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는 없었으되 다양한 행사 펼쳐진 한해
일 시 : 1994년 11월 16일
장 소 : 문예진흥원 회의실
사 회 : 김찬동 (홍보조사부)
참석자 : 서성록 (미술평론가)
오상길 (서양화가), 서정걸(월간미술 기자)
사회 : 한해가 불과 한달 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세 분을 모시고 올 한해 동안 미술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 지난 일년 동안의 미술계를 돌아보면 한해를 점검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먼저 지난 한해 미술계의 개황을 간략하게 짚어보았으면 합니다.
서성록 : 올해에는 화단의 행사가 상당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좀 심심했었던 한해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올 화단은 뜨거운 쟁점이 없었을 뿐 아니라, 크게 부각된 미술운동도 없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화단내에 잘 먹고 잘 살기 행태가 팽배해서 어떤 문제제기적 발언도 그 속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한가롭고 태평스러운 한해였다고 단정하고 싶습니다. 일부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문제제기적인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일단 기득권을 쥐고 있는 기성작가들의 경우 공동적인 관심에는 냉담했고 그럴수록 기량과시적인 측면이 강조를 보이는 이상현상은 올해도 변함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상길 : 비슷한 의견입니다. 여느 해와 다름없이 다채로운 행사들이 있었고 전람회도 적잖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화단이 안고 있는 어떤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해보려고 든다든가, 그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적 노력도 눈에 띄지 않았던 빈곤한 한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몇 개의 이상적인 전람회를 - 국내작가들의 전람회가 아닌 것들 - 이 기억됩니다. 뿐만 아니라 내년을 '미술의 해'로 선포한 문화체육부의 발상이나 추진 내용들을 살펴보아도 좀더 구체적이고 다층적인 이해와 접근이 가능한 다양한 의견수렴의 노력이 아쉬웠던, 얼핏 느끼기에 너무 즉발적인 발상에서 늘상 해왔던 행사들처럼 또다시 원로들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적인 경향의 행사가 준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미술계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고 그 문제를 어떻게 타개해 나아가야 우리 미술계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하는, 적어도 2000년대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그런 여러 가지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고 보는데, 정책적인 측면에서나 기성의 기득권 세력, 예를 들면 기성화단의 움직임들은 이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한 어떠한 조짐도 발견할 수 없는 그런 한해였다고 기억됩니다.
서정걸 : 올 한해 동안 우리 미술계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으며 어떤 성과를 남겼는가? 매년 되풀이되는 이러한 질문에 일목요연하게 대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수많은 전시와 행사들이 다채롭게 펼쳐졌고, 제각기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년 동안의 자료를 종합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분야별로 가닥을 잡아내어 중요한 사항들을 구분해 내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술계가 언제나 하나의 일관된 방향을 가지고 특별한 이슈에 의해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한 것들은 얼마간 세월이 흐른 뒤에야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으며 비로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올 한해 동안의 미술계는 다양한 행사들로 가득했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포스트모더니즘과 테크놀로지미술 같은 커다란 이슈에 대한 논의가 잠잠해지면서 특별한 이슈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몇 가지 이슈들이 제기되었고, 두드러지는 몇 가지 경향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도 항상 과거와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지 갑자기 불쑥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전제해두고 싶습니다.
사회 : 세 분 모두 예년과 별반 차이가 없는 무미 건조한 한해로, 다양한 행사로 전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느 해나 다름이 없는 강한 소강국면 내지는 다소간 보수적인 퇴행성마저 보이는 한해였다는 진단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기 할 만한 사항이 있다면「민중미술 15년 회고전」이라든가「한국현대 미술 40년의 얼굴전」등과 같은 몇가지 회고와 반성적 입장의 기획전들이 기억에 남는데, 특이할 만한 사항은 재야미술운동이었던 민중미술이 제도권 속에 유입되면서 나름대로 정리, 평가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다른 한편으론 순수와 참여, 제도와 제야의 대립구도가 큰 변화를 맞으며, 재야의 비판세력들의 이슈가 소멸되면서 상대적으로 더 큰 소강국면을 초래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반면, 국제화, 세계화를 표방하는 해외지향적 변화의 조짐이 있기도 했는데, 내년의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설치 등을 계기로 금년에는 다소 무미건조했지만 내년 또는 그 이후 미술계에 새로운 가능성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서성록 : 올해 계획된 기획전 중 유난히 기념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기념전을 정리해봤는데 80년대 초를 풍미한 극사실회화를 점검하기 위한 가인화랑의「한국 현대 미술 형상 1978∼84」란 전시회, 한가람미술관에서는 동학혁명 100주년을 기리는「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전」그리고 김환기 선생 서거 20주년을 추념하기 위해 마련된「수화 20주기 기념전」, 아까 말씀하셨지만「월간미술」창간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되었던 「한국 현대 미술 40인의 얼굴전」등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념전이 많다는 것은 이슈가 없었거나 이슈가 있더라도 무신경하게 행사위주로 전시양상이 바뀌어 가는 바람직하지 못한 하나의 결과의 반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이목을 모았던 것은「민중미술 15년전」을 들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이 전시는 그간 5·6공 시절 체제저향적인 성격을 띄었던 민중미술을 총점검하는 행사였습니다. 