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죽이기」와 최종원
이세룡 / 영화평론가
1월의 한국영화는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되어 상영중인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와 강우석 감독의 「마누라 죽이기」 여기에 구정에 개봉되는 박종원 감독의 「영원한 제국」과 이명세 감독의 「남자는 괴로워」를 더하면 그 야말로 한국영화 풍년이므로 관객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서 영화를 고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네편의 영화는 각기 역량있는 감독들의 영화로써 출연배우들도 안성기, 문성근, 김명곤, 박중훈 등 내노라하는 남우들과 최진실, 신은경, 이정재 등 인기배우들이 총출동하여 일대 경연을 벌이므로 흥미롭다.
필자는 이 가운데에서 박종원 감독의 「영원한 제국」과 이명세 감독의 「남자는 괴로워」의 성과를 주목하고 있다.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는 TV스타인 신은경의 인기가 어떻게 스크린의 연기로 변화할 수 있을지 궁금하며 「마누라 죽이기」의 흥행성적도 관심거리이다. 그러나 원고마감이 하루 지난 오늘까지 시사를 볼 수 있었던 영화는 강우석 감독이 연출하고 박중훈과 최진실이 주연한 「마누라 죽이기」한 편뿐이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는 철저하게 재미를 추구한다. 바람직하기로야 재미의 바탕 위에 의미를 얹는 것이지만 재미가 없어 관객들에게 외면당하기 일쑤인 한국영화의 실정에서 그래도 재미를 선사하는 그의 작업은 나름대로 뜻이 있다.
그가 「투캅스」의 흥행성공에 고무되어 내놓은 「마누라 죽이기」는 타이틀에서부터 관객을 자극한다. 박중훈과 최진실이 출연한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무슨 사건이 어떻게 벌어지고 그 결말 또한 어떠하리라는 것을 너끈히 짐작할 수 있다.
「마누라 죽이기」는 결혼이라는 통과의에 큰 기대를 거는 젊은 층과 신혼의 터널을 벗어난 층을 겨냥한 일종의 컨셉트 무비이다. 가볍고 감각적이고 웃음을 책임지려 들지만 의미는 책임지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코미디이다.
이 영화에서 신혼이란 껌과 같다. 조금 지나면 단맛이 빠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험많은 부부들은 단맛으로 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씹는 맛으로 산다. 하지만 젊은 부부들은 인생을 씹을 만틈 이빨이 튼튼하지 않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젊은 남편 박봉수는 단맛을 찾아 외도를 한다.
마누라(최진실)가 실권을 쥐고 이는 영화사의 기획실장인 남편(박중훈)은 회사에서 제작하는 영화의 여주인공역 배우와 남몰래 뜨거운 관계이다. 남편은 마누라만 없다면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착각한 나머지 마누라를 죽이기로 작정한다. 점을 치고 부적을 이마에 붙인 봉수는 짚으로 만든 인형을 송곳으로 콕콕 찌르고 심장이 약한 마누라의 심장에 무리를 가하기 위해 놀이터의 청룡열차를 타기도 한다. 그러나 녹초가 되는 것 남편 쪽이다. 마누라는 불사조처럼 오히려 생기를 얻는다.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남편은 전문 킬러(최종원)를 고용하여 마누라를 처치하려고 한다. 하지만 킬러인들 별수 없다. 킬러 역시 마누라한테 역습을 당하고 두손을 든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 마누라 죽이기에 관한 모든 정보를 미리 알려 주었으므로 출연배우들의 코믹한 연기와 감독의 재치있는 연출로 웃음을 유발하는 데, 육박전을 방불케하는 섹스장면을 가미하여 영화의 구색을 갖춘다. 제작을 겸한 강우석 감독은 목표가 분명하므로 박중훈의 몸짓과 표정을 활용하여 웃음을 제조한다. 이 웃음은 정말 우스워서 터지는 폭소가 될 때도 있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오는 실소일 때도 있다. 아무튼 박중훈의 연기는 웃음이 밑천으로 작용하는데 우리가 다른 영화에서 진작 보았던 것이므로 참신하지는 안다. 그의 연기는 자주 곡조는 같은데 가사만 다른 노래와 같다.
상황을 만드는 시나리오도 상투적이며 진부하기조차 하다. 이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중반 이후 볼만하다. 전문킬러로 나오는 최종원이 등장하면서 「마누라 주이기」는 웃음의 질을 비로소 궤도에 올려놓는다. 연극계에서 정평을 얻고 있는 최종원 호환성이 놓은 컴퓨터 같은 연기자이다. 「마누라 죽이기」에서 빨간 수영복을 입고 바닷속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라. 롱 쇼트로 잡은 이 장면에서 파도에 휩쓸리는 최종원의 고난은 그대로 웃음이다. 보장과 조명을 저승사자처럼 검은 얼굴의 그는 입가에 음흉한 웃음을 여는데 눈을 가늘게 뜨는 그의 킬러 연기는 「마누라 죽이기」 웃음의 백미이다.
최종원은 그 자신이 멜로디도 되고 리듬도 될 수 있는 악기이다. 「마누라 죽이기」에서 젊은 박중훈과 최진실이 마구 튄다면 최종원은 그의 생의 무게로 리듬을 연주한다. 그는 「마누라 죽이기」라는 거친 문장에서 토씨와 같은 존재이다. 마누라를 죽이려는 굿판에서 박자를 맞춰주는 북잡이다. 그는 자신의 성격을 역할에 맞추기도 하고 역할을 자신의 성격안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마누라 죽이기」의 재미는 최종원을 보는 재미이다.
강우석 감독은 늘 관객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관객'이란 대상을 단순히 입장권을 사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에서 자신을 죽이려다 실패한 남편을 받아들이는 아내의 태도는 사회의 통념에 비추어볼 때 터무니 없는 결말이다. 앞에서 이 영화가 웃음은 책임지지만 의미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뛰어난 감독은 스스로 책무를 짊어진다. 영화는 예술작품도 되고 문화상품도 되지만 작품에만 책임이 있고 상품에는 면책특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여기서 책임이란 관객을 이해시키고 이해를 얻으려는 노력인데 이런 설득력을 가질 때 영화는 떵떵거리며 문화상품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