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세계화 시대, 문화첨병들의 눈에 비친 문화의 모습
인도네시아 전통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가믈란
강영순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대학 박사과정
자와섬의 전통악기들
가믈란은 인도네시아 자와섬의 전통적인 악기들로 구성된 관현악단으로써 우리나라의 국악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가믈란 반주에 맞추어 전통의식이 거행되고, 이 외에도 창, 고전 춤, 와양 wayang(인형극) 등의 공연 시에는 독특한 음조로 합주되는 '인도네시아식 오케스트라'라고 말 할 수 있다.
가믈란은 인도네시아 인형극에서 소재로 쓰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창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또는 자와 섬의 왕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도 하는 가믈란의 역사는 AD 404년경 자와 섬에 힌두교가 유입되면서부터 시작되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가믈란은 자와 섬의 전통악기들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상, '지상의 낙원'이라고 불리는 그 유명한 발리섬에도 존재한다. 발리의 가믈란은 자와 섬에서부터 유래되어 발리의 힌두교도 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자와섬 및 발리섬 이외의 다른 섬에서도 이와 유사한 악기들을 볼 수 있지만 각기 다른 명칭을 가지고 있다. 자와섬 중부지역(중부자와)의 가믈란과 중부자와 중 문화의 도시인 욕야카르타의 가믈란을 손꼽을 수 있다. 동부자와 및 서부자와, 그리고 발리 가믈란 또한 각기 특색이 있다. 중부자와와 서부자와의 가믈란은 부드러운 음조로 연주되고, 동부자와의 가믈란은 단순한 면이 있으며, 발리섬의 가믈란 연주에서는 박진감을 느낄 수 있다. 발리 가믈란 연주는 다른 지역의 가믈란 연주보다 거의 2배가 빠른 템포로 연주된다.
그 외에도 악기의 모양, 크기, 수(數)와 악기 받침대에 조각되어 있는 그림 등에서도 그 차이점을 찾아볼 수 있다. 중부자와와 동부자와의 악기는 조각의 모양 및 주조형태만이 다르고 조각이 많은 반면, 서부자와의 것은 조각이 적으며 단순하다. 발리 가믈란 형태의 특징은 발리 고유의 조각 모양에서 쉽게 다른 지방의 가믈란과 구분할 수 있으며, 그 악기대 높이는 다른 지방의 것들보다 높다. 가믈란을 형성하는 악기들의 수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그 중에서 서부자와의 가믈란 악기 수는 다른 지방의 것보다 다소 적다.
완전하게 갖추어진 가믈란 악기의 수는 75종류로써, 30명의 연주자들에 의해 연주되고, 10명 내지 15명의 소리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가믈란 규모가 축소되어 연주되고 있다.
가믈란을 형성하는 악기 이외에도, 가믈란 연주자들의 복장을 보면 각 지방의 고유한 특색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연주자들이 쓰는 자와섬 고유의 모자 장식에서 그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욕야카르타의 가믈란 연주자들은 모자의 뒷부분에 달린 끈을 묶는 반면에, 중부자와에서는 모자 뒷부분에 끈이 없으며, 발리섬에서는 터번식 모양의 모자를 쓴다.
가믈란으로 연주되는 곡의 형태는 템포를 약간 느리게 연주하는 결혼식, 전통의식, 손님접대시의 가믈란곡, 동작의 변화에 따라 곡의 템포가 달라지는 춤곡, 극의 내용에 따라 템포가 달라지는 와양공연 시의 가믈란곡 등이 있다. 전쟁을 소재로 한 곡을 예로 든다면, 점점 템포를 빠르게 함으로써 쫓기고 쫓는 전쟁시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공연이 하나의 테마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저, 장단, 템포 등이 모두 다르다. 일반적으로 가믈란 연주는 저음으로 시작하여 차츰 고음으로 가면서 템포도 변화되며, 음의 고저와 강약 및 장단의 변화 형태가 우리나라 농악의 템포와 유사하다.
가믈란은 보통 다음과 같은 종류의 악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실로폰 류에 속하는 근데르Gender, 근데르 쁘느루스 Gender Penerus와 근데르 바룽 Gender Barung, 사론 드뭉 Saron Demung, 사론 바룽 Saron Barung, 사론 쁘느루스 Saron Penerus, 감방 Gambang, 피리의 일종인 술링 Suling, 징류에 속하는 끔뿔 Kempul, 공 Gong, 끄뜩 Ketuk, 끄농 Kenong, 끔ꢷ Kempyang, 보낭 바룽 Bonang Barung, 보낭 쁘느루스 Bonang Penerus, 현악기에 속하는 르밥 Rebab, 시뜨르 Siter 혹은 뽩름뿡 Celempung, 시뜨르 쁘느루스 Siter Penerus, 타악기에 속하는 끈당 Kendang, 그리고 슬랜뜸 Slentem, 뻬낑 Peking 등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슬링, 가죽으로 만들어진 르밥, 가죽 및 현으로 만들어진 끈당, 나무와 현으로 만들어진 뽩름뿡 혹은 시뜨르 외에는 대부분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다.
