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로프 발레단, 최초의 외국인 무용수를 꿈꾸며......
장광열 / 월간 객석 기자
모스크바에서 기차를 타고 밤새도록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 레닌그라드다. 지금은 레닌그라드란 명칭 대신에 페테르부르크란 옛 이름을 다시 사용하고 있지만…….
1992년의 일이다. 서울에서 출발해 1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기차로 밤새도록 달려서 도착한 낯선 도시, 그곳에는 유명한 예술의 명소가 셋 있었다. 아르미타주 박물관과 레닌그라드 음악원, 그리고 바로 키로프 발레학교라고도 불리는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가 그곳이다. 198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소련을 방문했던 기자에게 특히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는 중요한 취재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이 학교의 명성은 세계적으로 높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학교에는 우리나라 무용가도 한 사람 있었다.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김선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이화여대와 뉴욕대학 대학원을 졸업, 국내에서 발레를 가르치고, 발fp블랑의 멤버로 작품활동을 하던 중 이 학교의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1991년에 이곳에 왔었다.
김선희는 이 학교의 지도자 과정을 공부하면서 국내에 러시아의 발레 메소드를 보급시키는 가교 역할을 했다. 많은 훌륭한 교사들이 그녀의 소개로 국내에서 발레를 가르쳤다.
그녀는 제자 중에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유망주를 이곳 발레 학교에 입학하도록 주선했다. 물론 이들도 철저한 오디션을 거쳐야 했다.
그렇게 해서 바가노바 발레학교에 진학한 학생이 세 명. 이윤경은 지난해 이미 졸업. 브루스킨 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고. 유지연은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 공연에서 주역 무용수로 발탁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김지영은 현재 7학년에 재학중이다.
유지연이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의 졸업 공연인 [호두까기인형]에 주역 무용수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은 큰 경사이다.
세계 최고 발레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키로프 발레단 부설학교인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 졸업생들 중 상당수는 러시아 발레의 양대 산맥인 볼쇼이발레단과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 러시아 발레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50여 명의 졸업생 가운데 주역 무용수로 발탁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키로프 발레단이나 볼쇼이발레단의 입단 가능성을 더욱 높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26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는 명실공히 러시아 발레의 산실이다.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의 명성은 이 학교가 배출해 낸 댄서들과 안무가들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안나 파블로바, 타마라 칼사비나, 바슬라브 니진스키 등 불세출의 스타들을 배출했으며, [쇼피니아나], [페트루슈카], [불새]의 안무자로 유명한 미하일 포긴느가 졸업했다. 이들 외에도 볼쇼이발레단과 키로프 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예술감독인 유리 그리고로비치와 올레그 비 노그라도프, 세계 발레 계의 살아 있는 신화인 조지 발란신과 유명 발레리나이자 발레교사인 알렉산드라 다닐로바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니나 티모페에바, 루드밀나 세메니카, 스베틀라나 아디코에바 등이 볼쇼이발레단에서 활약한 스타들이라면, 50년대와 60년대 후반에는 루들프 누레예프. 나탈리아 마카로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등 기라성 같은 댄서들이 키로프 발레단에서 춤추었다.
키로프 발레단의 전용극장인 명성 높은 마린스키 극장에서 5일 동안 열린 이번 [호두까기인형]의 전막 공연에는 모두 5명의 이 학교 졸업생들이 주역 무용수로 뽑혔으며, 유지연은 1월 6일 공연에 출연, 관객들의 찬사와 함께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공연이 끝나자 학교의 교사들과 동료들이 그녀의 주위로 몰려와 '마치 프로 무용수가 춤추는 것 같았다'며 성공적인 공연을 축하했으며. 페테르부르크 [이타르타스] 통신의 알래그 세르보블스키이 기자 는 다음과 같은 평을 실었다.