좀도 자세히 보자면「현실과 발언」,「임술년」등 민중미술 제1세대부터 계급투쟁적 성격이 강화된 민중미술 제2세대로 이어진 그간의 궤적, 그리고 당국의 탄압에 버티면서 내부 결속력을 다져갔던 파란만장한 민중미술사를 찬찬히 되새겨보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이 전시는 몇 가지 문제점을 제시해주었다고 생각되는데, 역사적 거리 두기를 가지지 못한 채 민중미술 운동을 점검한다는 것이 성급한 발상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하필이면 제도의 본산이라 지탄을 하던 국립현대미술관에 불쑥 들어가버린 것은 평범한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투쟁의 일변도에서 갑자기 관상용 예술로의 전환에 어떠한 논리비약이나 자기모순은 없었는지 각각 반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외에도 전시 행사 건수를 살펴보면 전시폭주 양상은 한해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조차 난감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정확한 통계를 내본 것은 아니지만, 작년 미술행사 총 건수가 무려 5,000건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전국을 합친 통계입니다. 올해에는 6,000 건을 상회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데, 최소 6,000회를 기준으로 삼더라도 하루 평균 16회, 한 주에 112회라는 어마어마한 행사가 열렸다는 결과가 됩니다. 대부분은 서울을 위시한 대도시 중심의 전시였고 단체전보다는 개인전이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니까 비수기, 성수기를 가리지 않고 사시사철 전람회가 개최되는 양상이었는데 그 안에 얼마만큼의 성실성과 내실을 기했는지는 두고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오상길 : 저는 서성록 선생님과 조금 다른 입장입니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미술계에 있었던 행사에 대한 관심의 범위가 어떤면에서는 좁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하자면 작가의 입장에서는 관심이 가는 전람회들에 대해서만 의미를 두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에 기념전이란 성격에 대해서 사실 비중을 두고 보게 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서정걸 : 올 한해 동안에도 많은 기획전들이 곳곳에서 열려 관심을 끌었습니다. 「민중미술 15년 : 1980∼1994」(2. 5∼3.16 국립현대미술관), 「현대미술 40년의 얼굴전」(3. 15∼4. 15 호암갤러리), 「한국현대사진의 흐름전: 1945∼1994」(1. 19∼2. 15 한가람미술관), 「여성 그 다름과 힘전」(3. 26∼4. 25 한국미술관, 갤러리 한국),「동학농민혁명 1백주년 기념전」등이 규모나 내용 면에서 대표적인 기획전들이지요. 올해의 굵직한 기획전들 중에서는 특히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해본 전시들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앞에 언급한 세 개의 기획전이 그런 성격의 기획전이었고, 「한국 현대도예 30년전」(9. 7∼16 관훈미술관)등이 역시 비슷한 성격으로 기획되었던 전시였습니다.
그 중에서 연초에 열렸던「민중미술 15년전」은 초유의 관심을 끌면서 화제가 됐었습니다. 전시장이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이 국립현대미술관이었다는 점에서 민중미술의 존재를 공식화하는 행사였으며, 그 동안의 민중미술의 성과를 종합 정리해 본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 전시였다고 하겠습니다. 80년대 정치 사회적 변혁에 대응하여 하나의 문화 운동으로 전개되어왔던 민중미술이 90년대 들어 정치 사회적 여건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될 시점에서, 그 동안 민중미술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는 전시가 열렸다는 것은 시기적절했던 것으로 기대했던 민중미술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모색이 더 이상 진행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죠.
올해에 열렸던 개인전들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그 특징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굵직한 회고전들과 대규모 개인전이 적잖게 열렸고 상업화랑이 초대하는 작가의 연령층이 예년에 비해 많이 낮아졌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올해에 회고전을 연 작고작가 및 원로 작가들의 전시로는「수화 김환기 20주기 회고전」(5. 10∼7. 10 환기미술관),「이응로 회고전」(4.29∼6. 19 호암갤러리),「월전 회고 80년전」(10. 22∼11. 15 호암갤러리),「이준 회고전」(5. 5∼24 국립현대 미술관),「김흥수 회고전」(5. 27∼6. 14), 「전혁림 회고전」(6. 7∼18 일민문화관)등을 들 수 있고, 박서보, 이우환, 김태호 등이 대규모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올해에 주목되는 현상의 하나는 상업화랑에서 원로작가들의 초대전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인기가 상승하고 있는 젊은 작가 및 인기 중견작가들의 경우 1년에 2∼3회의 초대 개인전을 열거나 2인전 3인전 형태로 수차례에 걸쳐 상업화랑에 초대되는 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미술의 상업화란 문제에 대한 거부감은 이제 화가들이 인식 속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인상이 들고 그것이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럴수록 투철한 작가의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덧붙여서 최근 많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면(심지어 중진 원로의 작품들에서도) 색채 사용이 대담해지고 화려해진 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상업적인 의식에서 비롯된 것인지 색채에 대한 자유로운 인식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의 변화로 꼽을 수 있을 겁니다. 30대 후반의 서양화가 이희중의 경우는 공평아트센타 전관을 사용하여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 젊은 작가도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기 위해 회고전을 개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눈길을 끌기도 했던 한해였습니다.
