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세계화를 위한 제언

지식, 기술, 태도가 동시에 성숙해야 한다.




노동은 / 목원대 교수

한국에서 문화의 세계화란 한국에 살고 있는 구성원(조직)으로서 문화에 대한 자질과 자세의 국제화를 말한다. 특히, 문화를 주도하는 주체로서 문화예술가나 문화정책자들의 능력 재고와 의식변화는 한국인들의 문화감수성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곧 우리들의 문화가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든 지식적 차원과 기술적 차원 그리고 태도적 차원이 동시에 성숙해야함을 말한다.

지식적 차원이란 우리 문화에 대한 '재료 material·사회 social·표현 expressive'이라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시스템에 대한 폭넓은 상식과 다양성의 이해, 전문적 지식 획득을 말한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시스템에 관한 지식획득은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를 구조적으로 '비교'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재료란 우리 문화가 사회적 관계와 제도로 역사화시키면서 표현한 거룩한 두려움(종교)·예술·언어의 조건이자 물리적 토대이다. 재료만 떼어서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시스템을 전일적(全一的)으로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재료에 대한 이해 없이는 사회와 표현에 대하여 구체적 이해도 할 수 없다. 한국 음악의 경우는 한국의 음향적 재료를 말하며, 한국 미술의 경우는 한국의 미술적 재료를 말하며, 한국 복식문화의 경우는 한국의 복식 그 자체의 재료를 말한다. 이것은 한국인들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사회적 관계를 맺으려 표현하였는지에 대하여 그 재료에서 구체화하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또는 서양인이나 중동인)인들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사회적 관계로 맺으며 아프리카 종교와 예술과 언어를 표현하고 있는지, 아프리카문화의 재료들에 대한 구조적인 지식획득으로 이해할 때 세계문화인으로서 한국인이 될 수 있다. 한국인의 눈으로 아프리카 문화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인의 눈으로 아프리카 문화생활의 패턴이나 그 관습들을 이해할 때 우리들은 세계 문화인으로서 성숙할 수 있음을 말한다.

두 번째의 기술적 차원은 한국의 사회문화적 시스템을 먼저 기술적으로 익히고 다른 나라의 그것도 익히는 이중 언어성(음악성·미술성 등) 익히기를 말한다. 한국어도 잘하지만 영어도 잘하는 기술 등 그 분양의 이중 언어성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기술을 말한다. 아시아 태평양, 한국과 극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와 서양 등의 경제협력기구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이 분야의 문화교류나 제휴가 그 어떤 시기보다 급속하게 왕래될 전망이다. 우리들은 저들의 사회문화적 시스템을 실제적으로 익힐 때 그 두 관계가 돈독해질 것이며, 그러할 때 우리의 문화력과 경제력이 국제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우리 문화인양 학습해온 일본과 서양문화 감수성으로 동남아시아나 태평양연안, 아프리카 국가들의 문화와 대화할 때는 그 어느 경우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그 전제로 우리들은 먼저 한국 음악의 경우 민요조 가락이나 단소 한 곡조를 실제적으로 익혀야 국제간 대화의 근본으로 나설 수 있다.

세 번째의 태도적 차원은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뜻하며, 동시에 국제 문화시스템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말한다. 우리야말로 지난 근현대사 기간에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민족국가로서 국난을 겪었다. 일본과 서양을 '알지 않으면 힘이 국가'로서 보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본과 서양(특히 미국)을 '학습'하였다. 그 결과 '한국문화는 낡은 것이고 일본과 서양은 새 것'이라는 인식이 공식화하였다. 한국전통문화는 근대화로서 '발전의 걸림돌'로 인식하였다. 이제는 문화예술의 담당자도 정책수립자의 모든 사건이나 프로젝트가 스스로 익힌 일본과 서양문화 감수성으로 한국문화를 접근하여 '부활'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일본과 서양문화도 더욱이 한국문화도 충실하지 못하여 그 어느 쪽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공허감'이 도처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들은 지난 백년 동안 한국 문화의 역사와 미학에 대하여 학습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문화가 저절로 익혀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문화적 시스템이 아니다. 사회문화적 시스템이 일본과 서양문화로 되비질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백년간의 국제화란 정의는 일본화 아니면 서양화 특히 미국화를 가리켰다. 그래서, 한국문화는 모방문화가 아니었는가! 그래서, 더욱 공허감이 팽배하고 있을 때 지금 '국제화→세계화'란 용어들이 쏟아지면서 혹시 '방황'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문화의 발전이 일본문화나 서양문화가 아니다. 한국과 외국의 문화 차이는 '합리성'의 결과가 아니라 '세계관'의 차이에서 나온다. 문화의 척도는 발전이나 과학이 아니라 삶이다.

이제는 대전환을 기획할 때이다. 지난 백년간의 목적, 곧 일본과 서양문화 학습하기의 목적이 한국문화 발전시키기에 있었다면, 이제 한국문화의 역사와 미학을 학습할 수 있도록 제도화시키고 생활화하여야 한다. 어느 문화권이고 그 문화가 창의적인 경우는 역사적 문화경험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전환을 모색할 대다. 그것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우리들이 말하는 바의 국제문화의 '다양성'이 펼쳐질 터이고, 그리고 한국문화에다 멀티미디어를 갖추면 국가경쟁력이 생겨 문화전쟁을 이끌 수 있을 터이다. 또, 한국문화의 역사적 경험을 위해서도 남북문화교류가 본격화하여 한반도 차원의 문화대응력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