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산책

알프레드 히치콕과의 만남




육상효 / 자유기고가

알프레드 히치콕이라는 영화감독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본 사람은 또한 많지 않을 것이다. 53편이나 되는 그의 영화들은 만들어질 때마다 대부분 큰 성공들을 거뒀지만 그리고 여전히 미국과 유럽의 시네마테크들에서는 젊은 영화광들에 의해 열렬히 숭배되며 상영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불행하게도 5, 60년대 잠깐씩 개봉된 것 말고는 거의 히치콕의 작품들에 대한 접근이 차단돼 있었다. 히치콕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비디오로 출시된「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이지만 이 테이프도 이미 비디오가게에서 사장된 지 오래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하게 이 영화의 백과사전들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의 교과서에서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에 한 비디오사가 출시한 2편의 히치콕 작품 비디오가 그래서 반가운 것이다. 더구나 이 비디오사는 자사가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히치콕 작품들을 시리즈로 매달 2편씩 출시할 계획이라고 하니 히치콕 매니아들에게는 참으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외국을 통해서 어렵게 구한 히치콕의 영화들을 보면서 자신의 영어실력을 통탄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히치콕은 1899년부터 1980년까지의 생애 동안 53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1922년「제13번 Number Thirteen」으로 그의 영화 경력을 시작했고, 1976년「패밀리 플롯」으로 영화 경력을 마감했다.

초기작부터 마지막 작업까지 그의 작품 속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는 인간의 불안이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는 인간의 불안,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인간(관객)이 불안과 초조함까지 그는 서스펜스라는 이름으로 함께 다루었다. 그는 당대의 비평가들에게 상업감독 내지는 흥행감독이라는 인색한 평가를 받았으나 까이에 뒤 시네마 그룹을 비롯한 유럽의 일군 비평가들은 그를 도스토예프스키나 채플린과 같은 위대한 예술가의 범주에 놓는 것도 주저하진 않는다.

앙드레 바쟁 식으로 말을 하면 '이 세계는 하치콕이 가진 실루엣에 아주 익숙하다. 균형을 잃지 않을까 늘 두려워하면서 살아가는 남자의 실루엣 말이다'가 되는 것이고, 프랑소와 튀르포는 하치콕을 '삶의 밀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세계를 강화시킨 인물'로도 기술하곤 한다. 그의 영화 세계가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외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욕망과 종교적 도덕간의 갈등, 성의 억압과 왜곡 그리고 인간 존재 자체의 불안이라는 잠재의식적 심층까지 담아내는 것이었다. 이는 평생 육체적 열등감에 시달렸던 한고독한 남자가 수행했던 정교한 내러티브 구성, 그리고 테크닉에 대한 고도의 이해를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히치콕의 영화 작업은 영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역정이었다.

무성영화로부터 영화 이력을 시작한 그는 항상 대사에 의존하지 않는 인간 감정의 시각화를 중시했다. 영화의 표현은 영상으로 시작되어서 완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것같은 이 말도 히치콕 자신이 얼마나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알면 당연하지 않아진다. 줌인(광학적인 기계조작으로 피사체를 확대시키는 촬영 방법)과 트랙백(레일을 깔고 그레일 위에서 카메라를 피사체에서 멀어지게 이동시키는 방법)을 혼합한「현기증」에서의 유명한 쇼트는 현기증이라는 인간의 느낌을 완벽하게 시각화한,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그는 이 쇼트를 생각해내기까지 15년을 고심했다고도 전해진다.

이런 노력은 영화의 기술적 한계에 대한 그의 집착으로도 증명된다. 스크린 프로세스에 대한 그의 연구는 비행기가 바다로 추락하는 신을 조종사의 시점으로 보면서 눈 앞에 가까워지는 바다와 추락 후 조종석으로 물을 몰려드는 장면까지의 한 커트로 찍을 수 있었고, 1948년에는 1시간 20분짜리 영화 전체가 단 한번의 커팅도 없이 전개되는 「로프」를 찍기도 했다.

