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애호가를 위한 오디오 이야기 ②
용호성 / 음악평론가
지난번 글에서는 오디오에 입문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시시콜콜히 늘어놓았다. 이제는 그런 개론적인 이야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오디오에 관한 몇 가지 잘못된 상식과 범하기 쉬운 오류에 관해 알아보기로 하자.
출력이 높을수록 좋은 오디오인가. 많은 오디오 광고 특히, 국산이나 일제 컴퍼넌트 광고에는 고출력에 대한강조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출력이 높다고 좋은 소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출력은 오디오시스템을 구성하는 기기 가운데 하나인 앰프가 갖는 일면적인 특성일 따름이다. 물론 스피커의 능률이나 특성에 따라 보다 큰 출력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리스닝룸 공간이 기껏해야 다섯 평 남짓한 방 혹은 거실임을 고려하면 반드시 큰 출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아파트의 경우 차음설계가 그다지 건실하지 못하고 단독주택의 경우 이웃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 마음대로 고출력을 자랑하며 크게 듣기도 힘들다. 실례로 1990년을 전후하여 수년간 베스트셀러로서 아직도 중고시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뮤지컬 피넬리티 Al 앰프는 불과 20와트의 작은 출력이었지만 음악성 면에서는 허울좋게 출력만 큰 앰프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았다. 3평 크기의 방에서 90dB의 출력 음악 레벨을 갖는 북셀프형 스피커로 클래식음악을 주로 하여, 그다지 크지 않은 음량으로 듣는다면 앰프의 출력은 30와트 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따라서 앰프를 선택하는 경우 단순한 출력크기보다는 음색에 따른 매칭과 스피커 구동력을 고려해야 한다. 앰프는 소스기기 (아날로그 플레이어나 CDP)로부터 작은 소리를 받아 이를 큰소리로 증폭시켜 주는 기기에 불과한데 여기에 무슨 음색이 있느냐는 소리를 하면 이건 한 반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같은 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은 얼굴을 갖고 있는 게 당연하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앰프에 따라 날카롭고 명쾌한 소리, 풍성하고 따스한 소리, 정갈하고 단아한 소리 등 온갖 종류의 소리가 만들어진다. 또한 같은 출력의 앰프라도 스피커를 구동하는 능력은 천차만별이다. 여기에는 앰프자체의 능력과 아울러 스피커의 출력음압 레벨이란 임피던스도 영향을 미친다. 출력음압 레벨이란 스피커의 능률을 표시하는 수치로서 스피커에 1와트의 전기 신호를 가할 때 정면 1미터 앞에서 발생하는 음의 강도를 말한다. 이를 dB로 표기하며 90dB을 표준치로 삼는다. 수치가 크면 능률이 높고 같은 입력으로 보다 큰 음을 낼 수 있으므로 출력음압 레벨이 높은 경우 작은 출력의 앰프로도 구동이 가능해진다. 또한 진공관 앰프의 경우 등급의 TR(트랜지스터)앰프보다 스피커 구동력이 훨씬 좋기 때문에 단순히 출력만으로 앰프를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또 하나의 잘못된 상식은 큰 스피커일수록 좋은 스피커라는 것이다. 음악을 조금 듣네, 오디오에 관심도 조금 있네 하는 사람들이 그럴듯한 오디오를 갖춘 집에 다녀오면 하는 말이 있다. '야 소리 좋더라. 스피커가 장롱만 하더라구' 참 어이없는 이야기다. 스피커의 크기는 소리의 질과는 상관이 없다. 플로어형의 대형스피커가 북셀프형의 소형스피커보다 저역의 양감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어느 정도 그레이드업 과정을 겪으며 조금씩 느껴지는 것이지 오디오에 입문하면서부터 크게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니다. 무턱대고 덩치만 큰 스피커에서 저역이 짜임새 없이 벙벙대며 나오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게다가 스피커가 커지면 앰프의 선택폭도 상당히 좁혀지며 리스닝룸의 크기가 작은 경우, 제성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스피커를 작다는 이유만으로 비하하는 것은 키 작은 인간이 열등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출력이 큰 앰프가 좋은 앰프라는 미신도 비슷하게 비유하면 목소리 큰 인간이 하는 말이 진실에 가깝다는 말과 마찬가지가 된다.
