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하는 사람들. 3 / 배정혜Ⅱ

세계 무대로 뻗는 창작 춤의 방향제시

-무용가 배정혜Ⅱ




김영태 / 시인, 무용평론가

10년만에 「유리도시」에서 주역

배정혜는 1978년에 김선봉에게 봉산탈춤을 사사 받았고. 그의 끊이지 않는 학구열은 불교 춤 「승무」(임준동 사사. 1979년), 「태평무」(이동안 사사. 1980년), 「승무」,「살풀이」(이매방 사사. 1980년)로 이어진다. 배정혜가 리을 무용단을 창단한 것은 미국 및 유럽 무용 계를 돌아보고 귀국한 1984년이었다. 1984년 2월에 배정혜는 창단 공연(국립극장 대극장)을 가졌는데 작품은 「대화」였다. 「대화」에서 오은희가 주역을 맡았었고, 2회 공연(1985년) 때는 「이 땅에 들꽃으로 살아」(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황희연이 주역이었다. 오은희(서울예전 교수)·황회연 (선화예고 무용부장)은 배정혜의 1세대 제자들이었다. 1985년에는 단기 4317년 개천절 경축 공연(세종문화회관)으로 「신시(神市)」를 안무하기도 했다. 「대화」,「이 땅에 들꽃으로 살아」(하종오 詩)는 지방 공연에 이어 호암 아트홀 초청무대, 산울림소극장 개관 공연, 소극장 춤 페스티발(미리내 극장) 등에 초청 및 앙코르 공연을 가졌다.

'배정혜 안무, 오은희의 춤 「대화」는 자그만 폭탄을 물 속에 터뜨린 것처럼 창작 한국무용 계에 조그맣고 뚜렷한 파문을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 작품이 전적으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은 아니라 해도, 근래 창작가들이 실험하고 추구하는 주된 방식들을 충분히 파악하고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든 위에 다시 저 나름의 개성 있는 세계를 펼쳐 보였기 때문이며, (중략) <내 방식대로> 들고나서는 개방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중략)

「대화」는 자신감 있는 방법론과 과감한 자기 색깔의 현시, 독특한 구성법으로 분명 창작한국무용의 한 갈래를 선도할 수 있다는 가성을 보여주었으며…'(「춤」1984년 3월 호. 「오은희의 춤」p 93. 이종호)

'배정혜의 안무는 우선 힘이 있었다. 한국 무용에도 저런 힘이 있구나 하는, 정말 든든한 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략) 황희연의 춤 「이 땅에 들꽃으로 살아」넷째 마당 「깨달음」은 우리의 얼(魂)이 중생으로 가는 길. 그 험난한 길목에 비칠 때 여분으로 태어난 삶이 아닌 당당한 삶이란 것을 춤으로 입증했다.

황희연의 춤 색깔이 진했기 때문에 열병 같은 힘을 느끼게 했다. 다시 말해 '이 땅', '들꽃', '살아'의 인성(人聲)의 마무리가‥‥‥' (중앙일보 무용평, 1985년12월 7일자. 김영태)

'과거의 서사 무용작품은 대개 역사적인 인물이나 특정 인물을 묘사한 스펙터클 한 내용이었으나 배정혜 안무, 황희연의 춤 「이 땅에 들꽃으로 살아」는 평범한 여인을 소재로 하여 겉으로 나타난 눈요기가 아닌, 안으로 파고드는 심오한 감동을 주었다. (중략) 황희연의 춤은 유연하며, 선이 굵고 가냘프지 않다. 그리고 정중동의 기(氣)가 살아 있는 춤을 추었다.'(「객석」, 1985년 7월 호. 「리을 무용단 황희연의 춤」. p 73. 이병옥)