오상길 : 민중미술 전람회는 저에게 독특한 흥미를 느끼게 한 전람회였습니다. 왜냐하면 민중미술은 출발 단계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같은 화단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밖에서만 지켜봐왔던 중요한 미술운동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게는 특히 감회가 새로운 전시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전람회도 보고 기념 행사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해서 발언자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새삼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지적하셨듯이 정권과 민중미술의 입장이라는 것을 애초에 시작 단계에서부터 서로 어쩔 수 없이 맞물려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특히 군부독재에 대항하며, '민주민중'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투쟁했던 집단이 정권이 바뀜으로 해서 투쟁 방향을 잃고 운동성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소위 민중미술 3세대들이라고 주장하는 작가들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허탈감 - 초기 세대들의 격렬함보다는 많이 양식화되고 세련되게 다듬어져가는 부분과 전대보다 오히려 소재주의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 과 국립현대 미술관이라는 장소에 거대한 규모로 버티고 서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가지게 되었던 전람회였습니다. 민중미술이라는 성격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들은 민중미술을 주도해왔던 사람들에 의해서도 정리가 되지 않은 단계이고, 아직도 미술내적인 검증 자체가 불충분하다는 점에서 그 전람회는 마치 민중미술 15년이 업적을 기리고 서둘러 평가를 시도하는 듯한 성급한 인상을 주었고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세미나의 토론 내용들도 사실 상당히 빈곤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들이 이들이 너무 쉽게 시류에 편승하려드는 현상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미술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가지는 성격 자체가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흐름이나 양상들에 대응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미술운동은 운동 자체로 끝나야지 그 운동성 자체를 역사적인 사건으로 만들고 그것을 기념화하면서 체제화하려는 생각들은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중미술이 한 시대에 있었던 열정어린 운동으로 남기를 바랐던 입장으로 보면, 70년대, 80년대 한국미술은 주도했던, 미술사적 측면에서 성격을 구축하려든 노력은 제가 보기에는 민중미술 자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런 점들이 과연 어떤 결과를 앞으로 가져올지. 그 이후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귀추가 주목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지난 과천에서의 전람회와 세미나 같은 방식으로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을 정리하려 들 때 이것은 운동 자체보다는 또 하나의 영역을 제도화시키려는 노력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운동 자체의 원래의 의미나 목적이 퇴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회 : 제도권 미술을 비판하던 재야적 성격의 민중미술전이 제도권의 중핵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됨으로 민중미술의 성과를 과시하는 주도세력들과는 달리, 민중미술의 장례식을 치루었다는 자성과 비판의 입장들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었는데, 민중미술 운동의 모티프가 소멸하면서 제도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제도권내의 진입과정에서 드러내 보인 자기모순의 논리는 어찌 보면 당연히 귀결이라고 볼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리고 시류에 편승한 졸속기획의 전시가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은 또한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당장 어떠한 단정이나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후일 미술사의 엄정한 평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민중미술 15년전」에 대해 이미 민중진영 쪽에서도 전시회를 끝내며 순수 양진영에서 어느 정도 입장정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서선생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요? 깊이 논의할 자리는 아니므로 간략히 정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죠.
서성록 : 이 전시 이후로 민중미술의 많은 작가들이 상업화랑에 투항을 합니다. 아마 체제화하는 조짐이 아니가 생각을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민중미술의 작가들은 대대적인 변신을 꾀했습니다. 그리고 일부 자존심을 지키는 작가라 할지라도 예전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대부분은 그들이 그렇게 혐오해오던 제도권에 들어갔으며, 일부는 행방이 묘연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민중미술은 제도의 압권이라고 생각하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를 계기로 원하든 원치않든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사회 : 1994년 한해는 특별한 이슈는 없었다 하더라도 자세히 보면 청년작가들의 경우 모더니즘을 극복하는 맥락의 다중적인 사회를 반영하는 전람회들을 다양하게 펼치면서 제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몇몇 그룹전과 기획전들이 나름대로 개최되었고, 다양한 매체와 하이테크놀로지를 접합시킨 작업경향이 특성을 이룬 한 해가 아니었다 생각이 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서정걸 : 올해들어 부각되고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슈로 환경문제에 관한 인식의 확산을 들 수 있습니다. 환경에 관한 대규모 전시나 학술세미나 등은 이렇다 할 것이 없었지만, 많은 작가들이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산업폐기물을 작품에 이용한다든가 환경파괴 현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이용하는 등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가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대기오염, 수질오염, 오존층의 파괴, 산성비 등 지구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환경파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우려하는 자각과 계몽사업, 그리고 여러 가지 환경운동의 영향이 미술에도 미치게 된 것으로 생각 할 수 있을 겁니다. 환경문제에 대한 미술의 대응을 주제로 한 글이 발표되는가 하명 환경문제를 다룬 외국자가들의 사례도 종종 소개되고 있으며, 환경문제와 관련된 기획전들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대전엑스포 '93 때 재생조형관에서 열렸던「재생과 조형전」이후 올해도 같은 곳에서「기술과 정보, 그리고 환경의 미술전」이 열렸으며, 올 8월에는 동두천시 소요산에서「환경프로젝트전」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환경문제를 다루는 이러한 기획전들은 이미 외국에서 여러 차례 열린 바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점차 이슈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밖에 역사적 주제가 많은 작가들에 의해 선호되고 있는 점이 눈에 띄는 현상이며, 구상미술이 다시금 활기를 되찾고 있다는 점을 조심스레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구작가들의 경우 얼마 전까지 유행하던 설치작업이 최근 들어 시들해지고 다시 회화 작업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회귀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의 경우에는 설치작업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는 면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퍼포먼스의 경우에도 미술행사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등 활성화되고 있으며, 하이테크 미술의 확산 역시 올해 들어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경향이라 할 수 있지요. 최근 뉴욕에서 열렸던「한국 하이테크 미술전」(10. 8∼11. 6. 뉴욕 엔솔리지 필름 아카이브)은 그러한 현상을 말해주는 좋은 예일 것입니다.
