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잇는 예술가족. 8 / 시인 이건청. 무용가 이해준
시적 상상력에서 잉태된 육체의 상상 이미지
-소재를 제공해 주지만 준열한 비평가이기도 한 아버지
박용재 / 스포츠조선 기자
아름다운 봄이다 왠지 발걸음도 가볍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 한양대 캠퍼스에는 해 울긋불긋 봄꽃들이 피어있고 학생들의 모습에선 생기가 묻어난다.
언제나 도시는 바쁘고 피곤한 모습이지만. 대학 캠퍼스는 왠지 여유가 있어 보인다 막 피어나는 봄꽃들처럼 그렇게 향기롭게‥‥‥ 이젠 젊은 피의 슬픔도 최루탄의 고통도 없지만‥‥‥한양대 대학병원을 지나 사범대 건물 1층 국어교육과 이건청 교수 연구실. 필자는 이곳에 매우 뛰어난 서정시인 이건청(53), 그리고 그의 장남인 무용가 이해준(24)을 만나러 갔다
아버지는 시를 쓰고 아들은 아버지의 시를 무용으로 표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흥미를 가지고 조금 바지런한 발걸음으로 연구실에 들어섰다. 연구실은 매우 단정해 보였다.
온갖 문학서적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고 창 밖에서 여대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필자는 이들 부자의 예술세계와 삶 그리고 대를 이어 예술가족을 이른 배경 등에 대해서 별로 크지 않은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일찍이 시와 무용은 한 몸이다. 그것은 저 먼 희랍시대의 디오니소스제 신화에서도 보듯이 언어와 움직임은 하나로부터 나왔다.
그 원초적인 세계를 공동으로 추구하는 이들 부자는 저 거칠고 비인간적인 문명시대를 향해 고즈넉하게 예술가 적인 몸짓으로 타락한 시대를 조금씩 씻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해준은 올해 24살의 아주 유망한 춤꾼이다. 그는 잠실고부터 무용을 시작, 한양대 무용과를 졸업했다. 대학시절 이숙재 교수(현 한양대)로부터 사사를 받았고 지금은 그가 대표로 있는 밀물무용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미터 83센티미터의 늘씬한 키 그리고 남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균형 잡힌 몸매를 지니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남자 몸의 아름다움'을 상상할 수 있었다. 젊은 춤꾼으로서는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는 이해준. 그가 우리 무용계에서 촉망받는 차세대 춤꾼으로 인정받는 것은 그의 시적 상상력에서 잉태된 육체의 상상 이미지에 있을 것이다. 시인 가정에서 몸에 밴 상상력을 세계, 즉 아버지의 시적 이미지를 자신의 몸으로 육화시켜 독특한 춤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해준의 작업에 있어 아버지는 좋은 텍스트를 제공하며 자신의 춤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너무도 정확하게 지적해주는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의 부친인 이건청 교수는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데뷔한 중견시인. 60년대 우리 시단을 이끌었던 '현대시' 동인으로 괄목할만한 시작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의 시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단아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삶과 현대문명사회에 대한 비판을 그려왔다.「해지는 날의 짐승에게」,「하이에나」,「청동시대를 위하여」,「망초꽃 하나」,「목마른 자는 잠들고」,「코뿔소를 찾아서」 등의 시집을 펴냈고, 현대문학상, 녹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망초꽃 하나」는 매우 인상적인 시다.
정신병원 담장 안의 망초들이
마른 꽃을 달고
어둠에 잠긴다.
선 채로 죽어버린 일년생 초목
망초잎에 불은 곤충의 알들이
어둠에 덮여 있다.
발을 묶인 사람들이 잠든
정신병원 뒷뜰엔
깃을 웅크린 새들이 깨어
소리 없이 자리를 옮겨 앉는다.
윗가지로 윗가지로 옮겨가면서
날이 밝길 기다린다.
망초가 망초끼리
숲을 이룬 담장 안에 와서 울던
풀무치들이 해체된
작은 흔적이 어둠에 섞인다.
