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화산업 육성 논의가 개방논란보다 중요하다
- 문화산업의 관점에서
정갑영 /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책임연구원
머리말
대중문화의 문화산업적 측면 고려해야 한다
최근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논의가 대단히 활발하다. 올해 초에 주일 한국대사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발언도 있었으며 문화체육부에서도 개방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사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여론의 주제로 떠오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일본이 어느 정도로 과거의 역사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으며 우리 국민이 심정적으로 어느 만큼 일본을 용서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개방여부의 주요한 척도로 떠올랐었다. 우리와 일본은 이미 지난 1965년 양국관계의 정상화이래 여러 분야에서 교류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러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에의 앙금이 남아있으며 양 국민간에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운동경기에서조차 일본에게만은 절대적으로 승리해야 한다고 다짐을 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지난 아시안게임을 비롯한 최근의 양국가간의 경기에서 보여준 태도를 고려하면 분명히 양국민간의 관계가 여느 다른 나라 국민들과의 관계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과거경험에 근거한 특수한 관계가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형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특수한 관계는 상대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토대로서 여전히 기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특수한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우리에게 대중문화의 교류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내부에서도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해서 찬반의 여론이 분분하며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 역시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반대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의견 역시 여전히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오늘날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찬반의 기준(이러한 과거의 경험에 그 바탕을 두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또한 과거의 경험이 문화교류의 충분한 전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될 사실은 문화, 특히 대중문화는 오늘날 산업적 연관성과 분리될 수 없으며, 향후 경제력 창출의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도 '경제전쟁'과 더불어 '문화전쟁'이라는 용어가 거침없이 사용되고 있으며 「쥬라기공원」에서의 수익이 백만 대 이상의 자동차 수출과 맞먹는다는 주장에 새삼 놀라고는 한다. 대중문화 자체가 자본주의의 발달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오늘날은 고도로 발달하고 있는 기술과 맞물리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대중문화의 새로운 영역과 부가가치를 생산해내고 있다.
대중문화가 이렇듯 자본과 기술의 세계와 밀접 관련이 있는 만큼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에서 가해자였던 국가의 문화를 피해자였던 국가에 대해 전파하려 한다는 것 이상의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여부와 개방시 시기와 방법에 대한 논의에·대중문화의 문화산업적 측면을 강력히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중 문화산업의 현황
외국의 공세에 직면한 우리 대중문화 산업의 절대적 위기 상황
우리 나라 대중문화의 생성시점에는 회사들간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해방 이후부터로 보고있으나 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사회는 대중사회'라는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한국사회가 어느 정도로 대중 사회적인가'라고 표현되었을 정도이다. 그만큼 우리 나라의 대중문화는 어느 의미에서 짧은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런 만큼 독특한 개성을 지닌 우리의 대중문화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우리 대중문화가 미국으로부터 가장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데 사실은 일제 36년간의 지배하에서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 80년대 이후 급격히 고도화하고 있는 우리 자본주의는 문화를 급격히 시장화하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80년대를 휩쓸던 이념문제가 소련과 동구의 몰락으로 쇠퇴하면서 대중문화는 철저히 소비상품화하고 있다. 여기에 주목할 만한 사실은 소위 신세대라고 불리우는 세대가 대중문화의 주요 소비계층으로 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글의 주제인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서도 비교적 거부감이 기성세대들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 대중문화산업의 장래를 위해 여러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의 대중문화의 역사가 짧은 만큼 대중문화에서 문화산업적 중요성이 고려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이 일반화되지 않고 또 실제 경제에서 문화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서 그렇지 과거에도 문화산업적 측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의 치하에서도 음반은 있었으며 영화도 역시 제작되고 상영되었던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하에서의 우리 문화상품은 철저히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종속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영화나 음반의 제작에서 우리 자본이 없지 않았으며 민족의식을 표현한 작품이 있었다해도 전반적으로는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의한 것이었다. 음반의 경우 녹음에서 생산, 판매까지의 전체 제작과정을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은 해방 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음반산업의 본격적인 발달은 1968년 음반에 관한 법이 공포된 이후 FM과 스테레오방송이 개국되면서부터이며 가요가 음반산업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우리의 음반산업은 세계 5대 메이저에 의해서 상당부분 잠식당하고 있으나 대중가요와 연결된 시장은 아직 온전하다고 할 수 있다. 단 대중음악의 작곡경향과 창법 등에는 일본 가요의 영향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만화의 경우 역시 '만화'라고 불리우는 것 자체가 일본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만큼 우리의 만화역사에 끼친 일본의 영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해방 후에도 일본의 영향은 이어지면서 대부분 문화가 지속되었다.