서성록 : 올해 그나마 운동 차원의 미술전이 몇 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들추어보면, 비평가 김홍희씨가 기획한 한국갤러리「여성-그 다름과 힘」전과 여성작가들의 모임인 30캐럿이 개최한「뿌리 찾기」전이 기억에 남는 전시였습니다. 두 전시는 모두 성의 문제를 우리 화단의 전면에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 기획물인 것 같습니다. 남성 위주의 미술담론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두 전시는 소강상태의 미술계에 일단의 자극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와 함께 제주도에서 열린「제주여성의 삶과 현실」전은 어로활동과 밭농사 육아와 가사라는 제주여성의 문제를 다루어 여성문제의 지위향상에 있어서 만큼은 지역 구별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입증시켜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여성운동 탓인지 여성작가들의 각개약진이 두드러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여성 미술을 지향하는 작가와 그렇지 않는 작가들을 포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젊은 작가들의 행보를 좀 살펴보면 90년대 이후 가열되었던 키치 선풍이 다소 주춤하면서 내부정비를 가다듬는 모습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간 혼란스럽게 펼쳐졌던 적나라한 욕구 표출, 저속함과 현란함의 애호, 풍속성의 애호 따위는 수그러드는 대신 매체를 용의주도하게 요리해 가면서 메시지를 송출하는 식의 점진적 양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원격조종전」, 「테러전」 따위가 그것인데, 두 전시는 모두 일과성의 성격의 짙으면서 현대인의 물질적, 정신적, 심리적 욕망을 끄집어내는 데 주안점을 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금호갤러리가 기획한「일원미술전」은 1, 2부로 나누어 개최되었는데 사진이미지, 오브제, 음향, 빛을 이용하여 사회 또는 미술내적인 문제를 비판적으로 옮겨낸 전시회였습니다. 가볍고 감성적인 방식과 달리 무겁고 이지적인 방식에 의해 담론 효과를 발생시킨 전시회도 있었습니다. 「불모전」,「흑해전」(청남미술전)은 고도로 발달된 문명사회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날카로운 굉음을 들을 수 있는 반문명적 성격의 전시회였습니다. 이 전시회에 거칠면서도 정복적인 담론 체계를 통해 너무 쉽게 묻어두고 사는 현대 문명의 위기를 절실하게 표출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정걸 : 아마도 올 한 해 동안 전시와 학술세미나 등을 통해 가장 부각되었던 이슈는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제기와 자각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해 말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주최로 열렸던「미술에 있어서 페미니즘 연구」란 주제의 학술세미나를 비롯해서「여성과 현실전」,「30개럿전」등의 전시가 이미 페미니즘 논의에 대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올해 들어서 그 분위기가 계속 확산되어 페미니즘을 다룬 글과 그 분위기가 계속 확산되어 페미니즘을 다룬 글과 외국 페미니스트 작가의 작업에 대한 글 등이 미술전문지 등에 자주 소개되는 등 페미니즘 바람이 한바탕 불어 닥쳤지요. 특히 한국 페미니즘 미술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대규모 기획전인「여성-그 다름과 힘전」은 페미니즘 논의를 올해의 이슈로 부상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제주에서 열린「제주여성의 삶과 현실전」또한 올해의 페미니즘 열풍을 반영해준 좋은 예였습니다. 페미니즘과는 구별되지만 여성미술가들의 활동 또한 어느 때보다 활발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전을 열어 좋은 평가를 받은 작가도 많았습니다. 엄정순, 이지은, 안필연, 도문희, 배형경, 박지숙 등 젊은 작가들이 돋보였으며 유연희, 정연희. 양화선, 장상의, 차우희, 방혜자, 김명희, 이숙자, 이인실, 강남미, 김영희, 송수련, 홍경희 등 많은 여성 중견작가들이 개인전을 열어 올해 미술계를 풍성하게 했습니다.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신진작가들의 전시 중에도 여성작가들의 비중의 상당히 높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한해였다고 봅니다.
