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뉴 미디어 시대의 청소년 문화

뉴 미디어 세대 청소년을 위한 영상교육




이승정 / 서울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실장

지속보다 '찰나'에 민감한 뉴 미디어 세대

이미 컴퓨터 게임에 맛을 들인 청소년들은 성행 중인 게임 프로그램을 복제하여 게임 하는 재미로 토요일 오후를 기다린다. 주말마다 용산이나 청계천은 이들 청소년들로 북적인다. 물론 요즘에는 게임복사를 위해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컴퓨터 통신을 통해 자기 방에서 단 몇 분, 몇 초만 기다리면 원하는 프로그램을 전송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 속에서 청소년문화가 황폐화된 지 오래고, 놀이공간, 여가문화의 시간이 극히 부족한 청소년들은 새로운 미디어 문화로 전자오락 게임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부모들이 학습효과 증진을 기대하고 구입해주는 컴퓨터는 전자오락 게임용으로 가장 높은 효용가치를 보이고 있고, 청소년들은 PC통신의 채팅(수다)에 몰두하고 있다. TV나 비디오 보기를 제한하던 부모들의 권위는 지도능력 부재로 인해 상실되기 시작하고 있다.

새로운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기호나 선택을 쉽게 행동에 옮기는 청소년기의 행위양식의 특성들은 청소년층을 영상세대라 이름 지우며 가장 적극적인 영상소비자로 시장에서 그 실세를 인정받고 있다. 뉴 미디어를 비롯한 많은 상품과 프로그램들이 청소년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지고 있으며 청소년이 주요구매력이 되고 있는 대중문화시장의 특성이 뉴 미디어 하드웨어를 통한 문화상품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은 뉴 미디어 시대의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시사가 된다.

여러 가지 대중매체들에 의해 창출되고 보급되는 대중문화는 청소년들의 옷차림, 말투, 행동양태들을 동일하게 유행시키며 가치체계와 의사의 단일화까치 만들어내고 있다. 대중문화 가운데 특히 대중음악의 경우는 음반시장의 성격과 스타 만들기를 규정하는 구매력의 주체가 성인이 아니라 청소년들인 것처럼 텔레비전에서 오빠부대의 함성과 10대 반짝 스타만이 명멸하는 것은 이들이 대중문화산업의 중요한 소비주체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로 표현되는 학교 생활은 청소년들에게 공부, 시험, 성적을 통한 경쟁의 공간이다. 이들은 순응적인 학생으로 공부를 선택하거나 입시제도에서 억압되는 육체적 정신적 박탈을 학교 밖의 영화, 비디오, 팝송, 텔레비전 등의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해소한다. 이렇게 청소년들이 기성세대에 의한 대중문화, 소비 중심적 문화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은 청소년의 왕성한 소비문화 양식에 필적할 만한, 자아실현을 위한 문화적 활동이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의 참여가 봉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의 중압에 비례하여 소비와 대중문화의 자극성에 의존하는 경향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비판일색이던 청소년들의 대중문화 소비 행태들 - 콘서트 장이나 텔레비전 방송 녹화 장에서, 농구장에서의 오빠부대들에 대해서도 청소년기의 행위 특성으로 '그럴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되었으나 문제는 이들이 동일시하는 우상들이 오로지 일부 연예인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이 자기만의 스타일을 형성하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표출되는 것으로 보는 이해의 한 자락에는, 실상 이들의 문화적 욕구가 기성세대의 상업주의, 소비주의, 대중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며, 소비 사회적 관행에 길들여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중요한 문제제기를 간과하고 있다.

이전의 놀이문화, 오락문화에 비교할 때 청소년들이 즐기는 영화, 비디오게임, 뮤직비디오 등은 파편 적이고 비사고적이고 감각적인 포스트모던 문화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지니고 있다. 이야기보다는 이미지를, 지속적인 것보다는 찰나적인 것에 더욱 무게중심이 주어진 문화이다. 설득을 통해 가치 이념의 전달 기능을 하고 있는 문화도 아니다. 뉴 미디어에서는 이러한 파편성과 단절성이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다. 대중영화나 뮤직비디오에서는 현실과 픽션이 뒤집어지고, 비디오게임은 픽션이 세계와 현실의 놀이 사이에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영상문화의 지속적인 경험은 자연히 현실과 비현실과의 구분 감을 쇠퇴시키게 된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은 사회 병리적인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주요 요인으로써 해석되기도 하고, 박한상 사건 같은 청소년 비행과 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부정적으로 새삼 강조되곤 한다.

학업에 방해되고 폭력, 음란에의 노출 위험성을 조장하고, 광고는 소비성향을 조장한다는 등 비난의 초점이 되고 있으면서 대중문화가 청소년 문화에 침투하여 그 거점이 되고 있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유사하다. 그러나 입시경쟁 교육의 중압에 시달리며 여타의 사회 문화적 활동과 경험의 시간, 공간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에게 있어 이를 같은 정도의 문제의식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나라에 비디오가 처음 도입되며 퇴폐, 향락의 매체로 유해환경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었던 것처럼 뉴 미디어의 소프트웨어들은 학습교재 시장을 제외하고는 게임과 선정적 오락물을 수입, 제작하고 있다. 뉴 미디어 문화상품의 주요구매력이 역시 청소년이다.