실로폰의 일종인 근데르, 사론 및 감방, 냄비 모양의 끄농 및 보낭, 피리인 술링, 비올라의 일종인 르밥, 기타와 유사한 시뜨르 등은 '1'음에서 '7'음까지 낼 수 있다. '도' 음에서 '시'음과 동일한 음높이는 아니지만 1음이 최저 음이고 숫자가 높을수록 고음인 것은 동일하다. 물론 한 옥타브 아래일 경우는 그 반대이다. 동일 모양의 악기 중에서 큰 것은 고음을, 적은 것은 저음을 내게 되어 있다. 이중에서 음을 리드하는 기능을 하는 끈당은 합주의 처음에 시작하고 끝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보낭은 음높이별로 악기 위치가 정해져 있다. 일반적으로 연주자의 앞쪽에 위치한 악기의 음높이는 연주자의 좌측 편에서 4, 6, 5, 3, 2, 1, 7의 순서이며, 뒤쪽에 위치한 것은 1, 7, 2, 3, 5, 6, 4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끄뚝, 끄농, 끔뿔, 공, 끔ꢷ 등 징류의 악기 중에 큰공은 기본음을 내는 기능을 하며 다른 것들은 작은 소리의 반복 음을 내는 역할을 한다. 노래와 관련된 악기들은 사론 및 바룽이다. 이 중에 특히 사론 드뭉은 한 옥타브 아래의 음을 내며 사론 슬랜뜸은 한 옥타브가 더 낮은 음을 낸다. 바룽(큰 보낭)은 노래를 리드하며, 드뭉과 슬랜뜸은 노래에 화음을 넣는 기능을 하는 반면에 사론 쁘느루스 혹은 뻬낑은 고음의 소리를 낼 때에 사용된다. 근데르, 감방은 부드러운 소리를 조절하는 기능을, 르밥은 음조의 시작을, 슬링, 시뜨르 혹은 뽩름뿡, 꺼쁘락, 꺼쩨르는 빠른 템포로 노래에 더욱더 흥을 돋우는 기능을 한다.
각 세트마다 숫자로 표시된 2가지 종류의 음계, 즉 록 pelong(여자)과 슬랜드로 slendro(남자)로 구성되어 있다. 뺄록은 7가지 음계, 즉 1, 2, 3, 4, 5, 6, 7의 음으로 구성되어 있고, 슬랜드로는 5가지의 음계, 즉 1, 2, 3, 5, 6의 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1은 머리를, 2는 목을, 3은 가슴을, 5는 손을, 6은 느낌 혹은 영혼을 의미한다. 머리는 하나의 형상을, 목은 머리로부터의 길의 역할을, 가슴엔 삶의 근원을, 손은 욕구 및 사랑 - 이성적인 사랑은 아님 -을, 느낌은 희로애락을 상징하기 때문에 인간의 삶을 가믈란 곡을 통해 형상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뺄록은 다소 슬프고, 부드러운 단조적 성격을 지니는 반면에, 슬랜드로는 위풍당당하고 활기가 넘치며 기쁨을 주는 장조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록을 여자, 슬랜드로는 남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음악에서도 인도네시아 민족의 고유한 철학과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공연의 필수동반자 가믈란
이러한 가믈란은 곡만 연주하는 것 외에도, 와양꿀릿 - 가죽으로 만들어진 인형이란 뜻으로, 앞쪽에는 가믈란이 연주되고 그 뒤쪽에는 스크린 앞에 달랑 Dalang(인형을 조정하는 사람)이 그 극에 부합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와양꿀릿을 움직여 앞의 관객들에게 극의 내용을 창과 더불어 전달하는 극, 와양골렉 - 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와양골렉이 보이게끔 하고 사람이 뒤에서 조정하는 인형극, 와양오랑-사람이 분장하여 공연하는 극, 춤, 노래 등과 함께 공연되어진다.