사회 : 한동안 젊은 작가들에게서 강성을 보이던 다소 무절제한 감성의 키치미술이 약화되고 일련의 멀티미디어 마인드가 적용된 다양한 매체실험 경향의 미술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작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상길 : 현상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미술계가 다양한 경향의 관심사를 미술내에 수렴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간 우리 미술계가 걸어왔던 양태와 다름없는 너무 시류에 작가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그래서 그러한 문제들이 대두되게 되는 기초적인 인식, 비판, 반성작업보다는 소위 국제주의의 경향과 흐름에 대응하려고 하는 조바심이 너무 발빠른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한층 솟아올랐던 키치 경향의 움직임들이 다소 주춤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마치 우리가 어느 시기에 과거 앵포멜이나, 평면주의, 미니멀니즘, 컨셉추얼 아트라든가 하는 것들의 영향이 우리 문화에 깊이 침투해서 수용되고 소화되기 전에 시대적인 현상으로만 남고 지나가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선 페미니즘을 봐도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전람회의 테마와 주제가 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작가들이 그러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 가지 전람회를 기획한다는 점들이 의심스러워 보이는 점이 많단 말이죠. 예를 들어 여성의 시각이라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여성작가들의 눈만이 우리 사회를 보는 모든 여성의 시각이라는 거죠. 즉 사회적인 상황이나 문화적 상황에 대한 여성의 시각에서 나타나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지 고발차원에서, 심하게 말하면 포스터나 CF정도의 주제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을 통해서 얼마나 호소력 있게 그 문제를 전달할 수 있다고 보는 건지 그런 작가들의 발언들은 늘 의심스러운 부분입니다. 페미니즘바람에 따라서 페미니즘 전람회가 국내에서 기획되고, 과거에는 별로 관심과 집착을 보이지 않던 여성작가들이 이런 시대적인 흐름을 타고 갑자기 낯선 주제의식을 들고 전람회를 열고 있는 오늘의 현상들은 좀더 깊이 있는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비판적인 측면에서의 문제들도 대두가 되고 거기에 대응하는 쟁점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져가면서 심화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특히 서구사회보다 우리 사회는 소위 유교적 잔재를 사회적 풍토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모순이라 할까 맹점들이 많이 있을 텐데, 그런 문제들이 작가들에 있어서 문제의식으로 떠오른다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해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의 문제에는 지나치게 시류에 편승, 가벼운 주제의식만 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회의적인 면이 많습니다.
사회 : 정보화 시대를 살면서 다양한 외국사조와 정보들이 국내 현실의 적용여부와 상관없이 수용되는 경우도 있겠고, 시류에 편승한 작가들이 검증되지 않은 주제를 중요한 이슈로 삼으며 이것을 마치 새로운 현상이나 이슈가 되는 양 취급하는 저널리즘과 비평의 태도들이 맞물려 벌어지는 기현상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개방화 세계화, 국제화로 치닫는 화단의 풍토 속에서 금년은 다른 해와 달리 다양한 해외전시의 국내유치와 국내작가의 해외전시 참가가 증가하였던 한해로 기억됩니다. 상파울루 비엔날레나 서울 미넥스 예술제 등 국제페스티벌이나 의미있는 기획전 등을 통해 소장작가들이 적극적으로는 외국에 작품을 내놓을 수 계기를 가졌던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개설 등 앞으로 남은 전람회 등도 있긴한데 국내 작가들의 외국전람회에 대한 일반적인 평을 해본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서정걸 : 올해 들어 미술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 우리 미술의 국제화 및 우리 작가의 해외미술계 진출입니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의 제시나 실천적인 논의가 활발했던 것은 아니지만 많은 미술인들이 공감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일 것입니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설립의 타결은 이 문제에 대한 촉진제 역할을 했으며, 내년이 '미술의 해'로 정해짐으로써 한국미술의 국제 진출의 문제가 더욱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지난해 말 미국에서 열렸던「태평양을 건너서전」이나 최근 뉴욕에서 열린「한국 하이테크 미술전」, 바젤아트페어에 7명의 한국작가 참여, 하종현, 박서보, 고영훈, 최종태, 유희영, 심문섭, 김병종, 정창섭, 김형대, 조덕현, 장순업, 류인, 심명범 등 많은 작가들이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는 점도 역시 국제적 진출을 위한 노력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미술의 국제 진출이 올해에 제기된 또 하나의 이슈로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성록 : 국내 작가들의 해외전과 외국작가들의 국내전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자료나열을 해본다면 외국작가들의 한국전중 주요 전시만 뽑자면, 호암갤러리가 주최한「앤디 워홀전」, 경주 선재미술관의「휴먼·환경·미래전」, 국제갤러리의「로버트 만골드전」, 서미화랑의「덴 플레빈」,「조엘 사피로」,「소토전」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팝아트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앤디 워홀의 작품전에는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많은 인파가 밀려와 북새통을 이루었고, 「휴먼·환경·미래전」은 당면한 환경문제와 고갈되는 인간성 문제를 일깨워준 전시회였던 것 같습니다.「로버트 만골드전」이나「댄플레드전」같은 경우는 미니멀리즘을 정확히 이해시키는 계기를 제공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반해서,「독일 현대 미술의 파워」전 이것은 지금 경주선재 미술관에서 하고 있는데요. 이 전시는 미국 중심에서 유럽미술의 건재를 획인시키는 전시회가 아니었나 생각을 합니다. 한국작가의 국제무대진출도 꽤 신장된 것 같습니다.
오상길 : 활동에 비해서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가들과 비평가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런 점에 앞서서 우리 미술계를 이끌어가는 특히 젊은 작가들과 비평가들에게는 한 시대에 대한 무제의식을 안고 우리의 시대를 바라보려는 진지한 태도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야 서로 첨예한 쟁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서로의 생각들을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평가들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되도록 노터치 하려는 풍토도 참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쟁점이 대두되고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그러한 것들이 어떤 결론을 본다기 보다는 문제점들을 계속 제기해가면서 그것의 축적을 가지고 두께를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들도 예전에 비해서 수적으로는 많이 늘어났지만 반면 활동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 너무 빈곤한 평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직 조급한 기대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젊은 비평가들이 용기를 가지고 덤벼들어야 할 마당이라고 생각하는데 기성 평론가들을 흉내내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참 많이 했었어요.
