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세계화 시대, 문화첨병들의 눈에 비친 문화의 모습

미얀마의 새해맞이 물 축제




이은구 / 양곤외국어대학 한국어과 교수

거리는 온통 물난리

미얀마에서 가장 무더운 4월, 40℃를 오르내리는 한낮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곳곳에 수많은 목조 임시가옥을 짓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는 상당히 의아스러웠다. 아무리 목재가 풍부한 나라라고 하지만 거리를 거의 메울 정도로 많은 가건물을 짓는데는 엄청난 양의 목재를 필요로 할 것이며, 또한 비싼 페인트로 광고용 문구를 장식하다보니 이것이 일회용이라면 너무 비싼 값을 치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개인이나 기업 그리고 공공단체에서 각각 그들의 명의로 임시가옥을 만드는데, 이것들은 규모가 다르지만 거리의 인파를 향해 물을 쏘아대기에 최대한 적절하게 높게 세워진 지붕까지 달린 훌륭한 것들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들을 벌이려고 달력에는 닷새씩이나 빨간색이 근사하게 장식되어 있어야 하나 하던 차에 양곤외국어대학 학장께서 금색으로 각인 된 멋진 초대장을 직접 전해 주었다. 교육부 고등교육 국에서 만들어 놓은 것이 있으니 그곳으로 꼭 나와 달라는 것이었다.

4월 14일, 차를 몰고 길을 나서자마자 여기저기서 뿌려대는 물로 거리는 이미 온통 물난리였다. 약속장소까지는 물난리를 피해 온전히 가야겠다는 생각에 차창을 꼭 걸어 잠그고 있었지만, 나는 차와 인파로 인해 차로는 더 이상 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이날만큼은 트럭이 제격이었고, 승용차는 아예 개조되거나 이미 시트가 벗겨져 있었다.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교통정리도 해주고 하지만 사방에서 몰려나온 인파와 차량행렬로 인해 도시 전체가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어차피 거기에 합류된 이상 굳이 그곳을 회피하거나 수수방관 만하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정해진 시간 내에 목적지로 가려고 하는 노력은 허사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모든 일상생활의 업무가 중단되면서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구분 없이 미얀마 사람이면 모두, 그리고 외국인도 예외 없이 일손을 놓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불문하고 거리에서 축복을 내려준다는 명목으로 마구 물을 쏟아 붓는다. 이제는 더 이상 물의 축복인지 물의 징벌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온통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하여튼 뿌리는 사람은 뿌리는 대로 즐겁고 맞는 사람은 맞는 사람대로 고통이라고 여기지 않고 기꺼이 맞아댄다. 이 마당에 옷이 물에 젖었다거나 너무 심하게 물을 뿌린다고 항의한다면 그건 넌센스가 되고 말 것이다.

버강왕조시대부터 종교적 정화의례로 굳어진 물축제

작렬하는 태양아래 거리거리마다 바가지, 주전자, 물통, 양동이, 드럼통, 등 물을 담을 수 있는 모든 용기가 다 동원되고, 꼬마 아이들이 쏘는 물총에서부터 물을 담은 풍선, 동력을 이용한 호스, 심지어는 소방호스까지 물을 쏠 수 있는 도구는 다 동원된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가건물에서 크고 작은 물줄기가 하염없이 뻗쳐 나오면 누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고 만다. 누구나 어느 곳이나 물로 흠씬 젖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속해서 물이 내 몸과 눈을 향해 날아오는 동안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한다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강력한 소방호스나 다른 종류의 물세례를 받을 때는 곤혹스러울 정도로 아프기도 한다. 간혹 차에 다가와 조롱이나 모욕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냥 애교로 보아 넘길 뿐이지 시비를 걸거나 그것이 발단이 되어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지 못한다. 사건 사고도 거의 없다. 원래 인내심 강하고 감정을 쉽게 폭발시키지 않는 미얀마 사람들이지만 특히 이 축제기간에는 절대로 남에게 화를 내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확고해 보였다. 특히 도시에서는 다소 거칠고 사나운 모습으로 변모된 젊은이들을 발견하지만, 그들 모두는 분명히 축제를 즐기기 위한 몸짓임을 서로 잘 알고 있다. 해괴한 장난도 웃음으로 받아넘기고 차갑고 아픈 물세례도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 비명을 지르고 움츠리면서도 자기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많이 뿌려주기를 바라는 아이러니컬한 광경, 이것이야말로 주고받는 사랑이라는 인간감정의 자연스러운 발로일 것이다.

