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은 명예롭고 잔치는 흥겨워야…
서울무용제를 마치고
이은경 / 국민일보 문화부 기자
무릇 상은 명예로워야 한고 잔치는 흥겨워야 한다.
우리 무용계의 가장 큰 잔치라는 서울무용제는 어떤가? 상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무용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온 중견들은 참가를 기피하고 있다. 객석 점유율은 60%를 밑돌고 그나마 절반 이상이 초대관객이다. 언제부턴지 졸작 잔치라는 혹평이 따라다니다.
올해도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예선을 거쳐 10개 본선 참가단체를 뽑아야 하는데 마감 전날까지 신청 단체가 9개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 1991년 신청률 저조로 8개 단체만으로 절름발이 무용제를 치렀던 한국무용협회(이사장 조흥동)는 부랴부랴 특정 무용단에 참가를 권유, 억지로 숫자를 맞췄지만 그 과정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만 벌이고 말았다. 급한 김에 참가를 권유했다가 마감을 하고보니 11개 단체가 신청, 뒤늦게 한 단체를 떨어뜨려야 했던 것이다.
사정이 어찌됐든 주최측이 참가를 구걸해야 하는 서울무용제가 더 이상 우리 무용계의 진정한 축제요 명예로운 경연의 마당이 될 수 있겠는가?
이쯤 되고 보니 무용제를 비판하는 소리도 점차 수이가 높아져 이제는 존페논의나 자조적인 푸념까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다는 극단론에서 예전처럼 문예진흥원에 주최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시대역행적 진단뿐 아니라 언론에서 단 한 줄도 보도하지 말고 철저히 소외된 행사로 만들어버려 운영을 개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자'는 식의 처방까지도 나오고 있다.
한때 우리 창작춤의 산실로서 무용가들의 열띤 경연장이었던 무용제가 오늘날 왜 천덕꾸러기에 동네북이 되고 말았을까? 정말 개선책은 없는 것일까?
무용제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둘로 요약된다. 출품작이 질적 저하와 심사의 공정성에 관한 것이다. 심사의 공정성 시비가 잦아지면서 중견무용가들의 참가기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고 그 결과로 무용제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의 경우를 보자.
장정윤현대무용단, 애지회, 백현순대구무용단, 금술무용단, 가림다현대무용단, 뫼오로시발레단, 김광자무용단, 장유경무용단등 10개 단체가 참여했지만 참가단체 중 김화레발레단과 가림다현대무용단을 제외하면 모두가 창단 10년이 채 안돼는 무용단들이다. 장정윤무용단, 백현순무용단, 장유경무용단, 김광자무용단 등 지방 단체의 참가가 늘고 우리 춤계의 창작 흐름을 주도해온 중견 단체들, 이를테면 창무회나 리을무용단, 국수호디딤무용단, 한국현대무용단, 서울현대무용단, 현대무용단 탐, 이정희무용단, 남정호무용단, 툇마루무용단 등은 한 단체도 참여하지 않았다. 물론 이중에는 이미 대상을 받은 적이 있는 단체도 있고 무용단의 연륜이나 안무자의 경력이 전부는 아니다. 무용제를 통해서 새로운 안무가가 발굴, 육성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한 현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참가 단체는 젊어졌지만 작품들은 새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오히려 구태의연함에 머물거나 기성의 아류들이 많다.
올해는 지난 1985년 애지회가「감네」로 대상을 받은 지 9년만에 처음으로 발레 부문에서 대상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올해 무용제를 통해 창작발레의 수준향상을 점치는 것은 무리다. 김화례발레단은 소위 백색발레의 환상과 우아한 아름다움과는 대조적인 악마적이며 음산한 분위기로 눈길을 끌었다. 극적 구성의 개연성이나 설득력은 약했지만 제물로 받쳐졌다가 악마의 의해 새로 변신한 무용수들의 괴기스러운 춤, 악마 역을 맡은 제임스 전의 마임 같은 독특한 연기, 다른 단체들에 비해 비교적 공들인 무대장치나 화려한 의상 등이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창작 발레의 새로운 비전 제시에는 미치지 못했다. 애지회의「색동옷」은 도시적인 전개와 줄거리 묘사에 끌려 다니느라 무미건조했다. 무용수들의 비교적 고른 기량이 작품을 받쳐주었을뿐 한국적 소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창작발레의 한계를 새삼 생각하게 했다. 선교발레 같은 인상을 준 뫼오로시발레단의「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주제의 전달이 불분명해 아쉬웠다.