사회 : 작가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많은 전람회를 의욕을 가지고 개최한다 하더라도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평론가들이 쟁점을 부각시킨다거나 이슈를 찾아낸다거나 하는 비평작업에 인색하지 않은가 하는 불평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와 관련해서 금년도 평론분야의 활동을 간략하게 정리를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서성록 : 유능한 비평인력자원의 더 많은 확보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우리 화단에 가장 절실한 당면과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많아야겠지만 제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얼마만큼 열정과 비평적 신념을 가지는지 좀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요사이 미술비평이라는 것을 자기의 신분 상승을 위한, 아까 명함 얘기 하셨는데, 신분상승의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도 없지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열정도 빠져있고 신념도 빠져있고 다만 대학을 가기위해서나 아니면 활동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혹은 우리 사회도 명분(직분)을 높이 사는 사회니까 미술평론가라는 것을 제멋대로 붙이는 그런 좋지 못한 모습인 것 같습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미술에 대한 열정 그것이 곧 자기 삶과 관련이 되어야 하는 것이겠고, 아무런 생각 없이 비평을 한다는 것은 자연 과학적인 자세로는 옳을지 모르지만 주관과 직관 여러 가지 세계관이 두루 융합이 되는 비평의 분야에서는 신념이라는 것을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토가 조금씩 개선돼 나가기를 바라는 생각입니다.
오상길 : 덧붙이면 작가 입장에서 비평 자체가 미적 성취에 기여하는 정도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평 자체가 미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런 점에서 비평의 올바른 이해가 우선 폭넓게 논의될 필요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하나의 미술작품이 있을 때 미술작품이 전적으로 미적 가치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미술작품을 통해서 미적 성취가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어내는 힘, 그리고 그것을 재창조하는 힘, 즉 바꿔서 얘기하면 비평의 힘에 의해서 미적 성취가 보다 돈독해질 수 있고 해석의 여지도 다차원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그 점에 의해서 비평가들은 어떤 것을 논의한다는 단순한 차원에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미적인 감수성이나 학문적인 지식이나 그런 것들을 통해서 미적 성취를 함께 이루어내는 바로 그런 풍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 : 지역미술전이나 각 장르별, 기타 전시회 동향은 어떻게 보십니까?
서정걸 : 1994년의 지역 미술계는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한 해였습니다.「대전트리엔날레」및「부산비엔날레」등이 국제적인 대규모 행사로 치러졌고, 인천의「대한민국청년미술제」, 수원의「교감예술제」,「광주미술제」, 동두천의「환경프로제트전」,「대구청년작가전」등 각 지역마다 대규모의 행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제주에서도 탐라미술인협회(대표 강요배)의 발족,「4. 3미술제」,「제주청년작가전」등이 열렸습니다. 그밖에도 각 지역마다 굵직한 기획전들이 많이 열렸다는 점도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을 종합해볼 때 이제 지역작가들이 '지방작가'라는 과거의 관념에서 벗어나 지역미술의 독자성을 확보하고, 서울의 변방으로서의 지역미술이 아닌 서울-지역간의 격차를 극복하려는 현상으로 분석할 수 있겠습니다.
장르별은 올 한해 동안의 미술계를 돌아볼 때 두드러지는 현상들로 판화전과 사진전, 그리고 외국작가 작품전의 현저한 증가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우선 판화전의 경우 미술의 대중화란 가치를 아래 한국판화미술진흥회가 결성되어 여름 한달 동안 인사동, 사간동, 혜화동, 신사동 등 화랑가에서「서울판화도시탐험전」을 개최했고, 소규모 판화 기획전과 판화 그룹전 등이 수없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박고석, 김상구, 황규백, 유연희, 백순실, 곽남신 등을 비롯하여 많은 작가들이 판화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사진전의 경우에도 어느 해보다 많은 전시회가 열렸던 한해였습니다. 연초에「한국 현대사진의 흐름전」을 시작으로 30여 명의 현역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사진과 이미지전」(선재서울사무소),「94 사진 새바람전」(현대아트갤러리),「빛으로 받은 유산전」(샘터화랑)과 젊은 사진작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최근의 사진 경향을 보여준 대규모 기획전인「한국 사진의 수평전」(공평아트센터),「우리들의 노래」(워커힐미술관) 등이 열렸고, 강운구, 황규태 등 중견 사진작가를 비롯 이주형, 이동준 등 많은 젊은 작가들이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특히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상업화랑에서 사진전이 열렸다는 점은 사진예술의 미술시장 진출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사진을 작품에 이용하는 젊은 작가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합니다. 외국작가 국내전의 경우 공공 미술관 및 상업화랑을 통해 종종 있어왔던 것이지만 올해는 특히 많았던 것 같죠? 국제적으로 이름 있는 작가들로 구성된 기획전들을 들여온 경우로「휴먼·환경·그리고 미래전」(6. 4∼9. 21 선재미술관),「독일 현대미술의 파워전」(10. 7∼95. 1. 