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산책

「순수의 시대」

-마틴 스콜세스의 변신




육상효 / 비디오평론가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면 마틴 스콜세스라는 이름으로 금방 지저분하고 복잡한 도시의 뒷골목을 떠올릴 것이다. 그 뒷골목은 이탈리안 아메리칸 청년들이 범죄와 폭력으로 삶을 소비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곳일 수도 있고 (「비열한 거리」. 1973년 작). 도시 속을 유령처럼 떠다니는 고독한 택시 운전사가 더러운 자들을 청소하려 총을 빼드는 곳일 수도 있다(「택시 드라이버」.1975년 작), 또는 멋진 갱을 꿈꾸는 소년이 부푼 가슴으로 범죄를 시작하는 곳일 수도 있고「좋은 친구들」. 1990년 작). 실패한 챔피언이 술집 쇼를 마치고 나오다가 갈라선 동생을 보는 곳일 수도 있다(「분노의 주먹」. 1980년 작). 스콜세스의 영화 작업은 그 도시 뒷골목에서 인간의 강박적인 욕망과 폭력 충동을 매개로 결국 이탈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찾기로 특징 지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나「순수의 시대 Age of innocence」로 오면 뒷골목으로 통칭되던 스콜세스의 공간은 갑자기 19세기 뉴욕의 귀족사회로 옮아간다. 그 공간은 외형상의 화려함과 풍요로움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숙한 청교도적 윤리에서 이전의 스콜세스가 탐구하던 공간들과는 성격을 판이하게 달리 한다.오히려 그는 단순히 귀족사회를 무대로 영화를 만들어 가는 선율 넘어서, 귀족사회의 복식과 풍습. 음식들에 지나치도록 꼼꼼하게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자신의 변신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스콜세스 특유의 난폭하리 만치 운동감 있는 카메라워크 마저도 그 귀족사회 속을 헤집는 유려한 눈길로 조정돼 있는 데서 흔히 어떤 예술가의 변신이라고 말해지는 것들이 이러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갖게 한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변신 혹은 자신이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주제의 용도폐기 혐의는 더욱 짙어진다. 성숙한 약혼자(위노나 라아더)가 있는 한 단정한 귀족 신사(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있다. 그는 어느 날 유럽에서 온 먼 친척 벌의 미망인(미셀 파이퍼)을 만난다. 신사는 19세기 귀족사회의 엄격한 윤리 속에서 그 미망인에 대한 고통 같은 사랑에 빠진다. 그는 천사 같은 자신의 약혼자에 대한 애정과 미망인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격정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그는 미망인과 함께 유럽으로 떠날 것을 꿈꾼다. 그러나 결국은 약혼자 곁에 남아 그녀와 결혼한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그는 그의 아들과 유럽을 여행하다 그 미망인이 사는 집 앞에 다다른다. 그러나 창문으로 언뜻 보이는 그녀를 마주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는 것이 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도시 뒷골목의 살인과 폭력, 바람둥이와 매춘을 다루던 그가 세상에 마음속의 격정 하나로 끔찍하게 번민하는 사랑이라니, 스콜세스는 마치 그에게 익숙하던 모든 것들로부터 의 결연한 결별을 선언하고 있는 듯도 하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바꿨다고 해서 과연 스콜세스의 세계는 변한 것일까. 한 작가가 그의 영화 속에 담던 익숙한 기호들을 폐기하는 것은 그가 추구하는 주체적인 측면에서도 완전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일까.「순수의 시대」는 그 영화적인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한 작가의 예술적 행보에서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생각하고 확인케 한다는 의미에서도 볼만한 영화이다. 그것이 비디오로 나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비디오라는 것은 한 숍에 비치된 그 영화작가의 여러 작품들을 일련의 순서로 보는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에 영화와는 달리 수용자들도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한 영화작가에 대한 통시적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스콜세스는 19세기 귀족사회를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이 끔찍하도록 정확하게 재현한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엘랜의 고별만찬 장면을 연출해 놓고 봤더니 식탁 주위에 하인들이 바로 갱들의 파수꾼 같아 보였다. 그들은 마치 사랑에 빠진 귀족 신사 뉴랜드에게 "당신은 아무 데도 못 가"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스콜세스가 변한 기호들로도 여전히 자신의 발언들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다. 귀족사회의 꼼꼼한 재현은 결국 한 집단이 갖는 공통적 규율과 삶의 방식의 엄혹성이다. 그 귀족들이 품위와 우아함이라는 이름으로 고수하는 인습은 성적 욕망의 억압에 다름 아니고, 그것은 「좋은 친구들」이나「민스트리트」에서 보여주는 갱 집단들의 규율이 강요하는 한 개인의 일상에 대한 교묘한 억압에 또한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 뒷골목에서 조직의 규율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은 「좋은 사람들」에서처럼 배신이지만, 귀족사회에서는 인습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여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한 남자의 마음속에서만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억압은 질기고 거의 완전하다.

그러나 스콜세스는 한 집단의 규율과 그 억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그 집단의 충실한 재현을 통하여 그것에 강박적으로 고통 당하는 한 개인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스콜세스가 자신이 만든 거의 모든 영화를 통해 표현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한 개인의 탐구이다. 그 개인의 불안, 쓸쓸함, 결정 이런 모든 것이 스콜세스가 일관되게 그의 영화들 속에서 주요인물들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귀족신사 뉴랜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뉴랜드가 괴로워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랑에 대한 자신의 강박관념 때문이라는 것을 스콜세스는 집요하게 드러낸다. 그의 내면에는 어느 날 나타난 한 여인에 대한 격정과 정숙한 자신의 약혼자에 대한 책임이 동등한 비율로 분배돼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아내가 죽고 예전의 여인이 늙었어도 그 내면의 구도는 여전하다. 그래서 그는 라스트 신에서 연인의 집 앞에서 스스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순수의 시대」라는 얼핏 스콜세스의 이전 영화들과 달라 보이는 영화에서도 스콜세스의 주제적 집착은 여전하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이 야기하는 강박관념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남자이다. 그래서 그 우아하고 품위 있는 남자의 모습은 폭력에 대한 강박적 집착으로 불안해하는「분노의 주먹」의 권투선수 세이크 라모타와 닮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