이와 같이 미얀마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 가장 흥분과 기쁨으로 마음 설레게 하는 축제가 4월에 약 3∼4일에 걸쳐 열리는 미얀마 신년축제 띤잔 Thingyan(떠장이라고 발음하기도 함), 즉 물의 축제이다.

이것은 불교의례와 토속적인 정령숭배신앙 Nat의 형태가 잘 어우러진 것으로 이날만큼은 다른 축제에 비해 꽤나 시끌벅적하고 떠들썩하다. 미얀마 불교도들은 상징적인 영혼의 의미로 가정에서나 사원에서나 언제나 물을 불상에 정중하게 쏟아 붓곤 한다. 그러나 신년축제에는 이러한 의례뿐 아니라, 술을 마시거나 땅위에 부어서 신에게 제사하는 술잔치의 의례도 곁들여진다.

이 축제가 버강 Pagan 왕조 시대에는 왕의 주관 아래 공개적으로 종교적 정화의 의례로 준수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에는 궁중에서 왕족이나 대신들이 모두 참가하였다고 한다. 특히 버강 왕조 마지막 왕인 나라띠하빠띠 Narathihapati(1254∼1287) 왕은 궁전에서부터 애야워디 Ayeyarwady, Irrawaddy 강변까지 사람의 행렬을 만들게 하여 애야워디 강물로 궁중에서 물의 축제를 즐기도록 하였다고 한다.

비의 신 인드라의 승리에서 비롯

미얀마의 신년은 태양이 백양궁(白羊宮)에 들어서는 4월에야 시작된다. 미얀마의 캘린더는 윤일과 윤달이 들어있는 브라흐만 Brahman 모델에 따라 규정되었다. 따라서 가장 더운 혹서의 계절에 새해 새날을 맞이하게 된다.

이 가장 무더운 시기에 자유롭게 물을 뿌릴 수 있는 기간은 떠자민 Thagyamin(산스크리트어의 Indra 신을 지칭함)이라고 하는 나 Nats(민간신앙에서 전해 내려오는 귀령 내지 토속 신)의 왕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의 선행공덕을 평가하는 기간 동안이다. 이러한 전설의 주인공은 물론 힌두 신화에 나오는 우신(雨神) 인드라인 것이다. 인드라 신이 강림하리라고 예상되는 시기에 그에게 물을 헌납하는 것이다. 이것은 3∼4일 동안 계속되는데 이 기간은 매년 뽀우나 Pounna(산스크리트어의 Brahimin에서 옴)라고 하는 점성술 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미얀마의 새해맞이 축제는 떠자민 Thagyamin이라고 하는 나 Nats의 왕이 이 땅에 축복을 내림과 동시에 인간의 선악을 점검하고자 강림할 때 시작된다. 그가 강림하면서 두 권의 명부를 들고 온다고 한다. 한 손에서는 지난해에 선행을 쌓은 아이들의 이름을 기록하기 위해서 금으로 엮은 명부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도리에 어긋난 행위를 한 어린이의 이름을 기록하기 위해 견피(犬皮)로 된 명부를 들고 온다고 한다. 떠자민의 심판과 평가를 잘 받아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가진 미얀마 사람들은 이 시기를 전후해서 사원이나 명상 소에 들어가 참선이나 자선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의 행위에 대한 공덕을 쌓으려고 한다.

떠자민은 물병을 들고 날개 달린 황마(黃馬)를 타고 온다. 이것은 새해를 맞는 미얀마의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그를 환영하기 위해 꽃과 나뭇잎으로 대문을 장식한다. 며칠 전부터 띤잔꽃 badauq-pang이라고 하는 개나리꽃 모양의 향기 나는 꽃으로 집안에 향내를 피우거나, 여자들은 이 꽃을 머리에 꽂아 예쁘게 꾸민다.