만화는 일반적으로 질 낮은 것이라는 사회인식이 보편화하면서 5·16 이후에는 척결해야 할 사회악의 대상이 되기고 했다. 그래서 1968년 이후에는 만화원고에 대한 사전심의 제도를 마련하고 이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70년대 스포츠신문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만화는 성인만화의 영역을 확보하게 되고 80년대 출판자율화와 더불어 최근에는 일본만화의 붐이 우리 사회에 폭발적으로 일게 되었다. 오늘날 만화시장의 영역은 분명히 확대일로에 있으며 영상산업과 어우러지면서 중요한 문화산업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그 어느 분야보다도 일본의 영향을 심하게 받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추측하건데 국내 만화시장의 80% 가까이를 일본만화가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중요한 장르인 영화의 경우도 앞의 두 분야에 견주어 예외가 아니다. 단 영화는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제작편수가 많았을 정도로 호황을 누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헐리우드 영화의 공세와 UIP직배 이후 우리의 영화계는 80%이상을 미국영화에 점유당하는 위기상황을 안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산업은 한편으로는 미국 등 외국 문화산업의 공세에 직면해서 절대적인 위기상황을 맞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산업이 절대적으로 주요한 산업으로 등장하고 있는 시대에 앞서간 나라들과 경쟁을 해서 우위를 확보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일본 대중문화개방이라는 문제가 우리의 상황과 조건을 한층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여론조사의 결과와 그 의미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여론조사는 전국 6대도시 지역의 만 10세 이상의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1994년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면접조사 방식을 통해 행하여졌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가 '신속한 전면개방'을 원했으며, '선별적 개방'을 49.6%가 원함으로써 개방에는 일단 53.6%정도가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개방을 연기해야 한다'는 응답이 17.4%, '개방에 절대반대'라는 응답이 15%로서 전체 응답자의 32%가 개방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무응답이 6%, '잘 모르겠다'는 답이 13.4%로서 약 20%정도가 개방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개방에 대한 견해차이는 세대간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난다. 가장 많은 답이 나왔던 선별적 개방의 경우10대의 경우 44.2%, 20대가 60.2%, 30대가53.4%, 40대가 42.4%, 50대가 41.8%, 60대가 45%를 보여주는 데에서 보듯이 20대와 30대의 찬성율이 특히 높게 나타났다.
개방에 대해 찬성하는 이유를 알아보는 것은 이 설문조사의 의의를 매우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찬성하는 이유들 가운데 '재미있어서' 가 52%,'수준이 높기 때문에'가 53%,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가 50.8%, '국내 대중문화 발전에 도움이나 자극이 되기 때문에'가 23.7%, '개인의 취향 때문에'가 12.2% 그리고 기타 6%로 나타났다. 여기서 '전면개방'에 대한 찬성이유는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와 '국내 대중문화의 발전에 도움이나 자극이 되기 때문에'로 나타나 있다. 즉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욕구와 사회 혹은 국가차원에서는 국내 대중문화의 발전과 자극이 되기를 희망하는 이유에서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전면개방을 원하는 것이다.
