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 정보

음악애호가를 위한 오디오 이야기 ⑤




용호성 / 음악평론가

연주회장의 음과 오디오의 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좋을까.


오디오를 가까이 할수록 자신의 오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를 자꾸만 연주회장의 음과 비교하게 되는데 오디오 취미를 오랫동안 계속해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이에 대한 견해는 일치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오디오라는 게 연주회장의 음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한데 아무리 비싼 기기라도 연주회장의 음만 하겠냐고 쉽게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오디오 애호가들 가운데는 오히려 연주회장의 음보다 자신의 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을 더 선호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먼저 연주회장의 음이 더 좋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연주회장의 음은 기계를 통해 녹음되거나 변형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 음이다. 즉 각 악기들이 내는 소리가 연주회장이라고 하는 큰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울려서 나는 소리이며 이는 어떤 오디오로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고유한 품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연주하는 모습을 직접 보며 음을 듣기 때문에 보다 더 생생한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다. 오디오의 소리는 궁극적으로 연주회장에서 듣는 소리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오디오가 발달한다 할지라도 그 소리는 자연 음을 뛰어넘을 수 없다. 더구나 오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는 연주된 음악을 녹음하고 몇 단계의 스튜디오 작업을 거쳐 가공하고 디스크에 담은 것을 다시 플레이어, 앰프, 스피커를 거쳐 재생해내는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견해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오디오 음악에 대해서는 방부제를 잔뜩 넣은 통조림음악이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반대 견해 즉 오디오에 의해 재생되는 음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연주회장의 소리가 오디오의 소리보다 우월하다는 견해는 몇 가지 조건을 전제로 한다. 즉 최고의 음향구조를 갖춘 연주회장에서, 가장 훌륭한 연주자들이 최상의 컨디션 상태에서 최고 수준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여 연주하는 음악을, 최소한 S석을 벗어나지 않는 자리에서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조건들에 하나하나 시비를 걸어보자. 우선 최고의 음향구조를 갖춘 연주회장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주회장으로 '예술의 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이 있지만 이중 세종문화회관은 좌석에 따라 10만원 짜리 오디오와 1000만원 짜리 오디오 이상의 소리 편차가 있다. 몇 년 전인가 3층 맨 끝 좌석에서 스타니슬라브 부닌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었다. 현기증마저 일어나는 까마득한 꼭대기에 앉아 있으려니 이건 벽에 연주자 사진을 붙여놓고 AM라디오를 듣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세종문화회관은 가장 가격이 싼 학생 석의 경우 거의가 3층 맨 뒷자리인데 여기는 사실 무료로 개방해도 될 만큼 음향상태가 좋지 않다. 우선 독주나 실내악을 감상하기에는 무대로부터 너무 멀고 소리가 지나치게 작게 들린다. 관현악의 경우는 조금 낫지만 대신에 좌우 편차가 심하다 이건 콘서트홀이 아니라 강당에서 음악을 듣는 기분이어서 설사 S석이나 A석일지라도 가장자리에 치우친 좌석에 앉게 되면 음향상태는 C, D석과 다를 바 없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좌석에 따른 편차가 적고 객석과 무대의 거리도 가까운 편이지만 최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좌석은 역시 1, 2층 중앙부분 정도이다. 그 정도 자리나 되어야 비로소 오디오 소리의 준거가 될만하다. 그러나 그만한 자리에 앉아서 최고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현실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레코딩을 통해 듣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자를 연주회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1년에 고작 몇 번 정도이며 그나마 연주자의 컨디션에 따라 최고의 연주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특히 유명 연주 인이다, 연주단체가 오는 경우 그 유명세 때문에 연주회장을 찾는 청중들이 많아져서 오히려 음악감상을 방해받기도 한다. 악장 끝날 때마다 산발적으로, 그리고 마지막 여음이 가시기도 전에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에 인상을 찌푸려가며 음악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매번 최고의 자리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려면 오디오에 들어가는 돈 이상의 엄청난 티켓 구입 비 지출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공연 주최사 혹은 매니지먼트사와 협찬사 간의 초대권 분배에 따른 미묘한 관계와 더불어 입장료가 비싸야 오히려 잘 팔린다는 웃지 못할 한국적 현실 때문에 티켓 가격은 어느 샌가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고 웬만한 콘서트의 경우 S석 가격은 거의 10만 원을 넘어선다.

이 정도로 말하면 필자가 연주회장보다는 오디오에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회장을 찾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자신만의 음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음을 많이 들어보아야 하는데 연주회장에서 듣는 음이 오디오 애호가의 귀를 훈련시켜 자신만이 좋아하는 음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몇 백만 원씩 하는 오디오를 사고 또 바꾸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음을 찾아가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짧게는 몇 년에서부터 몇십 년에 걸쳐 자신의 음을 다듬어 온 사람 가운데는 더 이상 연주회장의 음에 대한 환상이나 미련 없이 자신의 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바로 앞에서 똑같은 악기가 울리고 있어도 사람마다 그 음을 느끼는 정도가 다른 것처럼, 오디오에서 나오는 소리에 만족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만족일 수 있지만 바로 거기에 오디오를 가까이 하는 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디오 애호가들이 많아져 감에 따라 요즈음의 오디오 경향은 사운드 스테이징이나 음장감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제는 연주회장의 음을 직접 가정에서 느껴보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