특히 와양꿀릿 공연은 밤 9시경에 시작하여 새벽 5시 반이나 6시경에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믈란 연주에 맞추어 노래도 삽입이 된다. 인간의 삶을 인형극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출하는 와양꿀릿, 와양골렉 공연 시에는 공연시간이 길기 때문에 일인 다역을 하는 달랑Dalang이 인형극의 대화 장면을 인형으로 조정하는 동시에 극중인물들인 인형들의 대화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 가운데 그 막간을 이용하여 가믈란 연주자들은 담배를 태우고 이야기하며 과자를 먹기도 하고 부채를 부치면서 달랑에 의해서 연출되는 인형들의 대화를 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관중들 또한 누워서 듣거나 기대어서 편한 자세로 듣고 있다. 꼿꼿이 앉아서 듣다가 쉬 지쳐버린다. 달랑의 독백 장면이 끝나면 낭랑한 목소리의 창과 가믈란 합주가 다시 어우러져서 약간 느슨해진 관중들에게 자극을 준다. 달랑은 예전에 존재했던 우리나라의 변사에 견주어볼 수 있고 창은 우리나라의 판소리를 연상시킨다. 창을 하는 사람들-창을 하는 여성들에 대해선 신덴 Sinden이라 호칭하며 남성들에 대해선 요꼬 Yoko라고 칭함-의 가느다란 성대의 울림은 아주 독특하다. 이들의 가창 법은 복식호흡을 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두성을 이용한 창인 듯하다. 가믈란 연주자들과 창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달랑을 중심으로 앉아서 연주하기 때문에 관중들은 무대 좌우에 위치한 가믈란 연주자들 외에는 연주자들의 등 모습만 볼 수 있다. 가끔 달랑이 관중들에게도 극의 내용과 관련된 질문과 답을 하면서 진행하는데, 주로 달랑 혼자서 유머스러운 질문과 답을 하기 때문에 시시로 관중과 연주자들의 폭소가 터진다. 이처럼 달랑이 재치 있게 진행하고 가믈란과 창이 극을 고조시켜가면서 진행되어지기 때문에 끝까지 관람할 수 있다. 관중들로 하여금 극 속 등장인물들의 대화에 공감하게끔 하는 기술은 오랜 무대 경험을 통한 숙련된 손놀림과 재치에서 나온다. 극의 내용에 따라 가믈란 곡과 창의 형태가 달라지는데, 와양의 테마는 굉장히 다양하다. 요즘에는 정치·경제·문화 그리고 인도네시아인 들의 생활 전면을 주제로 한 것과 사회비판도 매우 유머스럽게 다루고 있다. 달랑의 말솜씨와 재치 있는 유머감각으로 인해 사회비판 장면 시에도 관중들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도 웃으면서 감상할 수 있다.
가믈란 반주는 비단 와양 공연에서만이 아니라 춤 공연에서도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모든 춤이 각 지방의 특색을 표출하지만 가믈란 반주에 맞추어 추는 발리의 춤은 더욱 독특하다. 발리의 가믈란은 실로폰의 일종인 사론 및 감방이 다른 지역의 가믈란에서보다 더 많이 갖추어졌고, 그러한 발리 가믈란 반주에 맞추어 펼쳐지는 발리 춤은 매우 화려한 의상이 돋보이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춤에 동화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발리 춤의 대표적인 특징은 인도네시아인 들의 큰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과 손과 발의 섬세하고 에로틱한 동작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때에 가믈란 반주가 발리무희의 눈동자, 손가락, 발 움직임의 섬세한 표현이 두드러지도록 한 음 한 음을 더욱 더 강조하여 박자를 넣어주기 때문에 한 박자 한 박자가 힘이 있다. 다른 데를 보면서, 옆을 보면서 생각 없이 치고 두드리는 것 같은데 장단, 고저, 템포가 잘 어우러진 멋진 화음을 연출해낸다. 이러한 가믈란 반주에 맞추어 무희들이 펼치는 춤은 그 의상과 무희의 섬세한 움직임과 가믈란 반주가 잘 어우러져 관중을 사로잡게 하며 탄성을 터트리지 않으면 안되게끔 하는 매력과 신비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춤은 일반적으로 종교적 신앙과 관련된 것이 많으며 가믈란 반주에 맞추어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무희들도 아름다운 선을 만들면서 그 의미를 전달한다.
이와 같은 가믈란 연주는 국악연주 형태 즉,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빠른 템포로 연주될 때도 많지만 전체적으로 약간 느린 형태의 국악 연주에 비해 단조로운 반복 음으로 템포의 변화를 주는 특징을 지닌다. 또한 국악은 우리로 하여금 은은함의 깊은 멋에 심취하게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면, 가믈란은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태곳적 신비의 소리가 있다. 국악이 민요, 드라마틱한 판소리, 농악, 궁중무용 등과 잘 조화되듯이 가믈란 또한 극과 노래, 민속행사, 그리고 남국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춤 등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이렇듯 멋진 가락을 연출해내는 가믈란 합주를 들으면서, 가믈란 반주에 맞추어 펼쳐지는 아름다운 무희들의 춤과 와양 공연을 보면서 무한한 아름다움을 창조하여 그 아름다움을 함께 만끽하려고 하는 인도네시아인 들의 지혜와 문화 및 예술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인도네시아 문화·예술인들의 노고를 엿볼 수 있었다. 문화 및 예술애호가들에게 있어선 남국의 예술인들이 펼치는 낭만적인 예술의 향연에 동참해 보는 것도 멋진 경험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인도네시아 가믈란 연주를 통해서 음악이 음악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민족의 한 부분인 자와 섬과 발리섬 종족들의 세계관, 사상, 철학마저 깊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특히 자연·신·인간과의 '조화'를 표출하려고 하는 인도네시아인 들의 음악관을 통해 인간의 존재를 생각하는 이들의 슬기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믈란 악기를 보고자 원하는 분들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