이번에 출시되는 그의 영화는「암호명 토피즈 Topaz」와「찢겨진 커튼 Torn Curtain」두 편이다. 두 작품 다 하치콕의 후기 작품에 속하는 것으로 이런 류의 출시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배급사로서는 두 작품 다 컬러라는 것이 먼저 내게 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찢겨진 커튼」은 1966년 작품이다. 히치콕은 의욕적으로 풀 뉴먼과 줄리 앤드류스라는 당시 최고의 스타들을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미국의 물리학자가 극비 기술을 입수하기 위해 적국인 동독에 들어갔다. 탈출한다는 줄거리의 이영화는 하치콕 자신이 신문에서 읽은 두 영국 외교관이 조국을 버리고 러시아로 망명한 데서 힌트를 얻었다고 말하는 작품으로 당시 냉전 기류 속에서 자신의 서스펜스의 소재로 이데올로기를 다루기 시작할 무렵의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특히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장면은 농장에서의 살인 장면이다. 폴 뉴만이 있는 데서 농부의 부인이 그로맥이라는 사나이를 살해하는 이 장면은 뜨거운 수프, 식칼, 삽 등을 이용한 살인이 히치콕 특유의 현란한 편집에 의해 잔인하고 그러나 현실감있게 그려진다. 히치콕은 이 장면을 통해서 한 인간을 죽이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이고, 또 한 대개의 영화에서 순간처럼 지나가는 살인이라는 것이 실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인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후에 술회했다.

「암호명 토피즈」역시 프랑스 정부 내에 소련 스파이 조직이 있다는 실화에 바탕을 둔 냉전적 스릴러 작품이다.「찢겨진 커튼」의 경우에서와는 달리 이 영화에서는 스타보다는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유능한 배우들이 대거 참가하였는바, 비밀첩보원역의 프레드릭 스탠포드, 필립 느와레, 미셸 피콜리 등이 그들이다.

소련의 고급 공무원 보리스 크세노프는 미국 정보원 마이클 노스트룸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로 온다. 그는 프랑스 안에 있는 여러 정보원들의 도움으로 드골 장군의 측근이 되는 데까지 성공 하지만 결국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리라는 생각에 자살하고 만다는 게 이 영화의 줄거리다.

그러나 이 영화는 히치콕답지 않은 여러 가지 약점이 노출된다. 대부분의 히치콕 영화들이 정교하고 강한 결말들로 영화를 장식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이 영화는 돌연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걸 알리는 사운드 트랙과 함께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비춰지면서 막을 내릴 정도로 느슨하고 히치콕답지 않은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데올로기를 쓰면서도 그것을 서스펜스의 고양을 위한 도구로만 썼지 결코 정치 그것 자체를 얘기하려 하지는 않았던 히치콕은 이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반공주의를 내세운다. 영화 속 쿠바 장면에서는 카스트로의 측근들을 의도적으로 비웃는 장면까지 있다. 당시의 냉전 기류가 보편적 예술가 히치콕에게 얼마만한 영향을 주었는지는 몰라도 이런 류의 이데올로기는 영화의 전체 구조를 단순하게 하고 히치콕 특유의 인간 심리에 대한 예리한 동참술을 실종하게 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이 영화는 개봉 당시부터 히치콕 영화로는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외면받았다. 당연히 제작사도 히치콕의 능력에 회의를 품게했던 작품이었다.

국내에 히치콕의 작품이 비디오로 나온다는 사실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 첫 번째 출시작이「현기증」이나「오명」,「사이코」나「마니」가 아닌 히치콕 후기의 비교적 태작들이라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컬러이고 제임스 본드, 007영화들이 갖고 있던 냉전적 분위기의 작품이라는 게 최소한의 흥행에 대한 배급사의 기대를 부추켜 선정된 첫 출 시작들이라면, 바로 같은 이유로 이 작품들이 히치콕 최고의 태작들이라는 게 아이러니다(제임스 본드 영화들은 히치콕의 후기작들을 가장 값싼 방식으로 모방한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