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다색·다양으로 대변되는 세계 미술계의 평준화

-베니스 비엔날레 각국관의 표정




전수진 / 월간 미술 기자

50여개국 수백 명의 작가가 참가한 미술계의 올림픽

1백 년의 역사를 지닌 베니스 비엔날레는 미술계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다. 세계 미술관계자들의 이목을 한곳에 집중시킴은 물론, 이 행사가 국가별 독립관(파빌리온)별 전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95 베니스 비엔날레는 50여개 나라로부터 온 수백 명의 작가가 '조국'을 대표해 참가했다. 이들 가운데 30여 개국, 60여 명의 작가만이 독립된 파빌리온을 지니고 있다. 자르디니(우리에게 자르디니로 알려진 비엔날레 개최 장소의 바른 명칭은 '자르디니 디 카스텔로'로 '카스텔로 공원'이라 해야 옳다)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국가관들을 중심으로 올 비엔날레를 정리해 본다.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그 뜨거운 이슈를 보여주고, 미래를 제시하는 장으로 기대를 모으는 제46회 베니스 비엔날레, 오늘의 미술을 대표하는 많은 작품들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장르는 비디오 아트였다. 지난 1993년 제 45회 행사에서 독일관을 대표하여 출품했던 백남준이 황금사자상을 받았음을 상기해 볼 수 있다. 백남준으로 대표되던 비디오 작업이 그 폭과 개념을 넓히면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각국은 서로 다른 시각과 방법을 통해 과학기술과 예술의 새로운 결합을 거듭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비디오 작업에 대한 관심은 미국관 앞의 입장행렬에서 단적으로 나타났다. 각광받고 있는 작가 빌 비올라의 작품을 보기 위한 것인데, 올 비엔날레의 열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일반 관객을 위한 공식 개관이 미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길게 늘어선 이 행렬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다른 파빌리온과는 달리 10명씩 제한을 두어 관객을 입장시킨 미국관의 유난스러움 탓도 있었지만, 가장 유력한 수상후보로 온갖 매스컴이 비올라를 중심으로 모여든 때문이었다.

「간격」,「침묵의 소리」를 비롯, 베일이 비디오 화상을 쏘아 독특한 효과를 낸 「베일」, 전통 의상의 여인들의 움직임을 느린 화면을 통해 보여주어 한 컷 한 컷이 고전 회화를 연상시킨 「인사」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정작 이번 비엔날레 입체·비디오 부문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차지한 것은 이태리관에서 열린 특별전에 단 한 작품만을 선보였던 게리 힐이었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게리 힐의 「무제」

미국 캘리포니아 태생인 게리 힐은 70년대 중반부터 비디오 작업을 시작한 이 분야의 중견작가, 인체와 언어를 주요 테마로 하던 그는 이번 출품작 「무제」에서도 자신의 성향을 드러냈다. 어두운 방안에 들어서면 좌우로 푸른 빛의 스크린이 있고 바닥에는 낮게 미로가 있다. 이 미로 속에 발을 디디면 번지는 음향은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며 스크린 속에는 인물의 움직임과 수화하는 손에 몰두하게 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특별전인 '동질성과 이질성'의 마지막 부분으로 이태리관의 한 켠을 차지한 이 공간에는 게리 힐을 비롯, 부르스 나우먼, 마이클켈리 등이 작품을 선보였다.

'95 베니스 비엔날레의 '비디오 아트'는 그 개념의 폭을 넓히고 있음이 특징이다. 이러한 경향은 여러 파빌리온,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여러 파빌리온,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나타나 있었다. 여러 개의 모니터가 병치된 작품은 물론, 컴퓨터를 이용한 화면 합성과 애니메이션을 사용하고 관객의 직접 조작을 작품의 한 요소로 포함하고 있었다. 비디오 작업에서 나아가 영화상영과 다를 바 없는 필름 작업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스위스관을 들어서면 띄엄띄엄 놓인 모니터 영상 사이를 거닐게 되며, 네덜란드관에서는 높이 매달린 스크린에서 반복되는 인체의 움직임에 발길을 멈추게 된다. 러시아관에 선보인 러시아 혁명기와 그 이후의 풍광을 담은 작품은 다큐멘터리물을 보는 것과 같았다. 일본관을 대표한 한국작가 최재은은 일본관 외벽을 가득 메운 화려한 포장 작업으로 눈길을 모았으며, 이와 함께 전시장 내부에서는 여러 대의 모니터를 통해 미생물의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특수 종이를 땅에 묻었던 작업에서 연유한 새로운 시도로 그 종이의 한 부분을 떼어내어 번식시킨 후 알 수 없는 생명체의 움직임을 스크린에 담아낸 작품이다. 한편 일본관 한 켠에서는 안경을 쓰고 보는 입체영화까지 등장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단연 강세였던 설치작업들을 대부분 비디오 작업을 하나의 작품 구성 요소로써 또는 그 테마로써 등장시켰으며, 한국관의 김인겸, 전수천의 작업도 이에 속한다 하겠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비디오 작업중의 하나는 아름답고 현대적인 건축물속에 새로운 세계관과 우주관을 펼쳐 보이고자 한 오스트리아관의 작품들이었다(리하르트 크라세는 특별상을 수상했다). 관객의 직접 조작에 의해 달라지는 세계를 보여주기도 했으며, 비엔날레의 가장 큰 상인 국가상을 도구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빌리온상은 이집트관에

