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김일성 사후 북한의 문화예술, 그 변동의 예측

구호가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정치적 논리

-80∼90년대 북한의 영화




최척호 / 내외통신 차장

마침내 개막된 김정일 시대

북한에서 마침내 김정일의 시대가 개막됐다.

김정일 시대의 개막은 전체 북한사회의 필연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광으로 오늘날의 위치에 이르렀지만 통치방법이나 인맥, 그리고 사고방식은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 예술계쪽은 정치 경제 등의 분야와는 달리 큰 변화를 나타낼 것으로는 보이지 않고 있다. 김정일이 후계자 수업을 받던 시절인 70년대 초부터 문예계를 장악, 20여 년 동안 직접 관장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예계의 인맥이나 정책 등은 20여년 이상을 김정일의 취향에 따라 형성했고 또 수립돼왔다는 것이다.

1973년에 발표됐다는 「영화예술론」이 아직도 북한영화제작의 '바이블'로 통용되고 있는 점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김일성의 이른바 '주체사상과 주체적 문예이론을 영화분야에 독특하고 구체적으로 적용시켰다'는 이책은 모두 8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또 「문학론」, 「음악론」, 「미술론」, 「건축론」등 김정일이 저술했다는 각 문예이론서가 역시 각 해당 분야에서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의 문예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또 하나의 근거로는 지난해 7월 김정일의 주도아래 '제2차 문예혁명'의 이 이미 선언됐다는 점도 제시되고 있다 '제2차 문예혁명'의 가장 큰 특징은 문예물의 중심주제를 주민노동계급화 및 혁명화에서 김정일체제 보위의식 함양으로 옮긴 것이었다

즉 그때부터 이미 김정일을 명실상부한 북한의 통치자로 설정하고 모든 문예물의 주제를 그에 맞추어 발표키 위한 '실천적 조치'로 '제2차 문예혁명'이 선언됐다는 것이다.

영화 「군인선서」, 「고마운 처녀」 등과 함께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 「우리의 아버진 김정일원수님」 등 철저한 김정일 개인 찬양물이 주류를 이루었던 점이 바로 그 근거이다.

이와 함께 김정일이 유년시절 창작했다는 동요 동시들이 잇달아 발굴돼 발표된 대목도 그와 관련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공화국 깃발」, 「초상화」등인데 이 작품들은 우리나라시가 문학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 기발은 어떤 기발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 불멸의 기념비적 명작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처럼 큰 줄기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약간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정일의 위상이 제 2인자에서 1인자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예정책도 이제는 '통치자'의 입장에서 다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과거와는 조금이라도 다른 면모를 보여 주어야 할 입장이라는 것이다.

김정일 시대를 맞아 예상되는 북한 문예계의 변화로는 우선 주제와 소재의 다양화가 꼽히고 있다.

이 예상은 사상성을 정면으로 강조한 기존의 작품들이 특히 청소년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점이 큰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역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이고 90년대 들어 김정일이 사실상 '내정'을 관장할 때부터 사상성은 밑으로 깔고 남녀간의 애정을 정면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많이 등장 한 것이 그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사랑의 물소리」, 「종달새」 등이 이 부류의 작품들이다.

또 「거대한 날개」, 「나를 보고 있소」, 「이 나라 여인들」 등 90년대 들어 발표된 소설들이 북한의 작품치고는 애정묘사가 비교적 대담했던 점도 앞으로 북한 문예물와 소재가 다양화 될 것이라는 예측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그는 아연해 있는 보옥을 다짜고짜로 끌어 안았다. 보옥은 부끄러웠다. 부끄러우면서도 온몸과 얼굴로 그 품속에 더 깊이 파고 들었다', '오늘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미색 바지에 까만 바지를 입었을 뿐인데 그것이 이 세상 어느 처녀도 따를 수없는 세련미를 나타냈다 처녀의 이와 같은 아름다움은 림욱이로 하여금 야릇한 위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늘씬한 키, 미출한 다리, 설렁한 목…'(「거대한 날개」중에서)

이와 함께 가요쪽에서 김정일이 이끄는 북한체제를 밝고 명랑한 사회'로 묘사한 템포 빠른 노래가 많이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파악되고 있다.「휘파람」, 「도시처녀 시집와요」 등이고,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북한에서는 아직까지도 금기시 되어 있는'삼각 애정물'의 등장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점치고있다.

김정일의 영화에 대한 집착

김정일이 영화에 가장 관심을 기울이던 지난 80년대 중반 실패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북한 영화계일각에서 남녀간의 삼각관계를 다룬 애정물을 제작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소재와 주제의 다양화 다음으로는 신인들의 진출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신인들의 활발한 진출이 예상되는 것은 김정일이 문예계의 원로 및 중견인물들을 대부분 못마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과 관계가 있다. 북한 문예계의 기틀을 세우고 이끌어온 공로는 있으나 '무사안일'에 빠져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에 있었던 '제2차 문예혁명'의 명분도 바로 문예계 원로들의 '무사안일과 나태'였다 .김정일은 이에 대해 "일부 창작가들 예술인들 속에서 문화예술 혁명이 이미 70년대 끝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일부 창작가들은 지난 시기에 쓰던 창작방법 창작태도를 구태의연하게 되풀이하면서 우리 시대 주인공들이 지니고 있는 의식성을 진실하게 그리지 못하고 있다'고 강도있게 비판했다.