모든 문들이 밖으로 잠긴
정신병원에
아름답게 잠든 사람들
아, 풀무치 한 마리 죽이지 않은
그들이 누워 어둠에 잠긴
겨울, 영하의 뜨락
마른 꽃을 단 망초.
-「망초꽃 하나」
그는 특히 60년대 후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삶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비극과 소외의 문제를 탐색해왔다.
그만큼 철저하고 집요하게 삶의 어둠의 두께를 양파껍질 벗기듯(허무한 게 아닌) 집요하게 파헤치고 그 심연의 끝을 파고 들어간 시인은 드물다
그의 이 같은 시정신은 범상치 않은 세계인식을 보여주면서 우리시단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장인정신의 한 극점을 보여준다. 그의 이 같은 예술가 적인 기질은 아름다운 고통의 소산물일런지도 모른다.
젊은 무용가 이해준은 아버지의 이러한 예술가 적인 자세를 그대로 자신의 예술세계로 옮겨 내고있는 신세대 젊은이다.
그는 파행적이고. 정신분열적인 사이비 실험들이 펼쳐지고 있는 동안에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은 '제대로 된 예술가적 혈통'을 예술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준은 그 동안 '동아무용콩쿠르'에서 현대무용 남자 부문 금상, 한양대 총장 공로상, 대구 신인 콩쿠르 최우수상, 무용한국사 신인 콩쿠르 일반부 금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20여 편의 공연에서 주역을 맡는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1989년 「우리들의 이야기」, 1990년 「침묵하는 산」, 1991년 「홀소리 닿소리」, 1993년「내가 네게로」, 1994년 「영원을 바라보다」 등이 대표작이다.
그는 또 춤꾼이자 안무가이기도 하다. 그가 안무한 작품은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 「도망자」 등이다. 이처럼 그는 의욕적인 창작정신으로 춤 공연과 안무를 동시에 펼치면서 차세대 우리 무용 계의 주역으로 일찌감치 떠오른 셈이다.
그는 또 1991년 「문명 저고리」로 미국 뉴욕대학에서 뉴욕 데뷔 공연을 가졌으며, 1993년에는 필러블러스 워크숍에 참가하는 등 국제적인 안목도 키워왔다.
이해준은 자신이 무용가가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처음 무용을 시작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아버지가 정신적인 지주라고 덧붙인다.
공연장마다 꼭 찾아주고 날카로운 비평을 해주는 아버지는 자신의 춤 세계를 가꾸는데 더 없는 교과서이자 스승이기도 하다고.
이 교수 또한 아들의 작업에 긍정적인 애정의 시각을 보여준다. 그는 시적인 상상력과 무용의 상상력은 상당히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면서 다만 시는 문자, 무용은 육체라는 매체만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또 아들이 무용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비로서 아들이 삶을 어떻게 운영해 갈 것 인가하는 문제에서 상당히 주저했고 망설여졌던 것은 사실이나, 가족회의 결과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예술가족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교수연구실에서 다정하게 앉아 인터뷰를 한 이해준은 언행에도 조심성을 잃지 않는 자세를 보였다. 또 아버지 이 교수는 요즘 우리 무용 계에서 남성무용수들이 부족한 것 같다면서 앞으로 해준이가 훌륭한 무용수로 자라줄 것을 기대했다
이해준에게 있어 이건청 시인의 영향은 절대적인 것 같다.
그는 아버지의 시 「흔들리기 위하여」,「흐르는 시간의 중심에서」,「우리들의 이야기」,「침묵하는 산」,.「벼랑」,「내가 네게로」를 무용으로 옮겼다
이러한 작업에 대해 그는 "아버지의 시를 읽고 느낌을 받고 무용으로 옮기면 왠지 마음이 편안하다"면서 "자유롭게 그 세계를 무용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 또한 자신의 시가 이미지 중심적인 것이 강해 무용으로 표현하기에 괜찮은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해준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사람들 역시 가족이다 공연이 있을라치면 가족 모두가 공연장으로 몰려와 뚫어지게 공연을 감상한 뒤 동작과 표현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댄다 그중 여동생 수정양이 가장 혹독한 비평을 한다고. 이 교수는 아내와 함께 아들의 공연을 유심히 살피고 문제점을 포착, 합평회를 통해 공동 평을 꼭 갖는다. 보다 나은 아들의 춤 세계를 위해서.