주최측이 '건축과 비술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심사, 선정한 '95 비엔날레의 파빌리온 상은 이집트관에 돌아갔다. 전시작품을 건축과 결합시킨 몇몇 국가관들 가운데 이집트관은 특히 전시관계자와 관객 모두의 관심을 모았다. 서구 현대미술이 과학기술과의 경제를 점차 없애고 있는 현 상황에서 관객이 전시공간을 거닐며 조용히 감상하는 시간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건축가를 포함한 4명의 작가가 하나의 공간을 메운 이집트 관에서는 현대미술을 통해 오랜 역사상을 느낄 수 있다. 즉 각국이 지닌 과학능력에 비례하여 예술의 가치를 평가받게 되는 때, 이집트는 후발주자로서 현대 미술의 해결책을 자신의 유구한 전통속에서 도출해내어 '미술'에 대한 향수를 만끽하게 했다.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담은 크고 작음 금속조각들 사이에 놓인, 미라가 일어서 나간 자리 같은 흙 조각은 피라미드의 유적을 상기시켰다. 그 유물들의 자리를 지나면 흰 벽돌담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담은 철제 조각과 어우러져 전시공간을 메워 지그재그로 길을 만들었다. 그 길을 따라 다시 전시장 입구가 나올 때까지 걷다보면 보는 즐거움과 명상의 기회를 동시에 얻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집트관은 또한 우리에게는 생소한 아프리카 지역 현대미술의 수준을 가늠하고 자극받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사진작업, 독립된 장르라기보다는 기법

이번 비엔날레 출품작에서 또 하나 특기할 점은 사진 작업이 많다는 점인데, 이태리관은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이태리 사진의 흐름을 보여주는 특별전을 마련하기도 했다. 사진작업을 펼친 대표작가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빌 헨슨이다. 어두운 조명이 전체공간을 컴컴하게 메우고 있고, 그 속의 사진 작업들은 역시 어두운 색조의 컬러사진이다. 풍경 속에 인물이 있는데, 3차대전을 겪은 후 폐허 속에 놓인 듯한 누드는 윤곽선을 흐리며 전체 공간을 우울한 공기로 채웠다. 특히 사진 인화지 뒤의 흰 부분을 거칠게 얹어 콜라주함으로써 작가가 의도한 효과를 배가시켰다.

베네주엘라도 현대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진들을 출품했는데, 합성기법을 통해 독특한 효과를 내는 작업도 선보였다. 사진은 이처럼 콜라주, 사진합성 등을 통해 기법적인 면의 다양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비디오 아트와 마찬가지로 설치 등 다른 작업에 중요한 요소로써 도처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사진은 개념적 작업에서도 유용한데, 폴란드 작가 오팔카는 숫자를 작게 써서 화면을 가득 메우는 자신의 유명한 평면 작업과 함께 사진을 병치시켰다. 독일관의 작가 토마스 루프도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사진은 이처럼 독립된 장르라기보다 하나의 기법으로서 미술 전반에 적극 수용되고 있었다.

'95 비엔날레에서 자르디니 공원을 메우는 각국관의 전시와 함께 또 다른 큰 축을 이루는 것은 이번 행사의 총 커미셔너인 장 클레르가 마련한 특별전이다. 금세기 현대미술의 역사를 두고, 많은 이들이 추상미술의 경도를 파악하고 있음과 달리 장 클레르는 영원한 테마인 인체를 토대로 한 구상의 맥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동질성과 이질성(Identity and Aiterity), 1895∼1995」의 제목으로 열린 이번 특별전은 근대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인체 관련의 모든 작품을 망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작업을 포괄한 대규모의 전시였다.

장 클레르의 이러한 의도는 자르디니안의 많은 국가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태리관의 출품작들은 이러한 주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었다. 자르디니를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이태리관은 여타국가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건물 전면을 크리스티얀 볼탄스키의 작품이 장식하고 있는데,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벽면에 가득 메웠다. 내부에는 인체를 주제로 한 19명의 입체 작업들이 각방을 메우고 있었다.