'「대화」, 「이 땅의 들꽃으로 살아」에 나타난 배정혜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는 무용극 형식의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의 전개 및 나열이 아닌 추상적이고 지속적인 순수 이미지를 추구해 나가고 있으며, 한국적 시간성을 대표할 수 있는 <정(靜)의 흐름>을 가장 효과적으로 움직임에 용해시키고 있어 지극히 제의적이다 (중략)

「대화」가 평범한 한 여인을 중심으로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세계를 그렸다면 「이 땅에 들꽃으로 살아」는 보다 구체적이고 의식적인 서사극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여인의 수난사를 얼, 검은 물결, 어둠, 대항, 깨달음, 새 생명 등의 상징들에 비유한 것은 「대화」보다 덜 추상적이다 무대 장치도 작품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저고리를 입은 황희연은 너무나도 화려한 들꽃이다. 그녀는 아무리 짓밟혀도 끈질긴 생명력을 소유한 들꽃의 이미지보다는 가냘프고 섬세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이다. 배정혜의 안무 능력은 이 갈대와 같은 여인에게 외세의 침략과 가부장적 제도에 짓눌려 신음해 온 수난의 한국 여인상을 표현할 수 있는 그녀의 자재 능력을 유도해 냈다. (「공간」1977년 1월 호, 「한국적인 동시에 우주적인 배정혜의 춤 세계」, 박일규)

안무자로 취임한 해가 1986년이다. 1986년은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 해였고, 개막축제 등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배정혜에 의해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창단 되었고, 아시안게임 오프닝 무대(세종문화회관) 안무 및 축하무대 「강남 제비」가 국립국악원에서 초연 되었다.

「강남 제비」는 박용구의 대본이었다. '무용극 「강남 제비」는 판소리의 박타령을 소재로 하고 있다. (중략) 「강남 제비」는 놀부네 집이 왕창 무너지는가 하면. 굴뚝이 춤을 추며 불을 뿜고, 박 넝쿨이 뱀으로 변해서 놀부를 쫓아다니는 등‥‥‥ 창작 춤들이 심각하고 지루하고 요령부득인 경향으로 흐르는데 대한 저항 같은 심술‥‥‥을 부려보았다'고 원작자는 피력했었다.

배정혜는 3년간 국립국악원 상임 안무가로 활동한 뒤 1989년에 서울시립무용단 단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문일지와 배정혜가 자리를 맞바꾼 셈이다.

1987년에 배정혜는 두 개의 야심작을 발표했다. 그 하나가 리을 무용단 3회 공연으로 선을 보인「유리도시」 (세종문화회관)이고, 「처용」(국립오페라단) 안무였다(김의경 대본, 이영조 작곡).

배정혜 춤(안무)에 있어서 중반기를 결산하는 실험적 무대 「유리도시」는 한국 춤이냐 현대무용이냐 라는 찬반을 불러 일으켰고. 「유리도시」는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제에 출품되었다.「유리도시」 이후 그의 안무 패턴은 「혼에 누워 이 바다를」,「불의 여행, 떠도는 혼(1992년 프랑스 전역 순회 및 스위스 공연),「두레」로 이어진다.

'「유리도시」는 프롤로그와 아홉 개의 에피소드 그리고 에필로그 등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춤의 주제는 산업사회에서의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10년만에 뛰어난 무용가로 알려진 배정혜가 직접 무대에 서 진한 감동을 전해준 수작이었다.'(「객석」 1987년 12월 호, 「창작 춤의 새 방향을 제시」, 장광열)

'템포나 구성의, 출연자들의 활달스러운 기교의 응용 등에서 한마디로 저것이 우리가 찾고 있는 현대무용이 아닌가 할 정도로(중략) 한국 춤 극장 공연이 어떠해야 되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공연이었다.'(조동화)

'배정혜가 체계화시키려는 춤 언어가 어느 때보다 뚜렷해 보였다.'(김태원)

