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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풍성한 문학잔치

-「토지」의 완간과 문학행사들




임순만 국민일보 문화부 기자

10월의 문학관련 행사정보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박경리의 대하소설「토지」 완간을 기념해 준비되고있는 일련의 문화행사들이다.

5일에는 연세대 동문회관에서「토지 완간 기념세미나」가 열린다(오전 10시-오후 6시). 4개 분과로 나누어 주제를 설정한 이 세미나는 제1분과 작품론(발표 황현산 / 생명주의 소설의 미학), 제2분과 인물론(발표 권오룡 / 토리의 인물과 역사의식), 제3분과 주제론(발표 정호응 / 한 생명 대자대비),제4분과 역사성(발표 박명규 / 토지와 한국근대사) 등의 주제발표와 토론이 진행된다.

8일에는 원주시 단구동 박경리씨 자택에서 저서 봉정식과 사물놀이 국악공연이 펼쳐진다. 이날행사에는 김병익씨의 기념강연을 비롯해 전16권의 「토지」 전집 1질' , '박경리씨의 딸 김영주씨, 김형국 교수, 작가 박완서 최일남 신경숙 김형경씨 등 18명이 쓴「토지기념문집」', '사진작가 강운구씨의 「토지기념사진집」','「토지」와 관련된 평론집', '박경리시집' 등이 봉정된다.

최근 출간된 문학작품 중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서정인 소설집「붕어」(세계사), 구효서 장편소설「낯선 여름(중앙일보사). 김호창 장편소설 「꿈꾸는 자의 사랑법」(실천문학사) 윤영수 소설집 「사랑하라, 희망 없이」(민음사), 이태실록장편 「여순병란」(청산) 등을 꼽을 수 있다.

「붕어」는 「강」, 「됫개」, 「벌판」,「철쭉제」 등 중단편에서 압축된 구성과 절제된 언어로 뛰어난 긴장 미학을 선보여 온 작가 서정인이 근년에 시도하고 있는 대화체로 구성된 실험적 형식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소설에서의 대화란 서술이나 묘사와는 분리되는 개념으로 서사적 정보를 제공해주거나 작중인물의 성격, 기질, 개성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쓰인다. 그러나 서정인이 시도하고 있는 대화소설은 그 양상과 진폭이 일반적인 소설의 대화와는 현저하게 다르다. 정보제공을 위한 단순한 말이 아닌 독특한 말씨와 남도가락, 억양음양 등의 강도에 따라서 일상 구어체에 잠재된 표현의 가능성이 다양하게 드러나고 우리 구어의 묘미를 한껏 맛볼 수 있게 한다. 일반적으로 대화란 그 정보가 쉽게 드러나기 때문에 평이한 독서가 가능한 양식임에도 서정인이 구사하는 생략 압축 어긋남 등의 대화법은 치밀한 분석과 긴장을 요구한다.

작가가 이 소설집에서고 있는 것은 뒤틀린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이다. 그것이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는 대화체 형식의 새로운 리얼리즘을 통하여 현실의 미학적 승화를 가능케 한다.

구효서의 「낯선 여름」은 우리시대의 사랑하는 사람들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장편이다. 신혼 초에 아내를 잃은 작가 7, 8년간을 무덤덤히 살다가 회사 중견 간부의 아내요 두 엄마인 강보경을 우연히 만나 사랑하다 파국에 이른다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불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70년대를 풍미했던 호스티스의 사랑이나 80년대 운동권 후일담으로 나오고 있는 연애소설과는 또 다른 지점에서 90년대 자유로움을 희구하는 개체들의 자아를 섬세한 무늬로 전개한다. 작품에서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게 되는 매개는 '언젠가 한번 보았던 것 같은, 그러면서도 낯선 느낌'이다. 그것이 가벼워지는 이 시대의 문화적 기호와 부유하는 개체들의 세밀한 의미망 속에서 전개됨으로써 90년대 사랑의 필연적인 모습으로 드러나 있다.

「꿈꾸는 자의 사랑법」은 실천문학사에서 주관하는 제1회 실천문학 신인상 당선작품이다. 대학 재학중인(연세대) 작가는 90년대 초반을 사는 젊은 대학생들의 초상을 신인다운 패기와 발랄한 감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대학가 젊은이들의 풋사랑과 헤어짐, 우정과 동지애, 이념을 향한 길 찾기, 문학에 대한 불타는 열정, 대학 밖의 더 넓은 세상과 마주하려는 모색 등 젊음의 여러 가지 방황들이 다뤄지고 있다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대학의분위기는 민주화 함성이 드높았던 80년대와는 달리 제각기 흩어져 자기만의 방을 찾아 떠나는 상황으로 설정돼 있다. 어떤 중심과 전망도 상실돼 있는 시대의 한가운데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해 나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경쾌함과 날렵함, 인문적 교양을 자랑하는 듯한 상당한 정보력 위에서 펼쳐진다.

「사랑하라, 희망 없이」는 신진작가로는 보기 드물게 튼튼한 서술능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싣고있다. 여러 삽화들을 교직시키는 구성력, 참신한 상징감각, 적절한 아이러니 등이 어울려 주제의식을 돋보이게 한다.

이 작품집에서 하나의 관점으로 모아질 수 있는 소설적 대상은 가족이다 90년 현대소설 신인상으로 데뷔한 작가 윤영수는 「생태관찰」, 「올가미 씌우기」, 「잔일」,「바람의 눈」 등 9편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있어서 가족의 불균형을 여러 양태로 드러낸다. 왜곡된 가족관계를 통하여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과 자기 정체성의 확인작업이다. 다만 소설적인 제재가 씨받이 어머니, 양딸과의 불안한 관계, 존속 살해 미수혐의를 가진 아들 등 극단적으로 일탈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보다 평범한 것들을 비범하게 이끌어가는 소설적 능력이 발휘됐으면 하는 이쉬움을 주고 있다.

「여순병란」은 「남부군」의 작가 이태가 1948년 한반도 서남부 지방을 피로 물들인 여순사건(여수 14연대 반란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실록소설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기존의 여러 기록과는 다르게 반란군의 입장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된 동기와 토벌된 과정을 생생하게 밝히고 있는 점이다. 북측 통신사의 종군기자로 전쟁터에 파견됐다가 연합군의 반격으로 입산, 이 현상이 이끄는 남부군 정치참모로 빨치산 생활을 했던 저자는 당시 지리산으로 쫓겨와 토벌된 여순사건 주모자들의 증언과 실상을 취재할 수 있었다.

이 실록은 반란의 주모자가 장교그룹이 아니라 하사관 그룹이었다는 점 14연대가 제주도 4.7사태 진압을 위해 투입되게 되자 하사관들이 선상반란을 기도했으나 정보가 누설됐다는 판단에 따라 일어났다는 점, 최남근 15연대장이 내통돼 있었다는 점 등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 해방정국의 전후사정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소상하게 피력하고 있어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풍부하게 조망해주고 있다. 진정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격앙된 감정이 서로를 죽여야 했던 비극을 차분한 어조로 얘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