가장 많이 사용된 모티프, 인체

이태리관 외에 많은 곳에서 인체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모티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덜란드관의 곳곳에 놓인 과장된 인체 부분의 조각, 헝가리관의 흰 신체는 물론이고 비디오와 사진작품에 나타나는 인체까지 포함한다면 공원 전체를 뒤덮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의 현대미술이 다시 전통적인 소재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는 아무래도 총괄 커미셔너인 장 클레르의 의도가 십분 반영된 까닭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범주에서 나아가 생명 자체에 주목하는 작품, 환경적 메시지를 담고자 하는 작업들도 눈에 띄었는데 북해를 마주하고 있는 스칸디나비아 3국과 덴마크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이 한 개의 넓은 파빌리온에 사이좋게 전시하고 있었는데, 지느러미를 잃은 바다표범의 유영장면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덴마크의 작가 올젠은 여러 동물을 소재로 화면에 붙이거나 유리진열대에 박제를 채워넣어 생명을 잃은 동물의 형상을 제시했다. 캐나다의 에드워드 푸와트라스도 황야에 놓인 뼈의 형상 등을 통해 주목받았다. 브라질의 누드 라모스는 인공적으로 화석을 만들어 아직도 깃털이 남아있는 동물의 형상을 제시했다.

평면부문 황금사자상 영국 출신 화가 키타이

한편 모더니즘의 여운을 포함하는 추상작업도 간간이 눈에 띄었는데 시끄럽고 복잡함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눈을 쉬게 했다. 전통적인 평면작업을 보인 곳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신구상회화의 특성을 지니고 신화나 옛이야기를 원색으로 표현한 스페인관의 평면작업이 있었고, 루마니아관에서도 신체모티브가 배어나는 추상회화를 조각작업과 병치시키고 있었다. 특히 영국관의 작가 레온 코소프는 뒤늦게 각광 받는 고희의 작가로 두꺼운 화면에 묻어나는 삶의 정취를 통해 관객을 화면 앞에 머무르게 했다. 한편 특별전에 참가했던 영국 출신의 화가 키타이가 평면부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가 비록 미국 화단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이번 비엔날레에서 영국의 평면 우세를 보여준 결과를 낳은 셈이다.

전체 공간을 도서관으로 꾸민 이스라엘관은 전체적인 조화와 함께 미술뿐 아니라 문화 전반의 정보가 모여 있는 공간을 생생하게 제시함으로써 정보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새로이 자각하고 예술로써 경험하게 했다. 특히 꼭대기 부분의 자연채광을 흡수한 공간에는 유리바닥 아래 아주 작은 알파벳을 깔아놓아 기호인 동시에 언어이며 자료인 대상을 관객이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그외에 주목할 곳은 프랑스관으로 이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는 세자르가 널리 알려진 폐차 압축작업을 보여주었다. 조형의 문제에서 나아가 미술 재료의 확장을 시도했던 그는 이미 많은 동시대 미술가에 영향을 주었으며, 환경문제에 대한 언급 또한 포함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것은 전시관의 뒷편 큰방에 마련된 비디오 상영이었는데, 베니스에서의 작업과정을 비롯한 세자르의 작업과정을 보여주어 관객이 작가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한편 그리스 출신의 작가 타키스는 1백주년을 맞이하는 비엔날레를 위한 기념 조각을 제작하여 눈길을 모았으며, 우루과이의 출품작품들은 독특한 색채와 형상의 조화를 통해 세계를 휩쓸고 있는 남미 음악의 물결과도 같아 보는 이를 매료시켰다. 우루과이는 평론가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파빌리온 가운데 한 곳이다.

온종일 다리 품을 팔아도 한껏 보기에 부족한 카스텔로 공원, 과거의 시간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물의 도시 베니스에 세계 도처에서 온 다양한 현대 작품이 망라되어 있다. 제46회를 맞이한 이번 비엔날레가 뚜렷한 이슈도 없고 특별한 활기도 없는 맥빠진 행사라는 평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주는 교훈도 많다. 이집트관이 파빌리온상을 받고 동구권과 남미의 작가들도 강대국의 작가들과 대등하게 견주게된 것은 세계 현대미술의 평준화를 의미한다. 또한 입체와 평면의 구분이 이미 의미를 잃은 채, 많은 매체가 혼용된 설치 작업이 주류를 이루며 이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비디오와 사진의 강세는 그 힘을 더 이어갈 듯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그에 못 미친 셈이지만, 하나의 뚜렷한 문제점을 제시하기에는 세계의 미술계가 너무나 다양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으며 그 높이도 점차 비등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