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김일성 사후 북한의 문화예술, 그 변동의 예측
김정일 위한 새로운 신화 만드는 예술형태의 등장
좌담회 참석자 : 이중한(서울신문 논설위원),
홍정선(문학평론가, 인하대 교수),
구히서(연극평론가, 전 일간스포츠 문화부장)
사회 : 홍보조사부장
좌담회 장소 : 문예진흥원 회의실
사회자 : 바쁘신 중에 참석해 주신 세 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도 이미 아시는 것처럼 얼마 전에 북한의 김일성이 근 반세기 만에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이 그 대를 이어 권좌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북한의 문화예술 정책을 직접 챙긴 사람일뿐만 아니라 창작에까지 여러 형태로 간여해 온 사람입니다. 이같은 사람이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앞으로 북한 예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진 정보들을 바탕으로 삼이 문제를 한번 논의해 보고 싶습니다.
구히서 : 그같은 논의를 목적이라든지, 이상이라든지, 취향이라든지 이런 것과 관련해서만 얘기하면 결과에 대해서 사람들이 착각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결과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회자 : 민족가극 「춘향」과 같은, 김정일이 관여해서 만들어진 작품들에 대한 것을 구체적인 결과로 점검해 보자는 얘기이겠죠?
구히서 : 어떤 한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이렇게 이렇게 향상됐고, 무대는 이렇게 이렇게 됐고 하는 식의 점검이 어떤 식으로든 자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사회자 : 구선생의 말씀을 충분히 염두에 두도록 하지요. 그럼 북한예술의 흐름이라든가 세부내용을 잘 정리하고 있는 홍선생님을 모셨으니 우선 80년대 이후 김정일이 드러나기 시작한 때부터 시작해서 김일성이 죽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홍선생이 먼저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좌담이 풀려 가리라 봅니다.
홍정선 : 이 문제는 이중한 위원께서 잘 알고 계신 줄로 압니다.
이중한: 김정일은 80년대에 당선전선동부장이 되기 시작하면서 문화예술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1980년 이후에 「영도예술」 같은 책자를 내고 창작단을 직접 지휘하고 영화를 만드는 데 참여하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조선의 별」과 같은 20부작 대작영화가 그 대표적 예입니다. 북한은 문화예술 정책이 곧 작품으로 되어 나오는 나라이며, 아까 구선생님이 이야기 하신 대로. 정책이 서면 실현이 되는 나라입니다. 이런 문제를 고려하면서 북한 문화예술 정책의 흐름을 정리해서 이야기하면 김정일이 주석 지위를 승계 했을 때 나올 어떤 구상을 우리로서는 감지하거나 예측할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홍정선 : 김정일이란 사람이 김일성이라는 해가 없어진 뒤에도 과연 빛을 스스로 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냐.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문화예술 쪽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가능한 답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적 맥락을 짚어봐야겠지요. 북한의 문화예술은 50년대 말에 상당한 변화를 겪습니다. 1959년경부터 항일혁명 예술이라고 하는, 김일성의 빨치산 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이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주체사상이 등장하면서 이 주제는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변함없는 주제와 함께 북한예술의 제일 중요한 것이 되지요. 김정일의 활동은 김일성 중심의 이 같은 예술이 주체사상으로 규정되기 시작하는 70년대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것은80년대에 들어와서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문학 쪽의 경우 1980년 1월에 제3차 조선작가동맹대회가 열리는데, 이때 김정일이 당중앙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예술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후 북한의 문학작품은 넓게는 수령 일가, 좁게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예찬하는 방향으로 점차 방향을 잡아가는데 이것은 아마도 권력이양의 작업과 밀접히 관련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때 강조된 것이 혁명과업, 혁명적 전통의 계승이지 새로운 전환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전환은 현재 김정일이 짊어져야 할 과제이지요. 물론 우리는 1980년 1월의 대회에서 김정일이 숨어 있는 평범한 영웅을 그리라는 교시를 내렸고 이런 것은 김일성 중심의 항일혁명 문학에서 볼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나는 뛰어난 영웅을 그리던 문학과 달라지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또 김정일이 역사시대 이래 최고의 예술이론이라고 북한이 내세우는「종자론」을 낸 되어 있고, 이 이론은 단순히 예술분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상적인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을 김일성 중심의 주체사상을 대체하는, 예술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것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기 보다는 주체사상의 커다란 우산 아래서 김정일의 역할을 키워주는 방식이라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따라서 김정일은 단기적으로는 주체사상의 그늘아래서 그것의 보호를 당분간은 여전히 필요로 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항일혁명 세대들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갈 것입니다.
