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잇는 예술가족. 7 / 시인 성찬경. 지휘자 성기선

한국교향악의 앞날을 짊어질 젊은 지휘자

-예술의 본질은 아버지에게서 배웠습니다




장일범 / 월간 객석 기자

예술의 전당에서 2월말부터 3월말까지 한 달이 넘게 열렸던 '95교향악 축제는 '한국의 젊은 지휘자 부재'라는 문제점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한국교향악의 앞날을 짊어질 젊은 지휘자가 없다'는 말은 서양음악계언저리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꽤 충격적인 언명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 필자는 몇 사람의 젊은 지휘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아직 한국음악계의 수면 위로는 올라오지 않았지만 인상을 심어두었던 몇 명의 지휘자, 그들 중 1991년 포르투갈 국제청년지휘자 콩쿠르에서 2위없는 3위를 차지했던 성기선이 유별나게 생각이 났다. 교향악 축제를 지켜보면서 국내에서 충암중, 서울예고, 서울음대를 졸업하고 미국 줄리아드에 유학간 청년, 자꾸 그의 존재가 기억된 것은 왜였을까?

성기선의 부친은 한국 시단의 중견시인이며, 주지주의 시의 대가 성찬경 시인이다. 성찬경 시인은 1956년「문학예술」을 통해 등단, 시단에서 쉬지 않고 지성과 감성을 통합하는 시를 써온 분이다. 팽팽한 정서, 예리한 지성으로 N과S양극처럼 긴장감 있는 시세계를 펼치는 것이 그의 시론이다. 그가 말하는 이른바 '밀핵시론'과 '우주울'이다. 그의 시는 늘 실험정신을 지니고 있지만 고전과의 균형과 조화를 존중하는 감각이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가는 슈베르트, 내가 가장 감격하는 음악가는 베토벤, 내가 제일 찬탄하는 음악가는 쇼팽, 나를 제일 황홀케 하는 음악가는 모차르트, 이밖에도 나의 심금을 울리는 음악가는 한 열명

성찬경 시인의「서양의 음악가」라는 시이다. 시인의 시어에는 유독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청년시절 그는 슈베르트, 모차르트, 베토벤에 심취했다. 가장 먼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에 감격했던 그.

필자는 차안에서 성찬경 시인에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인 게하르트 휘슈가 부른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들려주었다. 정확한 음정과 가사로 따라 부르는 그. 단순한 음악애호가의 차원을 넘는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의 이런 음악에의 취미와 애정은 둘째 아들 성기선에게 고스란히 물려졌다. 아버지가 틈만 나면 듣는 클래식 음반들을 통해 세 살배기 때부터 음악을 접해 온 그는 6∼7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겠다고 졸라 원대로 바이올린에 입문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중학교 때부터 비올라를 배우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한다. 독주악기로서의 현란함을 과시하는 바이올린보다 다른 악기와 함께 호흡하고 앙상블을 맞출 수 있는 비올라를 택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자신은 이미 '장차 지휘를 하리라'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독주악기보다는 앙상블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비올라는 김용윤에게, 지휘는 지휘자 박은성에게 배우던 성기선은 예고2년때 박은성이 지휘하던 서울시립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된다. 곡목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30번」, 예고를 졸업할 당시만 해도 지휘과가 한국에 없어 비올라 전공으로 서울음대에 입학한다. 학창시절에는 줄곧 실기수석을 차지하고 서울챔버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주자, 아르스 현악4중주단 비올라 주자로 활동했으며 1988년에는 독일문화원에서 유일한 한국대표로 선정되어 하계 서독 바이로이트축제 청소년음악 페스티발에 선발됐다. 1989년 동아콩쿠르에서는 비올라 부문 1위없는 2위에 입상했는데 당시 동아콩쿠르에 비올라 파트가 생겨나야 한다고 역설, 비올라 파트를 신설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성기선은 1990년에는 예음실내악 콩쿠르에 후배들을 이끌고 도전, 일본쿠사쓰에서 개최된 범태평양 음악축제에 참가, 유명을 달리하기 1년 전의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청소년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파트수석으로 음악제에 참가했다. 유학 가기 전 졸업반 때에는 아르스 현악합주단을 지휘, 바이올리니스트 배은환과 비에냐프스키의 곡을 국내 초연했으며 그와 CD도 출반한 바 있다.

졸업후 유학, 미국 줄리어드에서 공부하던 그는 1991년 12월 5일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열린 제1회 페드로 드 프레이타스 브란코 국제청년지휘자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카라얀과 칼 뵘에게서 7년 동안 사사 받았으며 빈 국립오페라하우스의 코치로 1백여 편의 음악회를 소화해냈던 실력파인 일본의 하시모토 히사요시가 본선에서 탈락하는 한편 성기선이 당당히 입상해 그의 실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또 작년에 줄리아드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 필라델피아 커티스음대 대학원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있는 그는 커티스 지휘과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더욱 더 기대를 걸게 한다.

