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문화관광 시대를 연다 / 문화를 소재로 하는 코스의 소개

판소리를 느끼며 여행하고 싶은 곳




송혜진 /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원

춘향가의 사설을 따라 가보는 남원

꼼꼼한 성품으로 유명한 판소리 명창 김연수는 판소리「춘향가」와「흥보가」에 나오는 「남원 가는 길」을 하나하나 확인하느라 판소리 사설에 나오는 대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서울 남대문을 썩 내달아 한강을 건너 과천을 지나 칠원, 소사, 광정(충남 공주와 천안 사이에 있던 마을), 활원, 모로원, 공주, 금강을 지나 전라도 남원에 이르는 길이다. 서울에서 남원으로 가는 이 길은 「춘향가」에서는 변학도가 새로이 남원으로 부임하는 길이자 이몽룡이 어사가 되어 보고 지운 춘향과의 재회를 위해 가는 길이며「흥보가」에서는 보은(報恩) 박씨를 문 강남제비가 운봉에 사는 홍보 집에 가느라 신바람 나게 가는 길이다. 판소리에서는 이 대목을 변화 있는 장단과 사설 붙임으로 얼마나 아기자기하게 엮어 가는지 실제로 이 길을 따라 한번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뿐만 아니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달려 남원으로 들어서 지리산자락이 보이기 시작하면 벌써「춘향가」의 초입에서 방자가 이도령에게 「놀만한 경치를 아뢰는 대목」이 눈에 선하고, 또 한편으로는 '오리정 이별 대목의 배경은 이쯤이던가', '어사가 된 이몽룡이 신분을 숨기기 위해 초라한 행색으로 올라섰다는 박석티는 그 옛날 모습을 얼마나 간직한 채 외방의 여행자를 맞을까'하는 생각도 품으면서 조촐한 여행의 감흥을 맛볼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남원엘 갈 때마다, '이곳이 좀 더 음악적인 도시로 다듬어 졌으면……' 하는 생각과'남원에는 최고의 판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극장이 있어서 차안에 있는 사람들 거개가 소리를 들으러 가고 있는 길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유럽 어딜 가나 유명한 음악가의 생가가 있고, 그 지역에서 세계적인 음악축제가 열리며 여행자들은 그 축제를 보러 가기 위해 열심히 저축을 하고, 그 지역 사람들은 음악가의 얼굴을 담은 티셔츠와 초콜릿을 만들면서 여행자들을 완전히 사로잡는 경우처럼, 판소리의 탯 자리라고 할 수 있는 남원이 보다 음악적인 모습으로 여행자들을 맞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판소리 명창과 그 소리의 고향, 남원