'1월 6일 마린스키 극장에서는 서울 출신의 젊은 발레리나 유지연이 데뷔했다. 러시아 발레아카데미(아그리피나 바가노바 발레학교)의 유명한 교육기반을 보여주는 겨울방학 공연인 [호두까기인형]에서 주역인 마샤역을 맡은 그녀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으며 자기만의 확신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유지연은 이번 공연을 통해 러시아 고전발레를 배우는 데 있어 큰 성과를 거두었음을 입증해 보였다. 그녀는 예술가적 기질과 함께 특별한 재능을 보였으며. 그녀의 마샤 역은 매우 매혹적이었다.
불가리아 바르나 국제 콩쿠르에서 가장 훌륭한 듀엣을 춘 수상경력이 말해 주듯 그녀에게 있어 이날 무대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가 지적했듯이 지난해 7월 27일에 끝난 제16회 바르나 국제 콩쿠르에서 유지연의 수상 소식은 뜻밖이었다. 바르나 콩쿠르는 모스크바·잭슨 미시시피·헬싱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4대 국제 콩쿠르의 하나. 격년제로 열리는 이 콩쿠르의 역대 수상자로는 마카 로바와 바리시니코프, 패트릭 듀퐁. 실비 길렘 등 쟁쟁한 스타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그 권위가 인정되고 있는 콩쿠르다.
따라서 바르나 콩쿠르에서 최고 2인 무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이미 발레 댄서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은 셈이다.
당시 콩쿠르에서 유지연은 1차 예선에서는 [해적]을, 2차 예선에서는 [지젤]과 [카르멘]을 그리고 최종 결선에서는 [베니스 의 카니발] 2인 무와 이고르 벨리스키가 안무한 [이지다의 눈물]을 선보였다.
그녀의 춤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다양한 고전발레 레퍼토리의 대표적인 역할들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기술과 감정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현대적 창작물에서도 독특한 개성과 세련된 감정처리 능력을 보였다'는 평을 했다.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에는 매년 4천여 명의 학생들이 응시한다. 이 중에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학생만도 3백여 명에 이른다. 나머지는 러시아 전역에서 일정한 오디션을 거친 학생들이 지원한다. 이들 중 입학 전 단계에는 겨우 70명의 학생들만이 뽑힌다. 그만큼 엄격하고 경쟁 또한 치열하다.
이 세 가지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학생들만 8년 동안의 학업과 정을 시작하게 된다. 조기교육에다 미래의 신체적인 요건까지, 그리고 예술성까지 일일이 체크하는 과학성이 곧 러시아 발레의 힘일는지 모른다.
"8년 동안 공부하는 과목은 각 단계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불어와 피아노는 필수적이며 클래식 댄스, 캐릭터 댄스, 파드되, 마임 등을 단계적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훌륭한 무용수가 되려면 테크닉 훈련뿐만 아니라 음악성을 길러주는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의 커리큘럼에서도 알 수 있었다.
"키로프 극장과 말리 극장에서의 정기적인 공연과 학교극장에서 하는 갈라 공연을 통해 무대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학교에는 75명의 발레 교사와 30명의 피아노 교사, 그리고 40명의 일반 학과목 교사. 그리고 40명의 반주자들이 있습니다."
이밖에 발레박물관, 식당 등에 종사하는 사람을 합치면 발레학교 하나를 위해 3백 명 넘는 인원이 매달리는 셈이다.
"6월에 있을 최종 시험에는 클래식 레퍼토리와 2인 그리고 연기 등을 테스트 받습니다. 키로프 발레단의 올레 비노그라도프 감독을 비롯해 볼쇼이발fp단의 유리 그리고로비치 감독 등 러시아의 유명 발레단 예술감독들이 모두 시험관들이지요. 여기서 마음에 드는 무용수들이 있다면 단원으로 뽑습니다. 말하자면 취업 시험인 셈이지요."
이 자리가 유명 발레단에 진출하는 지름길인 만큼 그녀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녀가 꿈 꾸는 곳은 키로프 발레단. 한 가지 그 동안 키로프 발레단에는 러시아 이외의 국적을 가진 무용수들은 단 한 명도 뽑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최초의 외국인 단원이 되겠다는 그녀의 야심도 만만치 않다.
유지연은 서울 예원 학교 3년에 재학 중인 1992년에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으며. 국내에서는 김선희에 러시아에서는 코바레바에게 주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