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허 권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지금부터 10여 년 전 유럽의 문화정책 담당자들은 곧 출범할 유립공동체에 대비하여 유럽의 문화정책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라는 거시적 문제를 가지고 많은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일본과 미국의 막강한 자본과 기술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유럽을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실험장으로 용인하지 않겠다는 정치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된 유럽의 통합 논의는 상이한 문화적 이질성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유럽의 문화담당자들은 유럽의 발전은 문화의 역동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의 차별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문화적 통합 multi-cultural integration과 지역문화 분산화정책 decentralization polity를 지향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의 경우, 세계화에 대한 당위성은 인정하고 있지만 세계화의 의미와 개념, 그리고 지향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충분한 시각조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학자간에 접근된 견해를 종합해 보면 국제화는 국가의 틀을 깨지 않고 외국과 교류를 하는 내셔널리즘에 근거하고 있지만 세계화는 국제화의 다음 단계로 서로 이해하고 상호 공존하면 인적·물적 그리고 정보의 교류가 장애없이 이뤄지는 그야말로 코스모폴리탄적인 세계관을 의미한다. 21세기의 특성으로 부각될 세계화와 우리 문화계의 현실은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아직까지 우리의 문화는 국제화의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근자에 들어와서 비로소 국제교류의 중요성을 자각하기 시작했고 정책적으로도 이에 대한 노력이 착수된 지는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우리의 문화는 외국의 문화와 상호병존하면서 우리의 것을 발전시키는 자생력과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마치 10연 년 전 유럽의 조그마한 국가의 문화담당자가 유럽통합 후 거대 문화권에 흡수될 자국의 문화를 걱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우리의 현실은 이보다 더 혼란스러울지 모른다.
문화의 세계화라는 명제는 결코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개념이 아니다. 문화가 거대 자본에 의해 상업화되고 있는 이즈음, 문화의 세계화는 자칫 우리 문화의 다국적화 혹은 잡다한 이물질이 혼재된 잡종화가 될 공산이 많다. 만약 정책 차원에서 이에 대한 치밀한 대비가 없다면 다국적 문화산업에 의한 문화의 종속화, 획일화, 상업화가 만연 할 것이 자명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문화는 필연적으로 '문화의 국제화'와 '문화의 세계화'라는 이중적 목표를 설정할 할 수밖에 없다. 문화의 세계화는 우리 국민들이 급변하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고와 생활양식의 창조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문화의 국제화'는 우리 문화계의 미비한 여건을 개선하고 자생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
문화의 세계화라는 당면과제는 그 속성상 휴머니티에 근거한 다학문적, 다부분적 정책수립으로 전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술지상주의, 대중문화 향수권과 같은 폐쇄적이고 국지적인 정책은 더 이상 한국문화의 세계화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경제, 사회, 복지, 교육 분야를 포괄하는 정책통합이 시도되어야 하며 이 정책은 문화의 수용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인본주의적 철학에 기초해야 한다. 문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웃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능력이 배양과 우리의 것을 정확하게 알며 전달하는 것이 세계화 속에서 우리의 문화정책이 나아가야할 목표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