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 대전매일 문화부 기자
문학
「머들령」으로 널리 알려진 소정 정훈 시인을 기리기 위한 시비가 10월 9일 「머들령」의 소재가 됐던 머들령고개에 세워졌다.
이번 시비 제막은 정시인이 타계(1992년 8월)한지 1년 뒤인 지난 1993년 7월 지역 인사와 문인들로 구성된 정훈시비건립위원회(위원장 김용재)와 한국문인협회대전시지회(지회장 박명용)의 1년여에 걸친 노력으로 결실을 보게 됐다.
문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한 기금과 오응준 대전대 총장의 빗돌 기증으로 이뤄진 것.
시비에는 최송석 시인(정훈시비건립추진위 부위원장)이 건립기를 쓰고 남계 조종국씨가 글씨를 써넣었으며 시비 전면에는 정시인의 대표작 「머들령」이 새겨졌다.
대전에서 금산으로 넘어가는 재의 이름인 머들령은 정시인이 20세 때 두 번째로 이 고개를 넘으면서 7,8세 때 그의 조부와 함께 이 고개를 지나던 추억을 그린 작품이다.
'요강원을 지나/머들령//옛일이 길로 원님이 나리고/등짐장사 쉬어넘고/도적이 목 직히든 곳//분홍빛 두루막에 남빛 돌띠 두르고/하라버지와 이 재를 넘었다/뻐꾸기 작고 우든 날//감장 개명화에 발이 부리터고/파랑 갑시댕기/손에 감고 울었드니//흘러간 서른해/六月 하늘에 슬픔이 어린다' -「머들령」 전문
정훈 시인은 1919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휘문고와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수학하고 1938년 동인지「자오선」을 통해 문단활동을 시작, 1946년엔 박희선, 박용래와 함께 동인지 「동백」을 창간했고, 1952년엔 지역 최초 종합문예지인「호서문학」창간을 주도하는 등 문단 등단 이후 줄곧 충청 지역에 머물면서 고장문학발전에 밑돌을 놓았다.
국악
국악의 해를 장식하는 국악 공연이 열려 무르익어 가는 가을밤을 수놓았다.
대전문화원과 대덕과학문화센터 공동 주최로 중앙국악관현악단을 초청, 17월 6일 대덕과학문화센터 콘서트홀에서 펼쳐진「가을밤 국악의 향연」은 근래에 국악계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국악관현악에 창이나 창작국악가요, 사물놀이 등의 다양한 장르를 접목, 새로운 국악의 정취를 느끼게 한 공연이었다.
공연의 흐름이 다소 매끄럽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이번 공연은 그 동안 국악관현악단의 공연을 자주 접하지 못했던 대전 지역 애호가들에게 모처럼 만에 넉넉한 감상의 기회를 안겨줬다.
이날 공연은 국악작곡가이자 중앙대 교수인 박범훈씨 지휘로 연주회를 위한 서곡「신내림」으로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국악인 김성녀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연은 관현악과 국악가요가 어우러지는「한네의 승천」,「꽃타령」이 김성녀씨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이어 관현악과 창이 함께 어우러지는「한 오백년」,「자진뱃노래」등이 무대를 장식했다.
지역에서 활동중인 민소완씨가 역시 지역의 고수인 박근영씨와 호흡을 맞춘 판소리「심청가」는 관객의 호흡까지를 끌어들이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랩과 창을 조화시킨 랩창은 제1회 전국판소리 명창대회 일반부 대상 수상자인 박선미씨가 열창, 많은 박수를 받았으며,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신모듬」은 관객들의 발길을 오랫동안 붙잡았다. 관현악과 사물놀이를 접목한「신모듬」은 그야말로 국악에 담긴 신명이 물씬 풍겨나는 곡으로, 이날 사물놀이는 올해로 창단 10년째를 맞는 두레패가 맡았다.
연극
여름내 느꼈던 갈증을 풀어주는 연극 무대가 잇따라 마련됐다.