통상산업부는 '새 영상물' (CD-ROM등 뉴 미디어계 소프트웨어들)에 관한 심의완화 규제 철폐 등 뉴 미디어 사업자들의 주장과 이해를 강력히 대변하면서 청소년구매력을 상대로 시장을 키워보겠다는 비교육적이고 비문화적인 발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상대적으로 힘의 열세를 보이고 있는 문체부는 안팎의 규제완화 등살에 시달리며 제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허약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용산과 청계천의 블랙 마켓을 통하지 않고도 공공연히 폭력, 선정의 게임과 영상물 등을 구입하며, 영상과 통신을 PC로 결합한 멀티미디어의 문화상품들을 소비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청소년 문화에는 기성세대가 사회적으로 이를 위한 바람직한 여건 조성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청소년 스스로의 역량을 빼앗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것이 청소년을 둘러싼 뉴 미디어의 객관적 사회문화 조건들이다.

미디어의 엄청난 확대와 변화, 생활세계의 침투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는 학교, 사회, 가정, 어디에서도 미디어를 바르게 보고 이용하는 비판적 미디어 교육을 받아본 일이 없다.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보지 말라고 강요만 있었지 그들에게 무엇을 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무엇을 보지 말라고 금지하는 대신에 청소년들을 위한 좋은 영상 물들을 제시하고 그것들을 보도록 권유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더욱이 다 매체, 다 채널 시대라는 경구와 더욱 확대될 개방체계 속에서 가장 직접적인 접촉자가 될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 국가 단위의 정책차원에서 외국문화의 수용 가부를 결정짓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민간단체에서의 공공적 규제 역할이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따라서 더욱 강조되어야 할 점은 뉴 미디어 세계에서 정보의 확대와 문화적 다양성을 자유롭게 즐기고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자신의 문화적 풍요와 문화적 생산을 이를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미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80년대 초부터 모든 교육과정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회문화교육 프로그램들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멀티미디어의 정보화 사회를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은 바로 정보화 사회와 영상문화에 대한 선별력과 감수성을 키우는 일이다. 자율성과 독창성을 상실한 그들 문화를 살릴 방법은 수동적·무비판적 수용자세에서 탈피해서, 개개인이 볼만한 것을 바르게 골라보며 보다 빠르게 그 속에서 질의 문화를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문화감수성과 그 수준을 키워 나가는 것이 곧 새로운 문화력이며 무기가 될 것이다.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교육은 좋은 영상 물들을 선별할 줄 아는 가장 쉬운 교육형태이다. 최근 시청자 단체나 시민단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미디어 읽기 교육의 활동반응이 학교 현장에서 오고 있다. 각급 학교에서 특별활동 반으로 비디오, 영화 감상 반을 시작하거나 TV모니터 반을 운영하기 시작하고 있고 교회, 성당 등에서도 교회지도자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비판적 미디어 읽기 강좌들에 대한 요청이 급격히 늘고 있다.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읽기의 필요성이 학교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인식되고 그 첫걸음을 어설프게 시작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지도할 교사가 충분치 않을 뿐 아니라 미디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아보지 못한 교사들이 단순히 자신들의 관심사와 학생들의 호응에 조응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과 배려가 필요하다.

가장 적극적인 미디어교육은 미디어의 수용으로부터 창조의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청소년들이 자신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비디오로 제작하여 이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한다. 가족과 친구관계, 약물 복용에 대한입장, 성에 대한 문제 등 청소년기의 갈등과 순수한 감성들을 훈육이나 교도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체험을 표현하고 서로의 이해를 나타내는 도구로 이용한다. 캠코더의 발달로 영상을 만드는 기기 들에의 접근이 용이해졌고, 다루는 기술 또한 단순해져서 청소년들에게 기회만 부여한다면 충분하다.

실제로 그러한 가능성은 서울 YMCA에서 실시한 '영화 만들기 캠프' 나 '청소년 비디오 축제'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욕구에서 충분히 보여졌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을 통해 인간의 자기

표현과 문화발전이 가능했던 것처럼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영상을 통한 청소년들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창조성을 계발시키는 일에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종합표현예술인 영상을 만드는 문화적 실천과정을 통해 대중상업영상물의 소비단계로부터 영상을 읽고 해독하여 작가와의 창조적 이해의 단계로 나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영상 만들기는 바른 영상 읽기의 가장 적극적인 방법의 하나이다. 팀을 구성하여 하는 공동작업의 경험은 청소년들에게 멀티미디어 시대를 초래할 기성세대가 만들어 주는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세대에 걸맞은 자신들만의 정서와 그 표현양식을 개발하는 문화적 체험은 영상세대의 바른 영상문화를 구축하는 교육적 가치가 충분하다. 분명 오늘날의 청소년 문화는 과거의 미비했던 청소년 문화에 비해 그 실체가 분명히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그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정보화사회의

도래에 의해 어차피 새롭게 형성되어야할 정보화 문화에서 기성문화의 폐기와이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기성세대에 비해 정보화사회의 도래를 준비하면서 성장하는 청소년들은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정보화시대의 문화를 형성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내재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미디어 교육의장을 제공하고 다양한 미디어 체험의 기회를 열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