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 이야기」
-제5세대의 변신
육상효 / 자유기고가
80년대 이래로 중국 제5세대 감독들의 세계 영화계 속에서의 성장은 눈부신 것이었다. 그 선두주자인 장예모는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등을 통하여 각종 해외 영화제를 휩쓸며 서구가 아닌 곳에서도 수준 높은 영화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서구의 평자들에게 알렸다. 또한 첸카이게 역시 [현 위의 인생], [패왕별희] 등을 내놓으며 중국영화의 성장이 어떤 한 개인의 우연적인 재능의 돌출이 아님을 입증했다. 그들의 영화 속에서는 중국이라는 땅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었고, 그들의 문화에 대한 영화적 해석이 배어 있었다. 중국을 거대한 사회주의 국가, 혹은 만리장성이 있는 나라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서구인들에게 이들 제5세대의 영화들은 거대 중국을 사는 사람들의 역사와 생활을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계기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영화로 표현된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영화 형식의 출현으로도 받아들여졌다. 동양화 같은 계림의 산하, 남성의 벗은 몸으로 표현되는 원시적 생명력, 그리고 중국 건물들의 독특한 선과 의상의 화려한 색깔들로 충만한 새로운 영상은 서구인들을 중국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들 제5세대의 영화들은 바로 그런 이유들로 일정한 성과만큼의 한계를 같이 노정 시켰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산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그들의 어느 영화에서나 문화혁명이나 경극, 유장한 중국의 산하는 등장했다. 중국적인 것들은 그들에게 세계 영화제의 수상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영화적 무기가 되어 갔다. 그들이 중국의 오늘에 대해서는 유난히 침묵하고 있는 것도 그들의 이러한 혐의를 짙게 했다. 고풍스런 기와집과 화려한 전통의상 봉건적이고 시각에 따라서는 야만적으로 볼 수도 있는 인습을 가진 과거의 중국이 아닌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공존하는 인구가 대도시로 밀집하고, 부의 편중이 가속되고 있는 오늘의 중국을 보여 준 영화가 없다는 데서 그들의 진정한 영화적 역량에 대한 의문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귀주이야기]는 이러한 때 나온 영화이다. 칸느 영화제의 대상 수상이라는 화려한 장식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의미 있게 평가되어야 할 영화이다. 그것은 드디어 이들의 영화가 중국의 오늘에 대해서 발언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다. 제5세대의 선두주자 장예모는 그 선두주자답게 가장 먼저 중국의 오늘이라는 자신들의 영화적 숙제에 카메라를 댄 것으로 그것의 결과는 자신들이 결코 중국적인 과거만을 포장해 내놓는 소재주의자들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었다.
[귀주이야기]에서의 영상은 철저하게 사람의 눈과 가깝게 간다. 거의 모든 장면이 조명을 극도로 배제한 채 자연광으로 찍혀졌으며, 카메라 앵글 또한 사람의 눈과 가장 가까운 자리를 택한다. 미학적으로 계산된 카메라 이동보다는 고정된 카메라 위치나 아주 조금씩 시선을 옮기는 패닝이 선호된다. 주연인 공리를 비롯한 연기자들의 연기 또한 최소한으로 네러티브를 끌고 가는 절제된 연기가 이 영화의 주된 연기 톤으로 자리잡는다. 음악 또한 길을 갈 때마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중국 전통 노래 몇 개 외에는 배제된다. 이 영화는 그래서 한 중국 시골 여인이 겪는 일의 담담한 묘사이다. 모든 인위적인 영화 미학적 고려는 이 작품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이런 모든 요소들은 지금까지 그들의 작업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장예모는 중국의 오늘을 기술하면서 그와 동 세대 그의 동료들이 트레이드마크처럼 사용해왔던 조명의 과다한 사용, 철저하게 계산된 잦은 트리킹, 건물의 구도를 아름답게 드러내는 부감 등의 카메라 앵글, 장엄한 화면과 함께 들리는 효과음악, 화려한 색깔, 강렬한 중국적인 연기 톤을 한꺼번에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형식에 있어서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귀주이야기]는 중국 어느 시골에 사는 여인의 촌장과의 분쟁 기이다. 딸만 넷인 촌장은 그걸 비아냥거리는 귀주 남편의 중요한 부위를 걷어찬다. 남편은 앓아 눕게 되고 촌장은 남편에 대한 사과를 거부한다. 여기서부터 귀주의 기나긴 소송 여정이 시작된다. 공안이라는 중국 행정구역상의 향(영화로 보면 우리의 면과 가까울 듯함)관리에게 이의를 제기하지만 향에서 온 명령은 경제적 보상이 전부였다. 그러나 귀주는 경제적 보상보다 힘있는 사람인 촌장의 힘없는 사람인 남편에 대한 사과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귀주는 현(우리의 군?) 관리에게 올라가고 현에서도 같은 답변을 듣는다. 귀주는 시(우리의 도?)로 올라가나 시에서도 같은 답변을 듣고 사건은 여기서 종결되려고 하나 귀주는 여전히 사과하지 않는 촌장을 이번에는 변호사를 고용해 정식 사법기관에 고소한다.
장예모는 귀주의 이 끈질긴 소송 과정을 통하여 오늘의 중국을 송두리째 드러낸다. 그 중국은 과거와 현재가 어울리지 않게 혼재해 있는 중국이다. 그것은 귀주가 원하는 사과라는 인정적 규범이 현대적 법체계 속에서 용인되지 않다가 결국은 구류라는 형벌로 나타날 때 귀주가 느끼는 실망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자전거와 재래식 승용 트럭, 버스 그리고 멋진 일제 승용차가 대중교통 수단으로 혼재 하는 오늘의 중국에 관한 것이고, 남루하나마 서양식의 옷을 걸친 중국 대도시의 사람들과, 소송단계가 점점 높아갈수록 실제 소송의 의도와는 멀어지는 인구 10억이 넘는 대국의 고민에 관한 영화인 것이다. 사회주의적 완고함을 아직도 지니고 있으나 시장 경제의 급속한 유입으로 흔들리는 중국 도시의 모습이 귀주의 여정 속에서 어지럽게 자리잡고 있고, 자신들의 생각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변해 가는 나라에 대한 당혹스러움은 촌장의 구속에 대해 느끼는 귀주의 당혹스러움이다. 그 중국의 오늘을 장예모는 마치 실크로드나 티벳 등에 대한 서구 방송사들의 풍속적 다큐멘터리를 비아냥거리듯 다큐멘터리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장엄한 영상미학이라고만 생각했던 중국의 제5세대는 이 영화를 통해서 영화가 결국은 생활의 작은 이야기들로 동시대의 진실을 끌어내는 작업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