10월에 들어서자마자 지역극단과 서울극단의 관객끌기 경쟁이 치열해 졌다.
10월초에 무대에 올려진 공연은 모두 4편으로 지역극단들의 정기공연 2편과 서울극단 초청공연 2편.
지역극단인 금강의「저 별이 위험하다」와 마당의「욕탕의 여인들」,서울극단의 지방공연으로 마련된 판의 「다까포」와 대중의「아가씨와 건달들」등이다.
금강의「저 별‥‥‥」은 김광림씨 원작을 유치벽씨 연출로 무대화 한 작품으로 우화 형식을 빌어 사회병리현상을 고발한 교훈적인 의미를 담았다.
이번 작품은 특히 우화적인 성격에 신세대 감각을 가미,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작품으로 평을 받았다.
영국의 극작가 넬던 작인 「욕탕의 여인들」은 1909년 영국의 터키식 목욕탕을 무대배경으로 연령과 직업, 생활환경이 다른 여섯 여인을 중심으로 한 소시민적 삶의 이야기가 진규태씨의 연출로 공연됐다.
환경문제를 윤회사상에 접목시킨「다까포」(정차연 작, 연출)는 실험성이 강한 작품으로 출연배우들의 과감한 노출이 공연에 앞서 화제를 뿌렸다.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아가씨와 건달들」은 이번 공연 역시 매력적인 춤과 노래,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재치있는 대사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음악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씨(77) 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음악제가 9월 23일 대덕과학문화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려 대전지역 애호가들을 매료시켰다.
서울과 광주, 부산에 이어 마련된 이번 음악제에서는 그의 주옥같은 실내악 연주와 함께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강연이 무대를 채웠다.
서양현대음악계에서 이미 그 명성을 얻고도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대전지역애호가들에겐 그의 음악을 직접 접할 수 있었던 자리라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가 부여됐다.
2부로 나뉘어 펼쳐진 음악회는 1부 윤이상의 음악세계에 대한 강의와 2부 윤이상의 작품 6곡의 연주로 진행됐다.
1부 강의는 윤이상 연구가이자「윤이상 음악세계」의 저자로 유명한 발터 볼프강 슈파러가 맡았다.
연주된 작품은「소나티네」(1983),「균형을 위하여」(1987),「가락」(1963),「공간Ⅰ」(1992),「간주곡 A」(1982),「노벨레데」(1983) 등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선보여 그의 음악세계를 폭넓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이날 연주는 서울음대 강사인 하티스트 박라나, 독일에서 활동중인 일본의 피아니스트 요리코이케아 후지노의 독주, 한국현대음악앙상블이 맡았다.
「소나티네」는 무반주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으로 명상적 분위기와 긴장이 교차되는 단악장의 즉흥적 인상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균형을 위하여」는 현대의 하프를 위한 작품으로 동양의 악기를 연상시키는 하프의 상징적인 소리를 통하여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작품이었다.
가락은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그 제목에서 우리의 전통적 무엇을 추구하고 있음이 발견됐다.
「공간Ⅰ」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첼로의 확대되는 광범위한 음정을 음역적 틀로 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간주곡 A」는 A음을 중심으로 명상·폭발의 분위기를 대비시킨 작품이었으며「노벨레데」는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특정한 내용이 없는 즉흥적인 단편이었다.
음악평론가 문옥배씨는 '이날의 음악을 이해하려면 윤이상 자신이 말한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 움직임이 있는 정중동과 서양음악은 화음이 단음과 단음을 연결시키는 데 반해 동양에서는 단음자체가 풍부한 요소를 지녔다는 말의 이해일 것이다'라고 전제한 뒤 '이날의 연주회에서도 나타나있듯이 통상적인 서양 멜로디의 전개 방식보다는 음 하나하나가 풍부한 이미지를 지닌 동양적인 사고를 작품에서 보여 주었고 이미지의 전개가 정중동을 보여 주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