결국 떠자민이 지상을 방문하는 동안 미얀마의 새해맞이 물의 축제는 시작되는 것이다

미얀마어로 띤잔 Thingyan은 산스크리트어의 띠따우 Thithau란 말에서 나온 것으로 'change over'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묵은해의 잔재를 일소하고 새해의 새로움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또는 비유적으로 불결한 것, 불순한 것, 죄의 더러움, 추함 등을 물로 깨끗이 씻어버리고 새롭게 변천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송구영신(送舊迎新)이다. 묵은해는 깨끗이 씻어버리고 새해는 물로 정결히 씻어 맞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축제 기간 중에는 물이 순결과 청정을 상징하기 때문에 사원, 불탑 pagoda, chedi 그리고 불상 등을 물로 깨끗이 씻는다. 또한 머리는 인간의 신체가운데 가장 고결하고 숭고한 부분이기 때문에 항상 청결해야 한다고 여겨져 이 축제 기간에 아랫사람들은 웃어른의 머리를 물로 깨끗이 감겨주는 봉사를 한다. 젊은이들은 대체로 유희의 상대로 흥미롭게 서로 물을 뿌리며 놀지만, 아직도 전통을 따르고 중시하는 가정에서는 물 항아리를 정중하게 연장자에게 바치는 물의 제례의식을 잊지 않고 행한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그 본래의 의미는 약간 퇴색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좀더 생생하게 실감나도록 서로 물을 흠뻑 적시는 일에만 전념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자유와 흥미를 만끽할 수 있는 신년 새해 축제의 기원에 대해서 이들은 과거의 신화 속에서 그 이야기를 찾고 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한 번은 인드라 Indra 신과 브라흐마 Brahma 신이 수학 문제를 푸는데 열중해 있었다. 미얀마어로 인드라는 떠자민 Thagyamin그리고 브라흐마는 아티 Ati라고 부른다. 이들은 까발라무니 Kavalamuni라고 하는 성자 앞에서 수학 문제를 놓고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목을 베어도 좋다는 조건에 동의하였다. 그 성자는 모든 준비를 마쳤고, 마침내 인드라의 답이 맞아 브라흐마의 목이 베어질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브라흐마 신은 창조의 신으로 그의 목이 땅에 떨어지는 날에는 지구가 산산조각이 나고, 대양에 떨어지는 날에는 지구상의 모든 물이 말라버린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여신들로 하여금 브라흐마의 머리를 잘 보살피도록 당부하였다고 한다. 즉 브라흐마 신의 머리를 잘 간수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이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신화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계속 전개된다. 인드라도 브라흐마의 머리가 없으면 큰 재앙이 내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의 머리 대신 코끼리의 머리를 베어 브라흐마 신의 머리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브라흐마의 몸을 가지고 코끼리의 머리를 한 가네샤 Ganesha 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후일에 와서 이 가네샤 신은 쉬바 Shiva 신의 아들로서 지혜와 부 그리고 괴력을 상징한다.

철저한 불교신도들은 신년축제가 열리는 3일 동안 금식하며 승려에게 보시를 행한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팔정도(八正道)의 원리를 특히 엄격하게 행하려고 노력한다. 대체로 주요 축제일은 4월 14, 15, 16일이고 17일이 새해 새날이다.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미얀마 땅 전역에 경의를 표하는 총포가 쏘아지고, 악대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 화려하게 장식된 차량들이 행렬을 이루어 도시의 거리를 누비며 다닌다. 이제 물놀이는 끝이 나고 그 대신 밤에는 연극 무대가 설치된다. 무대에서는 풍자와 해학을 곁들인 연극뿐 아니라, 민속무용과 음악의 향연이 베풀어진다. 또한 이 날은 종교적인 명상과 관조의 시간으로 승려들에게 헌물 의식이 치러지면서 갖가지 공양 물이 바쳐진다. 그리고 17일 새해 새날에 미얀마 불교도들은 삼귀의(三歸依 : 佛·法·僧)를 계속 암송한다.