10 선재미술관),「프랑스 현대작가 초대전」(10월 광주미술관),「일본 현대미술의 단면전」(현대아트갤러리) 등을 들 수 있고,「뒤뷔송 현대 공예전」,「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전」(이상국립현대미술관),「앤디 워홀전」(호암갤러리),「게오르그 키킨전」(한가람미술관),「조엘 사피로전」,「소르윗전」,「댄 플레빈 조각전」,「지저스 라파엘 소토전」(이상 갤러리 서미),「로버트 만골드전」,「안토니카로전」(이상 국제화랑),「단 크리스탄샌전」(갤러리이즘),「비르나르 브네」(갤러리 현대, 토탈미술관)등 수차례의 외국 유명작가들의 작품전이 상업화랑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에 열렸던 굵직한 고미술전으로는「고려불화 특별전」(호암갤러리),「두암 김용두옹 수집문화재 귀향 특별전」(국립중앙박물관),「비완고미술정품전」(덕원갤러리),「조선시대 화원전」(간송미술관),「근대로 오는 길목」(학고재화랑)등이 있었고 고미술품과 관련하여 올해 화제가 됐던 사건으로는 일본에서 들여온 혜원 신윤복의 낙관이 있는 속화첩이 국보급으로 각 일간지에 대서특필 되었다가 곧이어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치열한 진위 논란이 벌어졌던 해프닝과 크리스티 한국미술품 경매에서 조선시대 청화백자 접시가 24억6천만 원(미화 3백8만 불)에 낙찰되어 세계 도자기 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사실을 올해의 미술계에서 일어났던 일중 빼놓을 수 없는 사건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사회 : 여러 가지 말씀을 나누면서 1994년의 미술계를 간략하게나마 일단 정리해봤는데, 금년은 대략적으로 커다란 이슈는 없었지만 상당히 행사도 많았고 내년도의「베니스 비엔날레」참가라든가 '미술의 해'에 대한 문제라든가 오래전부터 논의 되어온 미술원에 대한 문제 등의 사안들이 맞물려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과 연관지어서 그 사안들에 대한 진척 사항이나 앞으로 내년도에 그러한 일이 구체적으로 진행될 때에 대한 바람 등을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성록 : 내년이 '미술의 해'로 확정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계기로 미술인 한 개인의 입장으로 보면 기간산업이라고 할까요. 안 돼왔던 것을 차분히 다져주는 그런 의미로는 생각을 해 반가운 반면 들리는 얘기로는 그냥 올해처럼 행사 위주로, 기념전 위주로, 이벤트 위주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섭섭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거론이 되는 것은 화단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늘상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도 모르거니와 과거의 상태도 몰랐고 특히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경우는 우리 미술에 대해 얼마만큼 아는지 회의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부분은 직, 간접으로 우리 미술의 내용을 확인하고 검증해 보는데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데서 유발된 것이 아닌가, '미술의 해'를 계기로 해서 잔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못 해왔던 것을 조금 다져주고 확인시키면서 또, '미술의 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 이런 것을 다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편으로 듣자니 '미술의 해'는 행사 중심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행사를 하더라도 전시를 준비하는 데 최소한도 2년 정도 기간을 가지고 차분히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졸속으로 해버리는 시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족할 만한 전시가 될지, 우리 기대에 부응하는 전시가 될지는 불투명한 것같습니다.
사회 : 정책적인 목적에서 매년 특정분야를 선정 그 분야의 해로 지정하는 그 근본 취지는 해당분야의 활성화와 내실을 기하고자 하는 점이지만 대부분 그 실행과정에서 일과성의 행사나 실적위주의 형태로 국가의 예산만 낭비하는 전례들을 볼 때 '미술의 해'를 바라보는 미술인들의 시각들은 다소 부정적인 견해들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조직위의 구성시기, 행사를 위한 전시장 확보의 불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미술계의 구조적 문제의 개선 등에 대한 구체적 검토도 미비한 실정입니다.
오상길 : '미술의 해'를 선포한 정부의 의도가 궁극적으로는 우리 문화계, 미술계의 발전을 위한 도움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국가를 경영하는 분들이 얼마나 광범위한 영역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문제를 안고 있을까 생각을 하기도 해도, 정말 무엇이 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문제는 한번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결정들이 궁극적으로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그런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 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아까도 실적 위주의 행사를 말씀하셨는데 행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행사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든가 행사의 배경이 되는 내용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발전을 가져옴으로써 행사가 빛이 나는 그런 모양이 되어야 한다고 보면 '미술의 해'는 미술인들을 위한 축제나 잔치라는 의미에서보다는 그 동안 우리 미술계가 안고 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어떤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미술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 미술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국가의 정책적인 부분들까지 폭넓게 논의되는 그래서 2000년대를 향해 나가는 문화예술계 정착에 초석이 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 현재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지명도 있는 원로들이라든가 기성작가들의 욕구를 해소시켜 주는 그런 차원에서의 행사가 아니라 발전적인 측면에서의 쟁점들을 부각시킬 수 있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미술인들의 자성의 해가 될 수 있는 해가 만들어질 수는 없는 건지 그런 바람을 한번 가져 봅니다.