이중한 :저는 김일성, 김정일만이 아니라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예술은 두 측면으로 구분해봐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메시지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형식에 대한 부분들입니다. 메시지에 저항감을 가진 예술인들은 예술형식에서 완성도를 높여 가지고 형식에 난이도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갔어요. 우리는 메시지와 관계없이 예술을 지켜온 이런 노력을 폴란드나 다른 공산권에서 많이 찾을 수가 있어요. 그러므로 북한의 모든 예술작품들도 이 두 측면에서 볼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그걸 아무도 안 보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저는 북한이 주장해온 주체사상을 예술형식에서도 노력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주장해온 주체화에 형식 부분을 교류에 들고 나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술적 과제도 형식의 난이도 측면, 완성도 측면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즉 메시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형식이 중요하다는 것 입니다.
사회자 : 이 선생님의 형식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생각이 나는데요. 북한이 80년대 후반에 예술부분에서의 혁명적 성과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첫째가 무용표기법입니다. 김정일이 직접 지시를 해서만든 것이지요. 두 번째는 아버지 시대의 혁명가극에서 「춘향전」을 필두로 하는 민족가극의 시대로 재편성을 한 것이 김정일의 지시였다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로는 그들이 자랑하고 있는 중요한 것의 국악기의 전면적인 개량입니다. 거꾸로 이야기가 김정일과 관련된 예술 형식에 깔린 사고방식이 남북한 문화교류와 바로 연결이 된다고 하는 것인데 부분에서 김정일에 의해 제안될 남북교류의 아이템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지를 점검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중한 : 메시지 부분에서 보면 교류문제는 이미 승부가 나 있어요. 어떤 의도가 담긴 출판물을 우리가 허락 없이 비공식적으로 수백 편 출판물로 만들어서 시중에서 팔아보았는데 우리 시장에서 모두 실패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메시지에 관해서는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도 우리 생각은 저쪽에서 이런 작품을 가지고 오니까 우리도 어떤 내용을 준비하겠다, 쉽게 이야기해서 저쪽에서 노래 네 곡을 부르니까 우리도 노래 네 곡을 준비해야겠다. 그런 발상법은 뛰어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그 대신 형식문제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구히서 : 그런 문제에서 우리 쪽 책임자나 정책자, 예술가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분야가 바로 공연예술 같아요. 공연예술 중 영화나 연극일 경우에는 그래도 말로 설명이 되기 때문에 덜 속을 수가 있어요. 그렇지만 무용이나 음악일 경우에는 의미 파악이 어렵잖아요. 지난번 평양 예술단 공연 때 공연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주로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맨 정부의 고위 공무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문화예술인 관객보다 더 많았지요. 평양에서 공연단이 온다고 그러니까 호기심이 발동해서 평소에 극장이라고는 한번도 안 가보던 양반들이 와 몰려온 것이지요. 그런데 그 양반들 일반적인 반응은 굉장한 놀라움과 찬탄이었어요. 제가 보기에는 한 개인의 취향에 의해서 완전히 다듬어진, 그리고 고도로 훈련된 것 이상이 아닌데 말입니다.