물은 곧 축복을 의미

이렇게 화려하고 활력 있는 가운데에도 미얀마인 들은 평온과 평정의 시간을 맞기도 한다. 부산한 축제의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파고다에서 공물을 바치고 집에서 연장자에게 헌물 하는 평온한 안식의 시간을 맞는다. 새해 첫날 아침에는 불상을 물로 깨끗이 물로 씻어 바치고 특히 승려에게도 보시를 베푸는 일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 축제의 진정한 의미가 아직까지 연소자가 연장자의 머리를 감겨준다든지 하는 소정의 의례를 거치면서 소멸되지 않고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 축제가 주로 흥미와 재미의 축제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몸이 물에 젖으면 젖을수록 그들의 노래 소리와 춤동작은 커진다. 간이노점에서 음료수뿐 아니라 술도 많이 팔려나간다. 젊은 남자들이 여자를 상대로 물을 뿌리면 이에 준비된 응수라도 하듯이 여자들은 물동이를 남자에게 쏟아 붓는다.

여성들은 최신 패션이나 유행을 선보이고, 남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외설적이지 않은 청순한 매력을 선사하기도 한다. 옷이 물에 젖을망정 이날 그들은 자신이 자랑할 수 있는 제일 멋진 옷을 입어 보이며, 웬만한 사람이면 어떻게 구했는지 선글라스를 모두 끼고 나온다. 보수성이 지나쳐 폐쇄적으로 보이기만 하던 그들에게도 이날만큼은 어떤 복장이나 행동도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모양이다. 쏘고 뿌리는 재미, 평소에 즐길 수 없는 재미를 한꺼번에 만끽하다보니 어떤 이들은 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이 축제에 쏟아 부어 스스로 자아 도취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이것이 축제를 즐기려는 것인지 애꿎은 감정을 불사르려 하는 것인지 착각하기 쉬울 때도 있다.

이 축제는 본래 남자가 여자에게 그리고 여자가 남자에게 물을 흠뻑 적시는 것이지, 흔히 축제에 걸맞은 외관상의 옷치장에는 무관심한 것이다.

젊은 아낙네들은 몰래 숨어서 씩씩하고 용감한 호남자가 물을 뿌리러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다가는 곧 물세례를 받음으로써 장난꾸러기가 되는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축제 기간에 다른 사람에게 물을 뿌리는 것은 신의 은총과 가호, 축복, 호의, 후의, 존경, 경의 등의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날 서로 뿌려대는 물을 미얀마말로 어따예 Atha Ye라고 한다. 어따 Atha는 인도어의 아므리따 Amrta(不老)에서 그리고 예 Ye는 니르 Nir(水)에서 온 말이다. 말하자면 영생수(永生水)라는 뜻이다. 지금은 어따예 Atha Ye가 띤진 축제와 같은 의미로 그대로 쓰이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얀마에서 성수(聖水)의 즐거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 버마족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성수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까잉 Karen이나 까친 Kachin족 기독교인들에게도 반사적으로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종교적인 심사(深思)의 한 방편이지만 기독교의 침례교인(미얀마의 기독교인은 대다수가 침례교도이다)들이 물에 완전히 침수하는 것은 미얀마의 원주민들이 물의 축제를 즐기게 된 배경이라든가 이들의 신념과 직접적인 영향관계는 없더라도 성수의 종교적인 상징성이란 점에서 상호관계가 있지 않은가 싶다.

미얀마는 1년 중 11월에서 4월까지는 건기이고, 5월에서 10월까지는 우기이다. 건기가 한창인 12월부터 3월까지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타는 듯한 한발의 시기에 저수지나 우물은 말라들고 특정한 곳에서 물을 길어 써야만 한다. 이때야말로 물의 풍요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물은 계절에 맞는 가장 큰 선물이고 이 귀한 선물은 사원에서 질그릇에 담겨 귀중하게 보관된다.