남원은 판소리「춘향가」초입에서 방자가 '북문 밖 나가면서 교룡산성 대부암이 좋사옵고, 서문 밖 나가오면 선원사도 좋사옵고, 동문 밖 나가오면 구연(舊然)한 관향묘가 천고영웅이 어제 논 듯 하옵고, 남문 밖 나가오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이 좋사오니……'라면서 일일이 열거한 대로 아름다운 경치와 명승지가 많은 곳이다. 뿐만 아니라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여러 물줄기 중 서쪽으로 뻗어 내린 섬진강과 그 물길을 품은 지리산 자락은 수많은 판소리 명창들을 탄생시킨 소리의 고향이며, 판소리「춘향가」와 「흥보가」의 무대이기도 하다. 또한 이 지역 사람들의 국악 애호가 남달라서 지역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립민속국악원을 유치했고, 어린이에서부터 청소년층에 이르기까지 소리를 배우는 이들이 많아 지역 전체가 소리의 품에 안겨 있는 느낌을 주는 매우 판소리 적인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여행지로서 남원이 지닌 여건은 여느 지역보다 탄탄한 셈이다. 그리고 매년 음력 사월 초파일(춘향이 태어난 날이라고 한다)에 열리는 '춘향제'에는 판소리 명창대회를 비롯한 각종 전통행사가 벌어지고 있어 이 무렵 남원을 찾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지금 남원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 위에 몇 가지 생각을 곁들임으로써 가장 즐거우면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판소리 도시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곳곳에서 춘향가를 들으며 소리의 현장을 답사하는 코스 개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춘향가」를 들으며 남원 한 바퀴를 도는 음악여행코스 개발이다. 실제 판소리의 사설을 보면 아주 뛰어난 묘사력으로 남원의 이곳 저곳이 묘사되어 있다. 단옷날 광한루에서 바라다 보이는 녹림 숲의 정경, '정결하고 송죽(松竹)이 울민한 춘향의 집, 춘향과 이몽룡이 이별하는 오리정, 변학도의 부임 이후 등장하는 동헌의 모습, 춘향이 갇힌 옥문거리, 어사가 된 이몽룡이 다시 남원으로 올 때 감회에 젖어 소리 한 대목을 부르는 박석티‥‥‥' 등등. 이곳들을「춘향가」의 전개되는 소리 길을 따라 답사하는 코스로 개발한다면 남원을 찾는 여행자들이 이곳을 소리의 고향으로 느낄 수 있게 도와 줄 것 같다(소리에만 나올 뿐인 이곳들을 사설을 참고하여 재현하여 관광지로 개발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할 때는 소리를 할 줄 아는 안내자가 직접 여행자들을 안내하다가 대목 대목 소리를 들려준다거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완벽한 음향, 영상 시설을 갖춘 차량을 운행하여 경치와 판소리 유적지, 음악감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 등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답사코스는 남원시 주변에 있는 판소리 명창들의 고향을 찾는 길이다. 남원군에서는 조선왕조 순조 때에 운봉면 화수리에서 태어난 송흥록 명창을 비롯해서 송흥록의 손자 송만갑, 수지면에서 태어난 유성준, 주천면 출생의 김정문(1883), 근대 판소리계 최고 스타 중의 한 사람이었던 여류명창 이화중선 등이 나왔다. 그리고 이곳에는 판소리 명창들이 성장하던 곳, 소리 연습에 몰두하던 폭포수, 이들의 소리를 즐기면서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던 옛 부호들의 저택 등이 있어 이들을 복원하거나 음악답사지로 재구성함으로써 판소리를 배태시킨 땅을 구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밖에 남원을 본격적인 판소리 고장으로 성장시키려면 아무래도 이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명창들의 공연을 볼 수 있는 판소리 축제를 개최하는 일일 것이다. 일년 중 가장 좋은 때를 골라 판소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한 축제를 벌여 전국의 판소리 애호가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 문화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이 남원을 방문하게 하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와 아울러 남원에 가면 언제든지 정통 판소리 공연을 볼 수 있는 판소리 상설극장을 운영하는 일, 판소리에 관한 것이라면 옛 문헌에서부터 명창들이 남긴 사설 집, 판소리에 관한 모든 근·현대의 저작물, 판소리 공연자료, 명창들의 생애를 알 수 있는 자료들, 유성기 음반에서 레이저디스크에 이르는 판소리 음향영상 자료 등을 총망라한 판소리 자료관의 설립도 판소리 고장으로서의 면모를 다져줄 훌륭한 시설이 될 것이다.

한편 판소리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판소리에 한평생을 건 명인들이 소리의 고향에 함께 살면서 후진들을 양성하고 남원의 판소리 신화를 쌓아가며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명창마을을 만들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후원하는 방안, 옛 명창들이 수련하던 곳을 판소리 수련장으로 만들어 소리꾼의 꿈을 지닌 젊은이들이라면 으레 남원을 떠올릴 정도가 되도록 하는 일 등이야말로 남원이 안팎으로 탄탄한 판소리 고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하여 지방 행정부에서 문화행정에 박차를 가해 이를 관광사업과 연계시키는 작업이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