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로 화려함 더해진 소극장
이정재 /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다시 한해가 시작된다. 언제나 시작은 끝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해준다 이 점을 연극에 대비해 보면 1월공연을 정리해 나가는 작업은 그것이 대강 올해의 추세와 판도를 예측하는 지표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1월공연을 기준으로 할 때 결론부터 얘기하면 올 연극계는 지난 해에 이어 뮤지컬 강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 공연은 주로 대극장에서 이루어졌던 지난 해와 달리 중·소극장 뮤지컬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에서 뮤지컬의 일반화·대중화에 가속도가 크게 붙었음을 알려준다. 게다가 소극장·중극장·대극장에서 뮤지컬이 나란히 올라 간다는 것과 이들 공연이 사실은 다음 달부터 줄줄이 이어지는 대형뮤지컬의 전위대 역할을 한다는 점은 올 연극계「뮤지컬의 강세」의 흐름을 그대로 대변해 준다고 할 것이다.
소극장 뮤지컬로는 극단 민중의「약속 또 약속」(7일부터, 대학로 J아트홀)과 극단 신시뮤지컬컴퍼니의「그리스 록큰롤」(12일부터 2월 5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 극장)이 각각 공연되며 중극장에선 극단 에스컴의「심수일과 이순애」(19일부터 3월 5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이, 대극장에선 정통뮤지컬은 아니지만 뮤지컬 노래와 극적인 장면을 모아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한「뮤지컬 하이라이트 콘서트」(세종문화회관, 24, 25일)가 개막된다.
「약속 또 약속」(닐 사이몬작·박봉서 연출)은 소극장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무기한 공연을 선언하고 나섰다는 것과 80년대초「아가씨와 건달들」로 이땅에 뮤지컬 붐을 선도한 주역중의 하나인 민중극단이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일단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지금은 고전이 된 셜리 맥클레인, 토니 커스티 주연의 영화「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를 닐 사이몬이 뮤지컬로 각색한 이 작품은 1968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되어 1천2백81회의 장기공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대개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일단 무대에서 히트한뒤 영화화되는 것에 비해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약속……」은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이 뮤지컬은 생명보험회사의 말단 직원이자 여자들에게 인기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척크 박스터가 애인이 없다는 이유로 남에게 자신의 아파트 열쇠를 빌려주기만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회사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사원 프랜 쿠벨릭과 행복한 결혼을 약속한다는 줄거리의 코미디물.
척크 박스터 역에는 기주봉·신종수가 프랜 쿠벨리 역에는 노영화·조성희가 더블 캐스팅됐으며 박기산, 조은선 등 민중의 주요단원들이 열연한다. 영화「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제곡「Rain Drops Foll in On My Hat」 등 귀에 익은 히트넘버 13곡이 화려한 율동과 함께 뮤지컬의 참맛을 더해주며 영문과 교수이자 연출가인 정진수씨의 깔끔한 번역·각색도 극의 리듬감을 잘 살펴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스 록큰롤」(짐 자콥 작곡·위렌 캐세이 작사, 배해일 연출)은 뮤지컬보다는 70년대말 존 트래볼타 주연의 영화「그리스」로 더 유명해진 작품, 록큰롤 개화기의 50년대를 배경으로 미국 청소년들의 생활상을 그린 이 뮤지컬은 고교 졸업반 대니와 샌디가 벌이는 록큰롤 댄스파티 장면이 특히 압권이다. 미국 안무가 엘리팟츠를 초청, 브로드웨이 안무의 진수를 선보이며 신시뮤지컬컴퍼니 전속 그룹사운드「보스」가 연주를 맡아 신명나는 록 리듬을 쏟아낸다.
또 기존의 뮤지컬이 흥행을 고려해 연극계 외의 대중스타를 대거 주역으로 캐스팅하기 일쑤인데 비해 뮤지컬 전문배우와 신시 단원들만을 가지고 이뤄지는 전문 뮤지컬이란 점이 또 하나의 특색.
뮤지컬 전문배우로 이미 탄탄한 기반을 구축한 형제배우 남경주가 주원성과 데니역에 더블 캐스팅됐고 샌디 역에는 뮤지컬 스타로 발돋움한 최정원, 강효성이 공동주역으로 출연한다. 또 뮤지컬 배우로 전업했다는 소릴 들을 정도로 활발한 뮤지컬 출연을 계속중인 윤복희가 미스린치 역을 맡아 가세,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심수일과 이순애」(이상우 작·연출)는 신파극「이수일과 신순애」의 골격을 바탕으로 현대판 순애보를 그린 뮤지컬 코미디 멜로물, 이 극은 놀이성을 극대화시켜 멜로드라마에 코미디와 춤, 그리고 노래와 어우러지는 일종의 악극 형식으로 꾸며진다. 에이컴의 창단 두 번째 작품으로 제작비만도 오억원에 달하는 대작이다.
목포에 있는 극장식 카바레의 무명배우 심수일과 이순애의 사랑이 서울 유흥업계의 대부 김중배를 만나면서 파경에 이른다. 이를 악물고 스타가 된 심수일은 거지가 된 순애와 밤무대에서 만나 함께 노래를 부르며 잃어버린 사랑을 확인한다는 게 줄거리.
정상의 탤런트 나현희가 순애역을 맡아 뮤지컬 데뷔무대를 가질며 가수 진미령씨가 수일과 순애의 사랑을 돕는 재일교포 가수리에 역을 맡는다.
「뮤지컬 하이라이트 콘서트」는 신시뮤지컬컴퍼니와 서울시립가무단이 공동으로 브로드웨이 유명뮤지컬의 하이라이트만을 따로 모아 구성한 것.「미스 사이공」,「레미제라블」,「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Don't Cry For Me Argentina」, 「그리스」의 대표적인 뮤지컬 멤버는 박상원, 김진태, 이종용, 윤복희, 김성녀 등의 출연해 열창한다.
이밖에 지난해 연말부터 학전소극장에서 공연중인「별님들은 세상에 한 사람씩 의미를 두어 사랑한다는데」(김정일 작·송미숙 연출)를 포함하면 이달에만 총 5편의 뮤지컬이 공연되며 그중 3편이 소극장 뮤지컬이란 점에서 1995년 1월은 한국연극사상 유례없는 소극장 뮤지컬 풍년의 달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정극으로는 극단 거보가 뚜레박 소극장에서 13일부터「햄릿머신」(김재운 연출)을 공연하며 극단 서전이「목화마차」를 샘터 파랑새극장 무대에 올린다. 하이네 뮐러 원작「햄릿머신」은 극단 반도가 재작년 공연시 남자배우의 화끈한(?) 노출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작품으로 세익스피어 원작「햄릿」을 일종의 패러디 기법으로 각색한 것.「외설춘향전」,「불지른 남자」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권혁풍의 호연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이밖에 지난 연말부터 해를 넘겨 공연중인 작품 중에는「거미여인의 키스」(22일까지, 산울림소극장),「첼로」(29일까지, 현대아트홀),「루브」(무기한, 락산극장),「욕망의 섬」(16일까지, 미리내소극장)등이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냄새나는 여자」(31일까지, 연단소극장),「수전노」(26일까지, 바탕골소극장)도 성황리에 공연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