개방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도 '과거역사 때문에'가 14.4%,'호감이 없어서'가 69%, '우리 문화산업침체와 일본의 경제지배 때문에'가 25.6%, '저질 상업문화의 범람이 우려되기 때문에'가 23.8%, '국민정서가 일본화 되므로'가 27.5% 등으로 나타남으로써 반대의 동기도 우리 문화산업의 침체와 저질 상업문화의 범람 등과 같은 이유로서 찬성하는 쪽의 염려와 거의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시 가장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항목에 대한 질문에서도 '우리 문화산업 침체'가 36.2%, '우리 대중문화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가 20.6%, '초창기에는 호기심에서 유행하겠지만 점차 관심 밖이 될 것이다'가 18.8%, '영향이 별로 없을 것이다'가 5.4%, '우리대중문화의 일본진출 계기가 될 것이다' 가 9% 등으로 나타남으로써 우리 문화산업의 침체를 걱정하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었다. 개방에 대한 찬반이 거의 균형을 이룬 것과 같이 앞으로 예상되는 영향에 대한 의견에서도 긍정과 부정이 균형을 이룸으로써 이번 주제에 대한 팽팽한 찬반 의견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장르별로 개방의 우선 순위를 물은 질문에 대한 응답은 이번 조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사 대상자들이 생각하는 개방의 순서는 가요 및 음반-영화 및 비디오-만화로 나타났다. 이 물음을 직업별로 보면 사무직, 행정관리직, 전문기술직, 주부 등은 가요 및 음반을 선택하고 있으며 생산직, 판매서비스, 학생 등은 영화 및 비디오, 국민학생과 중학생은 만화를 택하였다. 연령별 분류에 따르면 10대는 만화, 20대는 영화 및 비디오, 30, 40, 50대 그리고 60대 이상은 가요 및 음반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들은 실제적인 구조에서 개방의 우선이 되는 장르를 고려했다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장르를 중심으로 답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정책적으로 개방의 장르를 고려할 때는 이러한 조사결과가 그대로 반영될 필요는 없다.
일본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대응방안 및 결론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은 단순히 지금까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던 부분을 합법화시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 국가와 국가간의 문화의 한 부분을 교류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정치, 경제 등 다른 분야의 문제들과도 연관되어 있으며 과거의 정신과 같은 역사적인 문제와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과 함께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은 궁극적으로 양국민들간의 문화적 이해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문화를 발전시켜 가는 데에 있다.
이러한 전제를 고려한다면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이 서로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중문화가 상대를 이해하는 데 지름길도 아닐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일본의 고급문화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의 대중문화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이해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미국의 참모습을 이해하는데 장애요인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에서 일본 대중문화를 반드시 개방하여야 한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영역이 대중문화라면 결코 문화의 산업적인 측면이 간과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물론 문화적인 측면 역시 신중히 고려되어야 하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대중문화를 고려하면 우리보다 자본, 기술 그리고 판매유통의 능력에서 일단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우월성을 고려하지 않고 개방을 했을 때 어떠한 결과가 올 것인가 하는 것은 UIP직배가 우리 영화계에 어떤 결과를 야기시켰는가를 생각해 보면 된다. 따라서 불가피한 개방은 우리 문화산업에 대한 폐해를 줄이고 개방이 오히려 경쟁력을 높이는 자극제가 되도록 유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이미 이 땅에 음성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그래서 정상적인 우리의 대중문화산업에 폐해를 주는 일본 대중문화를 양성화시키는 것을 개방의 첫 조치로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작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현재 불법복제 유통되고 있는 문화상품들의 유통량과 구조에 대한 정확한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을 차단하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또한 우리 문화산업의 진흥책으로서 각 장르에서 요청되는 조건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서 우리 문화상품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전제조건들을 염두에 두고 만약에 장르별로(전 장르에 걸친 동시적 개방의 시작은 비록 그것이 단계적이라 해도 빠른 시간 내에 개방을 할 수밖에 없는 단점이 있다) 개방을 시도한다면 만화가 그 첫 대상으로 꼽힐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일본 만화는 국내에 엄청나게 유통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97년부터 출판부문 개방에 따라 다른 분야보다 개방 그 자체가 주는 충격이 적은 편이다. 오히려 개방은 불법복제 판매 등을 제거하면 우리 만화의 육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심의기준의 강화는 개방문제와 더불어 반드시 확립되어야 할 사안이다. 