이 '제2차 문예혁명'은 극영화 「민족과 운명」 시리즈가 발단이 됐고 실지로 이 영화에는 과거 북한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장면과 노래들이 등장, 화제를 모았었다

조명이 휘황한 한국의 카페 풍경과 그 카페에 노래부르는 여가수, 그리고 한국의 대중가요 등o다.

이에 따라 이 영화는 내용은 상투적인 북한체제 찬양물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주민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고, 특히 이 영화에 삽입된 우리의 대중가요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아직까지도 널리 불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민족과 운명」에 삽입돼 유행하는 우리 노래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그때 그 사람」, 「낙화유수」, 「흥도야 우지마라」 등이고 「낙화유수」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애창곡으로 소개되고 있다.

또 이들 노래 외에 「바람 바람 바람」, 「이별」「타향살이」, 「언제라도 갈테야」 등도 북한 청소년들이 즐겨 부르는 우리의 대중가요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바람 바람 바람」 등은 중국의 연변지역에서 유행하다 북한으로 들어갔고, 그래서 북한에서 연변가요 라고 불리우고 있다.

영화 「민족과 운명」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한국에서 상당한 지위를 지녔다가 해외로 망명한 뒤 다시 친북노선을 걸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고 앞으로 50부까지 제작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이 영화는 김정일이 직접 제작에 간여한 마지막영화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현재는 18부까지 공개됐다.

김정일은 이 영화제작 과정과 '제2차 문예혁명' 선언 직후 '앞으로는 내가 직접 영화제작이나 문예물 창작에 직접간여하기 어렵다'고 강조했었다.

한편 주제와 소재의 다양화 및 신인들의 활발한 진출 예상과는 달리 김일성 · 김정일 찬양물은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체 북한 문예계의 '변함없는 가장 중요한 테마'인 데다 김정일 후계체제 당위성 및 기반확대와 가장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서이다.

이미 이러한 조짐은 나타나고 있는데 지난 7월 8일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 찬양영화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지난 7월 8일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 찬양영화로만 4편이나 공개된 것이다. 극영화 「병사는 모교 돌아왔다」, 「맹세」, 「방패」 등 3편과 기록영화'은을 내는 8월 3일 인민 소비품」이다.

이 영화들은 물론 김일성 사망 이전 모두 기획된 것이기는 하지만 내용이 모두 김정일 찬양 일색이어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제작기간을 앞당겼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병사는 모교로 돌아왔다」는 청춘과 목숨을 김일성을 위해 다 받쳤다는 '조금실'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특히 북한 청소년들의 대 김정일 충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방패」는 김정일이 이끄는 북한체제를 파괴하려는'적(7출'들의 작전을 저지하는 북한 사회안전부 요원들의 활동상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이 「방패」는 1부 접선' 2부 검토로 나뉘어져있고 여기서 북한 사회안전부 요원들은 물론 김정일에게 '끝없이 충직한 혁명전사'로 그려져 있다.

기록영화 「은을 내는 8월 3일 인민 소비품」은 김정일에 의해 창안됐다는 '8·3인민 소비품을 내세워 김정일의 이른바 '영도력'을 찬양한 내용이다. 이와 함께 김정일 찬양물로는 그의 과거 행적을 과대 포장한 작품도 많이 나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김일성 우상영화인 「조선의 별」및「민족의 태양」 시리즈 같은 것이다.

이 「조선의 별」과 「민족의 태양」시리즈는 김일성의 과거 행적을 연대기식으로 영화화 한 것이고 소설「불멸의 력사」시리즈가 이의 원전에 해당하고 있다.

기록영화 쪽도 마찬가지로 보이고 있고 지난 8월 중순 개봉된 「충성의 불길」이 이의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충성의 불길」은 올 연초에 열린 제8차 사로청대회를 김정일의 과거 행적과 함께 담아 청소년들의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한 내용의 영화이다.

반면 김일성 우상물로는 그를 단군'과 비견하는 작품이 주류를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른바 건국〓김일성' 등식을 성립시켜야만 조선민족 중흥〓김정일'이라는 구호가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정치적 논리가 그 배경이다.

북한이 김일성 사후에도 평양서 발굴됐다는 단군릉을 대대적으로 복원하고 있는 점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결국 김정일 시대의 북한 문예계는 총론에서는 큰 변화가 없겠지만 각론에서는 김정일 개인의 취향과 정치적인 배경으로 조금은 김일성 시대보다는 다양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