'「유리도시」를 보고 나는 그가 앞으로도 춤출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중략) 「유리도시」에서 <나>역은 가장 중요한 역이기도 하다. 아홉 개의 에피소드들을 끄는 주역이 <나>이기 때문이다. (중략) 추상적 세트이면서도 무대는 낯설음을 떠나 공해 속에 묻혀 사는 우리들에게 보다 낯익은 풍경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 이유는 늘 우리가 도시 속에서 부딪치는 정서개념의 방기, 혹은 탈출하고 싶은 욕망의 근사치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리도시」는 미륵신앙이 그러하듯 도시가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새롭게 태어나는 인간상을 힘과 예(藝)와 기(氣)로 그리고 있다.' (「춤」1987년 1월 호. 김영태)

「유리도시」는 1988년 4월, 음향효과, 의상 등을 보완해 호암 아트홀 초청 공연, 「춤」지 대담을 가졌었다. (「춤」 1988년 7월 호. 김채현과의 대담, 「자기 춤을 객관화시킬 줄 알아야」. p.37)

세계 무대를 향한 창작 춤의 방향 제시

1988년에 배정혜 안무는 국립국악원 국악당 개관 공연 「당신의 얼」, 한국무용제 전야제 초청 공연 「혼령」 등으로 지속되었고, 국립극단의 「꿈 하늘」도 안무했다.

'배정혜 안무 「혼령」은 육체와 영혼의 대화를 힘찬 박진감으로 몰고 갔다. 그의 지론은 영혼 속에 우물을 파면 신과의 교감을 터득한다는 샤머니즘적 발상이다. 그의 혼령 춤은 우리가 무속에서 만나는 일회적인 삶의 허무가 아닌 열반을 지향한다.' (김영태)

'배정혜의 창작 무용 「당신의 얼」은 거문고를 만든 악성 우륵의 얘기. 제1장은 우륵이 자연을 터득해 가는 과정과 인간의 다면세계를 접함으로써 인간적 삶의 의욕과 절망 속에서도 창작 세계 속에 접어드는 과정을, 2장은 우륵의 음악작업 과정, 3장은 우륵의 인생에 대한 회한과 허무 등을 그렸는데 무용극의 요소를 배제하지 않은 이 무대는 극적 구성의 탄탄함이 배정혜의 안무 능력이다.'(김경애)

배정혜는 서울시립무용단 단장으로 취임한 후 한민족 춤제전(「우리 춤 우리 가락」)에 참여했고, 1990년에는 대작 「불의 여행」을 안무했다. 인도네시아, 북경, 유럽 8개국을 순회 공연한 것도 같은 해이다. 그리고 송년무대에「길」을 선보였다.

무용평론가 이병옥은 「불의 여행」에 대해 '침전된 절망과 슬픔의 무게가 떠다니는 불의 이미지에서, 낙원을 향하는 과정으로서의 고비를 거쳐 불의 기원에 이르는 신화적 과정을 오늘의 상황과 삶의 본질로 연결시켜 본 작업으로 불로 상징되는 남자 무용수들의 현실적이며 상황적인 설명과 물로 상징되는 여자 무용수들의 정서적 내면적 흐름이 군무로 표출되면서 작품 전체를 통해 신화와 현실과의 만남을 시도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예술평론」 17호, p.102)

70왼대 「타고남은 재」 이후 80년대 「유리도시」, 90년대 「불의 여행」, 그리고 1991년에 초연 되어 각광을 받았던 「떠도는 혼」(오태석 연출, 황병기 음악), 「두레」 등의 연이은 대작을 통해 배정혜는 안무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졌다.「떠도는 혼」이 프랑스 전역을 순회 공연했을 때 체류비는 물론 매 공연 개런티를 받은 경우(스위스 및 마카오 공연까지 포함해서)나 각국의 민속춤 페스티발이 아닌 대극장 초청공연의 선례를 남긴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떠도는 혼」의 현지 반응은 총 19회 공연에서 좋은 반응을 남겼고, 현지 신문에 대서 특필 되었는데 프랑스 주최측 스칼라씨에 의해 1995년 하반기 신작안무 재 초청의 확약도 받았었다(1775년 하반기 「두레」, 기타 두 작품 공연 예정).