현대무용 분야의 참가작들은 안무상을 받은 기림다현대무용단의 「족보」, 정욱조현대무용단의「빈배」,장정윤무용단의「소문의 벽」, 손관중의 안무한「족보」는 잘 훈련된 무용수들의 뒷받침으로 비교적 짜임새 있는 무대로 꼽혔고 힘찬 남성춤과 역동적인 군무가 돋보였다. 작품 전체를 일관성 있게 이끌어 가는 힘은 높이 살만했지만 젊은 안무가다운 참신함은 부족했다. 정옥조현대무용단의「빈배」는 줄거리를 춤으로 풀어가려는 경향이 짙은 다른 참가자들과 좀 다른 색깔의 춤을 보여줬다. 우선 무용수들의 시체의 움직임 자체가 만들어내는 조형성과 이미지의 창출을 추구했으나 단조로움이 결점으로 지적됐고 배경으로 등장한 배 모형들이 작품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겉돌았다. 장정윤의「소문의 벽」은 벽을 상징하는 간단한 무대장치를 이용해 소외된 사람들의 단절감과 위기의식, 사회와의 갈등을 표현했다. 2장의 장정윤의 솔로는 호소력이 있었지만 군무는 전체적으로 어수선했다.
한국무용은 눈에 띄는 역작이 없는 평균작을 밑도는 공연들이었다. 백현숙대구무용단의「바위」는 문둥병 걸린 어미와 딸의 혈육의 정을 다룬 것으로 주제의 전개가 진부한 무용극 수준을 넘지 못했고 줄거리 설명에 매달려 춤이 살아나지 못했다. 김광자무용단의「바다에 잠긴 돌」이나 장유경무용단의「수로가」역시 한국 창작춤의 공통적인 약점인 주제 표출을 모호함을 넘어서지 못한 범작이었다.
이번 무용제에서는 눈에 띄는 역작 없이 하향평준에 머문 것과 함께 심사위원 구성도 여전히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무용협회 이사회에서 무용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위원회에서 다시 13명의 심사위원을 위촉했는데 지금까지 무용제의 창조적 비판세력이었던 한국무용평론가회 소속의 평론가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고 비주류 혹은 지방출신 심사위원의 비중이 예년보다 높아져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또 무용과는 무관한 문예진흥원 부원장을 당연직 심사위원으로 위촉, 본인의 심사를 고사하는 등 심사위원 구성의 객관성이나 전문성 부족을 드러냈다.
주최측에서는 참가 무용단이 관련된 대학의 교수나 지난해와 중복되는 인물을 배제하다보니 불가피했다고 토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 선정은 무용제의 공정성 시비와 관련, 가장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문제임에 분명하다.
무용제 심사에 대한 무용계의 불신은 생각보다 골이 깊다.
일률적인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예술작품에 대해 등수를 매긴 다는 것 자체가 원초적으로 뒷말을 낳을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용제의 경우는 유독 심해 해마다 결과 발표 이전에 수상단체가 어디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올해는 주최측인 한국무용협회의 조흥동 이사장이 무용제 개막을 앞두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번에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이례적인 다짐까지 했는데 여전히 미확인 소문들이 나돌았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무용가들이 이같은 미확인 소문들을 믿으려 하고 참가 단체들도 심사결과를 흔쾌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만큼 불신이 쌓였다는 이야기다.
불신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지 웅변하는 사례는 지난 1987년 한국무용평론가회(당시 회장 채희완)가 발표 당일 주최측과는 별도의 심사결과를 발표한 사건이다.