형식이라든가 기술적인 면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것이 결코 아닌데도 그 규모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압도한 겁니다. 그렇게 집약해서 내놓은 분량과 규모에 놀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걸 볼 때우리 민족과 예술이 앞으로 가져야 될 어떤 이상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북쪽이 자랑하는 분량이라든지 테크닉 앞에 노출시켰을 경우는 아마 초반에 밀릴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홍정선 : 북한사회는, 비록 이념을 내세우긴 했지만 한 개인이 오랫동안 절대권력을 휘두른 곳이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이 문화예술에도 분명히 작용했겠지요. 개인적인 취향이 곧 공공의 취향이 되는 경향이 있었을 테고‥‥‥ 북한의 대중가요인 인민가요들이 해방 직후와 전후의 정서에 멈춰 있는 것도 사실일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김정일의 예술적 취향, 예술적 분위기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문화정책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요. 그 반대로 앞으로 나오는 문화예술을 통해 그 취향을 읽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이런 점에서 김정일은 영화에 상당히 빠져 있다고 하니까 이 분야가 교류의 우선이 될지도 모르지요.
이중한 : 김정일은 신상옥 감독을 데려갈 정도로 영화광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하고 비교해도 영화에 관한 한 우리한테 대단히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돼요. 그러므로 오히려 영화교류가 쉽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김정일 교시하에 만들어진 영화 영역에 대한 연구가 문학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문학은 공식적으로 교류를 하지 않더라도 여기에서 출판되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미 교류가 이루어졌다고 봐야지요.
이중한 : 그럼요. 교류가 된 겁니다. 저쪽만 안된거지 우리는 이미 되고 있는 거죠.
구히서 : 저는 국민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북한소설을 보았어요. 6.25때 그 사람들이 가지고 나온 건데 읽으면서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식으로 역사를 보고 작품을 쓰면 이게 무슨 역사고, 문학인가 생각했어요. 그후로도 그랬고, 가장 최근에 「고구려사」를 읽었는데 한 줄도 못 읽겠더군요.
사회자 :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기상이 높았던 시대는 고구려시대입니다. 김일성 교시가 그렇게 시작했죠.
홍정선 : 북한의 문학은 우리나라 독자들한테 이미 검증을 받았고 어느 정도 평가를 끝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문학적 감수성은 아마 연변 쪽과 상당한 유사점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즘 연변 쪽에서 우리 문학작품들이 펼치고 있는 긍정적, 부정적 위세를 생각해보면 교류가 되었을 때의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자 : 조금 전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김정일의 취향문제를 좀 더 이야기해 봅시다. 이런 취향이 공연예술에서 구체적으로 감지될 수 있나요?
구히서 : 목소리의 컬러나 사운드의 종류나, 움직임의 기본틀 모두 한 사람의 유치한 취향에 의해서 좌우된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북한에서 공연되는 모든 춤의 발상을 교태의 몸짓으로 받아들였어요. 손짓, 발짓, 목소리 등 모든 게 그렇게 간드러질 수가 없더라구요.
이중한 : 김정일이 문학을 국민계도 차원으로 쓰도록 지시는 했지만 관심을 가지고 다 읽었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김정일의 예술적 취향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거듭 강조하지만 영화예술이라고 봐요. 영화는 김정일이 직접 보고 매력을 느낀 것이기 때문께 중요하죠. 그런데 그쪽의 영화를 읽을 능력이 우리에게 있느냐 하면 그렇지가 못하다고 봐요. 왜냐면 우리는 여태까지 영화를 사상적인 면, 즉 메시지 쪽으로만 분석을 했기 때문이죠. 영화를 기법상으로 분석한 것도 없고, 영화의 완성도도 분석한 일이 얼기 때문에 문제가 되죠.