1993년 「두레」가 초연 되었을 때 「떠도는 혼」에 이어 두 번째 연출을 맡았던 오태석은 안무가 배정혜를 이렇게 평했다. '우리의 몸짓에 대체 저런 것이 있어왔는가. 우리 몸짓 가운데 힘이 숨겨 있는 곳이 어딘지 배정혜는 꿰뚫어보고 있다.'

「두레」는 우리 선조 들의 삶의 터를 일구어 왔던 농촌사회의 다양한 풍물놀이와 농무, 민간놀이 등을 춤으로 집대성한 작품이다. 자연에 순응하고 땀흘리며 살아온 농민들의 한과 고뇌. 그리고 그들의 신명을 춤사위로 표현함으로써 우루과이라운드 등 우리에게 당면한 농촌 현실과 민족적 정서를 환기한 작품이었다.

배정혜는 「두레」를 안무하게 된 동기를 '우리가 세계 무대에 내놓을 만한 것이라면 무엇인가 ?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아닌가'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75명의 단원들이 출연하는 「두레」에 대해 찬반의 의견이 개진되기도 했다.

'과연 이 작품이 한국 창작 춤의 갈 길을 진지하게 모색했는가 하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우선 농촌문화의 개념에서 도출해낸 승화된 춤사위보다는 정제되지 않은 춤사위가 무대를 주도했고, 사물놀이, 상모돌리기, 줄타기 등이 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기보다는 헤프닝식으로 연희되었기 때문에‥‥‥‥(조선일보. 1993년 7월 27일자, 「다양한 춤사위, 극적 반전 조화」, 옥대환)

'다소 리얼한 연극적인 세팅과 긴 듯한 공연 시간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어도 「두레」는 올해 춤 계에서 가장 의욕적인 공연의 하나였으면서도 마지막 종반부에 창작 춤 특유의 대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부분(우루과이라운드나 미국에 의한 우리 농업의 위기상황 묘사)을 좀더 효과적으로 성숙하게 표현되었더라면 (중략) 배정혜와 여태까지의 다져진 서울시립무용단의 앙상블이 돋보였다‥‥‥ (「춤」 10월 호. 「한국 창작 춤과 농경문화의 잔존과 뿌리의식」, 김태원)

'이 작품이 나름대로 완성도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은 배정혜가 이미 자신의 작품의 초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명확하게 알고 그 선을 정확히 하면서 작품의 목적을 분명히 했다는 데 있다.'(「춤」_10월 호, 「넘치는 예술 혼을 느끼게 한 무대」. 김경애)

배정혜의 춤 인생은 5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그가 지향하는 창작 춤의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우리 춤의 방향 제시는 「두레」에 이은 「서울 까치」(1995년 하반기 공연) 등이 그것을 증명하는데 '현대 한국 창작 춤의 한계성에 대하여' 그는 이런 말을 피력한 적이 있다.

'개방된 세계 흐름에 따라 소중한 우리의 것만 가지고 만족할 수 없는 시대 상황 속에서 창조의식은 발생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먼저 우리 것이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세계의 것을 우리 속으로 흡수하는 것을 배정혜는 주장한다. 소중한 우리 것은 전통 춤의 뿌리를 의미하며, 배정혜가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우리의 유산을 이해 분석하고, 그 한계성을 뛰어넘자는 것이다. 시인 김지하는 배정혜의 춤을 놓고, 「씻김굿에 붙여」라는 헌시를 보냈었다

당신은 큰 모란. 내일 사경(四更)

당신의 영(靈)위에 첫 이슬 내려

이슬로 원혼들 씻겨 필경

삼송천(杉松川) 건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