스피커를 선택하는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소리특성이다. 스피커는 제 각기 독특한 소리 특성을 갖고 있으며 연주회장의 소리와는 달리 선택이 가능하다. 따라서 오디오시스템을 구성하는 경우, 먼저 자신이 좋아하고 가장 많이 듣는 음악 분야를 고려한 뒤 비슷한 가격대의 스피커들 가운데 그에 어울리는 기기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서 이를 잘 구동할 수 있고 매칭이 잘 되는 앰프를 선택하고 소스기기는 그야말로 나머지 예산에 맞춰 결정하게 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선택방식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면 자신이 좋아하는 고유한 음색이 앰프 소스기기 나아가 케이블(연결선)에까지 반영되지만 이는 천천히 고민해도 되는 일이다.
예산의 배분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보통 스피커에 가장 큰 예산이 배분된다. 무엇보다 음색을 가장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피커의 능력을 100% 발휘하기 위해서는 스피커를 충분히 구동할 만한 수준의 앰프를 같이 구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스피커와 앰프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그레이드업을 고려하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오디오를 처음 구입한다면 소스기기는 CD, LP, 라디오, 카세트, 비디오 중 자신이 주로 듣는 소스가 무엇인지 판단하여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스피커와 앰프와 달리 소스기기는 여유돈이 생길 때마다 하나씩 예산에 맞춰 구입해도 매칭이나 그 밖의 골치 아픈 문제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AV나 LP에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은 애호가들은 보통 스피커, 앰프, CDP 등 세 가지 기종을 중심으로 시스템을 구성하게 된다. 스피커와 앰프와 소스기기의 가격구성비율은 6:3:1이 권장되기도 하지만 각자의 개성에 따라 4:4:2로 할 수도 있고 3:3:4로 할 수도 있다. 필자의 시스템은 대략 5:3:2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앰프 부분이 조금 처진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재미있는 제안 한 가지는 예산의 10%를 케이블 구입하는 데 반영하라는 것이다. 1미터에 몇백 원하는 전깃줄로 오디오를 연결해 놓은 집이 오디오를 갖춰놓은 열 가구 가운데 8∼9가구에 이르겠지만 케이블은 실제로 오디오를 연결해 제소리가 나오도록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1미터 짜리 전깃줄 하나에 몇십만 원씩 한다면 기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그만한 효용이 있고 또 그에 따른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고가의 케이블을 쓸 필요는 없다. 그리고 최근에는 오디오플러스라고 하는 케이블 전문회사가 국내에 등장하여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오디오케이블을 쉽게 사 쓸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케이블에는 앰프간 혹은 앰프와 소스기기간을 연결하는 인터커넥션 그리고 앰프와 스피커를 연결하는 스피커 케이블이 있으며 음에 미치는 영향은 인터커넥터 쪽이 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오디오를 구입하는데 있어 또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은 오디오잡지만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쩐 일인지 우리 나라 오디오잡지의 기기평에는 솔직하게 쓰여진 혹평이 거의 없어 마치 결점 없는 오디오만 수입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오디오잡지만을 믿고 그 비싼 오디오를 구입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직접 오디오를 들어보고 사야 하는데 여기에는 또 곤란한 문제가 있다. 우리 나라의 오디오시장의 특성상 그럴듯한 시청실을 갖추고 구입자에게 장시간의 시청을 허용하는 살점이 많지 않은 것이다. 기기를 며칠씩 빌려줘 가며 자신에게 맞는 기기인지를 확인하게 하는 외국의 사례는 우리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쉽게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제품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 혹은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평가를 들어보는 것이다. 오디오잡지에 나오는 여러 애호가들의 경험담 혹은 애호가 탐방기도 이런 경우 간접 경험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휴일 하루 충분한 시간을 갖고 용산전자랜드를 방문해 오디오 숍들을 여유 있게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굳이 자신이 선택한 기기가 아니더라도 여러 방문객들이 선택한 오디오 소리를 조금씩이나마 들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오 숍에서 어설프게 연결된 기기들을 잠깐씩 들어보는 것만으로 쉽게 그 소리를 평가할 수는 없으므로 가능한 한 선배 애호가 한 명을 구슬려 앞장세울 필요가 있다. 그는 신이 나서 자신의 경험과 실패담 등을 엮어가며 여기저기 안내를 하고 설명을 해 줄 것이다. 오디오애호가에게는 오디오 숍을 도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