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로 보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1995년은 한국 미술계에 있어서 잊지 못할 해가 될 것이다. 미술의 해인 올해 최대 이벤트의 하나로써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의 개관을 보게 된 것이다. 한편 올해는 대한민국 광복 50주년과 동시에 베니스 비엔날레가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써, 이와 같은 사실들이 또한 이번의 한국관 개관의 의의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휘트니 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비엔날레의 중심 축을 차지하는 미술행사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가장 오래 된 국제 미술전으로, 다양한 사조와 경향들이 혼재 하고 있는 세계 현대 미술계에서 독자적이면서도 진보적인 위치를 확보해 왔다.
도시 국가로서 오랜 전통을 가진 베니스 시가 1895년 이탈리아 국왕 부처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며 창설한 미술전시회에서 출발한 베니스 비엔날레는 베네치아 시의 남동쪽 자르디니 공원 내 10만평의 부지 위에서 펼쳐지며 제2회 파리 박람회에서 운영방식을 빌어와 국가관 별로 전시를 개최하는 것이 특징이다.
1928년부터 참가 국가 수를 엄격하게 제한한 베니스 비엔날레는 100년의 역사 가운데 및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현재와 같은 미래지향적인 미술제 체제를 마련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에 열린 비엔날레는 미술을 파시즘의 선전도구로 활용했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전쟁 이후 국가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새로운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1960년대 말에는 격렬한 수상 논쟁이 벌여져 대상제를 폐지하고 커미셔너제를 도입하여 오늘날의 운영상의 면모를 갖게 되었다. 특히 1951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1956년 카셀 도쿠멘타 등의 창설로 경쟁의 위협을 느낀 베니스 비엔날레 사무국은 전시회 행정의 공개와 공정성을 기해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았다. 이후 베니스 비엔날레 60년대 중반 로버트 라우센버그에게 회화상을 수여해 팝아트를 공인하고, 만 레이에게 사진 부문 금상을 수여해 미술에 끼친 사진의 영향을 공식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80년대 들어서는 이탈리아판 신 표현주의 그룹이나 트랜스 아방가르드 계열의 작가 산드로키아, 엔조 쿠치, 밈모 팔라디노 등의 대형 전시를 개최해 르네상스의 전통을 가진 이탈리아가 현대 미술에 화려하게 복귀하는 드라마를 연출해 내기도 하였다.
베니스 시가 주관하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국내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미술뿐 아니라 영화, 건축, 음악, 연극 등 5개 부문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시각에 독립된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미술전은 크게 각국 관의 전시, 특별전, 35세 이하의 작가들이 초대되는 아페르토전 등 크게 3가지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특별 전에서는 매번 비엔날레 미술 부문 디렉터가 결정하는 각국 관의 주제와 관련된 3∼4개의 전시가 열린다. 올해는 베니스 비엔날레 100주년을 맞아 아페르토전이 취소된 대신에 건축 전을 치르게 된다. 35세 미만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아페르토전은 별도로 선정된 아페르토 커미셔너가 몇 명의 큐레이터와 함께 조직하는 전시이다. 이 전시는 차세대를 짊어진 젊은 작가들이 보여주는 세계 현대 미술의 새로운 동향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비엔날레를 참관하는 미술평론가, 미술사가들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8년 김관수씨가 처음 초대되었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상은 회화 1명, 조각 1명, 그리고 국가관에 수여하는 3개의 황금사자상과 35세의 미만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2천년 대상, 그리고 4명의 작가에게 수여하는 특별상이 있다. 심사는 세계적 권위를 가진 미술관장이나 미술사가, 평론가들 4∼5명이 초청되어 심사위원을 맡는다. 비엔날레 행사는 전시 주제와 방향 등 모든 것을 책임지는 미술 부문 디렉터에 의해 치러지는데 이 디렉터는 4년 임기의 비엔날레 회장과 베니스 시 각계 인사로 구성된 16명의 자문위원들에 의해 선정된다.
1995년도 제4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미술 부문 디렉터는 프랑스의 피카소 미술관장인 장 클레로 1994년 4월 말 결정됐다. 그는 100주년 행사를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된 아방가르드 행사로 치른다는 뜻에서 올해 주제를 이미「동질성과 이질성 Identity & Otherness」으로 정해 놓고, '100년 동안의 인간 얼굴의 역사'와 '현시대 해부의 운명'을 부제로 내걸어 최근 젊은 작가들 사이에 세계적인 조류를 형성하고 있는 인간 신체에 대한 탐구를 문명발달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살펴보는 전시를 꾸밀 계획이다.