한국무용평론가회는 무용협회측의 심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발표당일 별도의 결과를 내놓아 무용계를 긴장시켰다. 당시 무용협회 측에서는 대상에 김근희무용단의「0의 세계」, 안무상에 주연희(주연희무용단)등을 선정한 반면 무용평론가회에는 현대무용단 탐의「얼굴찾기」를 수작으로 뽑고 안무상은 채상묵(채상묵무용단)에게 주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미술상, 음악상 등 나머지 개인상도 양측의 견해가 판이했다.
무용제의 권위에 대한 첫 전면 도전이었던 무용평론가회의 독자적인 심사발표는 당시 무용계를 술렁이게 했지만 주최측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89년 무용평론가회(당시 회장 김영태)에서는 본격적으로 무용제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대한민국무용제 운영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무용계의 중지를 모았다. 무용평론가들과 일부 무용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무용제 개선방안을 모색한 이 자리에서도 무용협회 측에 대한 불신이 팽배, 협회대신 무용계 분야별 단체장들로 별도의 집행기구를 구성해 치르자는 안을 비롯한 몇 가지 개선 안이 제시됐지만 이 역시 문제제기로 끝났고 무용제 운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90년대 들어 무용제에 대한 무용가들의 무관심 확산과 열기의 급속한 냉각으로 곳곳에서 비판과 불평의 소리가 높아지면서 주최측인 무용협회 측에서도 1991년 3월에는 운영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열기에 이르렀다.
이때도 발제자로 나선 무용평론가 정병호씨가 무용제가 해마다 무용가들에게 경비를 보조 배분해주는 선심행사로 오인되는 경향이 있다며 경연형식을 빌리면서도 엄격한 심사를 하지 않고 나눠먹기식으로 운영돼온 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개선을 촉구했었다. 하지만 이때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고 이후에도 심사를 둘러싼 잡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무용제에 대한 비판과 개선을 촉구하는 소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달라지는 것은 없다. 무용제가 예전의 권위를 회복하고 무용계의 진정한 축제와 선의의 경쟁의 마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는 없는가?
서울무용제는 문예진흥원이 지난 1979년 창작춤 활성화를 위해 창설한 대한민국 무용제를 전신으로 한 행사로 1990년부터 서울무용제로 명칭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관주도 행사의 민간이관 원칙에 따라 문예진흥원과 한국무용협회의 공동주최 시기를 거쳐 1989년부터 운영권이 일체 무용협회 측에 이관됐고 문예진흥원은 예산지원만 해주고 있다.
초창기에는 창작무용 부재의 우리 무용계에서 제작지원금과 개인상 수상자에 대한 해외연수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특전 때문에 무용가들의 선망의 무대였지만 점차 권위가 퇴색해 최근에는 유명무실론까지 대두된 실정이다.
한국무용협회 측에서도 현재의 무용제가 개선돼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무용협회에서는 운영 개선을 위해서는 예산문제가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1985년 이후 제자리 걸음인 단체상 제작지원금 7백만원과 무료대관 혜택만으로는 작품제작료에 턱없이 못미처 무용가들의 참여열기가 식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문예진흥원에서 해마다 두 작품씩 지원하는 창작활성화지원금이 2천5백만 원인 점을 감안할 때 최소한 단체당 1천5백만 원의 지원금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해마다 문예진흥원에 예산증액을 요청하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1995년 예산으로도 8천만 원 증액신청을 해놓았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무용계에서는 예산증액만으로 무용계의 실추된 권위가 회복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올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중견무용가는 더 이상 무용제에서 기대할 것이 없다고 고개를 흔든다. 심사에도 더 이상 참가하고 싶지 않다는 체념섞인 한마디는 바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서울무용제의 현주소다.
그 동안 몇 차례의 개선 기회가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비판할 의욕조차 잃어가고 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분명한 것은 무용제의 주인은 무용협회집행부가 아니며 무용제는 또 다른 누구도 아닌 창작열에 가득찬 무용인들을 위한 축제라는 점이다.
무용인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무용잔치는 설 자리가 없다. 상을 받고도 항상 공정성 시비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다면 상인들 무슨 명예가 될 것인가. 제도적 개선과 무용인들의 주인의식을 그래도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