이와 관련해서 생겨난 미얀마의 신년축제가 곧 물의 축제이다. 이와 유사한 축제가 타이 Thai에서도 열리는데 이들 축제는 모두 힌두 축제인 홀리 Holi 축제에서 연유한 것이다. 인도의 홀리 축제는 색가루를 뿌리는 색깔의 향연으로 시작되지만, 미얀마의 띤잔 축제는 물로 시작된다. 대체로 미얀마 사람들은 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많은 강과 풍부한 수량을 가진 나라에 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집단 유희로 즐기는 새해맞이

우리나라에서는 한해의 첫날인 정월 초하루를 설, 원단, 원일, 정초라고 부른다. 설이라는 말은 이미 고대로부터 널리 쓰여졌고, 그것은 새롭게 출발한다는 신선한 의미로 전해져 내려왔다. 이날은 모두 일손을 놓고 새 옷, 즉 설빔으로 갈아입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한다. 조상에게 제수를 갖추어 차례를 지내며 조상들의 무덤을 찾아가 성묘도 한다. 차례는 돌아가신 선조 들에게 바치는 의례라면 세배는 살아 계신 웃어른들께 올리는 의례이다. 그러므로 설날의 차례와 세배는 공동체적 유대감을 높여주는 구실을 한다. 그러나 차례는 혈연적인 체계를 바탕으로, 세배는 상하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이는 어디까지나 종적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설날의례나 놀이와 미얀마의 새해맞이 축제를 비교해 볼 때, 이들 모두 공동체 의식 내지 유대의식을 다지는 문화행사라는 점에 있어서는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설날 행사는 주로 혈연공동체의 유대를 다진다면 미얀마의 신년축제는 주로 지연공동체의 유대를 다진다고 하겠다. 차례와 세배는 삼가고 절제하는 가운데 행해지므로 지나치게 격식과 관념에 얽매여 있는 반면에, 미얀마 신년축제는 베풀고 바치는 행위에 중점을 두므로 까다로운 의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설날 행사는 혈연 중심의 상하질서 개념이 강하게 지배하지만, 미얀마 신년축제는 종적인 상하질서 개념보다는 수평적 질서 개념이 강하다고 하겠다. 우리의 설날의례는 웃어른과 조령을 대상으로 한다면, 미얀마 띤잔 축제는 그들이 보편적으로 신봉하고 있는 불타나 토속 신(精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미얀마인 들은 띤잔과 같은 신년 축제행사를 통해서 분열과 갈등을 무마하고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간의 우의와 화합을 다짐한다. 미얀마인 들은 새해의 기분을 모두가 한바탕 어우러져 흠뻑 만끽하는 반면에, 우리는 설음식과 설빔으로 절제된 듯한 소극적인 명절 기분을 느낀다. 윷놀이나 종경도 놀이가 있지만 미얀마의 신년 물 축제에 비해 마음을 확 열고 즐길 수 있는 신명나는 놀이는 아니다. 그리고 미얀마의 신년축제는 모두들 거리로 뛰어 나와 대규모의 집단을 형성해 즐기는 반면에, 우리나라의 설날은 소규모의 혈연단위로 즐기는 경향이 있다. 설날에 우리는 새해에 있을 자신과 자정의 장래를 설계하고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일들을 기원하는 반면에, 불교도가 대부분인 미얀마인 들은 내세를 위한 선업의 공덕을 기린다.

문화란 한 사회가 만들어내고 전승시켜 가는 생활양식이다. 어느 문화양식이 좋고 어느 문화양식이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사회에서 발생하여 계승되어 온 그들 나름의 생활양식 자체가 모두 가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물의 유희가 어쩌면 이들에게 유일한 놀이이자 즐거움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쌓였던 모든 감정이 물에 씻기어 일소되었는지 모르지만, 4월 한더위에 맞은 미얀마의 새해 새날 물의 축제는 언제였었는가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이제 이들은 곧 닥칠 몬순의 빗줄기가 그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씻어주길 기다릴 것이다. 빗물의 축복과 은혜로 답답한 욕구가 일순간 해갈되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빗물은 자연을 살찌우지만 인간의 정신과 물질적 욕망까지도 충족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년 새해 물의 축제는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더욱 열광적인 축제 분위기 속에서 물의 난무를 연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