례를 다 치른 후 가족은 16년 전의 바닷가에서처럼 단란한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이때도 극의 처음에서처럼 아버지가 "키순서로 서"라고 권위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이들의 재결합은 사실 그리 밝지 않음을, 그래서 다시 똑같은 과정이 되풀이될 것임이 암시된다. 이 가족의 붕괴와 애증은 부모의 근1본적인 성격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극은 극의 시작과 마지막에서 바닷가에서의 가족사진을 위치시킴으로써 가족의 결합의 갈망을 인상적으로 투영시킨다. 그러므로 온 가족을 재회시킨 후유오는 직접 행동하는 인물로 등장하진 않지만, 자신의 죽음을 제물로 가족의 결합을 소망하는 제사라는 극 전체의 주제의식을 상징하는 인물의 기능을 수행한다.

무대는 마사코 집의 거실을 중심으로, 전면에 관이 놓여 있다. 어두운 색조의 사각형의 무대장치(이학순) 역시 하나의 커다란 관을 연상시킨다. 창문을 굳게 닫고 에어컨을 세게 튼 이 거실은 또한 이 가족의 비 일상적인 폐쇄성과 단절감을 상징한다. 헤어져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시에 만나며 살아온 큰딸 유리(서주희)만이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불러들인다. 그녀가 창을 열 때, 매미소리가 시끄럽게 쏟아져 들어오고 동시에 가족들은 그 동안 회피해왔던 서로의 얘기를 꺼내며 비로소 서로의 유대관계와 그리움을 확인한다.

이 극에서 일본적 감수성과 분위기를 나타내는 인상적 이미지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작가의 자전적 체험이기도 한 일본적인 자살의 미학이 이 극의 중심이미지요 주제의식을 이루고 있다. 자신을 죽여 온 가족을 불러모으겠다는 '물고기의 제사' 상징이나 혹은 아버지가 사온 수박을 유족이 야구방망이로 깨뜨려 그 조각들을 먹고 씨를 멀리 내뱉는 시합을 벌인다든지, 관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지 않고 에어컨바람으로만 냄새를 없애려하는 모정, 아들의 사망소식을 듣자마자 화려한 화장을 하고 빨간 드레스를 입은 어머니의 묘한 심리, 집으로 바로 달려오는 대신 수박을 사며 도박기계에 대한 비밀을 알려주는 아버지의 심리 등, 이 극엔 정상적인 유족의 행동과는 확연히 다른 그로테스크한 인간의 심리와 행위들이, 그러나 보편적 공감을 얻도록 형상화되어 있다.

연출은 많은 조각난 장면들을 신속하고 매끄럽게 연결하여 다층 적인 인물들의 정서적 교차를 무난하게 표현해냈다. 적역을 맡은 배우들의 앙상블도 이 극의 독특한 감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 해내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가족간의 애증이란 보편적 문제를 생생한 감성과 이미지로 표현해낸 이 극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무대상징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폐쇄된 방과 외부세계, 찢겨진 가족사진과 사진조각을 맞추는 행동의 상징적 대비, 장례식의 진행과 산 자의 먹고 마시고 임신한 일상적 행동의 대비 등, 즉 죽음과 삶의 순환, 가정의 붕괴와 소생의 소망이라는 모티프들의 대비가 강렬한 이미지와 연극미학으로 형상화되지는 못한 것이다. 이는 극의 진행을 스토리 텔링 중심으로 평면적으로 끌어간 데 일차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대비를 강렬한 빛과 어둠이란 조명의 대비를 통해, 또 숨막힐 것 같은 긴장과 이완의 리드미컬한 연기력의 구축을 통해 좀더 탐미주의 적으로 부각시키지 못한 데에도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극단 전망의「첼로」(한태숙 연출)는 '간통'이란 소재로, 중년여성의 새로 찾은 사랑의 아름다움과 불안한 홀로 서기의 선택을 첼로의 매혹적인 연주와 교차시켜 표현한 연극이다. 거칠게 만들어진 연극들이 난무하는 요즈음, 이 공연은 모처럼 미학적으로 세련된 이미지와 연극적인 감성을 보여준다.

이 극은 간통죄로 고소 당한 두 중년 남녀의 각각의 진술로부터 시작한다. 이들이 진술을 하는 사이사이, 혹은 그들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거 시제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 사이사이에 첼로의 고혹적이면서도, 때로는 어두운 연주가 끼어 들어 그들의 사랑이나 상황을 표현한다. 사랑을 느낄 수 없었던 남편으로부터 헤어나고 싶었던 윤희(윤소정)는 집을 고치는 공사를 하면서 그 공사를 맡은 정수(장두이)를 만난다. 정수는 윤희 삶의 생명력 없는 부자연스러움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는 야성, 자연스러움의 남자로 그녀에게 다가온다. 그들의 사랑은 이전에 윤희가 속해 있었던 문명이나 제도나 중산층의 속물스러움과 대비되는 '자연'. 혹은 본능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규범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에 단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극은 간통이라는 극히 통속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인간의 삶의 선택을 사회제도적 규범만으로 규제하고 처벌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도 심각한 가정 내 갈등과 사랑 없는 결혼이 전통적인 도덕관과 가정에 대한 의무감만으로 더 이상 견고하게 지켜지지 않음을, 즉 자신의 자아 찾기가 안정된 가정생활보다 더 소중한 가치로 자리잡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극은 이 문제를 사회 문제 극적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 극은 이미 결혼한 남녀가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혼외정사를 불가항력적인 만남의 신비로, 그러나 종국엔 현실의 덫에 걸려 서로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그리고 여주인공이 사랑 없는 결혼보다는 법정형을 받고 자유를 선택하는 변화 과정을 그린다. 그리하여, 현실적인 안정된 조건을 버리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 홀로 서기를 선택하는 여성의 '자아 찾기'를 제시한다.

창살이나 문을 상징하는 격자 두 개만을 사용한 텅 빈 무대에서 연출은 그 소도구의 이동과 배치, 또 흰 천만의 활용으로 극히 상상력이 풍부한 연극적 에너지가 넘치는 무대를 창조해냈다. 정수가 파바로티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나 이들의 사랑의 장면은 연극의 매력을 십분 보여주는 뛰어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적역을 맡은 윤소정의 연기, 극히 세밀하게 계산한 정열과 절제가 균형을 얻은 장두이의 연기는 극적 긴장과 흡인력을 만들어낸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 극에서 취약한 점은 희곡에서 발견된다. 간통문제에 대한 사회문제극이 아니고, 금기에 저항하는 불가항력적인 사랑과 현실과의 갈등을 그린 심리극이라면, 마지막에 정수가 윤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결정이 보다 설득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동기가 선명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맹인이 유전적 요인이 아님에도 유전으로 설정하여 정수가 아내와 두 딸을 버릴 수 없는 이유로 암시한 점이라든지, 많은 단편적인 유년기억들이 주제의식을 부각시키는 강렬한 상징성을 지니지 못하고 오히려 주제의식을 흐리게 만든 점을 들 수 있겠다.

「물고기의 축제」가 가정의 붕괴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자살의 미학'을 그린 일본정서에 바탕을 둔 가정 극이라면,「첼로」는 안정된 가정을 버리고 자신의 사랑이나 자아 찾기를 추구하는 변화된 한국적 여성상과 정서를 반영하는 가정 극이다. 이러한 정서의 특성을 제대로 포착하여 효과적인 무대상징과 철저한 작가정신으로 창조해낼 때, 한 차원 높은 가정 극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