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의 무용가들. 4 / 김나영

피나 바우쉬 춤 전통 잇는 독일 폴크방 댄스 스튜디오




장광열 / 월간 객석기자

우리 나라 무용수들이 외국에 유학을 떠나는 시기는 거의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이다. 지금은 조금 다른 양상을 띠고 있긴 하지만 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이같은 흐름이 무용계의 주조를 이루었다.

김나영의 경우는 약간 달랐다. 대학 재학 중에 그녀는 유학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대학 3학년에 재학중인 발레 전공 무용학도. 그녀는 과감하게 학위와 자신의 전공을 버렸다.

"뭐랄까요. 한마디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본적인 틀에 의한 반복적인 훈련은 훌륭한 무용수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예술적인 창작활동에 푹 빠져볼 수 있는 그런 분위기에 젖어보고 싶었어요."

학위와 토슈즈를 벗어던진 과감한 용단을 내려야 했던 당시의 심정을 그녀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김나영이 독일로 건너간 것은 1985년. 세종대 3학년을 마치고 나서이다.

처음에 간 곳이 카셀 국립극장. 연수생 자격으로 트레이닝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 그녀의 독일 생활은 1986년 명성있는 폴크방무용학교 입학으로 이어진다. 김나영은 1년에 2학기, 모두 8학기제로 운영되는 이곳에서 4년 동안에 걸쳐 발레와 현대무응, 여러나라의 다양한 민속무용들을 배웠다.

"처음에는 교만했지요. 우리 대학 수준과 비교해 보았을 때 테크닉적으로는 뒤지는 것이 없었거든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나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 내 개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고, 바로 그것이 다른 점이었어요. 그 동안 우린 너무 주입식 교육만 받아왔다는 것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어요.”

김나영은 “내 실력만큼 인정받을 수 있고. 내가 노력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다른 점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폴크방무용학교를 졸업한 후 김나영은 다시 카셀로 갔다. 2년동안 카셀 시티 시어터에서 직업무용수로서 다양한 공연작품에 출연, 무대경험을 쌓은 그녀는 1993년 폴크방무용단에 입단했다.

독일의 작은 도시 에센에 위치한 폴크방 댄스 스튜디오는 1927년 「녹색 테이블」의 안무자로 유명한 쿠르트 요스가 창단한 현대무용단. 우리에게는 젊은 시절 피나 바우쉬가 활동했던 무용단. 지금도 피나 바우쉬가 단장으로 있는 무용단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우리 무용단은 폴크방무용학교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있어요. 현재 단원은 모두 12명이고 전부 국적이 달라요. 역시 피나 바우쉬의 영향을 받아 표현주의 계열의 작품을 주로 공연하고, 단원들의 자율적인 창작활동을 특히 중시하는 것이 우리 무용단의 특징입니다. 또 안무가들과 무용수들이 함께 공동작업을 할 기회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지요."

많을 때는 한 달에 3주 동안 공연할 정도로 바쁘게 보낸다는 그녀는 폴크방무용학교의 교육과정과 직업무용단 생활을 통해 '춤이란 테크닉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이 보여 줄 수 있는 성숙함'이란 것을 느낀 것이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라며 지금 생활에 대단히 만족한다고 덧붙인다.

세계적인 무용가 피나 바우쉬도 폴크방무용학교 출신. 그녀는 15세 때 이곳에 입학, 쿠르트 요스의 지도를 받으며 4년 동안 공부한 후 미국의 줄리아드 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온 후에도 가장 먼저 터를 잡은 곳이 바로 이 무용단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세계적인 안무가로 변신한 지금도 이 학교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피나 바우쉬는 특별히 어려운 동작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저 일상적인 동작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에 출연하는 단원들은 연기와 노래, 대사 등을 자유자재로 소화해 낸다. 모두들 훌륭한 배우이자 무용수들이다. 그만큼 그녀의 무용수들에 대한 요구는 많다

그녀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폴크방 댄스 스튜디오 역시 예외가 아니다.

“피나 바우쉬는 완벽주의자입니다. 분위기는 자유롭지만 연습 때는 무척 엄격해요. 연습량이 많고. 무용수들이 원하는 동작을 못할 경우는 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시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극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요. 잠도 안자는 것 같아요. 하루에 빵 3개만 먹고 담배는 3∼4갑을 피우지요."

가까이서 그녀의 작업과정을 지켜본 소감을 털어놓는 김나영은 피나 바우쉬의 이같은 춤에 대한 애정과 끊임없는 탐구정신이 오늘날의 그녀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자신의 소감을 피력했다.

부퍼탈에 있는 메인 컴퍼니인 피나 바우쉬무용단에 들어오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 오는 세계 각국의 무용수들이 1천여 명이 넘을 정도로 그녀의 인기는 대단하다고.

1964년 부산 태생으로 신천중학교를 거쳐 서울예고 무용과를 졸업한 김나영은 다른 단원 4명과 함께「길에 놓인 삶」이란 작품을 안무해 공연하기도 했으며 1990년에는 하노버 안무경연대회에 참가 1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내년 7월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우리 나라 무용사상 처음으로 펼쳐지는 대규모 종합 국제댄스페스티발인 KIDE'95(KOREA INTETNATIONAL DANCE EVENT'95)의 메인 공연 팀으로 폴크방무용단의 한국 내한공연이 추진되고 있어 우리는 빠르면 내년 중에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주역 무용수인 강수진에 이어 독일의 중요한 현대무용단에서 활동하는 또 한 명의 한국인 무용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