사회자 : 그렇겠군요. 김정일은 우리 영화를 거의 다 보았고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 외에도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이중한 : 예를 들어 신상옥, 최은희씨를 데려가고 황석영씨를 어떤 이유에서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고 분석해야 하는데 지금껏 한번도 그 이유에 대해 따져본 일이 없는 거예요. 윤이상씨를 수용하고 황석영씨를 만나고 신상옥씨를 납치하고 그러는 일련의 과정들이 사실은 정치적 프로그램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야 하는데 안하고 있다는 거죠. 지금까지 우리는 남북한 예술교류를 하는데 있어서 양적 등가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북쪽에 「피바다」가 있으면 우리도 「피바다」 같은 것을 만들어 보자 이렇게 나갑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 단순한 발상이라고 봐요. 우리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작품의 교류는 어떻게 보면 별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죠. 서로 전혀 모르는 관계라면 작품의 교류도 의미가 있지만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작품보다 사람교류가 중요하죠. 그러니까 박경리씨가 가느냐, 황석영씨가 가느냐는 의미가 크다고 봐 야죠. 토지가 가는 게 아니고 장길산이 가는 게 아니다 이거죠. 우리가 연구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가 사람에 대한 거죠, 물론 사람이라는 게 예술적 성과를 통해서 만들어낸 어떤 이미지를 가진 예술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사람을 교류하려고 할 경우에 우리는 저쪽의 예술가들을 모른다는 거죠. 작품 이름은 몇 개 외우고 있지만 저쪽의 작가들은 몰라요. '주제'가 정해진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니까 ABC가 다 같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북쪽의 어느 예술가를 데려와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아는 사람이 없어요.
구히서 :저는 북한예술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 작품이나 내가 얻은 정보에서 보고 판단하는 것, 그리고 우리 것과 비교해서 보는 것과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될 것인가 하는 네 가지 측면에서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일반적으로 막연히 가지고 있는 생각은 예술이라는 것은 경직된 속에서 색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인 인권 운동가가 북한에 들어가서 대단한 환대 받고 나와서는 결국 CIA에 가서 자수를 했는데 북한 체제를 뭐라고 표현했느냐 하면은 THlRD GRADE DICTATORSHIP 이라고 표현했어요. 그건 좀 창피하다, DICTATORSHIP이라도 되었으면 좋을 걸 하고 농담을 했읍니다만 THIRD GRADE DICTATORSHIP이 지배하고 있는 그 사회라면 아까 말씀하신 대로 한 개인의 취향이 예술계 전반을 지배할 거라는 그런 의미죠. 예술은 그 속에서는 참다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는 생B정치체제가 예술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거라는 기·개념이 제게 있었어요. 둘째로 제가 본 것은 6.25때 그 사람들이 가지고 내려온 소설책을 어렸을 때 보았고, 그 다음으로 본 것은 평양예술단이 서울에서 보여준 무용과 음악공연이었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얻어 본 필름하고 여기서 발행된 책들 읽은 거, 그리고 「고구려사」인데 제가 몇 페이지도 못 보고 포기했어요. 이런 상태에서 제 판단은 책이나 이런 것은 금방 결판이 날 것 같고 문제는 공연예술인데 그 사람들의 춤이라는 게 뭐냐면 완전히 최승희가 만들어놓은 '작품'이거든요. 우리 쪽 사람들이 흔히들 최승희를 한국무용가로만 생각하는데 최승희는 전통을 발전시킨 현대무용가지 우리가 이해하는 전통춤을 그대로 추는 한국무용가가 아니죠. 전통을 전시킨 현대무용가가 전통에서 자기의 작품 아이디어를 끌어다가 발전시킨 겄이죠. 그게 우리의 전통적인 한국무용과는 엄연히 다르거든요. 그러니까 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문제나 우리의 현재 무대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이 있고, 그런 면에서 공연예술이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장르인 거죠. 창작예술 전반에 걸쳐 미술이라든지 문학보다는 공연예술 전반이 제일 시야가 좁은 지역이고 정리가 안된 부분이죠. 단일 체제하에서는 한 사람의 취향에 의해서 돈이 투자되고 인력이 투자되고 그렇게 해서 완성된 무대가 하나 있으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차례차례 다 볼 거예요, 우리는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다 보는 작품은 없어요. 이처럼 공연예술 전반이 우리에게는 일반화되지 못했고, 관객 계층이 얇은 이런 상태에서 대응해서 만들어진 무대를 서로 주고받을 때 우리는 허둥거리고 별 발광을 다 해야하죠. 서울예술단이 만든 걸 보니까 꼭 그런 식인데 그런 개념으로는 상대가 안된다고 봐요.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문화교류라는 것을 오히려 노파심을 가지고 꼭 저쪽에 대응작품을 만들겠다면은 차라리 동숭동에 외설인지 뭔지처림 마음대로 입장료 받고 하라고 놔둔 것처럼 오히려 그냥 자유롭게 사람이 왕래할 수 있게 터주는 게 제일 필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으로 대항하려고 했다가는 큰일 난다고 봐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평양예술단 공연을 보고 감탄하는 관리들을 보고 절망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사회자 : 실례로 1985년 모 장관께서는 거기에 필적할 만한 작품을 직접 쓰시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구히서 : 그게 바로 맹점이에요. 여기는 그런 사회가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물론 우리가 문화정책에 대해서 너무 돈을 안 쓰는 건 사실이에요. 그것은 자각해야 되지요. 민주국가고 공산국가고 통틀어서 세계적으로 봐서 우리가 문화에 대해서 돈을 안쓰는 나라임에는 틀림없으니까 그것은 증진시켜서 발전시켜야죠. 그렇다고 해서 별안간 그것을 한 작품에 투자해서만든다는 게 말이 안되죠.