만화의 개방에서 의미있는 결과가 나올 경우에 그 다음의 장르는 가요 및 음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장르에서도 우선 가요를 공연 위주로 개방하고 산업적 가치를 지니는 음반 분야는 시간적 간격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공연 위주로 개방되는 가요는 초기 단계에는 공연의 내용, 방식(언어문제와 같은), 횟수 등에 제한이 있어야 하며 사회의 반응을 살펴 개방의 폭을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요시장에 일본 가요의 급격한 확산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지 않으면 음반시장의 분야에서도 조심스럽게 개방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음반시장을 개방한 경우에 일본 가수와 가요가 우리의 TV나 라디오에 출연하는 것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방송매체는 가요가 음반산업과 연결되는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유의해야 할 사실은 유통과 판매 부문의 개발은 우리의 가장 취약한 부분가운데 하나인 만큼 우리의 구조가 개선되고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때까지 유보할 필요가 있다. 개방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일본의 음반산업이 자본을 앞세워서 기획에서부터 생산과 유통 및 판매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체계를 갖게 되는 상황이 도래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영화와 비디오는 장르별로 개방한 경우 마지막 대상이 될 것이다. 앞의 두 분야에 비해 오늘날 문화산업으로서의 경제적 규모와 파급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며 향후의 멀티미디어화해 가는 세계에서의 가치도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또한 미국영화의 공세 이후 우리 영화가 크게 위축된 것은 사실이며 심지어 위기 상황에까지 직면해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위기상황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여러 각도에서 자구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몇몇 우리영화의 흥행성공에서 보듯이 서서히 회복의 싹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향후의 엄청난 영상산업의 가능성과 함께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하는 가능성을 일본영화의 개방으로 다시 한번 어려운 상황에 빠뜨릴 필요는 없다. 물론 일본영화의 개방이 소재나 기법 등의 분야에서 우리 영화에 자극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우려되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막강한 전자기술과 영상자본이 우리의 영화계에 침투되는 경우 우리 영화를 사실상 장악할 수 있다. 일본 영화의 상영 그 자체보다도 이러한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여러 방식으로 우리의 영화산업에 침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비디오는 영화가 개방된 지 통상 수개월에서 1년 사이에 시장에 나오는 것을 고려한다면 결국은 영화의 개방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디오시장(대여 포함)의 규모가 영화보다 더 큰 점을 감안하면 순수한 경제적인 의미에서의 문제영역은 비디오시장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영화시장 개방요구가 비디오시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부분은 개방까지의 시기를 충분히 갖고 우리의 영상산업의 육성을 위한 조건들 마련한 후에 개방을 고려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개방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 개방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며 그 중 한 방법으로 장르별 개방을 고려할 수 있다. 장르별 개방은 여러 분야의 개방을 동시에 시작함으로써 부작용을 제어하지 못하고 짧은 시간 안에 전면개방으로 이행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장르별 개방은 만화-가요 및 음반-영화 및 비디오의 순으로 개방되는 것이 문화산업의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하겠다. 더불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시 심의기준이 엄격히 정해져야 하고 또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일본주의의 표현, 폭력성과 선정성이 과도하게 담겨진 문화상품의 유입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또 문화상품의 표절 및 불법복제와 유통을 철저히 차단하여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기초를 확립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현재 어느 정도의 불법적 문화상품이 제작되고, 유통되고 또 판매되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개방에 대비해서라도 지금부터 우리 사회에 제작 유통되고 있는 불법복사상품과 일본 문화상품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을 위한 연구를 시작해야하고 일본의 문화상품 안에 어느 정도의 일본주의, 폭력성 그리고 선정성이 담겨있는 지에 대한 다양하고 광범위한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개방의 결정여부에 앞서 시행되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은 이제 결정해야 할 우리의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개방이냐 아니냐 보다도 우리의 문화산업은 일본에 어느 정도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방여부에 대한 논란 못지 않게 어떻게 우리 문화산업을 육성할 것인가에 논의를 집중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