사회 : 여러 가지 우려들을 말씀하셨는데 대안은 어렵더라도 우려 점을 해소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바람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있다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서성록 : 일단 화단 내적인 문제를 이야기하자면 1994년이라는 시점에서 한번 점검해봐야 하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싶은데 그것은 우리가 경험해 오던 문제의 틀과 지금 문제의 틀이 상당히 변화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점부터 말씀을 드리면서 저의 맺음말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구상과 추상의 대립 이것이 60년대의 이야기겠구요 70년대, 80년대는 순수와 참여의 대립, 민주화 체제와 반체제의 대립 이런 중심 문제가 90년대에는 무의미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사회도 변했고 미술도 변했고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의 화단이 짊어진 문제는 시장가치의 예술과 비시장가치의 예술에 심각한 갈등이 있지 않는가 생각을 합니다. 말하자면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에서 우리 화단의 경우에는 팔리는 쪽의 미술이 지배적인 미술로 바뀌었고 안 팔리는 유형의 문제제기적 미술은 소수의 미술로 전략해 가는 인상입니다. 앞에서 얘기한 구상과 추상, 순수와 참여, 지금 얘기한 비시장가치의 예술과 시장가치의 예술은 보수와 진보의 하나의 갈등 그것 가운데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는가 할 때 만일 이러한 보수와 진보의 두 축이 미술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부분이라면 보수없는 진보나 진보 없는 보수를 생각히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상길 : '미술의 해'를 맞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죠. '미술의 해'가 미술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로서는 미술이라는 문화예술의 한 영역이 한해 도안의 지원과 행사를 통해서 과연 얼마만큼의 발전을 가져 올 수 있을까라는 것에 회의적이고 보면 '미술의 해'는 '미술의 해'라는 한해 동안의 기획사업보다는 이 시점을 통해 한층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해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내부적으로 미술문맥 내에서 안고 있는 기반을 다지는 해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내부적으로 미술문맥 내에서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논의되고 검증되는 활발한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수의 전문인들과 대다수의 향유층들의 관계를 얼마나 더 친밀하고 가깝게 만들 수 있느냐에 대한 구체적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처럼 미디어가 발달되어 있고 감각적인 문화예술의 향유가 어느 때보다도 돋보이는 시점에서 여러 가지 매체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그와 같은 일들을 현실적으로 실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단 말이죠. 국민들이 좀더 우리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를 깊이 가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행사들을 만드는 것이 좋은 것 같고 요즘 들어 과천이라든가 몇몇 큰 미술관에서 괜찮은 전람회가 기획이 될 때 성황을 이루는 현상을 많이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국민들의 미술에 대한 향유가 그만큼 신장되고 있다는 의미인데 반해서 그 분들에게 좀더 미술을 가깝게 느끼고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보완장치들은 허술하지 않나 그런 생각들을 해봅니다. 미술문맥내에서 미술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준다거나 미술인들이 대다수의 향유층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일들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어떤 체계적인 사업들이 준비될 필요가 있지 않나 그래서 '미술의 해'이니까 '미술의 해'를 자축하기 위해서 대규모의 전시회를 연다거나 돈을 많이 들여서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예를 들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방송매체를 통해서 하는 전람회 소개를 하거나 우리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정도의 요식행사를 넘어서서 '미술의 해'를 맞이하여 토론회를 방영하거나 해서 미술인들이 생각하는 문제들이 직접 국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게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고 그리고 미술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도 깊이 있게 이루어져서 정말 이해하고자 하는 국민들에게 가깝게 좀더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일들도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미술원의 개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미술원이 전문인을 양성하기 위한 어떤 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 어떤 부분에서 제도적인 장치들이 필요한가 연구하면서 동시에 일반인과 분리된 전문인이 과연 있을 수 있는 것인지를 사려깊게 검토해서 미술가로서의, 전문인으로서의 전문적 소양을 닦는 일과 전문인들이 과연 일반인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도 동시에 연구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원의 개원은 단지 미술 전문인 양성기관으로서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미술을 좀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그런 노력도 함께 기울여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술원의 개원에 따르는 여러 가지 부수적인 노력들이 좀더 더욱 활발히 이루어 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봅니다. 그래서 학교를 하나 만드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닐진데 기초 연구 한번으로 학교의 모델이 형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속 연구도 좀더 진행이 되어야 하겠고 거기에 대한 깊이 있는 검증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미술원의 개원 문제도 좀더 공론화시켜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도 수렴을 하는 한편 미술원을 설립하기 위한 의사 진행상의 토론, 논쟁들이 첨예하게 떠올라서 정부에서 미술원을 만든다라고 해서 신문에 보도 기사로 나가는 것보다는 쟁점화되어 있는 내용들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미술원이 될 수 있도록 열려지고, 개방된 운영 체제틀을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봅니다.
사회 : 1994년의 미술계를 돌아보면 특별한 이슈는 없었으되 행사가 다양한 한해였고 문제점들이나 개선해야 하는 부분들이 검증 된 것 같습니다. 내년에 '미술의 해'를 맞으면서 미술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심도있게 검증되고 일과성으로 끝나는 행사 위주의 '미술의 해'보다는 미술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들을 새롭게 점검하고자 자성하는 원년으로 삼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다양한 미술계의 진전을 기대하면서 오늘 얘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