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
-에코의 문명비평서
김수영 / 문화방송 문화과학부 기자
에코는 우리 나라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작가이다. 이는 언어학, 기호학, 문학사회학 등을 넘나드는 그의 지식의 해박함 때문일 것이다. 또, 현대의 문화현상에 대한 그의 관심도 돋보이는 점이다. 최근에 번역돼 나온「대중의 슈퍼맨」은「스누피에게도 철학은 있다」의 후속편이다. 원래 이 두 책은「종말론자와 순응론자」라는 다소 딱딱한 제목의 논문집이다. 1964년도에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이 책은 대중문화 분석에 있어서 아직도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에코는 먼저 대중문화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대중문화를 문화의 붕괴로 바라보는 종말론의 시각과 손쉽게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보고라는 예찬론이 부딪힌다.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생산되는 대중문화는 지배 이념을 공급할 뿐이며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자극만을 구한다는 비판론이 소개된다. 이와 함께 문화 형태의 다양성과 싼 가격으로 정보와 오락을 얻을 수 있다는 대중문화의 옹호론이 제기된다. 에코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극단적인 두 가지 견해 모두를 피하자고 호소한다. 흔히 고급, 중급, 하급으로 나누는 문화분류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향유하는 사회적 계층과도 관련이 없을뿐더러 미학적 가치와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영화, 대중소설, 잡지 등 새로 쏟아지는 형식들을 선입견을 갖고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가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식별할 수 없고 편견만 지닌 독자가 문화의 타락인‘키취’를 확대 재생산한다고 주장한다.
에코는 대중문화를 읽는 방법들을 예시해 나간다. 만화는 고도의 상징성을 가지며 고유의 문법을 지닌 장르로 설명된다.「스티브 캐넌」이라는 만화가 어떻게 미국의 삶의 가치를 구현하는가, 순수한 마음과 인기를 얻고 싶다는 평범한 소망을 지닌 찰리 브라운의 실패가 미국 소시민의 아픔을 어떻게 나타내는가 분석된다.
에코의 분석은「슈퍼맨」과「007」에서 빛을 발한다. 초자연적 능력과 소시민의 삶을 동시에 살아가는「슈퍼맨」,「베트맨」,「딕 트레시」,「마스크」등으로 이어지는 미국 대중의 초인은 실제로는 소도시의 영웅일 뿐이다. 소시민들의 꿈에서 출발한「슈퍼맨」의 이미지는 통제되고 제한된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로 통제된다. 또 매일 반복돼서 신문에 실려야하는 슈퍼맨의 서사구조는 시간이 파괴되면서 초인신화가 품어야 할 역사성을 교묘히 피해 나간다. 영화「007」의 경우,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대중들이 친숙함을 갖게 되며 주인공 본드가 지닌 매력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본드가 상징하고 있는 매카시즘, 파시즘, 엘리트주의 폭력, 인종주의를 대중들이 쉽게 따라간다고 에코는 주장한다.
요즘엔 문화산업, 출판산업이라는 말이 별 부담 없이 쓰인다. 생산작업도 대규모화되고 있고 기업화 방식을 띄고 있다. 나오는 문화 상품들도 점차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방향을 택한다. 장르들 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고 선택범위도 늘고 있다. 에코는 철저하게 이렇게 변해버린 상황에서 문화에 대한 논의를 해간다.
각종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메시지를 분석해 나가는 주체로서의 독자들의 자각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주장은 각종 출판물에 대한 외설 시비가 끊이지 않는 등 작품의 텍스트를 떠나 선입견만으로 재단해 버리는, 문화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우리 사회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 대중문화 구석구석에도 지배논리가 베어 있다는 것, 그리고 수용자들의 사회적 처지와 생산 구조에 대한 고려 없이 대중문화의 타락성만을 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독자들의 큰 수확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