각국관 전시는 보통 60여 개 국가에서 참가하는데, 독립된 국가관을 가진 24개국을 제외하고는 시내의 이탈리아 관에서 함께 소개된다. 지난 1986년 42회 때부터 4회 동안 참가한 우리나라는 그 동안 독자적인 전시공간이 없어 이탈리아 관의 일부를 빌려 전시하는 처지였다. 1994년 제45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백남준씨가 독일 관의 공동대표 자격으로 참가하여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으나, 한국은 자국 관이 없어 세계의 미술 관계자들은 물론 관람객의 시선조차 제대로 끌지 못했었다. 이후 한국 관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함을 절감한 정부에서 미술계의 지원과 협조를 강화해 마침내 한국 관을 건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계 현대미술을 주도해 온 베니스 비엔날레의 100주년을 맞아 세계에서 25번째로 베니스 교외 자르디니 공원에 한국 관이 세워지게 됐음은 이제 한국의 현대미술도 세계의 미술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어 평가받을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중국, 아르헨티나 등 23개국이 독립관 건립을 희망했지만 한국에만 허가가 났다는 사실도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대목이다. 현재 100주년을 맞는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24개국이 독립 전시관을 확보하고 있으며, 동양에서는 그 동안 일본만이 독립 관을 갖고 있었다. 특히 한국 관은 베니스 시 당국과 '한국 관을 베니스 비엔날레 100주년 기념의 첫 건물이자, 100년 후에는 가장 오래 된 건물이 되게 하자'는 데 동의했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기념비의 역할도 함께 해 낼 것으로 기대된다.
오래 전에 지어진 다른 나라의 독립전시관들과는 달리 한국 관은 평면 회화뿐 아니라 입체설치, 영상매체를 이용한 현대적 장르의 모든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베니스 건축대학 프랑코 교수와 한국 관을 공동 설계한 김석철(아키반 종합건축사무소장)씨는 이미 들어서 있는 24개국의 독립 관은 모두 몇십 년 전에 지어져 대부분이 평면 회화전시 중심이기 때문에 현대 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제대로 담아낼 공간이 드물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현대 미술의 새로움을 담는 전시공간에 강조 점을 두고 설계했다고 한다. 단층 건물로 바다를 향해 출항하는 배의 모양을 본뜬 한국 관의 총면적은 옥상을 포함해 2백여 평으로 4곳의 전시공간으로 나뉘어진다. 1전시장은 장방형으로 벽면이 모두 유리여서 안팎에서 전시 작품을 볼 수 있다. 조각이나 설치작품 전시에 새로운 효과를 기했고, 단추를 누르면 유리벽 밖으로 외벽이 처져 영상매체의 활용도 자유롭다. 2전시장은 4명 모두 벽돌로 만들어진 정방형 구조로 고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원통형의 3전시장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스틸로 된 미래지향적 공간이다. 장방-정방-원형에 유리-벽돌-금속이라는 형태와 소재의 차이는 각각 현재-과거-미래를 상징한다. 3전시장 옥상에 마련된 4전시장은 야외전시장이라는 점에서 다른 전시장과 구별된다.
올 8월에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참여 작가는 동양적 사유와 서구적 현대감각을 결합시켜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해 온 대표적 작가인 윤형근(평면), 김인겸(인체), 전수천(설치), 곽훈(설치)씨 등 4명이 선정됐다. 제1전시장(60평)에는 전수천씨의 설치미술, 제2전시장과 제3전시장(각 20평)에는 김인겸씨의 입체미술과 윤형근씨의 회화작품, 제4전시장에는 곽훈씨의 야외설치작품이 개관 기념이라는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여 야외공간까지 살린다는 차원에서 각각 전시된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한국관 건립은 '서구화 물결의 극복' 이라는 과제에 대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온 우리 미술계의 하나의 결실이며, 또한 세계 각국의 미술 문화가 경쟁을 벌이는 현장에서 한국 미술의 수준을 올바르게 소개하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우리 현대 미술의 전파의 소중한 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