"제 음악에 있어서 아버지의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아버지가 물론 음악을 들려주시거나 구체적인 시작업을 통해서 저의 예술적인 소양을 길러 주시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일상생활을 통해서 예술가가 가야할 길, 또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셨고 또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스승의 내(內)제자가 되어 함께 살면서 배우지 않는 한 힘든 일입니다. "그가 강조하는 아버지 성찬경이 말하는 '예술의 본질'은 무엇일까?

"순수한 정신의 깊이입니다." 그래서 성찬경은 기선에게 토스카니니, 푸르트뱅글러, 브루노발터 이들 세 명의 지휘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지휘자의 음악에는 이끄는 사람의 인격적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적 연구뿐만이 아니라 영혼의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요즘의 평준화된 지휘자들과는 달리 특유의 고집스런 개성을 가진 이 세 명의 지휘자의 태도를 그가 아들에게 계속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기선이 성격은 밝고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편입니다. 어떤 일이든 대충대충 하는 법이 없이 맑음과 깊이를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인가 성기선은 1993년 겨울, 사명감을 갖고 코릴리아드 Corelliard 챔버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줄리아드에 한국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입학하고 거쳐갔건만 그 동안 모두 개인적으로 뿔뿔이 활동했을 뿐이지 힘을 합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한국 유학생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실내악 앙상블을 만들어 화합을 꾀하고, 이름을 일본 사람들이 영자를 바꾸기 전에는 COREA였던 한국의 영자표기(유럽에서는 지금도 통용되는)와 JUILLIARD를 합쳐 CORELLIARD라고 지었다. 이 코릴리아드는 창단 후 지금까지 5회의 정기연주회와 재러시아 동포 메조소프라노 루드밀라 남과의 링컨센터 연주, 캐나다 연주 등 의미 있는 연주회들도 가졌다. 성기선은 오는 5월 25일 서울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이때 코릴리아드가 함께 내한, 6월 10, 11일 서울 및 지방 연주회를 갖게 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힘겹게 활동하고 있는데 한국 공연 시 든든한 후원자라도 생겼으면 하는 것이 성기선의 바람이다.

성기선을 이처럼 음악계의 촉망받는 신예 지휘자로 키워낸 데이는 어미니 이명환씨의 역할이 지대했음은 물론이다. 매우 뛰어난 예술적 소양을 지닌 그는 음대에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다가 후에 영문과로 전공을 바꾸었고 대학 시절에는 학보사에 소설이 당선되기도 했으며 서예에도 뛰어나 부군 성찬경씨 못지 않게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성기선뿐만 아니다. 풍부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성찬경의 4남1녀는 모두 그의 분신들이다. 서울대 불문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장남 성기완(1967)은 작년 「세계의 문학」에 시인으로 등단, 그 후로 재즈에 심취 재즈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는 등 필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셋째인 딸 성기영(1970)역시 성균관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서강대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사제를 지망하는 넷째 아들 성기헌(1972)은 집안의 종교적 영향을 이어받아 가톨릭대학 3학년에 다니고 있다. 다섯째인 아들 성기우(1975)는 고려대 수학과 2학년생으로 한때 이과생으로 수학과 물리에도 밝았던 성찬경 시인의 옛모습을 보는 듯하다.

37세의 나이에 만혼 후 이렇게 남부러울 것 없는 5남매를 가진 성찬경 시인, 그도 이제 오는 8월 정년퇴임을 하게 된다. 정년퇴임 후 그는 어디 조용한 곳에 틀어박혀 그 동안 바빴던 강의 때문에 미뤄두었던 시작(詩作)에 용왕매진할 예정이다.

또 성기선은 커티스음대에서 수련을 더욱 확고히 할 예정이다. 성찬경, 성기선 부자의 예술, 아버지의 시와 아들의 음악이 함께 온 장안을 떠들썩하게 할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성기선의 다음 말을 통해 아버지 성찬경 예술 혼의 뿌리내려짐을 본다.

"예술가는 자기 예술의 도구(저의 경우는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그 예술의 본질과 아름다움 그리고 이 세계와 신의 아름다움을 청중(혹은 독자)에게 전달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특별히 고연에서 음악을 잘 모르는 청중에게도 그것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자 합니다. 저는 예술의 본질은 신(神)과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의 예술행위는 결국 종교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종교음악을 연주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리 그 자체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음악의 사도가 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