사회자 : 지금 두 분께서 이야기하시는 게 작품 교류보다는 사람 교류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과 여기에서 우리 체제에 잘 맞는 작품이라면 조그마한 작품이라도 그런 것을 선택해야지 대형논리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구히서 : 통일독일도 문화교류 할 때 몇 년을 두고 사람 교류가 있었죠. 우리도 많이 가봐야 돼요. 너무 모르니까.
이중한 : 우리는 사람을 너무 모르고있어요.
구히서 : 저쪽에서는 필요한 사람을 딱딱 뽑아가는데‥‥‥‥
이중한 : 절묘하게 저쪽에서 픽업을 하는데 우리는 그 카드도 없어요. 지금 두 명만 데려오라면 누구를 데려와야 할지 몰라요. 이것이 연구과제다 이거죠.
사회자 : 김일성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건다 안하고 있으면서 민예총에서 하고 있는 코리아통일미술전은 계속 진행중 이에요. 일본에서도 그쪽에서도 민예총 쪽 하고는 선언서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거죠. 유일무이하게 선언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벌써 저쪽에서는 카운터 파트를 다 알고 있고 우리만 모르는 거죠.
이중한 : 맞습니다. 우리는 모르고 있는 거예요. 간단한 예를 든다면 바이올리니스트가 언제 공산주의적으로 아니면 자유주의적으로 나누어서 연주합니까? 그것은 아니죠. 따라서 문화적 핵심은 메시지와는 관계가 없는 거죠.
구히서 : 춤동작 자체에는 메시지가 없어요. 중요한 건 우리가 그런 것을 모르고 있다는 거죠. 그런 정치분석이나 정보분석을 하는 장르에 전문인들의 참여가 전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죠. 자료공개를 안 해서 문제가 있는 거죠.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읽어야지 평양예술단 보고 '야 우리는 저런 걸 언제 하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결국 국립무용단 공연은 한 번도 안 봤다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자체가 문가요. 평양예술단 공연 때 예술가들은 없고 관리들 있는데 관리들은 너무 홍분하고 감탄을 하더라구요.
이중한 : 사실 조명 같은 것도 전문가를 비교하면 우리가 진다고 봐요.
구히서 : 사실 그래요. 우리는 집만 크게 지어놓았지 그 집을 운영할만한 전문가가 별로 없어요.
사회자 : 예컨대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이야기군요. 자료 공개에 대한 문제도 있구요.
구히서 : 그 자료 공개 문제인데 보기 싫어서 안보는 건 몰라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다 보여주어야 한다고 봐요. 지금 우리가 저쪽에 대항을 한다면 아무거나 보내는 방법이 있어요.
이중한 : 그래요. 행사용 작품을 따로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늘 접하는 공연 아무거나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거예요.
