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문화관광 시대를 연다 / 문화를 소재로 하는 코스의 소개
시심을 부채질할 질마재 신화 복원을…
임순만 / 국민일보 문화부 기자
세계 대작가들의 생가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반쯤을 달려가면 도착하는 야스나야 팔랴나의 톨스토이 생가. 사방 십 리쯤은 넉넉히 되어 보이는 너른 땅에 숲은 우거져 새들을 부르고, 호수는 넘실거리며 러시아 정령의 미소를 느끼게 하는 곳. 여기에 오면 만년의 대작가가 쓰던 조그만 책상 하나가 유난히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옛날 우리나라 소학교에서 쓰던 것같이 소나무로 간단하게 만들었을 뿐 아무런 장식이나 칠도 입히지 않은 소박한 책상과 걸상. 여기에서 저 유명한「부활」이나「안나 카레니나」가 집필됐고, 매년 2백만 석이 넘는 곡식이 수확되는 대지를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준 평등과 박애사상이 싹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책상과 걸상은 그것이 작고 초라한 까닭에 더욱 오랜 세월에 걸쳐 세계인들을 감동시킨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생가. 한없이 정성스럽고 정결한 손길이 오랜 세월을 이어갔음을 보여 주는 마루바닥의 정경은 바로 이것이 괴테를 탄생시킨 힘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햇볕이 비치면 마루 바닥 위로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비칠 것만 같은 청결하고 순수한 분위기 속에서 대가의 탄생을 상상해보는 것은 여행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생가 복원해야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문화여행지로 나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부락을 천거한다. 시집「질마재 신화」를 비롯해 미당 문학의 정수가 흘러나온 이곳은 주위의 소요산, 장수강, 서해바다와 어울려 절창(絶唱)으로 감겨드는 미당의 가락과 그 신비로움을 엿보게 하는 곳이다. 명창은 명창을 부른다. 혹 어느 날의 젊은이가 극심한 방황 끝에서 시의 뮤즈를 만나 다시 이곳에서 우리의 가슴속에 불타오르는 시를 불러내 올지 누가 아는가.
미당의 생가는 제3공화국 당시 불어닥친 농어촌 취락개발운동에 따라 지붕이 슬레이트로 바뀌고 흙벽돌 위에 회칠이 되어 있지만 전형적인 시골 가옥의 형태로 비스듬히 쇠락해 가고 있다. 회벽은 떨어져나가고 부엌문은 일그러져 쪽이 맞지 않은 채 닫혀져 있어 어떤 서글픔을 얘기한다. 마당에 무성했던 쑥부쟁이 덤불과 한 쪽에 서 있는 감나무마저도 세월의 무게에 힘겨운 모습이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 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로 시작되는 시「자화상」에서부터 최근의 미당이 부쩍 자주 언급하고 있는 우리 전래의 신선(神仙)사상에 이르기까지 미당 정신의 비밀이 우러나오는 이곳은 잘 복원돼 문학기념관의 모습을 갖추게 될 때 우리에게 이따금씩 정신적인 자극을 주는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질마재는 미당의 시나 산문 속에서 종종 목가적인 풍경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미당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몹시 곤궁한 전라도 벽지 마을이었다. 대략 백 오십 호, 다섯 개의 촌락으로 이루어진 질마재는 한결같이 가난해서 소작을 하거나 공동으로 고기잡이를 하거나 외지인들이 경영하는 소금 막에서 품팔기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고개 너머로 나들며 어물행상을 하는 것으로 생계를 삼았다.
조건이나 형태에 있어 조금도 다를 바 없던 이곳 사람들의 삶이「질마재 신화」라는 파격의 민간 신화적 산문시집으로 나오게 되는 것은 외할머니에게서 들었던 민담과 동네의 사건들이 기본이 된 것이겠지만, 그의 도저하고 광휘로운 상상력은 마당에까지 흥건히 차오르는 바닷물이 전해주고 간 것인지도 모른다.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 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 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 새끼를 거기서 찾느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앞발로 낄낄거리며 쫓아다녔습니다만, 항시 누에의 실을 뽑듯이 나만 보면 옛날이야기만 무진장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 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처럼 불그레해져 바다 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시「海溢」중에서)
그러나 질마재는 상당부분이 간척돼서 바닷물이 마당까지 밀려오거나 뒷 소요산의 물줄기가 서해바다까지 흘러가는 광경을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미당의 생가가 복원된다면 크게는 선운사와 변산반도까지 이어지는, 작게는 춘란과 석곡이 숨쉬는 소요산에서 풍천 장어가 미끄러지는 장수강 일대까지 각박한 생활에 찌든 사람들에게 시심을 안겨주고 우리 예술에 한번 더 깊이 안길 수 있는 문화관광의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당의 생가는 하루빨리 복원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