그는 또한 아들의 공연장을 잦으면 유년시절부터 지켜본 자식으로서의 성장과정과 예술가로서의 성장과정이 흰 눈에 들어와 앞으로의 가능성을 엿보기도 한다고 이교수의 이해준의 작업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현대라고 하는 시대의 본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아요. 그 속에 있어서 문제점을 주로 투영해 왔어요. 신화적인 상상력을 통해 시대상황을 포착해내는 것 같고요. 여기서 다른 무용들과 변별되는 특징을 찾는 것 같기도 해요. 현재 그의 작업은 한국적인 토양과 정신 그리고 기법을 어떻게 세계화할 수 있는가를 한국적인 테크닉을 통해 만들어 가는 과정인 셈이지요. 그러나 시적 상상력, 현실에 대한 투시력, 에스프리 등을 패러디 하되 어떻게 완성도 높은 실험적인 자기 세계를 만들 수 있는가가 앞으로 노력해야 할 과제라고 봅니다."
실제 해준은 우리 전통의 세계를 담은 「기천문」, 그리고 탈춤 등을 현대적인 수용을 통해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융합시켜 나름대로 특이한 춤과 율동을 형상화해내고 있기도 하다.
결국 우리 것에 기초한 현대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해준은 "이뿐 글을 쓴다고 좋은 시인이 아니듯, 몸만으로는 좋은 춤꾼이 될 수 없다"며 정신적인 무장을 새롭게 가다듬고 있다. 우선 실력을 더욱 닦은 뒤 우리 무용의 프로화. 직업화, 세계화에 앞장서겠다는 것.
그는 올 11월 지난 2월 현대무용협회 신인발표회에서 선보인 아버지의 시를 춤으로 만든 「일각수(一角獸)가 있는 풍경」을 다시 다듬어 자신이 직접 안무하고 출연해 공연할 예정이다.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겨우겨우
서서 무너진 다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삐걱이다 무너진 날들을.
툭, 툭, 끊어져 교각(橋脚)만 남은 날들을.
거기 뒹구는
못과 망치, 펜치와 톱, 그리고 녹슨 자(倜)하나.
툭, 툭, 끊어져 교각(橋脚)만 남은
거기, 사내는 서 있었다.
끊어진 다리들이 희미한 교각을 드러낸 채
잊혀진 거기 사내가 서 있었다.
녹슨 자 하나
희미한 거기 한 사내가 서 있었다.
- 이건청 「일각수(一角獸)가 있는 풍경(風景)」
이 교수는 아들 해준에게 우리 무용 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기술적인 무용이 아니라 정신사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는 '큰' 춤꾼이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작고 시인 박목월의 애제자였던 이 교수는 아들에게 목을. 선생이 임종 하루 전 자신에게 해준 말을 예술가로서의 지표로 삼으라고 충고했다.
"네가 시작 활동하다가 이만하면 됐지 싶을 때가 있을 게다. 그것이 바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사실임을 알아라." (박목월)
이 교수는 예술가는 끊임없이 한계를 느끼게 되고 그것에 대해 응전하고 그 한계를 뛰어 넘어야하고 끊임없이 실험정신을 펼쳐야하며 현실 안주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좌표.
그처럼 어려운 길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간다고 했을 때 고민도 했지만 이제 같이 그 길을 가는 입장이 됐다면서 정갈하게 웃었다. 가난하다고 일컬어지는 시와 무용.
그러나 이들 부자는 지고한 장인정신으로 우리 시단과 무용 계에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예술가족으로 살아남을 것이라는 즐거운 예감을 갖는다. 특히 이해준은 패기 발랄한 젊은 기수 같은 춤꾼으로서 환상적인 무대를 보여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