구히서 : 대한민국연극제 수상작품 같은 거. 해외여행 보내듯이 자연스레 보내면 돼요. 그 다음에 사랑의 연극제에서도 한 편 보내고요. 이중한 위원 말씀대로 보내기 위한 작품을 억지로 만든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봐요.
이중한 : 의미가 없다기보다는 제가 보기에는 지는 게임이라고 봐요.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목적적으로 만드는데 어느날 갑자기 쫓아갈 수 없죠.
사회자 : 지금 저쪽의 제일 큰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인 것 같은데요.
이중한 : 사실 우리가 김정일의 취향을 파악하고 하는 것은 김정일 체제가 몇 년이나 유치될 것인가 기본전제로 해야된다고 봐요. 5년을 유지 한다면을 김정일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는 게 의미가 있지만 2년밖에 가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죠. 그런데 2년 이상 못 갈 것 같아요. 김정일이 대형영화도 만들고 해야되는데 돈이 없죠. 또 생계가 곤란한데 저녁마다 영화 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거죠. 지금까지 만들어진 작품들은 그 나름대로 존재하겠지만 현재의 경제상태로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거나 보급하는 정책은 불가능하다고 봐요. 그런데 체제유지가 되겠느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 : 나고야에서 하는 아시안게임에도 북한 나올지 안나올지 의문입니다. 항상 늘 나오던 행사에 북한이 나오질 않는 상태에서 이쪽 팀들만 들어가 퍼레이드를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단 한군데 동북아국제학술회의에 김일성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만강 개발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경제문제 같은 현안 문제에는 나오는데 문화예술이나 체육에는 밖에 나와서 참여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당장에 할 일은 준비인 것 같군요. 그럼 이제 홍선생님이 북한예술이 앞으로 흘러갈 방향을 간략히 요약해 보시지요.
홍정선 : 북한 예술이 나아갈 방향은 김정일과 다른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자립하고 싶어하는 권력자는 어떤 식으로든 과거와 결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절대적인 신화만으로 세상을 만들어갈 수는 없는 주시지요.
북한체제는 제가 보기에 마르크시즘에다가 스탈린식 개인숭배와 독재, 그리고 거기에 유교적인 충효사상이 복합되어 있는 체제입니다. 그 중에서 제일 미약한 게 마르크시즘이지요. 마르크시즘은 단지 사회주의국가는 커다란 외형이지 본질적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김일성이 사망하였을 때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오. 스탈린이 죽었을 때 그를 아버지처럼 생각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 스탈린 시체를 보려고 광적으로 몰려들어서 수천 명이 밟혀 죽은 것과 유사합니다. 또 북한은 쌀밥과 고기를 배불리 먹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데, 이런 발상은 봉건적인 것입니다.
이런 체제 속에서 김일성의 항일투쟁에 대한 신화가 형성되고 문학 역시 그 신화의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세대인 김정일 세대에서 항일투쟁이라는 북한문학의 주제는 조만간 슬그머니 뒷전으로 물러날 것 같고, 그러면서 김정일의 새로운 천재성을 부각시키는 신화가 등장하겠지요. 이때 그걸 사람들에게 주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예술이 나타날 겁니다. 그러나 북한 예술의 핵심적인 세 기지 주제, 항일혁명투쟁, 사회주의 건설, 통일반미 중에서 나머지 두 가지는 상당 기간 동안효력을 유지할 것입니다. 미국과의 관계에 따라 마지막도 변수이긴 합니다만‥‥‥
사회자 : 저희들로 봐서는 요즈음이 휴지기이고 준비기인데 오늘 정리가 잘된 것 같습니다. 오늘 얘기는 영화나 이런 필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이 예술인들한테 빨리 보여지고 연습하고 준비를 하도록 하는 그런 자료의 공개가 필요하다는 것, 그쪽의 문화예술을 아는 것, 그쪽에 어떤 예술가가 있는가를 아는 것, 이것이 앞으로 남북한 문제에서 해결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것을 직접 모니터하게 해주는 등 자료 개방이 되어야 합니다. 이 정도로 오늘 대담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세 분 선생님 고맙습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