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예술의 현장 / 미술

여성 특유의 섬세함 나타난 전시회 잇따라

-최욱, 조은하 개인전들을 통해서 본 여성스러움




조광석 / 미술평론가

얼마 전부터 미술에서도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싹트고 있다. 그러한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움직임은 이미 유럽이나 미국사회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사회에도 서서히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본다. 현실적으로 여성들의 사회 기여도에 비한다면 그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많이 억압받고 있음이 사실이다. 서구에서의 기독교적인 사회배경에서나 우리 같은 유교적인 배경에서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억압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남성위주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서구의 역사나 우리의 역사에서 계속되는 전쟁, 외세의 침략,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은 일종의 희생대상으로 쉽게 주목되기 때문에 피난처인 집안에 갇히게 되고 또한 여성들의 본성에서 드러나는 모성애는 출산과 양육과 함께 더욱 집안 일에 얽매이게 하였을 것이다. 한편 여성에 대한 성차별은 서서히 해소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와서 여성들의 반발은 점점 거세게 나타남을 보게 된다. 그것은 상대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여성들의 활동 범위와 역할은 계속 확산되고 있는 반면에 사회에서의 그들의 지위는 현저히 낮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에 대한 교육의 보편화와 사회 내에서의 여성 인력의 필요, 또한 여성을 집안에 묶어놓았던 가사에서의 해방은 여성에 대한 동등한 인간의 대우를 자연스럽게 요구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의 소외감은 정상적이고, 변화시킬 수 없는 인간의 현실이라고 생각해왔던 남성들의 사고를 바꾸고자 하게 된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여성은 억압받아 왔고 남성주도 사회의 희생물로 평가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미술에서도 그러한 사회현상에 대한 반응이 여성작가들로부터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특정 사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어 일종의 비판적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여성 작가들에 의한 비판의 형식과 대상은 성차별을 주제로 함으로써 일반적인 사회 비판적 작품들과는 다름을 보인다. 미술에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향은 이미 사실주의 Realism 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사실성과 비평은 '다다'를 거쳐 '네오 다다'에서도 작품 속에서 실제의 삶을 반영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작품의 주제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후자, 즉 신사실주의 Nouveau Realism에서 나타나는 비판적 사실주의는 상품화된 현실을 드러내면서 산업사회에서 유토피아의 상실을 비판하게 된다. 미술작품에서 비판적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사실주의나 신사실주의의와 유사하지만, 여성들은 남성주도 사회와 남성들의 행태를 비판한다. 그것의 한 예로써 사회구조 속에 여성의 관능미가 놀이나 상품으로 등장하는 것이나, 비참한 여성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써 여성에 대한 성차별을 작품 속에 재현시키고 있다. 이러한 작품에서 나타나는 작가의 의도는 작품을 통해서 보여지는 자기 방어적 보상심리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행위를 심리적 현상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예술작품을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로 보면서 작품에서 나타나는 주제에서 자기 방어적인 투사(投射)와 합리화의 경향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남성 비판적 작품에서는 자기비하에서 자기 방어적인 아이러니와 지나친 자기의식으로 빠지기도 한다. 즉 작품에서 여성은 남성들과의 비교에서 열등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소극적인 형식이 되겠지만 여성의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난 3월초 두 여성작가의 작품에서 여성스러움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두 작가는 형식적인 면에서는 전혀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주제는 여성을 다루고 있었다

관훈 미술관에서 전시된 '최욱' 작품의 경우 기존의 캔버스라는 사각형의 틀을 벗어나 일종의 입체적인 형식의 작업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의 대부분 작품들은 여성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 소재는 옷을 만들기 위해 프린팅된 천을 사용하여 천의 무늬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그 위에 약간의 붓 터치로 볼륨을 주고 있다. 또한 그러한 소재 위에 더해진 빠르고 넓은 붓 자욱과 그 붓 자욱의 밝고 원색적인 색채는 야수파 적인 인상을 준다. 한편 볼록한 가슴이나 손은 인형을 만들듯이 입체적으로 제작하면서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의 실루엣으로 외각 선을 이루고있다. 화랑의 흰 벽면에서 서로 흩어진 인물들의 활동적인 여러 표정과 함께 인물의 외각 선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조각 적인 느낌을 갖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최욱의 작품에서는 재료가 섬유라는 점과 정교하게 처리된 바느질 솜씨로 그가 다루는 여성의 형상과 함께 일치하고있음을 보인다. 그렇지만 이 작가가 보여주는 야수파 적인 형식, 즉 외향적인 경향은 대상에 대한 인식을 내면적인 갈등으로 이끌기보다는 손들의 위치와 표정에서 직접적으로 남성들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작품의 주제가 남성에 대한 피해 의식처럼 나타나게 된다. 반면에 갤러리 도올에서의 '조은하'는 캔버스 위에 전통적인 회화기법과 바느질을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 전시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10호 이하의 소품들이었는데 작은 화면에 배경은 색칠을 하면서 인물의 얼굴과 옷은 천으로 바느질해서 붙이고 있다. 앞의 작가와 마찬가지로 인물의 옷은 기성의 나염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유사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성의 나염 옷감은 화려한 여성의 의상을 연상하게 해주며 약간씩의 하얀 레이스 조각은 여성의 수줍음처럼 드러나게 한다. 또한 단추 같은 장신구는 아기자기한 여성 특유의 수집 취향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느낌을 주는데 화면의 색감과 함께 인물들의 크게 뜬 눈 흰자위 위의 검은 동자는 단추를 사용하여 어린아이들의 헝겊인형의 인상을 갖게 한다 그리고 크게 뜬 눈동자는 무엇엔 가에 대한 두려움과 놀라움을 보여준다. 화려한 옷감, 장신구, 인형 등은 여성스러움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의 두 작가들의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성스러움은 남녀의 성차별을 의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체질적으로 드러나는 개개인의 개성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예로 이 작품들에서는 젖가슴을 드러내면서 여성을 강조하지만 여성의 나약함이나 여체의 관능미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바느질을 통해서 여성특유의 기술을 나타내듯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젖가슴은 어린아이에게 수유하는 행위가 여성 전유행위임을 나타낸다 하겠다. 그것은 일반적인 어떤 상황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많은 사람들이 미술의 본질의 '재현'이라고 규정지으면서 문학적, 도덕적, 심리적 전제들을 정당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 여성들에 의한 작품의 주제가 모두 자기 방어적인 투사행위는 아니라고 믿는다. 많은 여류작가들이 미술계의 제도적인 구조 안에서 나타나는 남성들의 주도를 비난하지만 실제 예술작품의 가치는 제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에서 드러나는 내적 필연성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